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의 유토피아 - 왜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연효숙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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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과거부터 이상 세계를 꿈꾸며 얘기를 해왔다. 『유토피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언가 모를 낙원과 같은 세계가 그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우 토포스(ou topos)’라는 그리스어에 유래했다. 우(ou)는 ‘없다’라는 뜻이고, 토포스(topos)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 원래 의미는 nowhere, 즉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유토피아는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나라이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고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이다.

한 번은 고전영화인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37년)'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할리우드의 거장이었던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티벳지역에 숨겨진 유토피아 세상인 샹그릴라(Shangri- ra)라는 장소를 보게 되었다.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곳으로 늙지도 않고 평생 따뜻한 기후만이 지속되는 곳이며, 굶지 않아도 되며 매일 음식이 풍족하며 깨끗한 물이 있고 평화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곳으로서 어떤 분의 말처럼 아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무렵 전쟁과 가난의 공포를 벗어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이상향을 그려놓은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거기에다 동양적인 신비감과 라마교의 종교적 신비감까지 가미한 세상을 그려 놓음으로 실제 많은 이들이 영화로 인해 이곳을 찾으려고 네팔,인도,티벳 등지를 뒤졌지만 탐험가들은 영화 속에서 묘사하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이런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어떤이는 종교를 통해 낙원을 이미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저자는 어디엔가 있을 환상의 나라를 쫓기 보다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유토피아를 스스로 만들어보도록 채근하고 있다.

지금의 사회를 보면 코로나 19가 세상을 암흑 가운데로 내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악화된 경제와 치솟는 물가, 기후위기, 국가 간 분쟁, 빈부 격차, 불안한 정치 현실 등 우리의 현실은 매우 어둡고 암울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도 OECD 국가에서 자살률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현실을 이겨내기는 커녕 사회 전체를 더 암울하게 한다고 생각된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모어는 단순히 철없이 이상적으로만 꿈꾸는 비현실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현실의 모순과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하였다. 개인의 행복을 고민하고, 결혼과 안락한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교육과 생업을 논의하면서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의, 평등, 도덕, 복지 제도, 경제 체제가 얼마나 새롭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주장한다. 또한 유토피아 사회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새롭게 생각하며, 종교의 자유에 대해 누구보다 열린 마음을 가졌고, 공공의 이익이 잘 보장되는 공유제에 입각한 정의 사회의 모델을 근사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독자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종교와 공유제이다. 모어는 유토피아를 통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동사회를 추구한다. 현대 사회는 자유롭게 종교를 택할 수 있으나 중세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로마 사회에서 탄압을 받으며 성장한 기독교가 중세 사회에서 국교로 정해지면서 기독교 외에 종교는 이단이 되었다. 종교 또한 힘과 권력이 생기면 썩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가 되면서 부패했다. 모어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유토피아에서는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고 있다.

섬 전체 안에서뿐만 아니라 개별 도시들 안에서도 갖가지 형태의 종교가 있다. 해를 신으로 예배하는 사람, 달을 예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과거의 위인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이런 위인을 그냥 한 분의 신으로만 모시는 것이 아니라 최고신으로 모시는 것이다. [...] 다만 유토피아의 예배 의식이 기독교와 다른 것은 어떤 신상도 세워놓지 않고 각자 자유롭게 자기 신앙에 따라 예배를 본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신을 미트라스(mythras)라고 부르는데 이는 신의 고유 명사가 아니라 절대적 존재인 신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에 불과하다. 각자 자기가 송배하는 신을 마음속에 그리며 사제의 인도에 따라 자유롭게 경건하게 예배를 보는 유토피아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면, 매우 평온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예배 의식은 유토피아 사람들을 한 공동체, 울타리로 묶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p157-162

공유제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유토피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공동으로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소비와 분배 역시 공동으로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세계에서는 일단 노동 시간이 6시간만 배정된다. 정오까지 3시간 일하고,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으러 간다. 점심 후에 2시간 쉬고, 다시 3시간 일하여 하루 일과를 마치거 저녁 8시경에 잠자리에 든다. 6시간 일하고도 생필품 공급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유토피아는 그들의 작업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쓸 물품이 있다고 말한다. 16세기 산업사회 초기 하루 12시간 이상을 노동했다고 한다. 지금 현대인들도 하루 8시간 노동을 하고 산다. 그런면에서 유토피아가 그려주는 노동 시간은 꿈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래는 공유제에 대한 얘기다. 즉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의 원칙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각 도시는 네개의 비슷한 구로 나뉘어 있고 각 구의 한복판에 모든 종류의 물품을 갖춘 시장이 있다. 각 가구에서 만들어내는 것들이 이곳으로 운반되어 창고에 보관되며, 각 물품마다 각기 정해진 장소에 놓여 있다. 각 가구주는 여기에서 자신과 자기 집에 필요한 물품을 찾아 돈을 지불하거나 어떤 보상 없이 그냥 가져간다.

p98

언뜻 보기에 참으로 좋아 보인다. 결핍에 대한 두려움이 없게 되고, 과시하거나 남보다 앞섰다고 자랑하는 헛된 자만심이 유토피아에서는 전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좋은 제도를 왜 인류는 체택하지 않고 있을까? 이런 유토피아적 생각을 펼친 인물이 있으니 19세기 마르크스이다. 20세기에 와서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이러한 제도가 실제 채택되어 실행된다. 마르크스는 빈부격차의 주요 원인인 사유재산제도를 없애고, 그 대신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의 제도를 제안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는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서와 낚시할 수 있는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를 할 때 인간이 많이 게을러진다는 데 있다. 결국 소비에트 연방은 1987년에 무너졌으며 현실적 상상은 폐해를 맛보게 되었다. 물론 유토피아가 주는 공공적 혜택은 현대 사회에 와서 복지의 형태로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주는 그런 복지의 형태에 비해서는 턱없이 못미치지만 말이다.

