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는 미래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닥친 비상사태다. 그런데도 우리는 비상사태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은 온도 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억제하자고 약속했다. 2도 억제는 결코 무모한 목표가 아니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2도 억제를 목표로 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표하는 많은 이들이 〈사형 선고〉라며 이를 규탄했다. 저지대에 위치한 도서 국가들은 〈1.5도가 생존선이다〉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그 덕분에 마지막 순간에 파리 협약에는 모든 나라들이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한다〉라는 구절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 말은 구속력이 없을 뿐 아니라, 거짓 약속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 이런 약속을 해놓고도 많은 정부가 더 많은 프래킹 유전을 만들고 지구상에서 탄소 함유량이 가장 높은 화석연료인 타르샌드를 캐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1.5도 이하는커녕 2도 이하 억제 목표조차 이룰 수 없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살아가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신상에는 아무런 문제도 닥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위험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떨어질 것이고, 설사 기후 변화의 영향이 목전에 닥쳐오더라도 자기만큼은 틀림없이 보호받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우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길 위험이 높은 태평양 군도 중 하나라는 점에서 또 다른 상징성을 지닌다. 나우루 국민들은 지금은 자국이 다른 사람들을 가두는 수용소로 변해 가는 걸 지켜보고 있지만, 머지않아 자기 나라를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난민을 감시하는 경비원이지만, 내일은 기후 난민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나우루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도 앞으로 벌어질 일도, 역시 동일한 논리에서 파생된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유색인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문화, 그들이 파도 밑으로 사라지건 수용소에 갇혀서 분신을 하건 모른 체하는 문화라면 유색인들의 나라가 통째로 바다 밑에 가라앉건 가뭄과 폭염에 파탄이 나건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이 끔찍한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인간을 서열화하는 이론과,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과, 난민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파괴할 거라고 주장하는 이론이 총동원될 것이다. 이런 합리화는 이미 비공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후 변화는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겠지만, 당장은 사람을 가려 가며 공격한다. 기후 변화는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심한 충격을 입힌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공격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지붕 위에 고립된 채 외면당했고,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극심한 가뭄은 가난한 사람들 3600만 명(유엔 자료)을 굶주림으로 몰아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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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달리 세상일에는 완벽한 해답이 없어요. 우리가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해답이 되는 거죠. 그래서 삶의 선택이 중요하고, 그 선택을 위해 지식과 경험을 연마하잖아요. 또 선택한 후에는 그 선택을 완성하려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고요.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남북미중을 그 자체로 만족시키는 해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없는 게 오히려 좋아요. 우리가 선택하고 우리 힘으로 그걸 이루어나가는 게 맞으니까요."

미중전쟁 2 : 백악관 워룸 - 김진명 장편소설 | 김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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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2030 축의 전환
