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아들 예수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김근수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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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전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에 도전하는 안산 선수에 대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불거짐으로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CNN 2019.10.22> 자료를 보니 "한국의 젊은 남성들, 페미니즘과 싸우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도 "남녀 분단국... 남녀 대립의 첨예화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오늘날 우리는 사상적 대립이 첨예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신에 대한 찬반론도 이제는 의학을 넘어 사상적 대립이 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정치적인 것이 들어가 있어 우리의 뇌를 갉아먹는 가운데 서로가 적대적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 악한 의도로 무언가를 실행한다면 당연히 거기에 관한 엄중한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세상을 공정하게 바라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공정(公正)하다 생각한 것이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경우도 많다. 다들 자신들 입장에서 보면 다 공정한데 그러나 어느 쪽은 분명 무지해서 또는 악의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

그런면에서 오늘 독자가 보고 있는 이 책은 여성에 대한 공정한 시선을 요하는 책이다. 저자는 제목을 "여성의 아들 예수"라고 뽑았다. 페미니즘에 대해 민감한 사람은 일단 무언가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어쩌면 거부할 수도 있고, 편견된 눈으로 이 책을 대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어떤 주의도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책을 보고 공정하게 여성(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한 사람의 국민이다.

먼저 페미니즘을 정의해 보자. 페미즘이란 국어사전으로 보면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을 뜻한다. 하지만 어떤 분의 말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페미니즘 뜻 자체가 변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평등이 아니라 혐오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소위 페미라는 말을 하는 분들에 의하면 페미니스트들은 양 성별간의 혐오를 일으키고 있는 운동을 하거나 선동을 하는 등의 사회적인 활동으로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차별적 요소를 가지며 남성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이 그러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의 서문을 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가거댁이 한 말이다.(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다) "씨만 중허고 밭 귀한 줄은 모르는 거 말이여라. 씨 뿌리는 애비만 중하고 배아파 가꼬 낳고 기른 애미는 뒷전인디. 인제 자식들도 애미 귀한 줄 알아야 써"

여기서 가거댁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차별적 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외친 한 마디는 저자가 언급하듯 이렇게 정의된다.

"흑산도 여인 가거댁의 모습에서 나자렛 여인 마리아가 떠올랐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신분 사회를 비판하는 가거댁은 가부장주의에 저항한 예수 어머니 마리아를 닮았다. 역사의 마리아는 겸손과 순종의 모범이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는 당당한 여성의 대표였다. 가거댁의 삶을 보녀 사회질서에 의문을 품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던 정약전은 나자렛 예수와 잘 연결된다. 여성을 존중하는 정약전은 가부장주의에 저항한 예수와 많이 닮았다." -서문에서

예수의 어머니가 불의의 저항하는 당당한 여성의 대표였다라는 말이 조금 의아하지만 일단 저자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 의도를 알면서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저자는 또 말하기를 "예수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와 권력자와 종교인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참지 않았다. 그는 부자와 권력자에게만 저항한 것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에게만 관심을 둔 것 또한 아니다. 가난한 사람 중에도 가장 가난한 여성을 예수가 돌아보지 않을리 있겠는가. 예수는 인간을 좀먹는 근원 중 하나가 가부장주의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여성이 남성에게 무시당하는 상황을 구경만 하지 않았다."고 매우 강력히 말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예수는 이렇게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주의를 아주 싫어했으며 가부장주의를 끝장내고 싶었다고 하니 여기서도 과연 그럴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단 또 읽어나갔다.

한 번씩 멈추게 되고 의문을 품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가부장적인 사고가 있는 것일까하는 마음도 가지지만 신학적인 부분에 있어서 성경을 보는 것에 대해 Queshion mark가 생겨서이다. 물론 이것 저것을 떠나 처음 언급했듯 공정(公正)하게 보려고 한다.

그렇다 이 책은 여성 신학 전체를 소개하지는 않으며 또한 여성이 사회와 교회에서 겪어온 고통을 설명하고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소박한 의도로 "예수는 여성의 삶과 고뇌를 어떻게 알아가고 이해했는지... 예수는 여인들과 만남에서 삶을 어떻게 돌아보고 자기 생각을 바꿨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 여성을 위로하는 예수보다 여성에게 위로받는 예수, 여성을 가르치는 예수보다 여성에게 배우는 예수, 하느님의 아들 예수보다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하여 사람의 아들 예수보다 여성의 아들 예수를 이 책은 보게 될 것이라고 하니 새로운 시선으로서의 예수가 점점 궁금해지고 있다. 책 소개에 보면 "20세기 해방신학은 ‘해방자 예수’라는 칭호를 만들어 내었고, 21세기 한반도에서는 ‘여성의 아들 예수’라는 칭호를 선사했다"고 말하는데 저자의 말인지 출판사의 말인지 모르지만 이 책의 의도를 분명하게 접하며 예리한 눈으로 이 책을 점점 대하게 된다.

책은 다섯개의 파트로 되어 있다. 1장 예수를 만난 여성에 대해 2장 예수를 가르친 여성에 대해 3장 예수의 여성 비유에 대해 4장 예수를 따른 여성에 대해 5장 예수 탄생과 여성에 대해 다룬다. 특히 독자가 눈에 가는 것은 2장 예수를 가르친 여성에 대해서이다. 여기서 여성들이 어떻게 예수를 가르쳤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라 눈여겨 보았다.