유토피아가 보여주는 세상은 가히 꿈꿔볼만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과 나태함, 악함이 있는한 이러한 유토피아는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과연 인간이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이 살면 과연 행복하고 사회는 정의롭게 공의롭게 만들어지게 될까?

니콜라이 레스코프라는 작가가 쓴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에 대해 잠깐 본적이 있다. 맥베스 부인은 어쩌다가 세 명을 살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권태'로부터 비롯되었고 한다. 인간은 따분함, 권태를 참지 못한다. 또한 기계적이며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펼쳐지며 일탈을 꿈꾼다. 그렇다. 인간을 만족 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그 인간이 자족하는 법을 알게 되면 삶은 유토피아로 바뀌게 된다. 인간 사회에 있는 문제점을 잠시 유토피아를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단지 이상향으로만 그치지 않고, 모어의 생각을 가져와 새롭게 확장하고 보완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이상 사회를 다시금 만들어 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선 이런 유토피아는 희망사항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주지마라.

-호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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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법률가들
조배숙 외 지음 / 베네딕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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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법률가 4인의 삶과 철학을 담아낸 책!

그들의 생각은 왜, 어떻게 다른가 -

 

이 책은 신앙인으로서 반가운 책이다. 신앙인들 가운데 법률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만으로 무너져가는 법조계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불공정성에 대한 얘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불공정성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AI판사 도입을 제안하고 있나 말이다. AI 판사의 판결 오류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그러나 현재의 재판부보다는 못할까 싶다. 실제 국민 10명 중 6, 사법부 판결을 불신하고 있다.

 

 

요즘 대선을 보면 대장동 얘기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 법무부 차관이었던 김학의라는 사람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김 전 차관 의혹은 20133월 그가 법무부 차관으로 내정되면서 시작되었다. 한 언론에서 김 전 차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원주의 한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있다고 보도하여 발칵 뒤집어졌다. 그런데 1차 수사 끝에 김 전 차관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성접대관련 모든 죄가 무죄, 뇌물 수수에 관해사도 무죄를 받았다성접대 동영상을 나도 봤지만 판사들 눈에는 그 사람이 김차관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한 눈에 알아 봤다이게 바로 법의 현주소이다.

 

 

대장동 사건이나, BBK 주가 조작 사건이 아무리 명백하게 드러나도 죄진 놈은 없고, 거기에 따른 주변 인물의 자살이나 고통만 있으니 이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황하나)에 대해 다루는 기사가 나왔다. '집행유예 중 또 마약'을 했지만 징역 18개월 실형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니 인공지능판사의 도입을 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AI 판사는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공정성은 띄고 있으니 말이다.

 

 

무법천지와 같은 시대에 공정성을 가진 크리스천 법률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과 나라에 소중한 보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전제는 그들이 공정하고 정의로울 경우이다. 요즘 시대에 아무리 크리스천이라고 하더라도 이들 또한 외부의 강압이나 혹은 뇌물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한 눈을 감아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얼마만큼 공정한지는 그들 자신과 하나님에게 맡기고, 이 책에서는 그들의 생각과 하나님을 믿게 된 과정과 독자들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법 또는 신앙에 관해 어떤 마음을 가졌는 지를 보고자 한다.

 

 

첫 페이지를 열면 대한민국 최초 여성 검사이자 4선 국회의원 출신 조배숙이라는 법조인이 나온다.

 

일단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그녀의 글을 통해 독자들의 마음은 활짝 열리게 된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을 바탕으로 약자들의 법인 소위 조강지처법이라고 조롱받는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이게 바로 제대로 된 법조인이며 국회의원이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한 골수 기독교 신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펼쳐나가는 장면에서는 마치 잔다르크와 같고, 성경에 나오는 '사사 드보라'와 같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을 도와준 내용이 나오는데 가수 현진영과 박근혜 동생 박지만에 대한 부분이다. 왜 현진영은 조배숙 판사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으며, 정치적 대척점에 있던 박지만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에 대해 다루는데 신앙인으로서 좋은 신앙적 간증이라 생각된다.

 

 

이 책의 특징으로는 4명의 법률가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즉 성장 환경, 예수를 믿게 된 계기, 전문 분야, 활동 영역 등 마지막 부분에는 각자가 하나님 앞에 올린 기도문이 나온다. 모두 진심으로 느껴지며 참 신앙인의 모습이 보인다.

 

 

단순히 법조인의 삶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 법률가를 둘러싼 예수 안에서의 삶의 간증이나 경험을 얘기해 주어 친근하게 법조인에 대해 이해를 경직되지 않고 편안하게 보도록 해주고 있다. 인상 깊은 부분이 있는데 4명의 법률가들에게 동일한 질문인 '예수를 만난 과정, 교회에 가게 된 계기, 신앙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을 때 하나같이 누군가의 전도로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 되었던, 친구가 되었던지, 목회자가 되었던지 전도를 통해 예수를 만나고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다. 신앙인에게 전도는 마치 필수적 의무이지만 늘 짐처럼 생각되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 용기를 갖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 좋겠다 싶다.

