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아들 예수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김근수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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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전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에 도전하는 안산 선수에 대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불거짐으로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CNN 2019.10.22> 자료를 보니 "한국의 젊은 남성들, 페미니즘과 싸우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도 "남녀 분단국... 남녀 대립의 첨예화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오늘날 우리는 사상적 대립이 첨예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신에 대한 찬반론도 이제는 의학을 넘어 사상적 대립이 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정치적인 것이 들어가 있어 우리의 뇌를 갉아먹는 가운데 서로가 적대적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 악한 의도로 무언가를 실행한다면 당연히 거기에 관한 엄중한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세상을 공정하게 바라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공정(公正)하다 생각한 것이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경우도 많다. 다들 자신들 입장에서 보면 다 공정한데 그러나 어느 쪽은 분명 무지해서 또는 악의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

그런면에서 오늘 독자가 보고 있는 이 책은 여성에 대한 공정한 시선을 요하는 책이다. 저자는 제목을 "여성의 아들 예수"라고 뽑았다. 페미니즘에 대해 민감한 사람은 일단 무언가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어쩌면 거부할 수도 있고, 편견된 눈으로 이 책을 대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어떤 주의도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책을 보고 공정하게 여성(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한 사람의 국민이다.

먼저 페미니즘을 정의해 보자. 페미즘이란 국어사전으로 보면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을 뜻한다. 하지만 어떤 분의 말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페미니즘 뜻 자체가 변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평등이 아니라 혐오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소위 페미라는 말을 하는 분들에 의하면 페미니스트들은 양 성별간의 혐오를 일으키고 있는 운동을 하거나 선동을 하는 등의 사회적인 활동으로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차별적 요소를 가지며 남성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이 그러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의 서문을 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가거댁이 한 말이다.(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다) "씨만 중허고 밭 귀한 줄은 모르는 거 말이여라. 씨 뿌리는 애비만 중하고 배아파 가꼬 낳고 기른 애미는 뒷전인디. 인제 자식들도 애미 귀한 줄 알아야 써"

여기서 가거댁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차별적 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외친 한 마디는 저자가 언급하듯 이렇게 정의된다.

"흑산도 여인 가거댁의 모습에서 나자렛 여인 마리아가 떠올랐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신분 사회를 비판하는 가거댁은 가부장주의에 저항한 예수 어머니 마리아를 닮았다. 역사의 마리아는 겸손과 순종의 모범이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는 당당한 여성의 대표였다. 가거댁의 삶을 보녀 사회질서에 의문을 품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던 정약전은 나자렛 예수와 잘 연결된다. 여성을 존중하는 정약전은 가부장주의에 저항한 예수와 많이 닮았다." -서문에서

예수의 어머니가 불의의 저항하는 당당한 여성의 대표였다라는 말이 조금 의아하지만 일단 저자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 의도를 알면서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저자는 또 말하기를 "예수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와 권력자와 종교인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참지 않았다. 그는 부자와 권력자에게만 저항한 것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에게만 관심을 둔 것 또한 아니다. 가난한 사람 중에도 가장 가난한 여성을 예수가 돌아보지 않을리 있겠는가. 예수는 인간을 좀먹는 근원 중 하나가 가부장주의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여성이 남성에게 무시당하는 상황을 구경만 하지 않았다."고 매우 강력히 말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예수는 이렇게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주의를 아주 싫어했으며 가부장주의를 끝장내고 싶었다고 하니 여기서도 과연 그럴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단 또 읽어나갔다.

한 번씩 멈추게 되고 의문을 품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가부장적인 사고가 있는 것일까하는 마음도 가지지만 신학적인 부분에 있어서 성경을 보는 것에 대해 Queshion mark가 생겨서이다. 물론 이것 저것을 떠나 처음 언급했듯 공정(公正)하게 보려고 한다.

그렇다 이 책은 여성 신학 전체를 소개하지는 않으며 또한 여성이 사회와 교회에서 겪어온 고통을 설명하고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소박한 의도로 "예수는 여성의 삶과 고뇌를 어떻게 알아가고 이해했는지... 예수는 여인들과 만남에서 삶을 어떻게 돌아보고 자기 생각을 바꿨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 여성을 위로하는 예수보다 여성에게 위로받는 예수, 여성을 가르치는 예수보다 여성에게 배우는 예수, 하느님의 아들 예수보다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하여 사람의 아들 예수보다 여성의 아들 예수를 이 책은 보게 될 것이라고 하니 새로운 시선으로서의 예수가 점점 궁금해지고 있다. 책 소개에 보면 "20세기 해방신학은 ‘해방자 예수’라는 칭호를 만들어 내었고, 21세기 한반도에서는 ‘여성의 아들 예수’라는 칭호를 선사했다"고 말하는데 저자의 말인지 출판사의 말인지 모르지만 이 책의 의도를 분명하게 접하며 예리한 눈으로 이 책을 점점 대하게 된다.

