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지옥이 다 빌 때까지는 성불하지 않겠다던 지장보살이 너무도 맘에 들어서 불교 서적을 들추던 때가 있었다. 한번씩 절에 가서 지장보살을 보면 '언제 성불하실 겁니까?' 묻고 돌아오곤 했다. 더불어 내가 지옥에 가도 저 분은 계시겠지 그래서 안심을 하기도 했다. 심청을 읽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듣고 구원한다는 관음보살을 내내 생각했다. 참으로 어질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으로 우리 문학은 수많은 관음보살을 그려내었고, 그래서 소외되고 외로운 자들이 죽음 직전에 만나는 이도 관음보살이었다. 그녀가 직접 지옥에 뛰어들다니... 지옥의 관음보살로 자처하며 한 시대를 살아가다니...

우선은 당황했다. 황석영의 글이 아닌 듯도 했다. 조금은 건조한 듯 남성 중심의 흐름으로 읽혀지는 그의 글이 질퍽하고 끈끈하니 낯설고 익숙지 않아 몇 번 책을 놓았다 다시 들었다. 너무도 익숙한 우리의 효녀 심청이 그래 현실성을 찾았다고 해야하나. 반갑기보다는 씁쓸했다. 심청이 렌화가 되고 렌화가 로터스가 되고 그리고 렌카로 살아가면서 동아시아의 역사가 벌거벗겨지고 한 올의 옷자락도 덮지 못한 낡은 역사의 한덩이가 새파라니 얼어버린 채 가슴에 쿵하고 떨어졌다. 참 슬프다. 그래 많이 슬프다. 우리의 역사 속에 잊혀져 가는 수많은 심청이가 서럽게 울부짖고 있는 듯 그래서 가슴이 먹먹하다. 고난의 역사는 남성은 강하게 만들지만 여자는 지독하고 처절하게 만든다. 살아야하니까, 자식과 더불어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래서 너무 현실성을 찾은 심청이가 안타깝고 측은하다. 그냥 효녀 심청이로 두지, 그럼 덜 아플텐데...

바람이 많이 푸근해졌다. 어제까지는 몹시도 차갑던 바람이 오늘은 거짓말같이 푸근하다. 새파랗게 얼었던 볼이 금새 생명력을 찾아 불콰하게 오른다. 우리 역사도 이렇게 얼었다 녹았다하면서 더 단단해지는 것인지... 얼었다 녹았다하면서 흘러내린 그 아까운 삶들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오랜만에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 그립다. 잘 계시고 있으신지, 시퍼런 가슴팍을 녹이려 한 번 갔다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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