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아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오석윤 옮김 / 양철북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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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꽃이 지고 나서야 더 풍성하게 잎을 피우는 목련 나무를 보면서 쉽게 져서 땅으로 녹아 내린 꽃잎들이 덜 서글프겠다 느낀 적이 있었다. 그 서글픔을 달랠 겸 책갈피에 끼워 두었는데 엉엉 목놓아 통곡이라도 하듯 상처자국만 가득 남기고 썩어 들어갔다. 그냥 땅으로 녹아야 되는구나 그걸 더 원하는구나...

  <태양의 아이>를 읽으면서 우선은 그래 일본이란 나라가 가진 상처에 눈을 돌렸다. 내나라 상처가 너무 커서 난 은연중에 일본을 적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작가의 역량이겠지만 하이타니 겐지로가 지닌 평화와 자유에 대한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깊은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서도 비참하게 죽어간 조선인의 목소리를 담아주더니 "태양의 아이 "에서도 여전히 상처 많은 자들의 슬픔 이야기를 잔잔한 소리로 풀어내고 있었다. 퍼렇게 멍든 목련 잎 같은 사람들... 그들의 가슴팍에 맺힌 상처들을 속으로 삭이듯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다. 세상의 역사는 다 그렇게 아프구나. 나나 너 할 것 없이...

  후짱의 밝은 미소가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그들은 그렇게 저 나름의 방식으로 아픔을 삭여내고 있었고 그렇게 아픔이 녹아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고 있었다.

  목련의 잎은 여전히 풍성하다. 다음해가 오면 땅으로 녹아 내린 그 여린 꽃잎들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하얗게 제 속살을 보이면서 봄을 알릴 것이다. 역사란 커다란 땅덩어리에 녹아 내린 수많은 사람들도 그리고 그들의 긴 상처도 그렇게 또 다른 희망으로 새로운 세상의 바탕이 될 것이다. 오키나와가 삼킨 전쟁의 상처 그 땅 위에 한국인 위령탑이 있다고 한다. 그 위령탑 앞에도 봄꽃들이 피었겠지... 이 땅의 봄꽃과 같은 빛깔 같은 향을 담은 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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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1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만 읽었는데...잔잔한 감동도 있고 나름대로 생각도 하게 되는 책이더군요. 태양의 아이도 읽어 봐야 겠네요. 약안 아이들 책 같은 것이 좀...

소중한만남 2004-04-1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그 반대랍니다. 저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먼저 봤는데, 그래서 <태양의 아이>를 읽었답니다. 그런데 오히려 <태양의 아이>는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내용이더라구요.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일본 오키나와의 비극이 천천히 그려지고 있어요. 이 책은 처음 시작은 느리게 그리고 잔잔한 감동으로 마무리를 짓는 이야기더군요. 후짱의 천진한 눈으로 묘하게 어려운 역사를 그려낸 작가에게 먼저 놀랐구요.
항상 건강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봄 되세요.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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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만하고, 죽지... 이제 그만하지.'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를 보면서 난 정말 처음으로 주인공이 죽어버리기를 원했다. 너무도 처절하게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가 너무도 안타까워서 이제 그만 죽어버리라고... 산다는 것이 어쩜 죽는 것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데도 그는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그가 실존 인물인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임을 알았다. '살아서 다행이라고... 살아서 다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새해를 맞으면서 처음 만난 책이다. 솔직히 별 기대 없이 뽑아 든 책이었는데...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는 시기에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책을 넘기면서 맘에 드는 곳에 밑줄을 긋다보니 책이 온통 밑줄로 그득하였다. 참, 소중한 이야기를 쉽게 전하고 있구나 여겼다. 살면서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 왜 이렇게 나만 힘들게 하느냐고...' 그랬다. 난 왜 나만 힘들어야 하는가를 물었지, 왜 난 힘들면 안 된다는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 모든 불행이 날 비켜가라는 법은 없었는데, 당시 난 내가 겪는 아픔이 너무 커서 가슴을 치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면서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오히려 그 상황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었다. 그 때의 난 날 사랑하지도, 날 용서하지도 못했다.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물론 적당히 작위적인 부분도 엿보이고, 성공의 잣대가 물리적인 부에 치우친 폰더 씨의 미래상은 조금은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해석의 몫까지 작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으니... 적어도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고 더불어 또 다른 한 해를 살아야하는 나에겐 적지 않은 반성과 감동을 남겨 주었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스필만이 보여주던 삶의 모습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고, 비겁하게 삶을 포기하지 않은 용기였고, 그것이 바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 삶의 흔적임을 더불어 알게 해 주었다.