책은 다섯개의 파트로 되어 있다. 1장 예수를 만난 여성에 대해 2장 예수를 가르친 여성에 대해 3장 예수의 여성 비유에 대해 4장 예수를 따른 여성에 대해 5장 예수 탄생과 여성에 대해 다룬다. 특히 독자가 눈에 가는 것은 2장 예수를 가르친 여성에 대해서이다. 여기서 여성들이 어떻게 예수를 가르쳤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라 눈여겨 보았다.

시몬의 장모를 고치는 부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시몬의 장모가 시중들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동사 '시중'은 그때 한 번 시중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중들었다는 뜻이다. [...] 예수도 시몬의 장모처럼 시중들러 세상에 왔다. 시몬의 장모가 예수에게 모범을 보였고, 예수는 시몬의 장모에게 시중드는 것을 배웠다. 「마르(마가복음)」에서 천사, 여성들, 사람의 아들 예수만 시몬의 장모처럼 봉사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경고받았을 뿐이다. 시몬의 장모는 진정한 예수 따르기와 제자의 본보기다." p 85

아뿔싸... 예수가 시몬의 장모에게 시중드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과연 배운 것인가? 물론 우리는 타인을 통해 배운다. 그러나 과연 예수가 시중드는 것을 배웠다라는 말을 굳이 과한 해석까지하며 그렇게 정의내릴 수 있는가?

시로페니키아 여인에 대한 부분을 본다. 여기서 예수는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고 할 때 그 여인을 향해 개로 비유하여 말했다. 물론 이 부분은 유다인들의 문화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당시 "유다인은 자신을 하느님의 자녀로 보고 이방인을 개에 비유했다." 여기서 예수는 유다인 아닌 사람을 무시한 것이 아닌 당시 통용되던 언어 습관을 빌린 것으로 본다. 아무튼 여기서 여인은 그 말을 듣고 "강아지로서의 구원을 요청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예수가 논쟁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졌다고 말한다. 그것도 기쁘게 졌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수가 여인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다.

"용기 있는 이방인 여성의 당당함 덕분에 예수의 생각이 더 부드러워지고,

시야가 더 넓어졌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p 90

음...내가 잘못된 것인지 저자의 해방신학적 사고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나 여기서 예수에 대한 시각 또한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바꾸었다기 보다는, 예수가 가진 의도가 이 안에 내포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고 본다. 인간적인 예수로 볼 때에는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적 예수로 볼 때에는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가 단지 그 여성의 대화로 시야가 더 넓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운거 같다.

이렇게 저자는 이 책에서 해방신학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보고 여성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새롭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한 해석으로 본질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여성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평가가 새롭게 평가되며, 성별로 인해 발생되어지는 차별이 개선이 되어져야함은 독자 또한 크게 바라는 바이다. 가부장적인 사고로 인해 나의 어머니 또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유지(有志)였지만 자신의 딸에게만은 구시대적인 사고로 젖어 있는 어르신이었다. 분명 이런 점은 개선되고 차별적 요소가 제거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여성적 권리를 통해 오히려 역차별적인 요소로 나아간다면 이 또한 사회의 병폐가 되고 문제가 될 것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20대 남성들의 과반수는 역차별을 생각한다. "여성 우월주의자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이 오히려 남성을 향해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 남성만 군대에 간다

· 남성이 위험 노동을 전담한다

·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낸다

· 남성이 가정을 부양한다

여기서 볼 때 남성이 위험 노동을 전담하고 데이트 비용을 내며, 가정을 부양하는 것은 어쩌면 20대 남성들에게는 역찰별로 생각되는 바가 없잖아 있는거 같다. 이것에 대해 다룬다면 아마도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것이기에 여기에서 그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요지는 여성이 대우를 제대로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남성을 대우하면서 말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 사랑 받아야 한다. 독자인 나는 그렇게 좋은 뜻으로 이 책을 대하고 싶다. 다만 예수에 대한, 그리고 성경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 조금은 고민을 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이 책을 대하는 독자에 따라 이 책을 반기기도 하고, 거부감도 들것으로 본다. 책은 줄기차게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한다. 이 책을 통해 여성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지만 그것 또한 보는 이에 따라 다르리라 생각된다. 다만 저자의 눈으로 조금은 여성의 입장을 살피는 기회가 되었음을 감사하고 있다. 모든 이가 서로 존중하는 세대가 속히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서평을 마친다.

이 책의 한 문장

이 책은 모든 여성, 어머니와 딸과 자매와 누이가 여성의 아들 예수에게 위로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 여성의 아들 예수를 보며 용기 있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고 여성의 아들 예수와 함께 걸으며 여성과 남성 모두 자유와 해방을 얻기를 바란다. 진정한 해방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 존중하며 따뜻한 마음을 지닐 때 올 것이기 때문이다.

