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철학을 다루고 있는 책이 눈에 띄면 읽어봐야겠단 욕심이 생긴다. '필로소포스의 책 읽기'는 강렬한 표지가 멋있어서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거대한 책장 안으로 들어서는 인간의 모습이 보는 이를 끌어들이는 표지는 어쩐지 압도된 분위기가 남일 같지 않게 보이며 두꺼운 철학책 앞에 겁먹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등산일줄 알고 마음의 부담을 안고 시작했는데 걷다보니 둘레길 산책로였다. 낯설고 어려운 이름과 용어들을 살피고 이 산은 악산이로구나 했는데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었달까. '필로소포스의 책 읽기'는 네가지 큰 주제를 통해 동서양 철학의 고전들과 21세기 사상가들의 저서 76권을 소개한다.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으면서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담아냈다. 일단 책장을 넘겨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능숙한 인도자인 저자가 지혜와 사유의 길을 따라 독자를 철학의 숲으로 인도한다. 책을 읽으며 몇몇 인상 깊었던 내용을 꼽아보면 2장 우주는 생각하는 거대한 뇌일까에서 만난 데이비드 무어의 후성유전학(161)은 얼마 전 읽은 리처드 도킨슨의 [불멸의 유전자]를 떠올리게 만든다. [불멸의 유전자]에서 뻐꾸기의 탁란을 통해 생물이 경험하는 환경이 대를 이어 반영되면서 알의 색과 무늬가 각기 다른 변화를 갖게된 사례를 전한다.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에서도 "부모의 경험이 '유전적인 방식'으로(164)" 대물림되는, 경험과 환경에 따른 영향을 주장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3장 영혼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에는 '연금술(282)'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만화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내용이 나오는 부분을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뉴먼의 저서보다 파라켈수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언급하는 인공 인간 바실리스크와 호문쿨루스의 배경(283~)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만화도 배워야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다니. 어쨌든 이런 점들 때문에 만화도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대학시절 모더니즘과 미학을 주제로 레포트를 작성한 적 있는데, 당시 문인, 예술가들의 활동이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시대를 관통하기엔 빈약하고 핵심이 없는 시각이라는 평을 받았었는데 1장 동일성에도 차이에도 머무르지 마라에서 자크 랑시에르의 미학 분야를 다룬 철학서 '아이스테시스(83)'를 다루면서 다시 떠올랐다. 모더니티, 근대성이 함께 언급되면서 개화기에 느꼈을 새로움에 대한 충격과 평등과 자주를 내세운 식민지 시대의 감각이 "미학에 깃든 정치성(87)"을 드러냈음을 그때 말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이 노력에 A+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로나 마이너스 정도는 받았을텐데. " "통치자보다 상위에 있는 법은 인민의 안전이다"라고 언명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선익을 보호하는 데 통치자가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런 노력을 다하지 못한 통치자는 인민에게 버림받을 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327" 4장 영성과 개벽의 정치를 찾아서 부분은 우리나라의 지난 정국과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를 생각하며 읽게 되는 내용이었다. 앞서 인용한 홉스의 <법의 기초> 내용을 읽다보면 결국 탄핵으로 임기를 마감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보인다. 민주주의의 기본을 두번이나 실천해낸 사람들과 두번이나 탄핵되는 후보를 뽑은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상이라니. 복잡한 국내 상황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자국 내 시위대 주방위군 투입 진압이나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 상황, 미중 무역 갈등 등의 소식을 통해 "전쟁은 합리적 인간의 계산적 정치 행위가 아니라 모방적 인간의 가속적 경쟁 행위다. 짝패 관계의 경쟁과 모방의 동역학은 둘의 대결이 끝장을 볼 때까지 계속된다. (363)"는 전쟁론을 인상깊게 보았다. 더불어 지라르의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이 부정 당하고 합리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오늘 날, 오히려 그 이름으로 인해 치러진 타인의 희생이 얼마나 길고 무거운지 또한 오직 소수와 일부의 이익을 위해 지금까지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저자를 어디서 봤나 했더니 '생각의 요새'였다. 23년 '생각의 요새' 출간 때도 읽어보겠다고 신나게 달려들었던 무모한 추억이 있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교양인과 저자 고명섭이 이끄는 이 철학의 숲 앞에서 홀려 책을 손에 들기를 반복한다. 이것이 다만 영원회귀적 행동에서 머무르지 않고 반복 사이에서 아주 조금의 차이가 쌓이는 유의미한 경험으로 남길바라며 읽었다. 조금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대학교 인문 철학 교양 수업에 정말 넓고, 사람에 따라서는 깊게도 쓸 수 있을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 요즘의 사회현상이나 국제정세와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으니 이 책 한 권을 여름방학 동안 읽어둔다면 교양 마스터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한번쯤-가능하면 여러번- 읽어본다면 분명 책의 가치를 실감할 것이다. 철학에 관심이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면 '필로소포스의 책 읽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