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품번 357번, 359번 신간 나왔네요.
다자이오사무와 에벌린 워.라니..
이거 또 질러야 되나.ㅎ
근데 358번은 검색해도 보이질 않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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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9-28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함다!^^

북프리쿠키 2018-09-28 20:06   좋아요 0 | URL
돈 나가는 일만 남았네욤 ^^

고양이라디오 2018-09-29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진 잘 모르겠지만 축하합니다^^ 표지 이쁘네요ㅎ

북프리쿠키 2018-09-29 11:03   좋아요 1 | URL
ㅎㅎ 축하할 일은 아니구요. 지름신 영접중입니다^^

뒷북소녀 2018-10-02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계자에 따르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라고 합니다.
현재 출간 준비 중으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하네요.

북프리쿠키 2018-10-02 21:17   좋아요 0 | URL
와~마르케스의 책이었군요.
잘 지내시죠?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ㅎ
 



˝저는 공인이 아닙니다. 헌법 어디를 봐도, 연예인이 국민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진다, 이런 말 없습니다.
저는 그냥 알려진 사람이에요.
인기 있다는 얘기는 제 입으로 하기 좀 그래서.....
지금 이 부분에서 웃으셨죠? 왜 웃는지는 알겠어요.
어중간하다, 그런 거죠?

그런데 저는 지금이 딱 좋아요.˝-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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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가 겁이 나시는 분들은 해제부터 읽어보세요. 적어도 해제만은..아주 재미있습니다.

기존의 철학이 갖고 있는 경험론의 회의적인 면이나 이성론(합리론이라고 번역하면 경험론은 비합리론이 되기 때문에 '이성론'으로 번역했다고 함)의 독단적인 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대 혁명을 시도한 책입니다.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전근대성과 근대성, 진보성과 보수성의 갈등으로 점철된 시대 상황을 고찰한다면, 그 시대의 삶이 갈망하는 내용이 담긴 이 작품이 과연 전통과 근대를 조화시키려 했던가? 아님 양쪽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자였던가..

라는 2가지 시선에서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의 철학은 인간 인식능력 일반의 주체인 이성 자체를 이성이 자기 비판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해제 132쪽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1724~1804)
-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출생

 

 


22살때
˝나는 내가 견지하려고 하는 내 행로를 이미 그려놓고 있다. 나는 내 행로를 밟아 나갈 것이고, 어떤 것도 내가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지 못할 것이다˝
라고 주장할 만큼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해제 111쪽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내가 두 가지 대상을 여러 차례 그리고 오랫동안 성찰하는 데 종사하면 할수록, 그 두 가지 대상은 더욱 새롭고 높아지는 경탄과 외경을 내 마음에 가득 채운다. 이 두 가지는 ‘내 머리 위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이다.‘ ˝- 해제 113쪽



헤르더(J.G.Herder)는 칸트에 대해서
˝어떤 간계, 어떤 종파, 어떤 선입견, 어떤 이름이나 명예욕도 그가 진리를 밝히고 넓혀가는 것을 방해하는 유혹이 되지 못했다˝라고 적고 있다. - 주석44) -189쪽

 

 

 

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감성, 지성, 이성 중 그 어느 것에도 절대 우위를 허용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는 데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도록 설정해놓았다.

즉 그는 이들 능력 사이에 삼권 분립을 제대로 마련해놓고자 했다. - 해제 115쪽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은 바로 이성 자신의 본성상 스스로에게 부과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달리 피할 수도 없는 물음들로 인해, 더군다나 그러한 물음들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넘어서 있어 스스로가 답할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이런 어려움 때문에 그 어려움을 피하고자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세계를 서둘러 이론화하려고 하며, 그로 인해 독단적 형이상학을 구축하게 된다 - 해제 127쪽





*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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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5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절에 이런거 드시고 그러심 체합니다 ㅋㅋㅋ

북프리쿠키 2018-09-25 12:17   좋아요 2 | URL
명절 스트레스를 잊을려면 더 심한 스트레스가 필요한 법입니다..ㅎㅎㅎ
그리고 카알벨루치님과 대화좀 할려면..
이렇게라도 자학해야^^;