- 서문 중에서

예수의 남성 제자들은 예수 십자가 죽음 장면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남성 제자들은 예수가 체포될 때 모두 달아났다. 베드로도 [...] 사라졌다. 예수가 힘든 순간에 그 곁에는 여성 제자들만 있었다. 그전에 남성 제자들은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퉜다. [...]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권력 다툼과 배신에 바쁜 사람은 누구인가. 남성 제자인가, 여자 제자인가? 오늘날 교회와 성당에서도 권력 다툼과 배신에 바쁜 사람들은 누구인가.

예수를 따라 다닌 여자들은 충실했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배신한 여성은 아무도 없다. 남성 제자 가운데 배신하지 않은 사람은 찾이 어렵다. 여성 제자들은 예수 따르기와 같음을 보여줬다. 여성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p 191, 194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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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바로 세우기 - 성경의 렌즈로 세상을 보다
류현모.강애리 지음 / 두란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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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세속주의에 맞서 기독교 세계관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라 본다.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세계관이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한다. 저자가 목차 1에서도 언급하듯이 "하루 24시간 세계관이 치열하게 격돌하고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때에 자칫 교회 안에서 배운 우리의 성경 지식이 그저 교회를 위한 지식으로, 화석화 되고 박제(剝製)된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기 쉽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 '넌 정말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 거니?' 하며 질문을 할 때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에서 혹시 머뭇거리거나 신앙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 없는지 질문해 본다. 그렇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이 창조주심이심을 믿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본 '기독교 세계관 바로 세우기'는 나를 위한 정립이 필요하여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나를 위한 정립은 너를 위한 정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친절하게도 외부의 적으로부터 우리 신앙을 방어할 수 있도록 무너진 세계관을 바로 세우는 52개의 전략을 상세히 소개한다. 각 제목마다 필요 적절한 논지를 세워 기독교라는 세계관을 만들어 가도록 하고 있다. 혼자서도 배울 수 있지만 소그룹을 만들어 함께 적용과 토론을 나누도록 해주어 청년 모임이나 젊은 층 신앙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부부가 지은 특이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를 소개하면 류현모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교실 교수로 시무하고 있는 자로서 40대 중반에 회심하여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젊은 시절에 형성된 진화론적 세계관이 여전히 자신의 학문 세계의 패러다임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게 되면서,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보다 기존에 형성된 무신론적 세계관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성경적 세계관을 적당히 쌓아 올리며 살고 있는 것을 접하게 된다. 다급함이랄까 성령의 채근으로 저자는 성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도록 아내 강애리(목회자)와 함께 세계관 사역에 동참하는 일을 현재 하고 있다.

 

 

이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세상을 직시하는 눈을 길러주며, 세상을 제대로 보는 기회를 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되어 있다. 첫째, 시대를 직시하게 해주는 파트다. 세계관이란 무엇이고 세계관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들려준다. 둘째, 시대를 통찰하게 해주는 파트다. 이 부분을 통해 다른 종교의 세계관과 인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무신론적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알게 해준다. 셋째, 시대를 분별하게 해주는 파트다. 데이비드 노에벨의 충돌하는 세계관을 보면 신학, 철학, 윤리학, 과학(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 등 삶을 바라보는 10대 학문 분야를 통해 각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관점들을 비교하고 있다. 각 학문 분야는 세계관과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특별한 가치를 지니며 발전해 나간다. 즉 세계관은 각 학문 분야에 접근하는 특정한 관점을 제공하며 독특한 방식으로 각 학문을 이해하고 있다. 저자는 이 부분을 자신이 받은 교육이나 경험이 아닌 성경에서 그것을 찾도록 도와준다. 창세기를 통해 신약의 여러 말씀들을 통해 저자는 탁월하게 10대 학문 분야에 대해 성경적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 넷째, 시대를 돌파해 주는 파트다. 이 부분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실제 문제를 다룬다. '-생명-가정(결혼)'이라는 기독교만의 핵심 가치가 요즘 시대에 공격을 심하게 받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동성애와 같은 생각이 점점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위협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제대로 다루지 않는 다면 제대로 세상적 세계관에 의해 당할 수 있다.

 

 

이 책은 사회 전반적인 상황을 다 다루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선을 가지게 한다. 이 시선(세계관)은 선한 시선이며, 병든 세상을 정화시키는 시선이다. 같은 세상에 살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며 등지고 살아가는 저들에게 우리의 할 말을 제대로 제시해 주도록 이끄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더불어 내가 가진 비뚤어진 세계관마저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말씀과 함께 과학적 자료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해 주는 이 책은 지성적 만족을 갈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독서로 자리잡게 되리라 본다.

 

 

인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무신론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기독교적 가치관이 무엇이며, 삶의 실제가 어떠해야 되는 지를 면밀히 살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성경 말씀을 많이 인용하여 줌으로 성경이 결코 구시대적인 사고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적용하고 나누려면 리더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나눔이 오히려 해가 되는 모습을 지니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쉽게 쓰여진 부분도 있지만 어렵고 공부해야 되는 부분도 많아 저자의 강의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류현모 교수님의 친절한 동영상이 있다. 참 좋으신 분이다. 그리고 참 열정적이며 성실하신 분으로 보여진다. 서평 맨 아래에 그 동영상을 담아 본다.

