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끝에 만난 테메레르는 그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나를 또한번 테메레르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였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을려고 했던 마음과는 달리 흡인력으로 인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그야말로 단순에 읽어나갔다. 지금껏 테메레르 총 4권중에 1권을 제외하고 이렇게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한 마음을 가지고 읽었던적은 없었다. 나는 지금 4권을 읽은 이순간 다음권의 출간을 간절히 바란다. <테메레르-상아의 제국>는 크게 두 줄기로 이어져 나간다. 2편에서 언뜻 내비친 노예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로렌스와 라일리함장의 입장차이로 인한 불화는 물론이거니와 폭력적이고 상업적인 노예무역으로 인해 아프리카 식민지에 사는 용과 토착민에 의래 납치와 감금 그리고 반란이 한 줄기를 이루고, 또 한가지는 원인모를 전염병으로 인해 테메레르 일행의 치료약을 찾는 여행과 자국에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전염병에 걸린 프랑스 용을 다시 프랑스로 귀환시면서 프랑스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위한 계략은 결국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단지 용들을 소모품으로만 여기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우월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결과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분노는 치료버섯을 프랑스에 전달하면서 영국에 대한 배신 행위로 까지 이어지게 되면서 앞으로의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행복에 귀추가 주목된다. 4권은 노예무역이라는 치욕스런 역사를 들추면서 전반적으로 암울하게 전개되어질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테메레르의 식탐과 속상할때나 이스키에르카에 대한 질투심이 불탈때마다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는 테메레르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난다. 더구나 감초의 역할을 하는 이기심의 화신 이스키에르카와 식탐에서는 테메레르를 능가하는 야생용들, 인간이 환생한 모카찬용까지 곳곳에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포진되어 있어서 4권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우정은 나로 하여금 질투심을 유발하지만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은 질투심이전에 본받아야 할 점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좀더 심각하고 깊이가 있어야 할 부분에서 가벼이 전개되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개인별로 촛점을 어디에 두고 책을 읽느냐에 있겠지만 너무나 수월하게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다고 할수 있다. 지금 나는 너무나 불안하다. 이전 이야기들에서는 해결점을 찾는데서 끝맺었지만 4권에서는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미래가 너무나 불안하게 마무리가 되어진데다 하필 다음 5권의 소제목이 독수리의 승리다 보니까 프랑스가 영국을 이길것만 같고 로렌스와 테메레르에게 펼쳐질 고난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설마 로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는다. 지금 이순간 5권에 대한 기대치는 최고치에 달해 있다.
신화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에 모습은 우리 인간사의 자화상이다. 한편한편을 들여다 보게되면 신화속 인물들의 영웅담들을 읽노라면 어릴적 할아버지 무릎위에서 고전을 듣던 추억을 상기시킨다. 거기에다 제우신을 위시로 수많은 신들의 사랑의 이별에 아파하고 사랑을 갈망하고 사랑속에서 행복해 하며 사랑에 분노하는 모습들은 인간의 그것과 너무나 비슷하다. 바로 신들은 인간이며 인간이 신들에 모습에 빗대어 우회적으로 그려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신화에 열광하며 볼때마다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임에 틀림없다. <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 총 19편의 그리스 신화속의 사랑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이전에 익히 알고있던 인물들과 이야기도 있었지만 새로이 등장하는 인물과 사랑이야기는 나를 즐겁게 하였다. 바람둥이 신 제우스의 수많은 무용담,이기적인 사랑을 하는 에오스, 짝사랑만 하는 아폴론, 변치않는 사랑을 보여준 오디세우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등 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사랑이야기는 나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거기에다 신화속에 인물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첨부되어 나의 눈까지 즐겁게 하였기에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를 읽을때마다 나를 당혹하게 하는점은 참 자유분방하다는 점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충실하여 낯뜨거울 정도로 성에 대해 개방적인 모습은 나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한다. 수없이 상대를 바꾸는 것은 부지기수에 근친상간에 지조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모습은 나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우리네 인간사의 일면이라는 점에 감정이입이 되서 일까 어느정도의 보수적인 기질이 있는 나로써는 그래도 몇몇 절조있는 인물들을 발견하게 되면 저절로 안심이 되는 마음은 어쩔수 없나보다. 간혹 혼동할때가 있다. 분명 신화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상속에 허구의 인물임이 분명한데도 마치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들인것 마냥 착각을 일으킬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책속에 담긴 그림들만 봐도 수많은 화가들의 단골 메뉴가 되고 역사나 예술, 문화 심지어 과학에 까지 손이 닿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바로 신화를 그냥 무시할수 없는 점이고 잠시 착각에 늪에 빠지는 점이다. 도대체 누가 그리스 신화를 지어냈는지 그 뛰어난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진다.