좋은 향을 싼 종이는 그 종이에서도 향내가 난다고 한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향이 느껴진다고... 이젠 나에게도 조금은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냄새가 나기를 원한다. 올 해 우선은 날 사랑하는 법을 익혀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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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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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장갑 줘요.' 겨울이 되면서 유독 장갑을 많이 챙기던 나의 아들이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장갑을 찾았다. '왜, 장갑은... 갑자기', '장갑 끼고 저기 가서 집 만들어 줄거야. 택규가 집 새로 만들어 줄거야.' 내 아들이 가리킨 곳은 거대한 모래 무덤으로 변해버린 지진이 스치고 간 이란이었다. '엄마, 저기도 태풍 왔어. 매미가 왔어?' 올 여름 태풍 매미가 왔을 때 할머니 집 나무가 모두 넘어지는 것을 보고 아들은 무너진 곳, 부러진 나무만 보아도 매미를 거들먹거렸다. 나쁘다고... 할머니 집 나무 부셔버린 매미가 나쁘다고...

아들을 통해 전해진 삶의 따스함에 기분이 참 좋았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말로 너무도 귀한 진리를 나에게 전해준 내 아들... <연금술사>를 읽어가면서 동화같이 아름답게라는 표현 대신에 조금은 생소하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원하는 보물, 그 꿈을 향해서 도전하고 전진하면 이뤄진다는 참으로 쉬운 진리가 세상과 더불어 서른 해를 살다보니 꼭 그렇지 만은 않던데라고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터 귀한 진리를 이야기하는 책을 만나면 우선은 뒤로 주춤하곤 했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울음을 터뜨리게 될 장소가 바로 보물이 있는 곳이라고... 어렴풋이 기다림의 진리가 느껴졌다. 바다의 소리를 담고 사막 한 가운데서 살아있는 소라 껍질이 다시 그 사막이 바다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그런 조금은 무모한 기다림이 아무 의미 없던 삶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이 아닌가...

2003년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매일 반복되는 날이지만 유독 이런 날만 우린 의미를 부여하여 소중하게 여긴다. 매일이 같은 날인데... 잊고 산다. 가끔 뜻하지 않는 곳에서 전해지는 삶의 기분 좋은 메시지가 그래서 더 그립다. 장갑을 사달라는 나의 아들이 보여준 순수한 마음같이... 눈이 내리면 아들과 더불어 눈으로 예쁜 집을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 지진에도 태풍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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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전2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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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사랑했어. 그 사람 없으면 난 못 살 것 같아.'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야.' 그때 그 친구에게 집착이란 말 대신에 열정이라고 말해 줄 것을... 냉정을 잃어버린 열정이라고... 한참을 힘들어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친구를 보면서, 몇 해 전 나의 모습을 읽어가고 있었다. 눈부처... 그 사람의 눈에 비친 눈부처(상대의 눈동자에 어린 나의 모습)가 항상 나이길 바라면서 살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냉정을 잃은 열정이었을까... 아님 집착이었을까.

