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백인가도장(白刃可蹈章]에
"서슬퍼런 칼날조차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용은 능能하기 어렵다." 란 말이 나온다. 예전에 읽었던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 서문에 작가는 "중용은 칼날위에 서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2가지 문장은 서로 연결되지만 하나는 중용의 실천이 어렵다는 뜻이고, 하나는 그 실천에 있어 칼날위에 있는 것처럼 세심하고 면밀하게 판단하고 행하여야 한다는 뜻일게다.
중용은 그만큼 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무당처럼 인간은 그 위험한 작두를 타는 행위에 비유를 했고,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꾸준히 실천한다는 것이다.
장정일의 <공부>에서 나온 "중용은 칼날위에 서는 것"은 중용을 실천하는 방법은 꾸준히 양극단을 엄밀히 사유하여 실천적 수양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지향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그저 좋은게 좋다가 아니라는 것을 질타하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어떤 사안에서든,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으니,
"중용"은 무지였다. 우리 사회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면 사람들은 중용이 양비론쯤 되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 책에서는 중용을 제대로 공부하라고 일갈한다.
우리가 생활속에서 그렇게 많이 입에 담는 <중용>이라는 말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도올 선생의 이 책이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더 몰입감있게 흥미를 주고 감탄을 자아내게 할 것이며, 그저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이 고리타분한 유교적 구태답습의 논리로서 책속에 안주하는 활자가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실천적으로 살아나가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며 행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간 읽어온 서양철학과의 비교도 흥미롭고,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서양철학의 논점이 동양철학과 대비되는 부분이 뚜렷히 보이니 동양철학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는 요즘이다.
경전의 글귀는 이지적으로 분석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면서 깨닫는 것이다. 만 구절의 로고스적 구성보다는, 가슴에 새겨니 한 구절이 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힘으로 생동쳐야 하는 것이다. - 150쪽
화이불류(和而不流) 화이불류는 본시 공자가 음악평론가였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화음과 같은 상황에 잘 적응하는 언어를 여기에 사용한 것이다. 각 악기의 음은 서로 절제속에 조화되어야 한다. 혼자 튀어나서 흐르면 안된다. "흐른다"는 표현은 음이 튀쳐나거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용기있는 사람들은 흐르는 경향이 있다. 용기도 반드시 화和를 전제로 해야만 진정한 용기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공자는 용기를 중용의 맥락 속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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