 

 

이 책의 한 문장

 

절대적인 기준 없이 정의는 존재할 수 없으며, 절대적인 윤리의 기준이 없다면 도덕성은 존재할 수 없다. 기독교 도덕성은 우리 밖에 절대적인 도덕률이 존재한다고 하는 믿음 위에, 또 그 절대적 도덕률이 우리 존재 속에도 새겨져 있다는 믿음 위에 세워져 있다. 이는 창조주의 본성에서 흘러나와 피조물의 본성을 통해 흐르느 도덕성이며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 앞에 스스로 드러내신 하나님의 일반계시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말한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1:9)에서 ''을 의미한다. 또 사도 바우리 말한 "율법 없는 이방인이 [...]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는 "그 양심"을 뜻하는 것이다.(2:14-15) 즉 인간 본성의 법칙, 자연법,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혹은 양심으로 표현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 곧 절대선의 정체인 것이다._144-145

 

 

현 시대는 절대적인 기준을 좋아하지 않는 세대이다. 상대주의로 치부해 버린 이 시대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속에 한 말이 이 대목을 읽으며 생각이 났다.(두 가지 버전이 있는 거 같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불멸에 대한 믿음을 제거한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허용된다.

 

 

사르트르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허용될 수 있다는 둘째 아들 이반의 무신론이야말로 실존주의 출발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절대적인 기준을 거부한다. 그렇기에 어둠에게 빛을 던진들 그들은 이 진리의 빛을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고수해 이 진리를 부지런히 전하며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승부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칸트가 가진 생각도 나눠본다.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고 말했다. 성경적 적용 없이도 사람들의 내적 세계관은 사실 도덕률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무시하고 지워버리니까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장년부와 더불어 젊은 청년 세대가 꼭 씹어 먹어야 하는 책이다. 이 시대에 기독교 세계관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절실함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하나님)을 제거하고 싶은 세대에 신을 제공해주는 소중한 책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는 바이다.

 

 

-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시편 14:1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믿음을 과학적 사실로 둔갑시켜 그것을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많은 가설과 추정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여 자신들의 설명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윈이 주장한 공통 조상으로부터의 진화는 어디에서도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 공통 조상의 증거로 제시되었던 헤켈(Haeckel)의 배아 발생도, 시조새, 유인원의 화석들은 모두 진화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작된 증거임이 밝혀졌다._173

 

 

각 종교에는 그 종교의 교리가 선포되는 모임과 그것을 전파하려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집단이 존재한다. 기독교의 교회, 이슬람의 모스크, 불교의 절처럼 다른 종교들도 그들의 회합이 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인본주의나 마르크스-레닌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무신론은 교실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 이처럼 무신론의 신앙이 교실이라는 사원을 통해 전파되는 동안, 우리 가정과 교회는 다음 세대를 그들에게 내어 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육 및 문화 명령(1:28)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_209-211

 

 

영국 성공회의 인도 파견 선교사로 40여 년을 섬기고 귀국하여 기독교 변증에 힘썼던 레슬리 뉴비긴은 성경은 바라볼 책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세상을 봐야 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성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야 하며 성경이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_29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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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 물들다 - 세상 서쪽 끝으로의 여행
박영진 지음 / 일파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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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잡지를 정기구독 하며 본적 있다. 실사에 가까운 사진과 거기에 따른 기사를 보면 흥미로운 여행을 하는 기분이라 매번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을 접하며 이런 느낌이 들었다.

 

참으로 잘 만들어진 여행책을 만났다. 포르투갈의 아름다움을 다 담았다고 볼 정도로 이 책은 단연 포르투갈을 동경하게 만든다.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지만 인문학적인 요소도 있어 책을 고풍스럽게 한다. 적재적소의 사진과 필요한 여행 정보와 도시에 깃든 역사와 숨은 이야기들이 매우 잘 어우러지게 구성되어 독자에게 건네 준다.

 

포르투갈에 물들다는 리스본을 시작으로 하여 벨렝지구, 신트라, 포르투, 코임브라 등 포르투갈의 유명한 관광지뿐만 아니라, 아베이루, 오비두스, 나자레, 파티마, 벨몬테 같은 소도시,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마데이라 섬, 베나길, 세르타, 순례길, 코임브라 등 포르투갈 곳곳의 명소들을 작품처럼 소개하고 있다.

 

책 표지에 '세상 서쪽 끝으로의 여행'이라는 카피가 있는데 서쪽으로 향하고픈 충동을 일으키는 책이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고스란히 여행을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 코스가 결코 식상하거나 지루하지 않는 여행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여행 에세이를 여러 권 읽어본 자로서 이 책은 단연 으뜸이며 독자의 눈을 즐겁게할 뿐 아니라 포르투칼의 역사, 문화, 예술을 맛보게 하는 이중적 혜택을 주고 있다.