서른의 마지막 겨울... 우연히 첫사랑을 만났고, 그의 곁에 서있는 예쁜 딸을 보면서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는 것을 알았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으면서, 곱게 접어둔 옛날 편지를 꺼내듯 조각난 추억을 맞추어 갔다. 가슴 한켠이 조금 아리다. 많이 사랑 받지 못한 두 사람이 서로 부딪치면서 하나로 성장해 가고... 사소한 오해가 긴 세월의 이별을 남기고... 그리고 그렇게 조용하게 다시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난다. 미래를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지는 과거와 추억의 도시. 그들이 열심히 사랑한 도시가 도쿄라면 그들을 추억으로 붙들어매는 것은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아닐까... 아오이, 쥰세이의 사랑보다, 메미와 마빈의 모습이 더 오래 남는다. 그들은 또다시 사랑의 추억을 부여잡고 몇 년을 더 버티어내야 하니까... 소심하고 답답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따뜻해 보이는 사랑이다. 많이 사랑하니까... 더 사랑하며 세상을 살아가겠지... 막연한 희망을 가져본다.

우연히도 지금 내 나이가 서른이다. 가끔 서른에 맞이하는 이 겨울이 어색하고 그래서 더 의미 깊고 소중하다. 두 아이의 엄마에서 서른에 접어든 여자로 잠시 날 돌이켜본다. 이젠 열정보다는 냉정에 가까운 삶의 연속이다. 그래도 여전히 소중한 나의 삶... 아오이와 쥰세이의 행복한 사랑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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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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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옥이 다 빌 때까지는 성불하지 않겠다던 지장보살이 너무도 맘에 들어서 불교 서적을 들추던 때가 있었다. 한번씩 절에 가서 지장보살을 보면 '언제 성불하실 겁니까?' 묻고 돌아오곤 했다. 더불어 내가 지옥에 가도 저 분은 계시겠지 그래서 안심을 하기도 했다. 심청을 읽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듣고 구원한다는 관음보살을 내내 생각했다. 참으로 어질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으로 우리 문학은 수많은 관음보살을 그려내었고, 그래서 소외되고 외로운 자들이 죽음 직전에 만나는 이도 관음보살이었다. 그녀가 직접 지옥에 뛰어들다니... 지옥의 관음보살로 자처하며 한 시대를 살아가다니...

우선은 당황했다. 황석영의 글이 아닌 듯도 했다. 조금은 건조한 듯 남성 중심의 흐름으로 읽혀지는 그의 글이 질퍽하고 끈끈하니 낯설고 익숙지 않아 몇 번 책을 놓았다 다시 들었다. 너무도 익숙한 우리의 효녀 심청이 그래 현실성을 찾았다고 해야하나. 반갑기보다는 씁쓸했다. 심청이 렌화가 되고 렌화가 로터스가 되고 그리고 렌카로 살아가면서 동아시아의 역사가 벌거벗겨지고 한 올의 옷자락도 덮지 못한 낡은 역사의 한덩이가 새파라니 얼어버린 채 가슴에 쿵하고 떨어졌다. 참 슬프다. 그래 많이 슬프다. 우리의 역사 속에 잊혀져 가는 수많은 심청이가 서럽게 울부짖고 있는 듯 그래서 가슴이 먹먹하다. 고난의 역사는 남성은 강하게 만들지만 여자는 지독하고 처절하게 만든다. 살아야하니까, 자식과 더불어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래서 너무 현실성을 찾은 심청이가 안타깝고 측은하다. 그냥 효녀 심청이로 두지, 그럼 덜 아플텐데...

바람이 많이 푸근해졌다. 어제까지는 몹시도 차갑던 바람이 오늘은 거짓말같이 푸근하다. 새파랗게 얼었던 볼이 금새 생명력을 찾아 불콰하게 오른다. 우리 역사도 이렇게 얼었다 녹았다하면서 더 단단해지는 것인지... 얼었다 녹았다하면서 흘러내린 그 아까운 삶들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오랜만에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 그립다. 잘 계시고 있으신지, 시퍼런 가슴팍을 녹이려 한 번 갔다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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