마우로 F. 기옌 지음, 우진하 옮김, 이경준 낭독 / 리더스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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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화폐는 전자 화폐의 일종으로 암호를 사용해 보내주는 사람에 의해 거래가 인증되며, 지불과 잔액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접속할 수 있는 전자 기록 보관소에 기록된다. 이런 기록 보관 장치에는 블록체인blockchain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 블록체인의 개념은 무척 단순하다. 벽돌로 쌓아올린 벽이 길게 늘어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그 벽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다양한 기록을 벽돌 하나하나에 새긴다. 자신의 이름이나 찾아온 날짜를 적을 수도 있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좋아하는 책의 제목을 적을 수도 있다. 규칙은 단 하나, 반드시 무엇인가 적혀 있는 벽돌 바로 옆에 빈 공간, 빈 벽돌이 남지 않도록 적어서 채워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뭔가를 적어나갈 때마다 제일 윗줄부터 차례로 아래까지 벽돌 하나하나가 채워진다. 벽돌 위에 새겨진 기록은 절대 지울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그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이렇게 상상 속 벽돌 벽이 다 채워지면 그 옆에 똑같은 두 번째 벽을 나란히 세우고 똑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벽들은 어떤 목적으로든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호텔이 있다면 누가 호텔의 어떤 방에 묵었는지, 각각의 손님들은 매일 어떤 추가 비용을 물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텔을 나설 때 모두 합해 숙박료는 얼마나 냈는지 등등을 추적할 수 있다. 또한 유통되고 있는 동전과 지폐를 누가 갖고 있으며 그 돈이 언제 지급 수단으로 사용되는지도 추적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기록을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진짜 실체가 있는 벽 대신 서로 하나로 이어진, 그리고 결코 수정이나 변조가 불가능한 기록들을 보관할 수 있는 디지털 기록 보관소를 만들어 보관한다면 어떨까. 그것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에 접속한 컴퓨터는 각각의 거래를 확인하고 전체적인 체계에 투명성을 제공한다. 블록체인에 접속한 각각의 컴퓨터에는 전체 블록체인과 똑같은 복사본이 저장되어 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의 절반 이상이 거래 기록의 변경에 대한 승인을 제공해야 하는 식으로 또 다른 안전성 요건을 추가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암호 화폐 비트코인bitcoin은 대단히 안전하다. 미국 복권인 파워볼Powerball의 당첨 확률이 대략 2억 9200만 분의 1이라고 하는데, 256비트 암호 체계를 사용하는 비트코인 개인 암호가 뚫릴 수 있는 확률은 115콰트로비진틸리언quattuorvigintillion분의 1이다. 콰트로비진틸리언이란 0이 78개나 붙는 단위다. 다시 말하면 파워볼 복권에 연속으로 아홉 번 이상 당첨되는 것과 같은 확률이다.


  투명성에 관한 이런 분산된 체계야말로 나카모토 사토시中本哲史가 2008년 10월 31일 ‘크립토그래피 메일링 리스트cryptography mailing list’라는 곳에 올린 유명한 보고서 「비트코인: 개인끼리 거래하는 전자 화폐 제도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비트코인의 발명자로 알려진 나카모토 사토시는 가명이며,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다. 2008년 10월 31일이라는 날짜 역시 중요한데,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지 몇 주 후에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개인과 개인이 거래하는 개념의 전자 화폐를 통해 중간에 어떤 금융기관도 거치지 않고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직접 온라인 결제를 하도록 해주는" 혁명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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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근로자라는 단어에 담긴 의도다. 근로자勤勞者를 하나하나 뜯으면 ‘부지런할 근勤’, ‘일할 노勞’, ‘사람 자者’다. 직역하면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이다. 그냥 ‘worker’가 아니라, ‘a diligent worker’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문제다. 아주 심각한 문제다. 5월 1일, 다들 아는 것처럼 근로자의 날이다. 이날이 원래는 노동절이었다. 1957년, 대한노동총연맹 창립일에 맞춰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었다. 날짜를 5월 1일로 바꾼 건 한참 뒤다.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꾼 건 박정희 군사정권 때다. 1963년 4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군사정권은 관련 법률을 개정하면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전부 ‘근로’로 바꿔버렸다.
노동을 근로로 바꾼 데엔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다 한다. 먼저, 노동이라는 단어에 담긴 ‘사회주의적 냄새’가 맘에 안 들었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치자. 냉전 시대였으니까. 해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싶은데, 그러자니 대체할 단어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가져온 단어가 근로다.
다. 시. 가져온 거다. 어디서? 일제강점기에서! "1941년 일본은 ‘국민근로보국령’을 발효하고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가 근로보국대를 조직했다"고 기록한다(두산백과). 짐작컨대, 여기엔 ‘일본대제국을 위해, 천황폐하 생각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부지런히 일만 하라’는 아주 나쁜 의도가 담겼다. 그런 나쁜 단어를 그대로 가져온 게 군사정권이다. 아마도, 비슷한 의도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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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는 그렇지 않다. 몸을 써서 움직여야 무거운 걸 옮길 수 있고, 그게 확인되어야 일당을 받을 수 있다. 단순하고 명확하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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