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에 독서클럽 '책과 세상' (http://blbook.tistory.com/) 문학팀의 세번째 정기모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모임에 빠진 덕에 두번째 모임이면서 한달 반만의 토론이었다. (아직도 지난 '파이 이야기' 모임에 못 나간 건 후회하고 있다.) 이번 모임의 책은 구경기 작가의 '노는인간' 이었는데, 다소 급하게 선정된 감은 없지 않았으나, 책의 내용도 가벼운 편이었고 단편집이라 별 부담없이 쉬엄쉬엄 읽을 수 있어 토론에 별 문제는 없었다.
처음에는 '슽흐롱'과 단 둘이 모임을 하는 줄 알고 - 실제로 4시까지 나온 사람은 둘 뿐이었으므로, 게다가 연락이 닿은 사람도 - 좁디좁은 카페로 향했으나, 이후 무려 4분이나 더 오셨고, 부득불 한시간 지체하여 토론을 시작할 수밖엔 없었다.
소설의 내용이 지나치게 가볍고 뜻하는 바가 없어 토론의 깊이가 있겠냐는 기우가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소설에서 얘기하는 소위 노는 인간이라는 집단은 몇 년 전이었다면 신기하고 드문 존재였으나 지금은 흔하디 흔한 얘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같은 내용이라도 문장만의 힘만으로 소설을 읽게끔 만드는 몇몇 작가가 아니라면 그 소재 자체가 건드리기 어려웠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되면 작가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말하는 꼴이 되는데, 확답은 할 수 없으나, 작가의 처녀작이 이 작품이라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애초에 토론의 주제는 소설보다는 '노는 인간'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토론의 시작은 '이 책에서 노는 인간은~''단편 '봉덕동 블루스'에서 그는~' 하고 시작하지만 결국은 우리 사는 얘기를 식으로 흘러갔다. 나는 그들이 부럽다느니, 그들은 무모하지도 않고 작의적이도 않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주를 이뤘다. 소설이 인간사의 투영인 것을 생각하면 소설을 매개로 사는 얘기를 하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무의미해보이는 얘기들 중에서도 한 가지 기억에 남은 것이 있는데, 나중에서야 본 평론가의 글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겹치는 것을 보면 작가를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곧 '노는 인간' 다르게 말하면 '잉여 인간' 이기 때문에 그들만이 보고 느끼는 것이 있다는 얘기였다. 사회의 흐름에 떠밀려 가는 사람이라면 못 보는 사회의 다른 부분을 그들은 보고 느낀다. 우리에겐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심히 지켜볼 여유도 버려진 소파에 누워서 햇살을 맞을 시간도 없으니까.
이렇게 우야무야 토론을 끝내고는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는데, 그 내용은 이미 정리되어 있으니 구지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다만 독서토론 시작 이후 가장 실용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는 것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걸음 정도는 앞으로 나가지 않았나 싶다. 이제 반발짝 정도는 뒤로 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