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기점으로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와 이를 대신한 유리계단 위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여유라는 단어 대신 조급함과 억울함만이 생겨났다. 이렇게 모두가 억울한세상에서는 특별히 청년들을 위한 자비를 베풀 여유가 없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과의 대담에서 리카르도 마체오Riccardo Mazzeo는 소아 혐오Paedophobia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에서 젊은이에 대한 공포는 그들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한다는 뜻이라기보다, 개인의 생존도 버거운 마당에 사회가 그들을 배려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곳에서 바우만은 젊은이에 대한 공포를 젊은이들을 또 다른 사회적 부담으로 여기는 시각‘이라 풀어낸다. 이미 버거운 삶을 짓누르는 불필요한부담이나 책임을 경계하고 회피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청년의 성장이나 미래의 이익을 따지기보다, 현재의 이익만을 따지게 되었다. 기업은 청년 세대의 고용보다는 본인들의 단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 선택만 할 뿐이다. 기업은 늘 조급하다. 조금이라도 속도가 떨어지면 경쟁 기업에 뒤처지거나 따라잡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점차 참을성을 잃고, 이에 따라 일종의 자비심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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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2019-10-0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