 

헤르만 헤세가 쓴 여행 에세이(헤세가 사랑한 순간들)가 있다. 헤세의 글에서는 문학적인 요소가 훨씬 풍겨 글로서 느껴지는 여행자의 마음을 보았다면 이 책은 눈으로 실제 현장에 있는 것처럼 EBS 세계테마 여행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계속되는 독자의 칭찬은 그만큼 이 책이 주는 맛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충분히 흡족하며, 코로나 시대에 이분의 여행기가 대리 만족을 줄 뿐 아니라 삶의 낭만을 불러와 준다고 과감히 말하겠다.

 

 

 

이 책은 여행을 하고픈 마음에 고른 책이다. 현재 우리는 제약된 세상에서 눈으로만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국내의 여행도 마음 놓고 가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책을 읽지 않는 다면 삶의 적막함을 어느 것으로 메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은 말한다.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다.

 

다시 정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이 책에 자연스럽게 손길이 갔다. 저자가 내 딛는 발걸음이 마치 독자가 거기에 있듯 그런 생동감을 주는 글쓰기와 사진이 기록되어 있어 책 읽기를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술관인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따라가 보았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드로 다 빈치,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회화가 전시 되어 있다. 그러나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바로 미술관의 야외 테라스 카페였다. 피렌체 구시가지의 빛 바랜 건물들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며 보는 전경은 거장 화가들의 그림 보다 어쩌면 저자의 뇌 기억 저장소인 '해마'를 더 자극했으리라 생각된다. 나 또한 거기에 갔다면 전시된 그림 보다 살아 있는 전경에 매혹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인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에 대해 설명해 나가며 자신의 감상 포인트를 기록했는데 특히 나체의 여인이 성인을 유혹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때 안토니우스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마치 쾌락의 이면을 아는 듯한 표정으로 여전히 성경을 든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고 말해 준다. 여기서 저자는 보쉬의 그림이 성직자들을 비꼬는 내용이 많아 성당을 장식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장식된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말해 준다. "성직자들이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는 자신들을 비꼬는 듯한 화가의 의도가 의심스러웠을지 모르지만, 하지만 그것이 자신들이 세상에 비춰지는 실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죄의식이 생겨나고, 세상의 쾌락들이 사실을 얼마나 기괴하고 흉측한 모습인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 그림의 메시지가 하늘이 주는 음성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는 것으로 평가한다.

 

저자의 독특한 점은 상당한 식견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여행하기 보다 여행에서 자신을 만나는 지점을 찾고 있는 것이 보인다.

 

또 다시 그는 다른 장소로 옮기며 여행을 해나가는데 눈에 들어온 여행지는 바로 '헤갈레이라 별장'이었다. 브라질에서 사탕수수와 보석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카르발류 몬테이루'가 당시 활동하돈 최고의 건축가와 조각가들을 고용해서 기존의 별장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재건축한 것이다. 공사는 1904년에 시작하요 1910년에 마쳤는데 당시 주민들은 이 별장을 '백만장자 몬테이루의 집'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부유한 사람이었다. 특이점은 '연못 입구'라고 적힌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은 특이하게도 단테의 신곡지옥을 닮았다. 맨 아래의 곳으로 들어가면 그 지옥(공간)은 동굴로 이어졌고 빠져나오는 길에는 천국의 입구라 표현될 정도의 정원을 보게 된다. !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정말 매혹적인 장소이다. 저자는 자신이 태어나면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하는데 이 건축물을 보며 그는 더 흥분해마지 않는다. 그의 심정을 들어보자!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단테의 신곡을 자신의 집 마당에 그대로 실현해 놓은 헤갈레이라 별장은 한국에서 온 여행자의 가슴에 마치 선물처럼 남았다. p111

 

조금은 천천히 걸으며 인생을 바라보는 포르투갈의 시간

 

이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책 소개에서 언급되듯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는 리스본을 기반으로 활동을 한 작가인 페르난도 페소아와 함께 여행한 기분에 사로 잡힌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얘기와 일상들, 유명한 관광지만 아니라 아직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명소까지 저자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서쪽 끝에 있는 세상을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알려주며 동경하게 해준 모든 이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굳이 말한다면 이 책의 저자와 편집부, 디자이너에게 축복을 선사해 주고 싶다. 제목처럼 나는 "포르투갈에 물들어 버렸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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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책
사와베 유지 지음, 김소영 옮김 / 아름다운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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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을 든다는 것은 삶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함일 것이다. 어떤이는 허용을 위해 지적 유희를 누리려고 철학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철학이란 "삶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고자함이다. 왜 우리는 존재하고, 왜 우리는 살고 있으며, 어떤 것이 가장 좋은 삶이며, 어떤 것이 참 진리인지를 알고픈 욕망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철학자다"라는 말을 하는데 삶의 고민이 있고 그것을 깊이 숙고하는 사람이라면 철학자인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의문을 그냥 흘려보내거나, 타인의 의지대로 삶을 흘러가게 내버려두기도 하지만 기어코 삶에 대한 질문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경우도 있다. 아래는 한 책에 나오는 글귀이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가 원한 것이 진짜 이것이었나?