 

 

더불어 인상 깊은 내용은 '특별히 예수의 마음을 품고 타인을 도운 경험'에 대해 다루는 부분인데 하나같이 귀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면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남형두 법조인에 대해서이다. 두 가지 내용을 말하는데 하나는 다가구 주택을 지어 분양한 수천 명의 서민에게 부가세를 면제받게 한 것과, 시각 장애인들의 교육 및 문화생활을 개선한 것이다. 즉 시각장애인들은 매년 정부가 발행하는 일정한 종수의 점자책으로 교육 및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저작권법 때문에 많은 책과 함께 교과서도 제 때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침 남형두 법조인이 저작권법을 전공을 하고 있어, 이 부분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에 대해 남형두 법조인은 '장애인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쓰임 받을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모든 사람은 타인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가운데 신앙인이라면 특히 법조인이라면 이 사회의 불공정에 대해 싸워 선한 가치를 끌어내야 하는 사명이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4명의 법조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역할을 해나가며 공정한 법을 세워나가는 모습은 정말 온 국민에게 더 없는 기쁨의 소식이라 생각된다. 이것을 위해 이들이 끝까지 싸워 하나님 나라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잘 만들어 나가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기도해 본다.

 

 

끝으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조배숙 법조인의 글을 독자들은 읽고, 무엇이 차별이고 진짜 평등인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나머지 두 명의 법조인 또한 훌륭한 인물로서 하나님 앞에서의 법조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한 분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김일수이며, 한 분은 대통령 탄핵과 위헌 정당(통진당)을 해산한 헌법재판관 출신 이정미이다.

 

 

이들로 인해 한 시대가 밝아져 국민의 숨통이 트이고, 나라가 안정되길 소망해 본다. 믿는 자들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신의 가치를 눈 앞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다. 기도와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으며 국민을 섬겨 나가는 모습이 본인 자신만 아니라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어, 더 많은 믿음의 법률가를 배출하는 도화선 또는 연결점이 되길 기도해 본다.

 

이 책의 한 문장

 

변호사를 하지 않았다면

법조 생활의 반쪽마 알고 나머지는 알지 못한 채,

내가 경험한 것만 법조 생활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았을지 모른다.

-이정미

 

상대가 마음에 불편과 괴로움을 느꼈다고 해서 바로 차별로 보고 법적인 제재에 돌입한다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상태에 따라 괴롭힘이 성립되기 때문에 법적안정성을 해친다. 가해자에게는 불이익한 제재가 따르므로 일반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객관성 공정성이 요구된다. 특히 차별금지법 논의에서 쟁점이 되는 동성애의 경우, 동성애가 죄라는 성경의 교리에 입각한 비판은 물론이고 동성애에 대한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비판도 괴롭힘 내지는 혐오표현으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이는 반대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반대발언금지법이 된다. P. 40~41

 

 

1980년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한 저는 기도의 힘을 깨달았고, 1991년 서울남부지법에 온 이후부터는 10년 동안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연수를 했던 1989년부터 이혼을 경험한 1991년도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도 새벽기도를 꼭 나갔어요. 당시 제가 살던 곳이 기치조지(吉祥寺)역 부근인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가서, 첫 전철을 타고 신주쿠(新宿)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순복음 동경교회를 갔다가, 다시 동일한 방법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잠결에 전화벨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깨어보면 새벽기도 갈 시간이더군요. P. 54~55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져서, 억눌리고 갇힌 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웃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따뜻한 법률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 세상에 사랑이, 복음이 널리 전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P.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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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말 - 새로운 번역과 원문을 통해 만나는 셰익스피어의 인생 철학 110가지
가와이 쇼이치로 지음, 박수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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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번역과 원문을 통해 만나는

셰익스피어의 인생 철학 110가지

​셰익스피어를 일컬어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다”라고 기꺼이 평가한다. 그는 인생의 달인이며,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진 보기 드문 작가이다. 4세기가 넘도록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희곡 작가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라고 칭해도 누구하나 반론을 가질 사람이 없을 것이다. 특히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남겼는데 그만큼 위대한 작가임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최근 뉴스에 보니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맥베스의 비극>이라는 영화가 무려 공식적으로 12번째 영화화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최근작인 독립예술영화에서 유명 감독인 조엘 코엔을 통해 <맥베스의 비극>이 다뤄지는데 기회가 되면 보고 싶다.

