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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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볼 예정이지만,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을 볼 예정은 없었다.

 

사실 선댄스에서 하도 난리여서 일단 보고 넘어갈 영화 목록에는 넣어 놨지만,

영화에 대한 기대도 그리 크지 않았다.

원작을 보기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퀴어무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편견이나 거부감 때문이 아니라... 숱하게 접해봤기에 기대치가 낮다고 해야할까.

퀴어 무비나 문학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명백한 장르적 한계성을 잘 알기 때문에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인생작 중엔 퀴어무비도 몇편 들어 있다.)

 

 

어쨌건, 그해 여름 손님은 설정부터가 진부했다.

이탈리아 해안가. 나이에 비해 지적이고 조숙한 소년이. 또래들과는 좀 다른... 

취미로 하이든을 편곡하고, 단테의 싯구로 언어유희를 하고 나폴리 전통민요를 이탈리아어로... 그리고 다시 영어로 번역할 수 있는...  좀 거부감 들게 많이 지적인 소년이. 아버지의 손님인, 미국에서 온 교수를 동경하는 이야기.

이런 뻔하디 뻔한 설정이라니...

일단 비슷한 부류의 퀴어무비가 수없이 뇌리를 스쳐가는데...

그 중 내가 최고로 꼽는 건 아직까지도 2007년작 스웨덴 단편 퀴어무비 럭키블루다.

휴가철 트레일러 캠핑장, 럭키블루라는 이모의 새를 키우는 내성적인 소년과 캠핑장에 머물다 가는 여름 손님의 이야기.

성장기 소년들이 겪는 스쳐가는 짧은 반짝임과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찰나의 감정들을 이보다 완벽하게 표현한 퀴어무비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럭키블루는 러닝타임이 20분(아니 15분이던가?) 그 짧은 러닝타임 속에 완벽한 미장센과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아니, 퀴어무비가 아니더라도 이미, 이런 주제의 영화는 너무도 흔하지 않은가...

 

 

 

 

아....... 그런데 완독하고 나니, 그해 여름 손님은 럭키블루와 비슷한 듯 하지만 좀 다른...

찰나의 반짝이는 청춘의 감정을 찬미하는 영화라기 보다는... 인생에 관해 얘기하는 소설에 가까웠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에 더 가까운 느낌.

 

대부분의 사람에게 찰나의 감정이란 아름다운 인생의 한 부분, 빛 바랜 그림 속의 한 귀퉁이 같은 추억으로만 남는다.

그래서 그 순간을 박제하고 싶은... 청춘의 순간을 그리는 영화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겠지.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찰나의 사랑이 평생을 지배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의 주인공들처럼.

 

 

 

변하지 않는 게 있던가?

세상을 살아내다 보면 이게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도...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란 걸 필연적으로 알게 되는데도...

이 소설은 이 달콤한 거짓말을 조금은 믿고 싶어지게 만든다.

가장 충동적이고 순간에만 충실할 것 같던 소년 엘리오가, 그 때의 올리버의 나이를 훨씬 넘어선 뒤에도 그렇다고 하지 않는가?

성장소설? 아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엘리오는 성장한다기 보다는 변하지 않는 그림같은 사람이라서.

레테의 물을 마시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소년이 아니라 노인의 영혼을 가진 것 같은 그런 사람이라서.

 

 

 

원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걸 감독이 과연 제대로 표현했을까 궁금해진다.

아니면 그냥,

한 여름의 추억, 빛 바랜 그림의 한 귀퉁이 처럼. 그렇게 아름답던 청춘의 순간을 박제한, 럭키 블루같은 영화로 표현했을까.

어느 쪽이든 원작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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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복식의 역사 - 우리가 걸친 모든 것을 통해 여행하는 우리가 살아온 세계
멀리사 리벤턴 외 지음, 이유정 옮김 / 다빈치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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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발된 디자이너 오귀스트 라시네의 책들 중 하나. 이 정도의 복식사 책을 정발본으로 볼 수 있다니... 발품 팔아가며 어렵게 구한 원서를 끌어안고 되도 않는 불어사전을 뒤적여가며 끙끙거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세상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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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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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자주 재독하고픈 책. 황현산 선생은 이 연배의 학자들 중 본받을 만한 지성이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사회에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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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명예의 전당 4 : 거기 누구냐? SF 명예의 전당 4
존 캠벨 외 지음, 벤 보버 엮음, 박상준 외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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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좋아하지 않는(아니, 매우 싫어하는 작가 할란 엘리슨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테오도어 스터전 같은...) 작가와 매우 좋아하는 작가가 뒤섞여 있는 중편집이다. 

이 책의 전부가 만족스럽진 않지만 영화 the thing의 원작인 존 w. 캠벨의 sf 심리극 거기 누구냐와 H.G.웰스의 고전 타임머신만으로도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중편은 테라포밍(외계 전체를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바꾼다는 뜻의 우주공학 용어)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작가 잭 윌리엄의 '양손을 포개고'이다. 안드로이드가 지배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에 관한 매우 클래식한 중편. 

로버트 하인라인에 이어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받은 작가이고 국내에 최초 소개된 작품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 같은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던 소위 sf의 황금기가 도래하기 전, 초기 sf에서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란 개념을 어떻게 소비하고 정립해 갔는지 알 수 있어 즐겁게 읽었다.

전반적으로 흑백의 클래식 영화같은 느낌의 sf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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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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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중 딱히 내가 공감가거나 이입할 만한 캐릭터가 없음에도 몰입해서 읽게 만든다. 뒤를 궁금하게 한다. 굉장한 재주가 아닐 수 없다. 상업적 역량을 가지면서 작품성도 있는 문학을 좋아한다. 정이현이라는 작가에 대해 잘 몰랐는데, 분명한 상업적 역량을 가진 작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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