그럼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지?

-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

추가적으로 더 그 책의 내용을 가져오면 "행복한 자는 질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문제가 있는 자들만이 질문을 한다. 어찌 보면 마땅한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방향을 정하고 길을 찾아야만 또 나아갈 수 있다. 인생의 의미나 재미 역시 스스로 찾아야 하고 누가 정해줄 수 없는 문제. 우리는 모두 자기 생의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 옥스퍼드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조니 톰슨이라는 교수는 삶에서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가지는 사람은 자기라는 세계의 철학자라고 말한다. 자기라는 그 철학자는 다른 철학자의 생각을 바탕으로 또 다시 자기라는 철학을 만들어 갈 것이다. 물론 선배 철학자들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어떤 사상은 큰 전환점을 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며 우리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끌려가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어쩌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내 사고의 수정점과 결정성을 굳히려고 철학책을 드는거 같다. 저자의 말대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제까지 보던 창문 밖 세계의 풍경이 조금은 달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골치 아프게 철학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본 서평책은 나에게 있어 친철한 철학이며 정말 인생에 도움이 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끌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서양 철학자 32명의 사상을 한데 모아 놓아 두었다. 저자가 친절하게도 그 모든 철학자에 대해 연구한 후 자신의 말로 쉽게 정리하여 주는 책이다. 물론 철학자에 대한 모든 사상이 설명되고 있지 않다. 다만 가장 핵심되는 부분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그림 자료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한 번쯤 들어보았던 내용이 명쾌하게 정리가 되면서 그 철학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을 습득하게 된다.

첫 번째 철학자인 탈레스(기원전 624-546년경)에 대해 설명한 부분부터 쉽게 이해가 되니 아주 편한 마음으로 에세이를 읽듯 읽어나가면 된다. 그는 '세계의 근원을 생각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하기를(저서 형이상학에서) '철학의 아버지는 탈레스'라고 하였다. 당시까지 모든 철학은 신화에 의존하여 세계를 설명하고 이해를 하였다. 즉 그때까지 그리스인들은 '이 세계는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리스 신화로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말을 통해 "신을 제외하고 이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철학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신을 제외하고 이런 생각을 품은 배경은 이러하다고 한다. 지리적인 맥락에서 설명되어지는데 이는 탈레스가 살던 밀레토스는 그리스인들이 바다를 건너 와서 정착한 땅으로, 흔히 식민지였다. 원래 그리스에 속하지 않는 곳이기에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기풍이 자유로웠고 그래서 일단 그리스 신들을 제쳐두고 자유롭게 생각에 잠길 수 있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문화만이 유일하지 않으며 절대적이지도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그리스 신화를 믿는 줄 알았는데, 사실 신은 나라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자 신을 믿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나라나 지역과 상관없이 통용되는 진리는 과연 무엇일까하는 자연스런 물음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물일까?

이 물음이 의외로 유치하지만 당시 수준으로는 놀라운 생각이다. 탈레스는 뛰어난 과학자인데 항상 자연을 유심히 관찰한 가운데 어떤 사실을 발견 했다. 그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씨앗이건 살아 있는 것에는 열과 습기가 있지만 식물이 시들거나 동물이 죽으면 바짝 마르게 된다. 습기는 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숨쉬는 모든 생명에는 물이 있다고 그는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그 생각을 바탕으로 '이 세계는 모두 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이다. 또한 대지는 물 위에 떠 있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로 물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그의 철학은 자연 고학에서 출발했다고 하여 '자연 철학'이라고 불린다. 그의 철학을 계승한 철학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늘 똑같이 '만물이 근원은 무엇인가?'의 물음을 가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한 것'이라고 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답했다. 또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데모크리토스는 '원자', 피타고라스는 '숫자'라고 답했다 한다.

아! 일단 이렇게 살펴보니 너무 쉽게 그 철학자의 사상이 이해가 되고 정리가 된다.

뒤이어 나오는 소크라테스 부분도 재미가 있는데 이 부분에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명제를 쉽게 정리를 해주닌 더욱더 소크라테스의 철학 사상이 더 이해가 갔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소크라테스 보다 당시 유명한 소피스트 중에 '프로타고라스'의 말이 더 마음에 다가 온다. 그 이유는 당시까지 철학은 만물에 대한 고찰로 이루어졌지만 프로타고라스를 통해 '인간'이 무엇임을 파헤치게 된다. 즉 철학에서 생각하는 대상을 '세계'에서 '인간'으로 전환시킴으로서 '상대주의'가 싹트게 된다.