그의 작품중 유일하게 읽은 것은 『햄릿』이었다. 가장 유명한 문장은 바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인데 이 의미가 책을 통해서 보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역시 책을 통해서 문장을 이해해야 셰익스피어의 진의를 더 이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본 책은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총 40편과 『셰익스피어 소네트(Shakespeare’s sonnets)』 중에서 110가지 말을 골라 하나씩 정성스럽게 해설을 더한 책이다. 저자는 자타공인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가와이 쇼이치로라는 사람인데 자신의 해석으로 새로이 번역하고 해설을 붙여 셰익스피어의 글을 더 친근하게 새롭게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셰익스피어의 말』은 이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문구들과 함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작품 속 대사를 인생 철학과 연관 지어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책의 맨 끝에 희곡 총 40편의 줄거리를 집필 순서대로 정리해두어 문장에 대한 이해를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장르로 나누자면 비극이 아홉 편(그중 로마 사극이 네 편), 희극이 열 편, 역사극 열두 편, 문제극 네 편, 로맨스극 다섯 편으로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다뤄주고 있어 많은 작품을 읽지 않아도 마치 셰익스피어에 대해 전문가가 된 느낌을 가진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문구들이 많고 친절한 작가의 해설로 인해 그 문장을 곱씹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좋다. 첫 글에 나오는 문장에서 이미 독자의 마음을 연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안전해

햄릿 제 1막 제3장

이 문장을 직역하면 '최상의 안전은 두려움 속에 있다'로 번역된다. 두려움은 좋지 않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런 두려움은 우리를 지켜준다. 즉 차를 운전할 때에 저자가 말하듯 항상 저 모퉁이에서 아이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앞에 가는 자전거가 갑자기 이쪽으로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운전해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지하철이 지연될까 봐 걱정해서 일찍 집을 나서면 지각을 면하듯이 '유능한 사람', '잘되는 사람'은 언제나 그러한 '두려움'을 안고 행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태평하게 행동하며 잘 안 된다고 불평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무능한 사람이나 취하는 행동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항상 예방책과 대책을 생각해 두어야 한다는 작가의 해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잘 이해한 설명이라 생각된다.

그 다음으로 다가온 문장은 쳅터 1번 '후회하지 않도록'에 나오는 세 번째 문장이다.

"현명하고 신중하게 하거라.

급하게 뛰어가는 자는 넘어지게 마련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제2막 제3장

이 문장은 이런 줄거리에서 나왔다. 로런스 신부는 로미오가 줄리엣과 결혼하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하자 영가의 불화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이 결혼을 성사시키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이때 신부는 마음이 급해 견딜 수 없는 로미오에게 당황하지 말라며 이 대사를 건넨다.

실제 살아본 인생을 보면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고, 성급하면 손해를 보는' 일이 생겼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는 말이 있듯이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이 말을 마음으로 생각하며 운전도, 삶의 문제도 느긋하게 하려고 노력을 했다. 인생사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자칫 더 많은 실수와 문제를 일으킨다. 이제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되새기며 더욱더 신중을 가한다면 어쩌면 고급스러운 느긋함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즐거운 수고는 고생이 아니야

맥베스 제2막 제3장

최근 다니는 회사를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최상품의 쌀을 나눠주었다. 어려웠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나눔을 통해 그들을 섬기는 시간을 가지니 행복했다. 마침 본 책을 읽는 가운데 맥베스에 나오는 문장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문장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즉 던컨 왕을 암살한 다음 날 아침, 맥베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귀족 맥더프를 성으로 부른다. 맥더프가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맥베스는 "즐거운 수고는 고생이 아니야"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렇다. 영어 표현에서 무언가 감사 인사를 들었을 때 "저의 기쁨이에요(My pleasure)"라고 대답하듯 누군가가 기뻐하면 자신도 덩달아 기쁨을 느낀다.

『베니스의 상인』의 책에도 보면 재판관 역할을 맡아 무사히 안토니오의 생명을 구한 포샤는 바사니오 등이 감사 인사를 하자 “도움을 준 것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았어요.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아요”라고 말하듯 타인에게 도움을 줌으로 인간은 이상하게 행복을 느낀다. p81

이 책은 문장 문장마다 피부에 와닿는 글이 너무 많다. 400년 전의 인간의 삶이나 지금의 인간의 삶이나 별반 인생의 문제는 다를바 없음을 이 글을 통해 더욱 보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깊은 통찰을 통해 그려진 이야기 속에 나오는 미움, 배신, 음모, 질투, 연민, 사랑, 희생, 연민, 인간관계의 고뇌, 사랑의 고민, 삶의 갈림길 등과 같은 다양한 말의 처방전이 이렇게도 인생을 잡아주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마음이 불안해지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깔맞춤처럼 작가는 셰익스피어를 통해 위대한 인생 철학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 한권으로도 우리 인생을 새로이 설계할 수 있음을 감히 말하는 바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어쩔 수 없는 일은 신경 쓰지 말아요.

이미 저지른 일은 끝난 일이에요.” 『맥베스』_12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은 흐른다, 아무리 힘든 날이어도.” _ 『맥베스』 _48

“저리 작은 촛불이 이토록 멀리까지 비추다니요!

선행도 악한 세상을 저렇게 비추는군요.” _ 『베니스의 상인』_52

“불행이란 것은 견디는 힘이약하다고 알아채면 그곳을무겁게 짓누른다.” 『리처드 2세』_58

“올곧아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헨리 8세』_62

“인생은 화복이 꼬인 줄 같은 것이다.” _ 『끝이 좋으면 다 좋아』_64

“끝이 좋으면 다 좋아요. 결말이 전부죠.

지나온 길이 어떠했든 마지막이 꽃을 곁들이는 것이에요.”『끝이 좋으면 다 좋아』_66

“참을성이 부족한 놈은 어쩔 수 없군!

어떤 상처라도 조금씩 낫는 법이야.

