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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기도 - 주님의 기도로 뚫리는 하늘장막
차동엽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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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하는 기도'는 '무지개 다리'로 유명한 차동엽 신부님의 책이다. 무지개 다리가 대중을 위한 계발서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신부님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와 천주교인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주님의 기도'를 그 소재로 삼고 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주님의 기도를 알고 반복해서 바친다. 그 점에는 무지개다리처럼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천주교인에게는 대중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분명 이 책은 주님의 기도 해설서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주님의 기도를 한 단락씩 분리해서 주석을 달고 기도 방법을 설명한다. 그에 따른 예시를 주고 알맞은 기도를 제시한다. 여기깢지는 여느 주석서나 해설서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일단 쉽게 씌여졌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큰 차이가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다. 역시 차동엽 신부님은 대중을 위한 책을 잘 쓰신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기도 해설서라고 하지만, 초등학생이 본다고 하더라도,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본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 그게 이 책이 가지는 힘이다.   

  다음으로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모든 영성의 집합이라는 것에 있다. 주님의 기도를 묵상함에 있어 우리가 가져야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 등을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성현들이 말과 행동, 그리고 기도로써 풀이한다. 단순히 그러해야 한다. 라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다면, 그만큼 지겨운 책도 없으리라. 하지만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묵상을 했던 조상들의 체험과 기도가 함께 함으로써 이 책은 가치를 가지게 된다. 

  기도문 중에서도 특히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내려주신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책의 도움없이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도에 푹 빠지고 하느님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이 어딘가를 제대로 알고 가는 것은 조금은 쉽게 목적지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주님의 기도라를 목적지를 향해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조금 더 쉽게 다다를 수 있는 지향을 주고 있다. 주님의 기도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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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경제학 - 에너지 비즈니스시대, 당신의 생활에 혁명이 일어난다!
문하영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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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는 다시금 환경에 우리의 눈을 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인인 반기문 사무총장의 역할이 큰 화제가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에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 2008년 도쿄의정서가 발효된다 하더라도 당장 우리나라는 큰 감축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착각임을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환경보존과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온실가스의 배출과 그에 따른 기후변화가 있다.

 이젠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기술, 그러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더이상 세계 무대에서 생존할 수 없다.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영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기후변화를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많이 바라본 것이 사실이다. 기후변화의 원인이나 해결책 등을 나열하면서 무엇인지 알리는 것이 그 목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홍보에서 끝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후변화가 무엇인지 알리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일이라면 이젠 어떻게 적용하고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알아야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주 시의적절하게 출판되었다 생각한다. 기후변화라는 트렌드를 짚고 있으면서도 원초적인 분석보다는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측면을 분석한 것이 눈에 띈다. 사실 기후변화와 경제학은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현대사회에서 환경의 변화와 같은 변화는 국가경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더이상 환경의 기준을 맞추지 않는 회사는 세계로 진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국가 내에서조차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바야흐로 환경이 세계 흐름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책에서는 기후변화를 최소화하는 (혹은 좋게 만드는) 기술적인 방법론 뿐 아니라 그에 따르는 이익과 향후 전망 등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또한 현재 선진국 및 국내 시장에서 그에 따른 산업이 얼마나 번성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도 다룬다. 때문에 간간히 전문용어나 익숙치 않은 약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국가간 연합이나 기술의 목록들은 셀 수 없이 많을 뿐 아니라 창조하는 부가가치 또한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들이 낯선 것은 저자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다. 그간 우리가 기후변화에 얼마나 무관심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지난 발리 협약과 같이 최신의 정보는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 많은 회의가 진행되고 국가간 기업체간 협력이 계속될수록 이 책에서 제공하고 있는 정보는 잊혀져버린 것이 되기 쉽다. 적어도 급변하는 환경경제 체제 속에서는 책이 트렌드를 따라가긴 정말 어렵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피드백을 위한 장치라도 마련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점의 명확한 설명이라도 들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이 책을 읽고 있는 시점은 반기문 총장의 노력으로 미국이 로드맵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있다.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이라는 문구를 읽게 되면 최신의 정보와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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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인간
구경미 지음 / 열림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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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는 인간은 소속되어 있는 독서클럽에서 2월 토론 대상으로 선정된 책이었다. 누군가의 추천이 있었지만 추천의 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단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이 단편집이라는 최소한의 정보조차 갖지 못한 채 손에 쥐게 되었다.

