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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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바치는 아름다운 생명의 기록!!!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이 있습니다.  매일아침 기적소리로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는 기관사가 태어나고 자란 양지마을입니다. 오늘 아침도  수탉이 우는 소리가 아닌 기적소리로 여지없이 아침을 맞이합니다. 양지마을 박씨는 이른 아침 임신 8개월된 암소를 끌고 논을 갈고있습니다. 그런데 임신때문에 예민해져서 인지 기적소리에 화들짝 놀라 뛰어가는 바람에 논두렁 옆 봇도랑의 20년된 백양나무의 옹이에서 2년전 곁가지로 태어난 가지의 평온한 일상은 끝이나 버립니다. 어미나무인 백양나무 곁가지에서 나무막대기로, 다시 회초리에서 결국 똥친막대기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자리의 뿌리내릴 곳을 찾아가는 어린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비극을 맞이할 준비만 갖추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운명의 길에 나를 내맡긴 채 어떤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기적만이 나를 희생 시킬수 있다는 믿음도 가치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 P48 >

'길 위의 작가' 라고 불리우는 김주영 작가의 첫 그림소설입니다.  이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길위, 자연과 얼마나 공감을 하며 생활을 하였나 고스란히 느낄수 있는데요. 띠지의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바치는 아름다운 생명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졸지에 똥친 막대기가 되어버린 곁가지의 모습에서 우리가 자연 속 미물들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했는지, 무심코 꺾어버린 가지에도 분명히 길가의 돌멩이에도 , 아무곳에나 자라난다고 미움받는 잡초 조차도 인간만이 느낄수 없을 뿐이지 분명 그들에게도 생명이 존재하고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할터인데 인간이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였는지 작가는 바로 생명의 중요성을 우리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한편으로 저자는 그 시절이 그리웠는지도 모릅니다.  섬세하면서도 깨끗한 언어와 책속에 삽입된 그림들은 그때의 그시절 겪은 이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상상력을 키워주니 말입니다.  소가  논을 갈고 밭을 가는 모습,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 싸리로 만든 담장이나 대문,  사람들이 줄지어 엎드려 모심는 정경은  대량생산에 따른 기계화로 인해 이제는 시골에서 조차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이제는 똥친막대기도  추억이 되어버렸답니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의 생활도 윤택하게 변화되는 것은 당연할터인데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워 지는 것은 이웃간의 정 그리고 아무런 근심없이 들판을 마구 뛰놀던 어린시절 함박웃음이 그립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지금 가장 그리운것은 한겨울 아궁이 장작불 속에서 구워먹던 군고구마와 눈썰매장이 아닌 동무들과 비닐푸대를 썰매삼아 미끄럼타고 눈싸움하던 그 겨울이랍니다.  오랫만에 <똥친 막대기>를 읽고 말괄량이 였던 그때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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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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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중력안에서 살길 소망한다.
 
5천만원 고료 제 13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무슨무슨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책을 선택함에 있어 기본적인 신뢰와 믿음이 밑바탕에 깔고 시작된다고 할수 있다. 실제로 내 책장을 보면 몇회 수상작이라는 띄지에 쌓인 책들이 나란히 꽂혀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책들이 전부 읽지도 않았거니와 좋았다고도 할수 없다. 깊이있는 소설보다는 가벼운 소설을 즐기는 나에게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거나 또는 내 취향이 아니었거나 과연 이게 문학상을 받을만한 작품인가하는 실망감을 안겨준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수상작들에게 만족하면서 책을 읽는 편이기에 이번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무중력 증후군> 제목 또한 특이하기에 기쁜마음으로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현실이라는 올가미에 묶여 옴싹달싹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은 소외감과 상처가 된다. 그 소외감에서 탈피하기위해 무언가를 찾아 헤매게 되는데 저자는 이점을 파고들어 현대인들의 군중심리과 일탈에 대한 욕망을 달의 증식이라는 부산물을 창조해 냈다. 어느날 제2의 달이 출현했다. 두번째달은 즉시 세계를 혼란을 야기시키고 종말론이 다시 부각되어짐과 동시에 중력을 거부하는 무중력자들이 속속히 커밍아웃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세상은 온통 두번째 달 얘기 뿐이다. 이에 편승에 신종 직업과 신종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심지에 달을 팔려는 사람까지 생겨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러나 이것은 시초에 불과하였다. 세번째,네번째가 되면서 일탈을 넘어 또다른 소외감과 두려움을 낳고 다섯번째,여섯번째 계속되는 달의 증식은 처음과 일상이 되어버렸고 서서히 제자리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겨남에 따라 이 이상현상은 더이상의 뉴스거리도 되지 않게 되어버린다. 그러나 인간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소멸시켜 간다. 여섯번째 달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자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신종 병까지 창작하면서 군중심리를 자극하지만 끝내 일곱번째 달은 나타나지 않게 되었고 모두 소멸되므로써 사람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달은 현실이고 현대인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상처였으며 달의 증식은 곧 일상에서의 탈출이라는 이슈거리에 불과했다. 결국은 인간은 자신이 만든 굴레안에서 살아가야 함을 뜻함일까.
 
