추곡수매가를 동결하는 효과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조처로 농촌 살림들이 어려워지자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농촌을 떠난 사람들은 도시로 모여들고,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손쉬운 일자리를 찾아 공장들로 들어가고, 인력 구하기가 쉬우니까 노동자들의 저임금은 계속 유지되고, 노동자의 저임금은 공업 생산품의 원가를 줄여 수출을 신장시키고, 수출 신장은 공업화를 촉진시키고 있었다.

바다는 왜 그리 푸르른가, 파도로 끝없이 바위에 부딪쳐 멍이 들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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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서로 잡아먹을 듯이 치열하게 대치하는 건 딴 속셈이 또 있다 그거지. 겉으로는 이념 대립인데 속으로는 그걸 서로의 체제 유지에 이용해 먹고 있다 그거야.」

양쪽에서 서로 대립을 격화시켜 가면서 위기감을 조성시키고, 그 위기감으로 국민들을 위협해 자기네 독재정권을 유지시켜 나간다는 그런 뜻 아닌가?」

‘쌀람 알라이쿰’은 ‘그대에게 알라신의 가호가 있기를’ 또는 ‘그대에게 알라신이 내리는 평화가 있기를’ 하는 뜻으로 첫인사를 할 때 썼고, ‘인샬라’는 ‘신의 뜻대로’라는 뜻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과 온갖 일들에 폭넓고 다양하게 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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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물결이 일어나지 않은 정치투쟁, 그것은 개인의 희생일 뿐이었다. 동생과 그의 동료들은 그 점을 놓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경솔일지 몰랐다. 그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나섰을 수도 있었다. 자기들이 먼저 싸움에 나서서 대중을 자극하고 불러일으키려는 계책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외친 ‘역사가 이 법정을 심판할 것이다’라는 구호는 허망한 것 같으면서도 의미심장했다. 역사……, 그것은 얼마나 모호하고 막연한 것인가. 현실에서 볼 때 모양도 형체도 없는 것이 역사였다. 또, 역사의 힘이 있다한들 그 힘이 발휘될 때는 오늘의 현실은 이미 과거가 된 다음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역사의 힘을 믿고 독재의 폭력 앞에 몸을 내던진 것이다. 그건 오늘 당하는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의가 없이는 못할 일이었다.

검사……, 그것은 사실 박 정권을 지켜온 또 하나의 주구 집단인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검사라는 권력행위자들의 경우에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하게 공범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법 집행이었다. 물론 그것은 검사들만이 아니라 판사들까지 합세해서 자행된 사건이었다. 그들 여덟 명에게 검사들은 사형을 구형했고, 그에 따라 판사들은 사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그들은 사형 집행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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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곳이지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끝도 한정도 없는 뻘밭이었다.

일당으로 하면 게으름피우는 것 속 터져 못 보고, 도급제로 하면 죽을까 봐 겁난다는 말은 어느 노동판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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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야. 그런 것 생각해서는 아무것도 못해. 박은 이승만이 몰락해서 비참하게 되는 꼴을 보았으면서도 그보다 더한 유신독재까지 만들어냈어. 이것은 곧 정치의 퇴보만이 아니라 사회의 퇴보를 말하는 거야. 세계 여러 나라들은 날로 변화하고 발전해 가고 있는데 우리는 4·19 이후 13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오히려 퇴보한 사회에서 산다는 게 말이나 돼? 4·19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게 뭐야. 이 땅에서 그 어떠한 독재도 용납하지 말라, 독재는 싸워서 물리치지 않으면 타도되지 않는다, 독재를 타도하려면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것 등등이 아니겠어? 민주주의 세상에 살기를 원하거든 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놈의 긴급조치 1호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요. 그건 유신독재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한지를 자기들 스스로가 입증하고 있어요. 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따위 법은 없을 거예요.」
서경혜의 태도가 금세 달라졌다. 그녀는 정말 치를 떠는 것처럼 얼굴에 분노의 빛이 서리고, 야무진 입매에는 더 힘이 모아져 있었다.
「그래요, 그건 무법천지의 표본이오. 그런 세상에서 살려면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건데, 앞으로 어찌 될지…….」
유일표는 혀를 찼다.
「세상에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하고, 전시도 아닌데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나라예요.」
서경혜가 말하는 것은 긴급조치 1호의 5항과 6항이었다. 대통령 긴급조치 1호는 전체 7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행동을 금한다.
5.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 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6.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위반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7. 이 조치는 1974년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욕심은 못 메운다는 옛말이 어찌 그리 맞는지.

「예, 총칼을 든 우리나라하고는 다른 방법이었지요. 그런데 그 비폭력 저항을 ‘간디의 무저항주의’라고 말하거나 글로 쓰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요. 그건 아주 잘못된 겁니다. 무저항주의란 말뜻 그대로 하자면 ‘저항을 하지 않는 주의’인데, 인도 독립대원들은 자기들이 영국군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을 뿐이지 온몸을 내던져 저항했거든요. 그리고 무저항주의라는 말은 간디의 뜻과도 맞지 않는 겁니다.」
「예에, 무식한 내가 생각해도 그래요. 이쪽에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저항이란 뜻이니까 비폭력 저항이라고 해야 옳고말고요.」

「마하트마 간디, 마하트마 간디……. 참 부처님이 따로 없구만요. 알 만한 사람들이 어째서 그런 좋은 본을 못 보나 그래. 하긴 박 통이야 젊었을 때부터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들 등뒤에서 총질해 댄 인간이니까.」
이용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유일표는 가슴이 섬뜩한 걸 느꼈다. 이용진의 부친은 만주에서 투쟁하다 숨진 독립투사였던 것이다.

「그래요. 홍 형 말이 옳은 것 같소. 예수가 일찍이,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꿰기보다 더 어렵다고 했는데, 어쩌면 돈의 분량은 곧 그만큼의 사회악의 축적인지도 모를 일이오.」
이상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너무 사적 감정에 빠져 있는 자신을 건져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미경의 상처와 아픔은 자본주의 공룡의 발에 짓밟힌 벌레의 운명이었다. 자신 또한 그 공룡 앞에서는 한 마리의 벌레에 지나지 않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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