이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는 말이 '사물에 대한 생각이나 견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을 가져오게 했고 책에서는 그의 철학으로 인해 철학이 정체되었다고 하는데 글쎄다. 그의 생각으로 인해 오히려 칸트나, 니체, 사르트르와 같은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비트겐슈타인 같은 경우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 또한 정답이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듯 이 책은 철학의 시초부터 해서 근대 사상을 만든 철학자들 불러오고, 근대 사상을 뒤흔든 철학자로 나아가 현대 사상을 이끈 철학자들로 마무리 된다. 물론 처음엔 이 책이 쉬웠지만 갈수록 깊이 사고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복잡한 세계를 저자의 친절한 설명으로 철학의 바다 위에서 잠시 헤엄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스스로 비판에 비판을 거듭해 잘 가꾸어진 사상 체계'가 서양 철학이 가진 장점이 아닐까라고 말하는데 그의 말을 곱씹으며 이 책을 대해야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어떠한 사물에 대해 생각할 때 인간이라는 기준이 나타난 것이 근대다.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이란 최근의 발명"인 셈이다. p308

주체(자신)란 자유로운 듯 자유롭지 않다. 이미 자신 안에 권력을 행사하는 자아가 들어가 있어서 또 다른 자아를 지배하고 제어하는 것이다. p311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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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유대인 글쓰기 비법 - 사고력, 논리력, 표현력을 한 번에 기르는
장대은 지음 / 유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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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은 관중들이 춤을 출 수 있게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 나는 내 독자들이 나의 글과 춤을 추기를 바란다.”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책 읽기는 행복이다. 왜 책을 읽는가 할 때 책 ''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지식을 쌓는 것도 좋지만 책을 읽게되면 마음의 양식과 지혜가 생긴다. 지식 너머의 세계가 바로 책에 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여건이 허락이 되면 미국 소설가인 '토니 모리슨'이 말했듯이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 한다."는 그 말을 실행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어떻게 쓰는지 그 비법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무엇이든 비법이 있는 것이다. 최근 읽은 책 가운데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책이 있다. 하루키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의 글쓰기 비법도 보게 되어서 구도를 잡았으나 여전히 나의 글쓰기는 초보 수준이다. 다행이라면 서평을 쓰면서 점점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아주 조금 알아가고 있다.

 

이 책은 유대인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사고력, 논리력, 표현력이 왜 뛰어난지를 소개하고 있다.

 

유대인의 뛰어남은 이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교육, 문학, 창업과 경영, 농업, 과학, 예술 등 인간이 성과를 낼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유대인이 있고 그것도 두각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노벨상 수상자의 23퍼센트가 유대인이다. 또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수 4명 중 1, 미국 100대 기업 중 40퍼센트가 유대인의 소유이다. 세계 인구의 0.2% 밖에 안 되지만 지금 세계 억만장자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이렇게 그들이 뛰어난 원인이 무언가 할 때 그건 바로 '글쓰기'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무려 2천 년 동안 대대로 갈고닦은 유대인의 비법이 이 책 한 권에 소개되고 있으며,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유대인은 글을 쓰고

글은 유대인을 만든다.

 

위의 말은 유대인을 정의하는데 있어 이것보다 더 강렬한 말을 없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책의 민족이며 문맹률이 제로다. 책의 민족, 쓰기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홍익히 교수가 쓴 <유대인 이야기>에서 유대인은 문자를 읽고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던 시대에 이미 글을 읽고 쓰는 독보적인 민족이었다고 한다. "중세 후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전혀 몰랐다. 이들을 위해 돈을 받고 관공서 문서 등을 읽어 주거나 대필해 주는 작업이 있었다. [...] 이 시기 유대인들이 상업을 석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씨 때문이다. 중세 유대 상인의 일상 업무 중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글쓰기였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글과 쓰기, 책과 언론의 힘을 알기에 가는 곳마다 학교와 출판사, 신문사를 설립했다. 또한 대표적인 언론사를 사들이며 전 세계 언론계의 블루칩이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파울 율리우스 로이터(Paul Julius Baron von Reuter)'라는 유대인이 있다. 그는 독일 태생 유대인인로서 '로이터(Reuter) 통신을 설립' 하였다. 영화나 TV에서 귀에 익숙하게 많이 들었는데 이게 유대인과 연관되다니 놀랍다. 이외에도 AP통신사, UPI 통신사, AFP 통신사의 사주도 모두 유대인이며, <뉴욕타임스> 같은 유명 신문사, NBC, ABC 같은 유명 방송국도 유대인의 소유라 한다.

 

 

세계적인 통신사들이 모두 유대인인 이유가 뭘까? 그 비밀은 그들이 논리적으로 글을 쓰고 말하는 표현의 능력과 언론의 힘을 중요하게 여긴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대인의 글쓰기 비법

 

그러면 유대인의 글쓰기 비법이 무엇인가? 유대인에게 있어 모든 성취 두구와 교육의 방법과 기술의 핵심은 '트리비움trivium'이다. 트리비움이란, ‘세 가지 배움삼학(三學)을 뜻하는 라틴어로, 고대 그리스부터 1천년 동안 유럽 교육의 중심을 이루었던 커리큘럼이다. 트리비움에는 3원리가 있는데 문법, 논리, 수사. 문법은 정보의 수용력을 키우는 것이며, 논리는 받아들인 정보를 조직화하고, 수사는 궁극적인 목표를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게 핵심 포인트다. 글쓰기를 말하는데 왜 트리비움을 강조하는가 할 때 트리비움은 글쓰기로 길러지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학습 도구들로 알려진 질문법, 독서법, 하브루타 등도 트리비움의 역량을 길러주는데 역할을 하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트리비움이다.