심사평중에 소외의 무거움은 가볍게, 상처의 잔혹함은 경쾌하게 그려내었다고 평을 하였다. 그랬다. 읽는내내 감각적이고 유쾌함 오히려 직설적이고 신랄하기 까지한 문체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인해 지루함은 느끼지 못하였고 오히려 엉뚱함 때문인지 웃음을 터트리기 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은 아무리 가볍고 경쾌하게 그려내었다고 한들 현실의 무게를 재 탐독하는 기회일 뿐이어서 서글펐다.두번째달이 출현함으로 무중력자들이 커밍아웃을 했듯이 더욱도 나를 무중력자를 꿈꾸게 만들었다.그렇다면 나는 현실 도피를 꿈꾸는 것일까. 아니다. 꿈꿀뿐 현실화 되지는 못하듯이 나는 계속 중력안에서 살고싶다. 그런데 무중력자로 살날이 있을까나..   
 
<무중력 증후군> 기발하고 감각적인 달이 증식한다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가지고 윤고은 작가는 활자라는 도구를 가지고 현실바이러스를 퍼트렸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가 백신이 존재하지 않아서 더욱 공포로 다가왔다. 여기저기 확산되어 나갈뿐 현실바이러스를 이기는 방법은 스스로 병을 이기고 치유하는 방법뿐 달리 손쓸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무섭다. 그러나 이런 활자 바이러스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 "활자는 바이러스다. 백신은 없다" <P 292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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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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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이라 함은 723년부터 727년 까지 4년간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을 여행하며 작성한 혜초의 여행기로써, 혜초하면 왕오천축국전을, 왕오천축국전 하면 혜초가 자연스레 연상되어지는 중고등학교 주입식으로 배운 혜초에 관한 전부이다.
이렇듯 암기식으로 배운 역사이다 보니 그에 따른 자세한 내용은 관심이 있는 이들만이 문헌을 찾아보고 그에 관련된 책들을 통해 역사를를 이해하고 지식을 얻겠지만 관심밖에 역사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이목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왕오천축국전>,<직지심경> 반환운동이 가속화 되면서 다시한번 혜초와 왕오천축국전이 수면위에 떠올랐으니 궁금중과 함께 자연스레 관심이 갈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탁환의 <혜초>는 정통 역사소설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진ㄷ. 내용은 이렇다.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장수 고선지는 검은 모래폭풍이 지나간 대유사속 일가족의 무덤위에서 신라의 승려를 구하게 되는데 바로 그가 혜초이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두가지의 줄기로 뻗쳐나가다가 하나가 된다. 무슨연유인지 혜초에게 이전의 기억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그에게 기억을 되찾는 유일한 길은 그가 메고있던 걸낭속의 양피지의 내용을 통해  하나 하나 되집어 갈수밖에 없다. 부하를 모두 잃고 혜초를 구해낸 고선지는 정체모를 전염병에 감염되어 버렸다. 그런데 혜초만이 병에 걸리지 않았기에 그에게 희망은 혜초를 찾아 병을 치유하는 방법뿐이다. 한사람은 기억을 또 한사람은 전염병 치료를 위한 여정을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그려내었다. 이과정에서 베일에 쌓인 인물들이 한두명 두명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더 미궁속으로 빠져든다는 것....,

읽는 역사보다 영상으로 보는 역사에 익숙한 나에게는 생소한 문체와 어휘가 책에 집중하는 방해요소로 작용하여 간혹 역사소설을 읽을 때마다 곤욕을 치른곤 하는데  쉽사리 머리 속에서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고 할까. 역시나 처음 책을 읽는것이 고달픔이었다. 현재를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다보니 서두부분을 몇번이나 읽고 또 읽고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얽히고 설킨 실의 매듭을 찾게 된후에는 온전하게 책에 빠져들게 되었고 완독을 한 지금 상황으로 보건데 중도에 포기했다면 후회할뻔 했다.

