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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창비시선 478
신동호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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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기억들의 힘.
역사와 정치적인 메세지가 담겨있어 쉽게 읽히진 않지만, 묵직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느린 걸음(「사막」 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잊힌 것들이야말로 가장 깊숙이 담아두었던 것. 생(生)은 꺼내진 것. 단절과 망각이 와서 묵은 것들이 잘 있는지 보고 갔다. 그저 흐릿해졌다.  
「서랍」 중​



가을이 오기 전에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그림자에는 고요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게 하는 건 그림자 때문이다. 앞으로만 가는 발길을 붙잡기 위해, 쓸쓸한 날의 머뭇거림을 위해 그림자를,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중​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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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상설 공연 민음의 시 288
박은지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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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내딪는 한 걸음,
다짐의 약속.

우리 꼭 다시 오자 ( 「못다 한 말」 )​​




순위와 무관한 것이 좋다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좋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그런 것들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땅에 묻으면
그 위로 자라나는 꽃, 내가 좋아하는 꽃
한 송이 한 송이 꺾으며
선명한 기준을 만든다​

「선명한 기준」 중




모든 계절을 한 번에 살아 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성실한 것일까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건 봄에도 겨울을 사는 사람만 알 수 있어
한 계절에 마음이 묶으면 모든 계절이 뒤섞여 들어오니까
선착장에 묶인 오래 배처럼
나는 괜히 다리가 아파 손을 꽉 쥐었다
눈을 감으면 물결 위를 넘실거리는 기분

「몽타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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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시선 446
안희연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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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여름'책 읽기!


여름의 싱그러운 이미지를 상상하며 펼쳤지만, 
내가 상상하던 여름의 이미지와는 반대인 여름의 치열함을.
그렇다. 다양한 여름의 감정들. 여름뿐 아니라 겨울까지.
담담하게 품고 잡아주는 그 속에 담긴 끝나지 않은 풍경들.

"어떤 오후는 영원토록 끝나지 않는다" (「오후에」)​



「호두에게」

부러웠어, 너의 껍질
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거

나는 너무 무른 사람이라서
툭하면 주저앉기부터 하는데

너는 언제나 단호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한 손에 담길 만큼 작지만
우주를 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너의 시간은 어떤 속도로 흐르는 것일까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어떤 위로도 구하지 않고
하나의 자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졌다는 것
너는 무수한 말들이 적힌 백지를 내게 건넨다

더는 분실물 센터 주변을 서성이지 않기
'밤이 밤이듯이' 같은 문장을 사랑하기

미래는 새하얀 강아지처럼 꼬리 치며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새는 비를 걱정하며 내다놓은 양동이 속에
설거지통에 산처럼 쌓인 그릇들 속에 있다는 걸

자꾸 잊어, 너도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거
세상 그 어떤 눈도 그냥 캄캄해지는 법은 없다는 거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나날이 쪼그라드는 고독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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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비시선 475
송경동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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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현장, 투쟁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집.
과거에서 현재까지 계속 끊임없이 벌어지는 것들에 대한 목소리가 가득하다.
작은 것들이 꽉 찰 수 있기를, 
사랑과 연대라는 가장 오래된 백신으로 희망이 가득한 세상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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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폴리스라인」

이제 그만 그 거대한 무대를 치워주세요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게
작은 사람들의 작은 테이블로 이 광장이 꽉 찰 수 있게

이제 그만 연단의 마이크를 꺼주세요
모두가 자신의 말을 꺼낼 수 있게
백만개 천만개의 작은 마이크들이 켜질 수 있게

이제 그만 집을 돌아가라는 친절한 안내를 멈춰주세요
나의 시간을 내가 선택할 수 있게
광장이 스스로 광장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게

전체를 위해 노동자들 목소리는 죽이라고
소수자들 목소리는 불편하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부분들이 행복해야 전체가 행복해요

어떤 민주주의의 경로도 먼저 결정해두지 말고
어떤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한계도 먼저 설정해두지 말고
오늘 열린 광장이 최선의 꿈을 꿔볼 수 있게

광장을 관리하려 하지 말고
광장보다 작은 꿈으로 광장을 대리하려 하지 말고
대표자가 없다는 말로 오늘 열린 광장이
어제의 법과 의회 앞에 무릎 꿇지 않게 해주세요

위만 나쁘다고
위만 바뀌면 된다고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도 바꿔야 할 게 많아요
그렇게 내가 비로소 나로부터 변할 때
그때가 진짜 혁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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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고백들 에세이&
이혜미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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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접시에 쓴 시, 시는 종이에 담아낸 요리 같습니다. _219​


와, 어쩜 야채, 과일, 음식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정말이지 "접시에 쓴 시, 종이에 담아낸 요리" 이 표현이 다했다.
아보카도, 달래, 당근, 토마토, 복숭아, 카레 등 그 자체의 아름다움부터 시작해, 접시에 담아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표현들이 머릿속에서 통통 터지며 반짝여지는데, 이 감각이 너무도 좋았다. 

좋아하는 것에는 더욱 군침이 돌고, 좋아하지 않은 것에는 다시금 먹어보고 싶게 만든다.
요리에 취미가 없지만, 괜히 식재료 하나하나를 손질해 요리하고 싶어지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스트레스 받을 때 아무 꼭지를 펼쳐 읽다보면 편안함에 이를것 같다.
나도 이런 감각 갖고 싶다.



반으로 갈리며 터져 나오는 환한 내부의 색.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초록. 뭉개지는 연두. 전염되는 녹색. 흘러나온 테두리를 따라 봉쇄되었던 숲이 조금씩 퍼져나간다. _11


발목을 만져보면 흘러나오는 오래된 과일의 기억. 언젠가 우리도 떨어져 멍든 복숭아였던 적이 있겠지. 복숭아는 우리가 몸속에 지니고 태어난 이름이기도 하니까. 복숭아뼈,라는 말은 듣기에도 참 예뻐서 발목의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나오는 장면이 그려진다. 상처의 중심을 감싸며 향과 빛이 모여들 듯 복숭아뼈에 휘감겨 소용돌이치는 시간과 걸음. 살과 뼈가 부대끼는 아픔과 서글픔. _58


카레를 만드는 것은 외따로 떨어진 세계의 조각들을 모아 어떻게든 이음새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다. 당근과 버섯, 양파와 온갖 향들, 닭과 시금치가 한 자리에서 만난다. 끓고 있는 냄비를 휘젓는다. 이미 존재하는 의미들을 꿰어 새로운 배열의 목걸이와 팔찌로 엮어주려고. 어떤 눈 밝고 외로운 사람이 밤하늘에 펼쳐진 외계의 행성들에 선을 그리며 그것들을 이어주었다고 믿었듯이. _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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