카알벨루치 2018-09-25 12:29   좋아요 1 | URL
전 여기오면 벙어리가 된듯! 고전의 아고라에서 길잃은 방랑자가 된듯...ㅋ대학때 철학사 도서관에서 파다가 말았는데...전 암것도 몰라용 ㅋ

북프리쿠키 2018-09-25 13:19   좋아요 2 | URL
아 그래도 파셨다뉘..대단하십니다.
모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영원히~모를 것이다.라는 편안함으로 칸트를 대하고 있습니다. 비록 서문에 불과하지만 주저리주저리 하다보면 앎과 배움은 역시나 별개라는 걸 알게 되겠지요. ㅎㅎ


 

 

 

 

도그마, 관점, 당파성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종합과 객관화를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다.

지성의 반대말은 절충, 균형, 원칙 ........이런 사고들이다.

정론(正論)은 정론(定論)이 아니라 정론(政論)이다.

 

 

 

 

 

 

 

 

 

과학철학의 걸작인 토머스 쿤(Thomas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끊임없이 인용되는 이유는 그가 객관성의 신화를 정면 비판했기 때문이다. 과학은 그것을 신봉하는 집단 안에서만 과학이지, 반례와 새로운 세력에 의해 신앙심이 흩어지면 과학(normal science)의 지위를 잃고 새로운 과학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이것이 패러다임 혁명이다.

이후 기존 이론은 오류, 데이터, 역사로 남는데, 이 과정이 과학의 발전이다.

그러므로 쿤에 의하면 과학혁명은 언제나 개종(改宗)의 역사이다. 과학 이론은 처음에는 자기 입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도그마(dogma, 독단)으로부터 시작된다.

 

 

 

 

 

 

- 파이어아벤트 <방법에의 도전(Against Method)>

 

 

파울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는 더 나아가 개종의 과정에 혁신적인 방법론을 제안한다.

그 방법은 이 책의 부제 '새로운 과학관과 인식론적 아나키즘'이다. 앎의 시도에 방법의 제한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방법에의 도전>이 공부하려는 사람의 첫 필독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이어아벤트는 "모든 과학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모든 이데올로기에 객관적인 척도로 이용된다.

기존의 거대한 독단주의는 사실로서 지위를 가질 뿐 아니라 그보다 극히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도그마 없이 과학은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독단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의 신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과학은 현재의 법과 질서와 통념으로 구성되므로 이를 맹신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

아니키즘은 어떤 방법도 "무엇이라도 좋다(anything goes)"라고 말하는 완전한 개방성의 이념이다.

 

 

 

 

 

 

정희진 작가는 도그마, 관점, 당파성을 지지하며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종합과 객관화를 위해 보충 노력을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자기 당파성도 모르고 상대방의 도그마도 모를 때, 균형 감각론이 등장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균형은 없다. 역사의 시작과 함께 저울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이 3가지의 책이 같은 관점을 공유하며

독단 없이 과학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문제다.

난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고 느낌을 나눔에서 "균형감각"과 "관용"을 중시해 왔었다. 삶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즉, 내가 알고 있는, 또는 알아가고 있는 지식은 단지 '내가 알고 있는 한'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을 명심한다.

그리고 그 지식은 나의 지식이 아닐 뿐더러 더더군다나 통설에 불과하므로 충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수의 관점도

포용하여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글이라는 걸 쓸때도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내 서재의 프사글이기도 한 은유작가의 아래 문장을 좋아한다.

 

"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세계가, 사회가, 우리들에게 보편화되어 있는 규범과 체계를 '지당하신 말씀'으로 신격화한다.

객관적이고 다수가 용인하는 보편성에 함부로 덤벼들면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한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소위 '책 읽은 티'를 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건 누구나 경험해보았으리라.

낭중지추(囊中之錐)의 뾰족함을 우리 사회는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우리의 도그마는 첨탑처럼 뾰족해진다.

흔히들 시니컬해지는 게 보편적인가 보다.

 

 

 

 

 

슬라보예 지젝의 책 <삐딱하게 보기> 제목처럼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에 대해서 계속 의구심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목표로 이끄는 원동력은 고독함”이라며 “혼자 있는 시간이 즐겁다. 나쁘게 말한다면 자신은 일종의 자폐증을 겪고 있다”고 말한 미코출신 하버드대 출신의 금나나가 말한 부분을 너무나 공감한다.