다작을 하는 작가이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작가이다보니 이 한편으로 저자의 작품성격이나 특성 혹은 스타일을 결정짓는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처음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후 저자의 책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혜초>를 전골요리에 비유하고 싶다. 처음 간이 배이지 않아 밋밋하지만 끝까지 맛없는 건 아니니 포기하지 말고 국물까지 전부 드셔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골요리의 진가는 국물에 있으니까 말이다.
왕오천축국전을 기본틀로 하되  혜초의 발자취를 쫓는 여정속에 판타지라는 양념을 가미하여 자칫 지루할수 있는 역사를 군침돌게 만드는 요리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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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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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신윤복" 아마 우리나라 사람치고 그 둘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들어보았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몇몇 작품만을 교과서나 책을 통해 보았을 뿐 그들의 생애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과 실제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이 내손에 놓여지자 마자 검색엔진을 돌려본다. 그러나 몇년에 태어났고 어떤 작품들이 있다는 것 빼곤 언제 생을 마감했는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그만큼 김홍도, 신윤복은 작품으로만 만나 보았고 베일속에 감추어진 인물들인 것이다.    아마 그래서 자꾸 시선이 갔는지도 모른다.

<바람의 화원> 팩션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전혀 팩션 같지 않은 것은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이겠지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정도이다. 걸출한 두 인물을 작품 한점한점을 보는것만으로 기뻤지만 나같이 그림에는 문외한인 사람도 아! 그렇구나 라고 감탄사를 연발할수있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정확한 해설을 통해서 이해하기 쉬웠다. 거기다 일련의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적인 요소까지 더해져서 재미는 두배가 된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의 제자였고, 나는 그의 스승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배웠고, 그는 나를 가르쳤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나눌 유일한 친구였고, 죽도록 이기고 싶은 경쟁자였고, 정욕으로 뜨겁게 불타는 연인어었고, 넘고 싶은 벽이었다. 죽어서도 넘지 못할 높은 벽.

<바람의 화원> 하늘아래 두 천재화가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지만 한사람을 향한 이야기이다. 바람같은 존재 신윤복.  자신을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라 했지만 한자리에서 비와 바람과 모진 풍파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고목나무와 같은 김홍도.
스승과 제자이면서 경쟁자이고 친구였던 만큼이나 그들의 관계만큼이나 작품세계 또한 대조적이다.
홍도가 서민들의 삶을 그리고 그림안에 담백함이 묻어난다면 신윤복은 양반내들과 기생 그리고 여인들을 위주로 그렸다. 그리고 화려함을 가지고 있다.
마치 은은한 향취의 국화와 가시돋힌 강렬한 붉은장미와도 같다고나 할까. 

거기에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명석한 임금 정조와 그림에 대한 탁월한 감식안을 가지고 있지만 넘을수 없는 신분차이 때문에 돈과 재력으로 모든것을 감아쥐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김조년까지. 얽히고 설킨 실타래와 같은 관계속에 하나하나 풀어지는 실가락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바람의 화원>의 백미중에 백미는 국화와 장미의 그림 대결이다.                                    정조의 권유로 부터 시작된 그림대결은 단순히 그림대결이 아니다. 그당시 사회풍토, 양반들의 권위의식과 우월주의 등 작품 하나하나가 삶이 었고 사회상을 그대로 비추이는 거울이었다. 왠지 몇해전 재미있게 보았던 대장금이 생각이 난다.
수랏간 시절 음식대결을 하던 모습 같은 재료로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내고 그 재료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과 맛과 풍미를 느끼는 것만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단권을 좋아한다. 1권이 넘어서면 거기서 금새 지루함을 느껴버리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십년전의 도화서 화원들의 죽음을 시발점으로 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과 밝혀지는 진실에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빠른 전개속에서 두권이라는 책을 읽어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일찍 끝나버린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 까지 느낄정도 였다. 아쉬움 하나더 십년동안이나 숨겨져 왔던 진실이 어떤 계기없이 쉽사리 해결되어 버리는 것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째서 내가 2006년을 뜨겁게 장식했던 <뿌리깊은 나무>를 읽지 않았는지 내가 왜 이정명작가를 이제야 만났는지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이라도 만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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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섬 2007-09-14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림에 문외한이라서...
이 책 읽어보고 싶은데 시간이 기회를 안 주네요.
작가가 이정명이라는 사실을 님의 글을 읽고서야 알았는데
이 작가의 책이라면 시간을 만들어서 읽어야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