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4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황성식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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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서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취했고 또한 모든 것을 버렸던 사람의 얘기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돈을 벌었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또 다른 것을 버렸다. 하지만 읽으면서 계속 느낀 생각은 이게 과연 진정한 사랑일까 하는 점이다. 개츠비의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서 씌여졌기 때문에 오히려 개츠비가 '위대하게' 보여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남편이 있는 여자를 잘못을 저지를 여자를 덮어주고 사랑하는 것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건 그 시대가 요구했던 혹은 그 시대의 한 흐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 자체가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사랑' 이 주제가 되면 오히려 흔하면서도 딱딱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적어도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비극적이지만 딱딱하지 않다. 사랑 얘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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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오류 사전 1 -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발터 크래머 & 괴츠 트렌클러 지음, 박영구 외 옮김 / 경당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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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이런 류의 책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정보 제공이라는 소기의 목적 이외에 재미라는 것을 동시에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그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서 씌여진 책이 아니라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되고 출판된 것은 이러한 흐름에 기인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 책은 같은 부류의 다른 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일단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독일인이 썼다는 점이다. 물론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저자가 독일인이든 한국인이든 상관은 없을 것이다. 같은 해답을 독일인과 한국인이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별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독일인과 한국인이 가지는 '생활의 의문점' 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통적인 것도 많다.) 독일에서는 정말 지대한 관심사인 것이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이 책의 다소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띈다. 바로 '독일인을 위한, 독일인에 의한, 독일인의' 책이 되다보니 우리나라 관점이 많이 빠지지 않아나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번역 시에 다소 주의를 기울여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은 삭제를 한다거나 우리나라 사람이 정말 궁금해 하는 것을 추가로 삽입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밖에는 딱히 꼬집을 게 없을 정도로 괜찮은 책인 듯 싶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것은 지식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다보니 이도저도 아니게 된 점이다. 지식이라고 보기에는 백과사전의 그것에 비해서 아쉽고, 재미를 추구했다고 하기에는 딱딱한 주제도 상당수 있다. 둘 다를 추구하다보니 흐지부지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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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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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세계 3대 추리 소설로 불릴만큼 그 명성에 있어서 다른 여타 소설을 능가한다. 그만큼 치밀한 구성이나 소설 안에서의 긴장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몰입도는 가히 상상을 초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살인 사건에 범인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이러한 점이 다른 소설과의 차별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건 해결까지 가는 동안의 치밀함에 비해서 사건의 해결이 되는 순간은 허무하기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이것은 아가사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비슷한 매체를 많이 접한 독자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접하고 익숙해진 매체의 대부분(그것이 영화이든 소설이든)이 크리스티 여사의 책 그 중에서도 이 소설에서 많이 나왔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이다. 오히려 그녀의 소설로 인해 유명해진 다른 매체로 인해 그녀의 소설이 평가 절하 받지는 않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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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6
존 르 카레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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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와 동일시되는 단어가 '007'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007'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그간의 스파이의 법칙을 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파이의 세계가 과연 그럴까? 매일 화려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파티에서 첩보 활동을 핑계로 파티에 참석하고, 돈으로는 칠 수도 없는 비싼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당연히 아닐거라고 생각하면서도 007은 스파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는데 상당부분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스파이' 라는 것이 그런 직업이 아니고 또한 그러한 위치가 아님은 짐작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간 미디어가 보여준 모습이 너무 좋게만 비춰진 것이리라. 그런 면에 있어서 이 소설에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파티는 고사하고 매일 술에 찌들어 살고, 여색을 밝히기는 커녕 외로움을 달려줄 친구하나 없다. 그러한 스파이의 고독한 삶이 이 소설에서 잘 녹아나 있다고 생각한다. (스파이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없는 만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소설이 가지는 장점이 바로 이런 리얼리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한 사실성은 잠시나마 첩보계에 몸담았던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왔다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가지는 여러 장점 중 '스파이에 대한 사실적 묘사' 만은 얘기한다면 그것은 이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할 얘기가 많은 소설이다. 그 중에 구지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치밀한 구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파이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추리소설의 플롯을 따르고 있는 이상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것은 반전의 묘미 일수도 있고, 앞뒤가 정확히 들어맞는 구성의 치밀함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그런 면에서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반전영화나 반전소설에 비하면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 구태스럽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묘미는 좀 낡은 표현 방법을 취하고 있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구성의 치밀함을 빼놓을 수 없는데,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간가하고 넘어갔던 부분이 뒤에서 부각될 때의 느낌은 다른 명작 추리소설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추리소설을 사랑하고 특히 스파이 소설에 애착을 갖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서 그간의 법칙을 깨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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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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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는 한국적인 정서를 말할 때 '한(恨)의 정서'를 꼽는다. 그만큼 우리의 역사가 굴곡이 심했고, 그 역사를 지고 살아야 했던 선조들의 삶 또한 그러했다. 아마도 그러한 정서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경제 급성장을 이루는 60년대 후반까지가 그 절정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지금의 한국민에게 恨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김약국의 딸'은 바로 그 시기의 우리네 삶을 조명한다. 작가가 그 고장 출신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통영이라는 배경을 설정하는 데 있어 작가는 '외딴 곳' 이라는 것을 많이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한이라는 정서는 그 시기 한국민이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으리라.

태생부터 심상치 않은 김약국과 그의 다섯 딸들. 종국에는 죽거나 버림받거나 미쳐버린다. 사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비극성이 강하다. 그런 가정이 실제로 있었는가 없었는가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만큼 우리의 삶이 비참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섯의 비극이 자매였든 같은 통영에 사는 이웃주민의 이야기를 묶은 것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恨 이라는 걸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했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표현 방식이나 묘사의 적절성에 있어서 다소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작가 박경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 상당 부분 효과를 거두었다 생각한다. 적어도 그 정서에 동화되서 그 시대의 슬픔을 같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역량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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