 

 

쳅터 26을 보면 '글쓰기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3단계 글쓰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바로 'A.S.K. 키워드 글쓰기 비법'이다. 이것이 뭔고 하니 핵심 단어를 묻고, 핵심 단어로 논리를 찾고, 핵심 단어를 표현해 상대방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영어 "질문하기(Ask), 논리 찾기(Seek), 두드리기(Knock)를 의미하는 영어 머리글자를 따와 만든 것이다. 이 도구는 위대한 작가로 나아가는데 큰 발판이 될 것으로 본다.

 

 

그렇다. 질문을 먼저 잘 하는 것이다. 모든 글은 하나의 핵심 단어로 시작하는데 바른 질문이 핵심과 글감을 불러 들이게 된다. 이어서 핵심 단어를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는데 이것을 개요라 부른다. 개요는 A.S.K. 공식을 사용하면 서론, 본론, 결론’ 3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서론(Ask)에 핵심 주장을 담고, 본론(Seek)에 주제에 대한 논리적 설명과 예시를 더하며, 결론(Knock)에서는 요점을 정리하며 주장을 강조하면서 마무리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핵심 단어 중심으로 실감나게 표현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두드리면 끝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두드리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어려운데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 노트감사 노트쓰기를 추천한다. 감정 노트에는 "기쁨, 슬픔, , 즐거움, 부끄러움, 후회 여섯 가지 감정 상태에 적는 것이며, 감사 노트는 그날 감사했던 바를 적는 것으로 자신을 관찰하면서 글쓰기 습관을 지속하게 되면 표현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질문하기'가 중요함을 유발 하라리는 말하는데 그 이유는 글쓰기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분야를 탐독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호모 데우스를 쓰는 과정에서 그가 던진 질문은 그를 역사와 생물학, 경제학과 심리학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그 과정은 끝없는 읽기와 쓰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세워 가는 과정이었음을 말해 준다.

 

사피엔스에사 "내가 믿는 것이 오류일 수 있다"라는 고백과 생각이 있었기에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양의 독서, 양의 글쓰기를 이어 갈 수 있었다p206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어쩌면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거 같다. "질문이 있는 식탁, 유대인 교육의 비밀"이라는 책에 보면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학원비가 아니라 부모의 시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유대인 부모는 이 절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안식일이라는 시간의 적금을 들어두며 함께 시간을 가진다. 특히 자녀가 질문이라도 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건 무엇 때문일까?” 라고 다시 아이에게 질문하여 아이 본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게 한다. 부모와 아이가 주고 받는 대화 속에 아이는 자연스레 논리적인 사고법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책의 끝부분에 다르면 희망의 찬 글이 보이는데 그건 바로 처음부터 잘 쓸수는 없다는 것이다. 글쓰기의 고수는 끊임없이 고쳐 쓰는 것이라는 그 말이 왠지모르게 반갑다.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걸레다"고 했다. 또한 "나는 걸작을 한 쪽씩 쓸 떄마다 쓰레기 92쪽을 양산한다. 이런 쓰레기는 휴지통에 넣으려고 애쓴다"고 했다. 또한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찰스 다윈의 말을 하나 더 붙이면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쓴 후, 절반으로 줄이고, 제대로 다듬어라"고 했다. 고치고 고치다 보면 작품으로 빚어진다니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그러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문장의 군살을 빼라는 38번 쳅터가 꼭 필요하다. 글쓰기에 있어중요한 글쓰기 방법은 단문 쓰기다. 단문으로 쓰기만 해도 글이 달라진다. 헝가리 출신 유대계 미 언론 재벌 조지프 퓰리처가 여기에 대해 한 마디 한다.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p217

 

이 책은 글쓰기가 무엇이며, 어떻게 전개를 하여, 쉽고, 분명하고, 남다르게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유대인의 신앙심을 보여주며 그들의 탁월함이 종교가 큰 역할을 했음을 알린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책의 한 문장

 

유대인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학습 과정이 아니다.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정리해 공유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글 쓰는 일을 티쿤올람의 실천으로 여긴다. 티쿤올람은 히브리어로 세상을 좋은 곳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유대인은 자신의 창조적인 생각을 남기는 행위를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 여긴다. P. 59

 

 

유대인은 글을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다방면에서 성취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종교적 차원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다.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민족으로 살아갈 때에도 글을 배우고 익히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에서든 읽고 쓰는 유대 문화를 정착시키며 유산으로 이어온 것도 이미 2천 년 전부터 그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글쓰기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영역으로 두지 않았다. P. 66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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