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미래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고르면서 처음으로 생각한 것이 일반적으로 '프랑켄슈타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영화나 만화로 접한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는 '무서운 괴물' 그 자체였다. 책을 손에 쥐면서도 나는 그러한 공포를 맛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의 섬뜩한 공포 (지금에 와서는 이것을 공포라기 보다는 '무서움' 이라고 말하고 싶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공포가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준 소설이 프랑켄슈타인이다.) 그걸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러한 무서움은 느낄 수 없다. 괴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없거니와 살육을 할 때의 자세한 묘사도 심지어는 공포의 질린 표정 하나 제대로 묘사한 부분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으로 공포스럽다. 왜일까?

그것은 집요하리만치 계속되는 심리묘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눈으로 보이는 무서움이란 눈에 그 형체가 보이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매리 샐리는 그 이상의 공포를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는 듯 하다. 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느끼는 갈등, 괴물의 요구를 듣고 가족의 안위와 자신의 이득 사이에서의 갈등, 이 모든 것을 그녀의 섬세한 필체에서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종종 시점을 바꿔가며 사건을 전개함으로써 왜 괴물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을 부각시킨다. 만약 괴물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수없이 많은 해석을 낳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존재치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켄슈타인의 관점에서 괴물은 언제나 자기 가족을 위협하는 악한이다. 하지만 괴물의 관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을 그렇게 만들고도 책임지지 않는 '배신자' 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 시점 (사실 월튼의 시점이 나오지만 사건 전개상 그리 중요한 역활은 아니라고 본다.) 을 이용하면서 매리 샐리는 독자로 하여금 두 상황을 모두 이해시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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