 '노는 인간'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다. 작품에서는 '작가'라는 최소한의 명분만을 가진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떤 목적도 희망도 없는 그녀는 동거남의 가시 돋친 말에 일단 밖으로 나온다. 그리곤 정처없이 돌아다니면서 노는 인간의 위상을 맘껏 누린다. 길가에 버려진 소파에 누워서 생각에 잠긴다거나 호프집에 혼자 앉아서 사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일 등이다. 이런 소일거리들이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사치이자 마지막으로 해볼 수 있는 반항의 전부다.

 나머지 9편의 단편에서도 소위 노는 인간은 공히 등장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제 3의 입장에서 봤을 때 보통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상사에게 마지막으로 한 방을 쏘아부치고 뛰쳐나와 시골에 잠적해버린다던가 갑자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행동은 보통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에 있다.

 이렇게 일탈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준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판타지는 환상일 뿐이다. 그렇게 뛰쳐나갔을 때 바로 하루 뒤만 생각한대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행동으로 옮기고 일탈을 감행하는 이들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최소한의 명분을 가지고 놀면서 다른 사람이 못보는 잉여의 영역을 만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최소한의 명분이 재산으로 환원될 수 있다면 그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예술하는 사람들의 무위의 삶은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참신하다는 느낌은 받기 힘들었다. 분명 일탈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이젠 너무 흔한 얘기가 되버렸다는 느낌이다. 이미 주위에 놀고 있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최소한의 명분만 있을 뿐 보통의 삶을 거부하는 또는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흔하다. 주위에서 뻔히 보는 사람들의 얘기를 또다시 소설에서 읽게되는 셈이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다 읽고도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무력함을 느끼는 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첫 단편집이다. 아직 시작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하겠다. 지금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는 방법을 배웠다면 이젠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것들을 헤쳐나가는지 보고싶다. 그들이 무력하게 사는 모습은 독자들도 무기력하게 만든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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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인생 - 2002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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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경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작가의 이름만으로 고른 두번째 소설이 이 책이다. 다소 불순해보일지는 몰라도 그녀의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는 알게 모르게 상(賞)이라는 요소가 개입되어 있었던 셈이다.

 사다놓곤 2년만에 읽은 책이지만, 발행된 지는 6년이나 지났고, 그간 작가의 컴퓨터 속에 들어있었을 시간까지 감안하면 시간의 터울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현대소설답게 그리고 현대인을 그린 얘기답게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고 있었고 적당히 낯설었다. 난 이미 그런 모습에 익숙해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들은 외국소설을 읽을 때와 흔히 순수소설이라 일컫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들을 읽을 때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하게 만든다. 친절하게 가이드를 자처해 집까지 데려다주는 그들과는 달리 우리작가들은 어딘가 두리뭉슬하다. 길을 물으면 '이 쪽으로 가시다가 왼쪽으로 꺽어서 쭉 걸어가시면 되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때론 그 곳에 과연 길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한다.