마법의 주문을 외울 수는 없잖아. 머리를 써.

지혜는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과 함께 흐르거든.”『오셀로』_76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_ 『햄릿』 _106

“멍청한 자는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현명한 자는 자기가 멍청함을 알고 있지.” 『뜻대로 하세요』 _146

“사람의 진가가 결정되는 것은 인생이 끝날 때야.”『헨리 4세』_148

“무지는 신의 저주요, 지식은 하늘에 이르는 날개다.” _『헨리 6세』 _152

“지금 이대로 감사하자.

그리고 우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두 귀족 친척 _156

“이 세상은 전부 무대이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배우에 불과하다.

퇴장하고 입장하고 한 사람이 자신이

나갈 차례에 여러 가지 역할을 연기한다.

그 막은 일곱 개의 시대로 이루어진다.”『뜻대로 하세요』 _184

“나는 호두 껍데기에 갇혀도 무한한 우주의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남자다.”『햄릿』 _206

“어리것은 생각이군. 사람을 복장으로 판단하다니.” 『페이클레스』 _214

“진실된 사랑의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아.” 『한여름 밤의 꿈』 _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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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대화 - 성령으로 들여다본 신통섭의 솔루션
김병윤 지음 / 광문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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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그대가 어느 민족인지 출생지가 어디인지 관심이 없고

생전에 무엇을 했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페르시아 격언-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골랐다면 아마도 두 가지 부류로 갈라질 것이다. 한 부류는 이 책에 대해 불쾌한 마음을 가지며 마치 리처드 도킨스의 책처럼 생각할 것이다. 또 한 부류는 이 책이 기존의 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 아닌 새로운 차원 속에서 말해지는 하나님이기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에게 조금의 희망적인 책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책이 과연 저자가 말하듯 예수께서 말하셨던 존재의 본질, 사후 세계, 그리고 우리 모두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깨우치고 사랑의 원심력을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종교의 방향타를 잡게 되는가이다.

 

물론 읽는 자의 개인차가 있겠지만, 자신이 쓴 글을 통해 모든 이들이 자신과 같은 신의 진리를 깨닫고 그가 원하는 경지에는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즉 이 말은 저자의 말 또한 신존재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나 철학적 추론이나 가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읽어 나가면서 기존 종교에 매우 화가 나있고, 종교가 저지른 실수나 죄악들을 보고 종교의 근간이 되는 신까지도 부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저자 나름 종교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책을 읽으며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저자는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증조부모께서 돌아가실 때 처음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고, 그러던 가운데 1977년 봄 대학교 정문을 넘어설 때 마른 하늘의 벼락을 맞고 살아나는 희한한 경험까지 하였다. 정신 없이 쿠사(KUSA, 유네스코학생회)라는 학회의 사무실로 뛰어들어간 그는 무의식 상태에서 무언가를 적게 된다. 그때의 쪽지는 잊어 버렸지만 적힌 내용은 이러하다. “모든 존재는 육체, 정신 그리고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로를 느끼는 육체와 정신은 사라진다. 하지만 태초부터 있었고 영원히 존재하는 영이 모든 존재의 본질이며, 이것은 결코 죽지 않고 존속하게 된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저자는 무수한 세월 속에 종교 책들을 섭렵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경전을 접했으며, 또한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었는지를 연구하며 동서양 철학 책들을 골고루 읽고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배경 속에 그는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정신이 배제된 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 후 저자는 비교종교학 책인 '영과 영'이라는 책을 출간 했으며, 출간 직후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읽으며, 자연법칙 속에 종교적 질문을 포함한 사회과학 분야의 담론에 대한 해답이 있을 거라는 확신 속에 하나의 문구를 발견하며 본 책을 저술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된다. 그 문구는 이러하다.

 

"모든 물질은 그에 대응하는 반물질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서로 교류하면 원래의 상태인 영(, zero)으로 사라진다"

 