자폐증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 가정을 생각해 봤을 때 이 발언은 경솔하다는 의견에 동감하지만,

말 그대로 책을 사랑하면 자폐(自廢)가 시작된다. 결국은 사회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당당해지자.

그 사회성이라는 정의(正義)도 결국은 권력의 정의(定義)니까 말이다. 

 

 

 

 

 

현재 우리는 지식을 제공하는 자, 지식을 습득하는 자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쌍방향으로 뒤섞인 개개의 독단으로 가득 찬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포스팅 자체도 하나의 정론(政論)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지향하는 '균형감각'은 그저 좋은게 좋은거라고 허허 웃으면서 넘어가는 회피의 처세술이었던가.

성격이 무난한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한 익살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비판을 두려워하고, 소수자로 전락되는 것이 겁나 통설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한 이력(履歷)이 내 삶이었던가.

 

 

 

정희진 작가는 나에게 화두를 던졌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쓰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서 이젠 아파야 된다고.

 

물론, 과학이, 언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지금 내가 고민하는 부분과 정확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작가도 인간의 감성을 흔드는 분야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많은 공감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고통스럽게 책을 읽는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그 지식의 사유화를 나의 독단으로 써내려갈 용기가 없다.(독자나 일반인에게 이런 주문을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균형감각, 절충, 객관화를 버리기도 쉽지 않다.

우리의 지식은 풍요로운 삶에 있어서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독단을 실행하는 자는 그저 위대한(?) 학자들에 맡기련다.

 

 

글마무리에 나의 고민을 간파하기라도 한 것 처럼 정희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약자의 대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객관을 향한 욕망을 접고 자기 입장을 더 깊이 있게 전개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당신 입장은 뭐냐? 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 뜻대로 균형감각과 중도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물론 불가능하다.균형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란 없기 때문이다.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오늘도 책은 나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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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22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충격받으셨군요. ^^
그럼에도 추석인데요...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

북프리쿠키 2018-09-28 11:26   좋아요 0 | URL
남성인 저에겐 항상..숙제(?)같은 작가였는데..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편한 책이 나를 성장시킨다라는 말. 이 책에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2018-09-22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8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0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2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뻔뻔한 이의 마음의 평화는 억울한 사람이 겪는 마음의 고통의 대가다. 관용은 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사회가 쥐어준 권력에서 나온다.
때문에 ‘없는 자‘의 관용은 비굴이나 아부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힐링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성숙한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는 스스로에게 잠시 속아주는 것.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삶을 속여봤자다.˝
- 본문




본문의 내용과는 다소 다른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우린 가히 힐링 타령의 시대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삶은 점점 더 피폐해졌다.
욕망의 수준은 높아져만 가고,
왠만한 여행지, 음식, 레저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서로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행복경쟁이
점점 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해지기 위해 ..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행복들이, 그 웃음이, 진정 내 얼굴이었던가.

아주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욜로‘를 부추기고 ‘소확행‘이란 교묘한 말장난으로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마치 관용을 베풀기나 한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너무 과도한 평화를 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값비싼 댓가는 뻔뻔한 자본의 호주머니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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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0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8-09-20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 봐도.... 정희진 선생님의 책표지만 보아도 마음이 끌리네요.
진정한 행복이 뭘까. 만족한다는게 뭘까, 북프리쿠키님 글 읽고 다시 생각하는 아침이네요^^

북프리쿠키 2018-09-20 20:55   좋아요 0 | URL
늘 치열하게 고민하고 깊이있게 책 읽고 계시는 단발머리님께 많은 걸 배웁니다. 답이 없는 질문에 다시 한번 자문해보는 아침이라~그 느낌..여기까지 와 닿네요.^^

서니데이 2018-09-21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 페이지로 왔더니, 서재 이미지가 멋진 야경을 담고 있네요.
한동안 북플 페이지로 읽어서 그런지 달라진 이미지가 멋있습니다.
북프리쿠키님, 오늘부터 추석연휴가 시작이라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

북프리쿠키 2018-09-22 11:49   좋아요 1 | URL
친히 서재까지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에는 서니데이님 없으시면 슬플것 같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시고, 항상 건강하시구요.
저두 서니데이님 서재에 종종 놀러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