사랑은 수학처럼 정답을 유추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랑속에는 수만가지 문제와 수만가지 정답이 존재하기 때문일것이다. 그렇다면 수만가지의 감정중 하나인 연민이란 감정은 꼭 버려야만 하는 감정일까???? 나는 연민도 사랑의 방식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있기에 연민이라는 감정도 생길것이고 거기에서 발전을 하게되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결과를 낳겠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꼭 사랑에서 버려야하는 감정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부터 말하고자 함은 바로 감상적 연민으로 인한 지독한 상처를 남기게 된 호프밀러의 삶을 얘기하려 한다. 소위인 호프밀러는 주둔지인 한 헝가리 귀족집에 최대받게 되었다. 거기서 하반신 마비가 된 에디트에게 춤을 추자고 청하게 되고 그당시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호프밀러는 자신의 실수로 상처를 입었을 에디트를 달래기 위해 다시한번 저택을 찾아가는 친절을 베풀게 되는데 당시 자신의 작은 친절이 한 여인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파급효과를 내게될지 예상하지 못하였다.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된체 휠체어에 몸을 내맡기고 살아가던 에디트에게 그의 친절은 사랑이라는 폭풍속으로 거침없이 빨려들어가는 수순을 밣게 된다. 애초에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시작되었던 밀러에게 그녀의 마음은 그저 부담감으로 다가오게 되고 결국 도피라는 방법을 선택하지만 그것또한 홀가분한 마음보다는 미안한 마음만 가지고 있던 밀러에게 주위의 권유는 다시한번 하지말아야할 선택을 강요되고 었지만 단순한 연민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다시 그는 비겁한 도주를 선택하면서 그녀에게 더 크나큰 아픔을 남겨주었고 그녀 스스로 자살을 실행하게끔 만들어버린다. 언제나 잘못된 선택은 후회를 만들기 마련이듯이 다시한번 에디트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녀를 찾지만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과 더불어 자책감으로 그는 전쟁이라는 도피처로 자신을 숨겨버린다. 소화불량이 걸린것 마냥 가슴이 답답하였다. 인간의 감정을 정확하게 답을 메길수 없다지만 밀러의 행동 은 짜증스러웠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밀러에게 질책을 하는것은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는 달리 그당시 상황이 그를 도주를 선택하게 만든 한 요인으로 작용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책임하였다. 도피라는 반복된 실수는 한 소녀의 감정에 대한 예의를 저버렸고 그 결과는 평생을 지고가야할 상처만 남겼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져야한다. 사랑이 되었건 연민이 되었건 혹은 미움이 되었건 간에 스스로의 감정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배운다.
주제 사라미구 도시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이다. 앞서 나온 <눈먼자들의 도시>와 <눈뜬자들의 도시>는 내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단지 모셔져 있을 뿐이다. 쉬운작품만 찾는 나에게 노벨문학상이라는 걸출한 명함은 주제씨 처럼 단지 수집품으로만의 의미를 가지지는 않았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로써 주제사라미구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이소설의 원제는 <모든 이름들>이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에는 이름들이 있다. 이름은 곧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 까지의 기록이며 기록은 존재함을 뜻한다. 이름없는 도시가 있다. 그리고 이름없는 사람들 만이 존재한다. 소장은 소장으로써의 의미만 존재하고 부소장은 부소장, 노인은 노인, 여인은 여인, 사무보조원은 보조원으로써의 의미만 존재한다. 옛속담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다"라는 말은 이책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이름을 남기지 않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다. 물론 도시의 이름도 없고 중앙 등기소라는 명칭만 덩그러니 주어졌지만 그곳이야 말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이름없는 도시에서 유일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다. 그러나 단 한사람만 주제씨만이 이름이 존재한다. 주제라는 이름과 등기소 직원이라는 직업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상에서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통로이면 매개체가 아닐까 한다. 그는 쉰정도의 나이에도 정식직원이 아닌 등기소의 말단 사무보조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의 취미라고는 유명인의 기록을 필사해서 수집하는 오타쿠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날 예기치도 못한 유명인도 아니고 평소 알지못하는 36살의 한 여인의 기록부가 주제씨의 손에 들어오면서 그의 평온한 삶에 혼란을 야기시킨다. 어쪄면 그 혼란은 당연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주제씨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의 삶은 무료하기 그지없다. 존재의 의미 자체가 상실된듯 한 그의 삶에 미지의 여인을 추적하는 일에 집착을 보이는 것이이야 말로 그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고 이름없는 자들만 사는 도시안에 이름을 부여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인 것이다. 이름은 곧 실체이다. 부모에게 이름이 아닌 여자로만 친구들에게 이름이아닌 여자로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여자로만 불리게 된다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이 상실됨을 의미하며 존재가 상실됨을 뜻한다. 그야말로 이름없는 자가 되어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안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다. <이름없는자들의 도시>는 곧 우리의 존재의 의미의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