불교의 공() 사상과 흡사한 개념이다. 아무튼 저자는 스티븐 호킹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간구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또다시 얻게 되었고, 그 해답으로 종교를 포함한 사회과학의 법칙과 자연과학의 법칙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꿈꿔오던 책을 준비하며 약 3개월의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가운데 하루에 15-18시간씩 집필을 하게 된다. 그때 저자는 특이한 경험을 또 한 번 하게 되었는데 그건 잠시 머리를 식히는 동안 지속적으로 단어나 짧은 문장이 발상이나 착상을 통해 뇌리에 전달되고, 이를 찾으면 문장이 완성되는 경험을 한다. 꿈을 통해서도 책의 내용과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도 재시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 설명이면 저자에 대한 선이해가 되었을 거라고 본다. 존재 본연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정은 가히 어떤 신학자보다, 종교인보다 열성적이다. 많은 지식들을 섭렵한 가운데 책을 구성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문제는 저자가 생각한 하나님에 대한 견해이다. 그는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근간이 되는 구약을 배제한다.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이나 쿠란과 함께할 수 없는 교리이며 이 책(구약성경)과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구약성경에 대한 모순을 분석하는데 많은 할애를 하며 예민하게 성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짚어낸다. 더불어 신약성경에 관해, 예수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 바울의 사상이 어떻게 기독교의 기본 교리로 자리 잡게된 사실을 설명하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다. 천국과 지옥의 기존 개념은 허구이며, 예수가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이승에 천국을 실현'하는 것이기에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잘못 가르침을 받아온 고대 우화와 같은 얘기에서 빨리 집착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은 기존의 기독교가 가르쳐온, 창조론, 동정녀 탄생, 부활에 대한 개념을 사그리 무너뜨린다. 소위 또 다른 안티 기독교의 모습이다. 예전 마르키온파(Marcionism)란 이단이 있었다. 그는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분이라고 말했다. 즉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과 복수의 잔인한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용서의 신이라고 말하며 구약성경을 배제한 가르침을 전했다. 그런 그의 사상은 7세기경에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이렇게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여 신에 대해 정리를 내리며 기존 기독교에 대해 따끔한 충고와 오류를 짚어주는 저자의 노고에 기독교는 무언가 귀담아 들을 내용들이 충분히 있다. 그 어느 책보다도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한 책이며, 구약성경을 근간으로한 종교를 완전히 짓밟아 감으로 종교 본연의 모습을 가져오려고 하였다. 문제는 성경이 가진 문장을 인간적 이해나, 지성으로 파헤친다고 해서 그가 성경에 대한 전지적 이해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베드로후서 3:16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함부로 성경을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성경의 오류에 대해 무조건 눈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맹목적인 종교는 기존 종교에서도 타파하고자 한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맹목적인 사람들은 존재한다. 문제는 저자처럼 성경을 재단하며 성경을 비판적으로 대함으로 성경이 정말 인간에게 주고자 하는 진리에서 멀리 떨어진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 중에 20세기 시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에즈라 파운드라는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심오한 책은 그 내용의 일부를 실제로 보거나 체험하기 전까지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며 오류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 모든 것에서 신의 옷자락을 만지며 신의 숨결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구약의 하나님이 마치 유대나라의 민족신정도로 치부될 정도로 성경이 그렇게 조약하게 적혀 있지 않다. 언젠가 저자가 성경에서 말하는 신적 체험을 하게 되는 날, 그는 성경을 달리보는 눈을 가지리라 생각된다.

 

 

리처드 도킨스, C.S. 루이스 그리고 삶의 의미라는 책의 글귀를 끝으로 이 책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각각은 삶의 일부를 밝혀주지만, 전부는 아니다. 과학은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으며, 기독교는 자연의 기초물리상수의 가치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둘을 합쳐 생각한다면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그 둘은 서로를 용납함으로써 서로를 풍성하게 할 필요가 있다." (40)

 

이 책의 한 문장

 

"모든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신의 현현으로 창조됐다. 이 형상은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을지라도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다. 신의 형상은 인간의 본성 안에 존재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는 신의 형상이며, 바로 신이다.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하 존엄성의 기초라는 것이다. 인간은 신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신의 형상을 지닌 동료 인간들을 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신에 대한 사랑의 완성이다." -p447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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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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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든 진실이다

 

이 한 문장에 1984의 사상이 다 담겨있다!

 

작금의 세상을 보라. 오늘 실제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 가서 QR코드를 접했다.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접종자입니다'라고 그렇게 말한것 같다. 입구 초입에 줄을 선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다 나와 버렸다. 그렇다. 나는 미접종자이다. 어떤 분이 말한 것처럼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건 낙인 찍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듯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상당히 기분이 나쁘고 분명 이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인데 그저 순응하는 모습을 보며 더 화가 났다. 개인의 자유를 지금의 정부는 독재 형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세뇌하고 길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 이 글을 읽는 자들 가운데 접종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걸 왜 하지 않느냐며 이미 비딱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1984가 치료약이 되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자료를 보면 오미크론(감기 수준)에 대해 부스터샷에 대해 추가 접종은 오히려 면역성을 떨어뜨린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미생물학 및 면역학과장인 Ehud Qimron 교수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공개 서한이 발표 되었다. 한 마디로 "보건부, 실패를 인정할 때"라는 말을 했다.(https://www.mako.co.il/news-columns/2022_q1/Article-dfd99ca599e2e71026.htm)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동료들을 비방하고, 국민을 적대시하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담론을 양극화시켰습니다. 과학적 근거 없이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중의 적으로, 질병을 퍼뜨리는 사람으로 낙인찍었습니다. 당신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의학적 선택을 내릴 권리를 부정하고 사람들을 차별하는 가혹한 정책을 펼칩니다. 역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텔아비브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Udi Qimron / https://cafe.naver.com/querdenkenkorea/24986

 

 

분명한 빅브라더의 세계가 도래 했다. 백신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불나방이 불에 달려들듯 사람들의 정신은 이미 생각(판단) 기능을 상실했다. 영화 아일랜드(SF 2005)를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왜 국가나 권력자를 믿으면 안되는지를 명확하게 알 것이다.

 

 

빅브라더란, 1984에서 모든 국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전지전능한 가상의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일반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감시·통제하는 관리권력 또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로, '감시자'를 지칭하는 용어에서 비롯된 것이다."(시사상식사전)

 

 

조지 오웰의 ‘1984은 가공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국민에 대한 통제와 독재를 풍자한 소설이다. 그가 쓴 '동물농장'과 더불어 국가가 개인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정부의 감시 카메라 설치나 개인정보 사용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자주 쓰는 말인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바로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최고 권력자의 호칭이다. 한 기사에서 보았는데 '오웰리언(Orwellian전체주의적인)'들은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처럼 정부가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가 1984년에 실제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은 코로나19 유행으로 대한민국과 중국에서 몇몇 나라에서 현실이 됐다. 중국 공안은 이미 2020년도 초에 각 사람의 핸드폰에 부착된 QR코드를 검사해 춘절에 우한을 떠나 북경이나 상하이 등지에 온 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봉쇄된 우한으로 돌려보냈다.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있는 후베이 출신들이나 우한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강제 격리다. 좋은 말로 '거리두기'.

