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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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세계 3대 추리 소설로 불릴만큼 그 명성에 있어서 다른 여타 소설을 능가한다. 그만큼 치밀한 구성이나 소설 안에서의 긴장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몰입도는 가히 상상을 초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살인 사건에 범인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이러한 점이 다른 소설과의 차별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건 해결까지 가는 동안의 치밀함에 비해서 사건의 해결이 되는 순간은 허무하기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이것은 아가사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비슷한 매체를 많이 접한 독자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접하고 익숙해진 매체의 대부분(그것이 영화이든 소설이든)이 크리스티 여사의 책 그 중에서도 이 소설에서 많이 나왔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이다. 오히려 그녀의 소설로 인해 유명해진 다른 매체로 인해 그녀의 소설이 평가 절하 받지는 않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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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6
존 르 카레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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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와 동일시되는 단어가 '007'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007'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그간의 스파이의 법칙을 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파이의 세계가 과연 그럴까? 매일 화려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파티에서 첩보 활동을 핑계로 파티에 참석하고, 돈으로는 칠 수도 없는 비싼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당연히 아닐거라고 생각하면서도 007은 스파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는데 상당부분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스파이' 라는 것이 그런 직업이 아니고 또한 그러한 위치가 아님은 짐작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간 미디어가 보여준 모습이 너무 좋게만 비춰진 것이리라. 그런 면에 있어서 이 소설에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파티는 고사하고 매일 술에 찌들어 살고, 여색을 밝히기는 커녕 외로움을 달려줄 친구하나 없다. 그러한 스파이의 고독한 삶이 이 소설에서 잘 녹아나 있다고 생각한다. (스파이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없는 만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소설이 가지는 장점이 바로 이런 리얼리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한 사실성은 잠시나마 첩보계에 몸담았던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왔다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가지는 여러 장점 중 '스파이에 대한 사실적 묘사' 만은 얘기한다면 그것은 이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할 얘기가 많은 소설이다. 그 중에 구지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치밀한 구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파이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추리소설의 플롯을 따르고 있는 이상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것은 반전의 묘미 일수도 있고, 앞뒤가 정확히 들어맞는 구성의 치밀함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그런 면에서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반전영화나 반전소설에 비하면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 구태스럽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묘미는 좀 낡은 표현 방법을 취하고 있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구성의 치밀함을 빼놓을 수 없는데,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간가하고 넘어갔던 부분이 뒤에서 부각될 때의 느낌은 다른 명작 추리소설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추리소설을 사랑하고 특히 스파이 소설에 애착을 갖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서 그간의 법칙을 깨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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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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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는 한국적인 정서를 말할 때 '한(恨)의 정서'를 꼽는다. 그만큼 우리의 역사가 굴곡이 심했고, 그 역사를 지고 살아야 했던 선조들의 삶 또한 그러했다. 아마도 그러한 정서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경제 급성장을 이루는 60년대 후반까지가 그 절정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지금의 한국민에게 恨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김약국의 딸'은 바로 그 시기의 우리네 삶을 조명한다. 작가가 그 고장 출신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통영이라는 배경을 설정하는 데 있어 작가는 '외딴 곳' 이라는 것을 많이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한이라는 정서는 그 시기 한국민이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으리라.

태생부터 심상치 않은 김약국과 그의 다섯 딸들. 종국에는 죽거나 버림받거나 미쳐버린다. 사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비극성이 강하다. 그런 가정이 실제로 있었는가 없었는가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만큼 우리의 삶이 비참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섯의 비극이 자매였든 같은 통영에 사는 이웃주민의 이야기를 묶은 것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恨 이라는 걸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했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표현 방식이나 묘사의 적절성에 있어서 다소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작가 박경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 상당 부분 효과를 거두었다 생각한다. 적어도 그 정서에 동화되서 그 시대의 슬픔을 같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역량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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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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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항상 독특하다. 분명 책의 구성이 참신한 것은 아니면서도 항상 새롭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 소재의 예측불가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환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게 그의 책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이 책도 베르베르의 그러한 성향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한 성향을 보이는 다른 책을 쓰기 위한 준비가 얼마나 철저했는가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에는 그간의 노력이 고스란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하나의 책으로서의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정확히는 (베르베르가 의도가 바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개미'의 성공에 힘입은 일종의 돈벌이 수단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미를 비롯한 베르베르의 작품에서 그간 언급되었던 것들이 재탕 삼탕되는 양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나의 책으로서의 가치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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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미래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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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르면서 처음으로 생각한 것이 일반적으로 '프랑켄슈타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영화나 만화로 접한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는 '무서운 괴물' 그 자체였다. 책을 손에 쥐면서도 나는 그러한 공포를 맛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의 섬뜩한 공포 (지금에 와서는 이것을 공포라기 보다는 '무서움' 이라고 말하고 싶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공포가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준 소설이 프랑켄슈타인이다.) 그걸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러한 무서움은 느낄 수 없다. 괴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없거니와 살육을 할 때의 자세한 묘사도 심지어는 공포의 질린 표정 하나 제대로 묘사한 부분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으로 공포스럽다. 왜일까?

그것은 집요하리만치 계속되는 심리묘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눈으로 보이는 무서움이란 눈에 그 형체가 보이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매리 샐리는 그 이상의 공포를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는 듯 하다. 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느끼는 갈등, 괴물의 요구를 듣고 가족의 안위와 자신의 이득 사이에서의 갈등, 이 모든 것을 그녀의 섬세한 필체에서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종종 시점을 바꿔가며 사건을 전개함으로써 왜 괴물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을 부각시킨다. 만약 괴물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수없이 많은 해석을 낳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존재치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켄슈타인의 관점에서 괴물은 언제나 자기 가족을 위협하는 악한이다. 하지만 괴물의 관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을 그렇게 만들고도 책임지지 않는 '배신자' 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 시점 (사실 월튼의 시점이 나오지만 사건 전개상 그리 중요한 역활은 아니라고 본다.) 을 이용하면서 매리 샐리는 독자로 하여금 두 상황을 모두 이해시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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