 하지만 길임을 확신하지 못하는 순간일지라도 어떤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건 그들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다른 사람의 얘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 삶에 투영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이 아귀가 맞는 이야기들. 누군가 내 얘기를 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믿는 이상 길이 없다고 한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사랑에 대해서 작가는 이상하리만치 담담하다. 사랑하지 않는 부부사이나, 결혼을 했으면서도 이성을 만나는 등의 행위 등은 그 담담함 속에 묻혀 있지만, 사실 부부갈등이나 외도 등의 단어들로 쉽게 변형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 어떠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리될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듯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음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뜨거웠던 그 사랑조차 별 것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삶의 한 부분일 뿐임을. 그저 인생의 담담한 한 페이지 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에 의해 언뜻언뜻 생각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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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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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들에게 과학추천 도서목록이 주어질 때 항상 들어있는 책 중 하나가 바로 '과학 혁명의 구조'라 할 수 있다. 지금 소장하고 있는 책도 내가 고등학생이던 2000 년 판형인 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왜 8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나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추천도서라는 게 이해가되질 않는다. 당시에도 채 한 장의 에세이도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 넣어둔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도 몇차례나 완독을 시도했지만 쉬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처음으로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제대로라는 말을 하긴 힘들 것 같다. 300 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는데 3주나 걸린데다 지금도 책의 내용이 뭔지 헷갈리는 정도라면 설명이될까. 그러면 26살 나이먹고 고등학교 추천도서 읽고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버리는 나는 비정상인가.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경험했을 때는 비정상이라든가 소양이 부족한 탓이라고 결론지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책을 적게 읽는 것도 아니고 그 책들이 모두 쉬운 책들도 아닐 뿐더러 책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유독 이런 류의 책에서만 과부하가 걸리는가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른 결론은 결코 나의 소양이 부족함도 아니요, 얇팍한 책읽기를 줄곧해온 덕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학자 특유의 고지식함을 꼽고 싶다. 책을 어렵게 쓰는 것이 곧 자신의 지식을 나타내는 잣대는 아니다. 물론 책의 독자층에 따라 여러 전문용어나 쉽지 않은 표현이 나올수는 있지만, 적어도 대중을 위해 씌여진 에세이 형식의 책이라면 자랑삼아 쓰는 책이라는 표시는 낼 필요 없다. 독자들 중에서 몇이나 뉴튼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궁금할 따름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배경지식의 부족함을 들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뉴튼이나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공부를 좀 했다면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그 깊이가 고등학교 교육에선 쉬이 알 수 없는 정도에 이르는데다 기본적인 설명없이 당연한 듯 설명하는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오래안 가 책을 덮게 만드는 이유를 제공한다.

 마지막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이유라 생각되는데- 번역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거다.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은 관련된 학문을 계속 연구하신 학자다. 학자로서의 업적은 어떤지 모르지만 번역자로서의 능력은 최악인 것 같다. 맞춤법을 틀리게 쓰는 것은 예사로 하고 - 내가 읽은 책은 초판도 아닌데다 2쇄까지 된 판본인데 어떻게 밥먹듯 맞춤법이 틀리는지 모르겠다- 앞뒤 문맥이 맞지 않거나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서술이 툭툭 튀어 나온다. 과학 책이 아니라 국어 오류사전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책의 본문은 이해가 잘 되지 않다가 막바지에 있는 역자 후기에 가서야 책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절반은 원작자의 책임이지만 나머지는 역자의 책임이다. 어쩌면 한글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번역에는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공계처럼 국내 서적보단 원서를 더 많이 봐야하는 학문의 경우, 학생들 사이에선 해석이 안 되는 한이 있어도 원서를 보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엉터리인 번역을 보는 것보다 잘못된 해석을 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매번 공염불에 그치는 전문 번역인의 양성을 심히 고려해봐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첫머리에 얘기했듯이 이 책은 고등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어버렸다. 쿤이 주창했던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이미 일반화되어 사용되듯이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고등학생들에 꼭 필요한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대뜸 이런 책을 읽으라고 내어놓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1%도 안 되는 학생만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책을 추천도서라 내놓는 건 무슨 생각일까. 어려운 책을 내놓으면 알아서 배경되는 책들은 찾아보라는건가. 교과서에선 F=ma 만 가르치면서 뉴턴 방정식이 나온 배경의 완벽한 이해를 바라는 건 뭔지 모르겠다.

 이 책이 그들에게 필요한 책임은 분명하다. 분명 논란이 있는 사상이지만 배울 점이 있다. 그렇다면 번역서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볼 수 있는 해설서도 내놓아야 한다. (물론 좋은 번역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책만 추천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교육을 해야한다. 그런 뒤에야 다른 어려운 책으로 가지를 쳐 나갈 수 있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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