 

 

그러나 엄연한 통제사회이며 사람들의 삶을 일거수일투족 감시 받는 사회 체제이다.

 

중국은 아파트 단지를 드나드는 택시기사나 음식배달원은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자신의 휴대폰 속 수이션마(隨申碼)’를 제시하고 있다. 수이션마란 개인별 휴대폰 QR코드를 말한다. 개인별 진료기록, 위치정보 및 통신내역, 결제정보 등을 종합 반영해 자신의 휴대폰 QR코드 색깔로 위험여부를 표시해주는 장치인데 어떤면에서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이 감시되고 있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그러한 내용들을 이미 조지오웰을 통해 1984년에 예견되었다. 그는 선각자와 같으며 이 시대를 꿰뚫어보는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실제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작년 10월경 조지 오웰 산문선을 보면서 오웰이란 작가가 얼마나 뛰어난 자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84년은 섬찟할 정도로 현재의 세계를 보여주는 안경이 되어 주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트럼프의 취임식 전후로 조지오웰 소설 1984판매량이 무려 9500% 증가했다고 한다. 왜곡된 보도들이 즐비함으로 미디어 정치에 놀아나는 세상을 보여준 대표적인 형태이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라 대선도 보면 네거티브 전쟁을 하고 있다. 사실과 거짓이 섞인 자료와 유트브가 판을 치고 있다. 이미 우리는 미디어 세상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실을 말해도 진실을 믿지 못하고, 거짓을 말해도 진실인 것처럼 생각되는 사회 속에서 과연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매우 걱정이 된다.

 

 

책 안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이러하다.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브라더'를 내세워 체제를 유지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소설에서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 도청장치를 이용하여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주인공 윈스턴은 이러한 절대 권력에 대항하여 자유와 진실을 추구하지만, 호된 고문 끝에 결국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라는 말을 하며 자신과의 투쟁을 끝내게 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주인공에게 일어났다.

 

 

이 책 3부로 바로 가서 보면 윈스턴은 경찰에게 잡혀간다. 그건 빅브라더가 금지하는 생각을 하고, 지하 투쟁단체에 가입하고, 섹스로 쾌락까지 느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윈스턴은 끔찍한 고문을 받는다. 고문의 과정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3부 쳅터 2에 그 내용들이 나오는데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모든 권력자들을 증오하며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현실에도 보면 죄를 짓지 않았는데 경찰에 의한 강제적 자백으로 인해 죄인이 되고 죽일놈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당사자의 고통과 잃어버린 시간들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전혀 보상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정말 최악의 고통이다. 이런 현실이 또 우리 삶에 보편적으로 실제 나타날까봐 매우 두렵다. 그렇다. 이 책에서 고문의 목적은 빅브라더를 의심하는 마지막 인간의 사상을 개조하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울부짖던 윈스턴은 결국 당이 원하는 것에 굴복하고 만다. 빅브라더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고 믿던 주인공은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우리에게 저항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그를 처형하지 않아. 우리는 그를 개조하고 그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를 다시 만드는 거야. 그에게서 모든 사악함과 환상을 불태우는 거야. 우린 그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그저 외관상이 아니고 진심으로, 마음과 영혼을 다해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거라고. 죽이기 전에 그를 우리 일원으로 만드는 거지.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든 잘못된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아무리 은밀하고 무력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일세. 죽는 그 순간까지도 어떤 일탈도 허용할 수 없단 말이야. [...] 예전 전제 정치 시절의 명령은 '하지 말라'였네. 전체주의 명령은 '해야 한다'였지. 우리가 내리는 명령은 '그렇게 되거라'라는 것일세. 우리가 이곳에 데려운 어떠 사람도 우리에게 맞서지 못하네. 모두가 깨끗하게 세뇌되거든. 자네가 한때 무죄라고 여긴 저 세 명의 비참한 배신자들, 존스, 애런슨, 리더포드의 경우에도 결국 우리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지. [...] 나는 그들이 차츰차츰 지쳐서 흐느껴 울고 굽신거리고 눈물을 흘리는 걸 보았네. 결국 고통과 두려움이 아니라 속죄로 끝맺었지. 우리가 심문을 마쳤을 때쯤엔 그들은 그저 빈껍데기만 남게 됐다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후회와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 _본문 p.389-390

 

 

자네는 두 번 다시 보통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자네 안의 모든 것이 죽어 버릴 테니까. 자네는 두 번 다시 사랑을 하거나 우정을 맛보거나 삶의 기쁨을 누리거나 웃거나 호기심을 느끼거나 용기를 낸다거나 정직성 같은 것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자넨 텅 빈 인간이 될 거야. 우린 자네를 쥐어짜서 속을 비울 테고, 그런 다음 우리 것으로 자네의 속을 채울 걸세.” _본문 p.392

 

위의 내용은 너무나, 너무나 무서운 내용이다. 등골이 오싹하며 마치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가 생각하듯 당장에라도 가서 그들을 죽여 그들의 독재를 끝내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의 주인공 마저 결국 증오의 대상인 빅브라더를 사랑함으로 끝맺게 되는데 가슴 한 켠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이 세상의 모든 권력에 대한 저항을 꿈꾸는 '아나키즘'이 떠오른다.