시몬의 장모를 고치는 부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시몬의 장모가 시중들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동사 '시중'은 그때 한 번 시중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중들었다는 뜻이다. [...] 예수도 시몬의 장모처럼 시중들러 세상에 왔다. 시몬의 장모가 예수에게 모범을 보였고, 예수는 시몬의 장모에게 시중드는 것을 배웠다. 「마르(마가복음)」에서 천사, 여성들, 사람의 아들 예수만 시몬의 장모처럼 봉사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경고받았을 뿐이다. 시몬의 장모는 진정한 예수 따르기와 제자의 본보기다." p 85

아뿔싸... 예수가 시몬의 장모에게 시중드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과연 배운 것인가? 물론 우리는 타인을 통해 배운다. 그러나 과연 예수가 시중드는 것을 배웠다라는 말을 굳이 과한 해석까지하며 그렇게 정의내릴 수 있는가?

시로페니키아 여인에 대한 부분을 본다. 여기서 예수는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고 할 때 그 여인을 향해 개로 비유하여 말했다. 물론 이 부분은 유다인들의 문화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당시 "유다인은 자신을 하느님의 자녀로 보고 이방인을 개에 비유했다." 여기서 예수는 유다인 아닌 사람을 무시한 것이 아닌 당시 통용되던 언어 습관을 빌린 것으로 본다. 아무튼 여기서 여인은 그 말을 듣고 "강아지로서의 구원을 요청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예수가 논쟁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졌다고 말한다. 그것도 기쁘게 졌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수가 여인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다.

"용기 있는 이방인 여성의 당당함 덕분에 예수의 생각이 더 부드러워지고,

시야가 더 넓어졌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p 90

음...내가 잘못된 것인지 저자의 해방신학적 사고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나 여기서 예수에 대한 시각 또한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바꾸었다기 보다는, 예수가 가진 의도가 이 안에 내포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고 본다. 인간적인 예수로 볼 때에는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적 예수로 볼 때에는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가 단지 그 여성의 대화로 시야가 더 넓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운거 같다.

이렇게 저자는 이 책에서 해방신학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보고 여성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새롭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한 해석으로 본질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여성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평가가 새롭게 평가되며, 성별로 인해 발생되어지는 차별이 개선이 되어져야함은 독자 또한 크게 바라는 바이다. 가부장적인 사고로 인해 나의 어머니 또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유지(有志)였지만 자신의 딸에게만은 구시대적인 사고로 젖어 있는 어르신이었다. 분명 이런 점은 개선되고 차별적 요소가 제거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여성적 권리를 통해 오히려 역차별적인 요소로 나아간다면 이 또한 사회의 병폐가 되고 문제가 될 것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20대 남성들의 과반수는 역차별을 생각한다. "여성 우월주의자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이 오히려 남성을 향해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 남성만 군대에 간다

· 남성이 위험 노동을 전담한다

·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낸다

· 남성이 가정을 부양한다

여기서 볼 때 남성이 위험 노동을 전담하고 데이트 비용을 내며, 가정을 부양하는 것은 어쩌면 20대 남성들에게는 역찰별로 생각되는 바가 없잖아 있는거 같다. 이것에 대해 다룬다면 아마도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것이기에 여기에서 그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요지는 여성이 대우를 제대로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남성을 대우하면서 말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 사랑 받아야 한다. 독자인 나는 그렇게 좋은 뜻으로 이 책을 대하고 싶다. 다만 예수에 대한, 그리고 성경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 조금은 고민을 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이 책을 대하는 독자에 따라 이 책을 반기기도 하고, 거부감도 들것으로 본다. 책은 줄기차게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한다. 이 책을 통해 여성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지만 그것 또한 보는 이에 따라 다르리라 생각된다. 다만 저자의 눈으로 조금은 여성의 입장을 살피는 기회가 되었음을 감사하고 있다. 모든 이가 서로 존중하는 세대가 속히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서평을 마친다.

이 책의 한 문장

이 책은 모든 여성, 어머니와 딸과 자매와 누이가 여성의 아들 예수에게 위로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 여성의 아들 예수를 보며 용기 있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고 여성의 아들 예수와 함께 걸으며 여성과 남성 모두 자유와 해방을 얻기를 바란다. 진정한 해방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 존중하며 따뜻한 마음을 지닐 때 올 것이기 때문이다.

- 서문 중에서

예수의 남성 제자들은 예수 십자가 죽음 장면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남성 제자들은 예수가 체포될 때 모두 달아났다. 베드로도 [...] 사라졌다. 예수가 힘든 순간에 그 곁에는 여성 제자들만 있었다. 그전에 남성 제자들은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퉜다. [...]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권력 다툼과 배신에 바쁜 사람은 누구인가. 남성 제자인가, 여자 제자인가? 오늘날 교회와 성당에서도 권력 다툼과 배신에 바쁜 사람들은 누구인가.

예수를 따라 다닌 여자들은 충실했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배신한 여성은 아무도 없다. 남성 제자 가운데 배신하지 않은 사람은 찾이 어렵다. 여성 제자들은 예수 따르기와 같음을 보여줬다. 여성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p 191, 194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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