 

그는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콧수염 아래 숨겨진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데 40년이 걸렸다. , 모질고도 부질없는 오해였다! , 저 애정 어린 품속을 벗어나 고집스럽고 아집에 찬 유형의 삶을 살았다니! 술 냄새가 배인 두 줄의 눈물이 콧날 양옆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만사가 다 괜찮았다. 이제 투쟁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_본문 p.456

 

마지막 말이 이렇게도 씁쓸한 것은 뭘까? 그의 마지막 말은 결국 세뇌된 존재의 외침인가? 투쟁의 시간은 끝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말은 아마도 두 가지를 말하지 않나 싶다. 죽음으로서 이런 악의 세계에 벗어났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말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공산당과 같은 빅브라더 사회에 살고 싶지 않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개인의 주관성을 잃어버리고 사회성과 군중심리에 함몰되어 개인의 가진 자유마저 분명 통제되고 그 당들이 원하는대로 살고 있는데 이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말이다.

 

 

조지 오웰은 1903년 인도에서 영국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영국의 명문 학교인 웰링턴과 이튼학교를 졸업했는데 이튼에서 그를 가르친 교사 중에 그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도 있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하는 대신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당시 버마로 건너가 인도 제국 경찰의 부지휘관으로 근무했다. 여기서 그는 제국주의에 혐오를 느껴 1927년 영국으로 휴가를 나오면서 그만두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42세가 되던 1945년에 정치 우화 동물농장을 그는 펴내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큰 명성과 함께 경제적 안정도 얻게 된다. 그러나 그해 아내를 잃고 자신의 지병인 폐결핵도 악화돼 요양과 입원을 거듭하는 가운데 고통과 불행 속에 마지막 작품이자 명작인 ‘1984’를 쓰게 된다. 오웰이 사망하기 5개월 전 출간된 이 소설은 이렇게 디스토피아 소설의 전형이 되었다. 이 책은 전체주의 권력의 생리에 대해 필사적인 경고를 담은 셈이다. 두 작품의 소재는 대부분 당이 개인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스탈린주의 치하의 소련에서 가져왔다. 정확히 말해서 오웰은 전체주의를 경계하고 부패한 사회주의를 비판한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그가 글을 쓰던 시기는 세기적 대공황과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발호한 시기와 일치하며 사회주의 수많은 갈래로 나뉘면서 '진정한 사회주의'의 확립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였다. 그는 파시즘의 전체주의, 압제적 자본주의보다 오도된 사회주의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그 자신이 '최후의 경고'라고 말했던 1984였다.

 

 

죽기 얼마 전 병상에서 가진 BBC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한 어조로, 현재 세계가 빠져들고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며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결코 이 경고를 우습게 들으면 안 될 것이다.

 

 

코로나 19는 그런 무서운 세상이 도래할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전조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미 국민들은 정부와 이상한 비전문가에 의해 세뇌된것마냥 '백신 찬양자'가 되어 버렸고, 20세 이하 코로나 사망자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통계가 나왔는데(혹 사망자가 있다면 그 사망자의 실제 죽음은 정부가 말하는 코로나 환자가 아닌 다른 병에 의한 병일 것이다. 물론 백신 추종자들은 그걸 굳이 믿으려 하지 않지만...그럴 때는 통계만이라도 봐라. 아이들은 맞지 않아도 충분히 지나가는 감기정도로 끝나 버린다. 지인 중에 코로나 확진자를 보았다. 격리 시설에 갔지만 코로나 치료에 대한 약은 없었고 특히 퇴실 때에 PCR 검사 조차 없이 돌려 보냈다. 즉 시간이 되면 없어지는 병이다.) 자녀들에게 백신을 맞추지 못해 안달이 나버렸다. 언제 정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TV에서 말하는 것은 뭐든지 믿어 버리는 형국이 되어 버렸나. 다른 전문가들(이왕재 교수, 함익병 원장 등)의 말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 1984년은 우리 사회 현실로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다시금 정독하고 봐야 될 책으로서 나 또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도서 100안에 집어 넣고자 한다. 아직도 순전하게 정부가 우리의 삶을 지켜주며 안전하게 해줄거라고 믿는가?

 

 

2+2=4인가?

 

아니면

 

2+2=5인가?

 

여기에 대해 바르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살아 있다고 하지만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의 한 문장

 

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뭔가 하나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항하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무리가 여기저기에 생기고……. 작은 무리들이 한데 뭉쳐서 점차 그 수가 늘어난다면, 나아가 얼마간의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다음 세대가 우리가 떠난 그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p.240

 

 

"그들은 당신의 마음속까지 들어가지 못해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속까지 들어왔다. "여기서 자네에게 일어나는 일은 '영원히' 계속될 걸세." 오브라이언은 그렇게 말했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 자신이 한 행동에서 회복될 수는 없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죽임을 당했다. 불태워지고 마비되고 말았다. p.446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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