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 개정판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9


작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 선정 소식에 궁금해져서 읽었던 《저주토끼》. 〈저주토끼〉 최초 창작 버전을 복원한 전면 개정판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표지의 유혹도 한몫했다. 표제작 〈저주토끼〉 포함 10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잔혹동화같은 기괴하고 섬뜩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작년에 읽었을 땐 《저주토끼》 중 제일 강렬하게 남았던 건 〈머리〉였다. 이건 정말 한동안 이미지가 계속 연상되고 잔상에 남아서 변기가 소름끼쳤다. 역시나 다시 봐도 꾸덕한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재독하면서도 제일 기억에 남아있어서 그런지 작년보단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작년엔 장면들이 상상되어 엄청 눈살 찌푸리며 읽었던 기억이)

작년에는 잔혹동화같은 스토리와 전체적인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취해 읽었다면, 이번에는 잔혹동화같은 스토리를 만들어간 〈저주토끼〉, 〈덫〉, 〈흉터〉 속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눈에 더 들어왔다. 한 편 한 편 결국은 씁쓸하고 쓸쓸한 이야기가 남고 사람들에게 괴이한 공포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 법은 없지만, 그런 세상은,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나도 저주 용품을 만드는 걸로 직업을 삼고, 그걸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17


특히 이번에 표제작 <저주토끼>를 읽으며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범택시 2>가 생각이 많이 났다. 종영과 동시에 <모범택시 3>가 확정되면서, 모범택시 운행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저주 용품을 만드는 직업이 3대째 이어가는 것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분노하면서도 복수에 시원하다가 결국 현실로 돌아오면 씁쓸하면서도 섬찟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분노와 슬픔과 원한이 넘치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돈과 권력이 정의이고 폭력이 합리이자 상식인 사회에서 상처 입고 짓밟힌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찾아오는 마지막 해결책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끔찍하고 비참한 곳이 되어가고 있으며, 그 덕에 사업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37​


[인플루엔셜(래빗홀)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보, 나야. 잘 지내? 여보, 나 여기 있어." (46)


6월, 드라마 <안나>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원작 소설 『친밀한 이방인』 을 읽었다.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각기 다른 매력을 느끼며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소설과 드라마를 함께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책이었다. 무엇보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내가 좋아하는 한지민, 신하균 배우가 주인공이라 더 관심이 갔다. 

아픔도 헤어짐도 없는 완전한 천국, 욘더.
다시 만난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바이앤바이, 사이버 추모공원. 사람의 기억이 다운로드되어 아바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니. 왠지 정말이지 미래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 미래 속 가상세계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며 기억을 모두 흡수하고 있는 아바타와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며 그리움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 하지만 그것에서 더 나아가 죽음 이후에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함이 계속되는 천국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욘더를 보면서 계속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소중한 사람이 욘더의 길을 선택한다면,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소중한 사람을 따라 욘더로 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병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세상을 일찍 떠나게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욘더의 길을 선택할까? 그렇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욘더로 불러들인다는 걸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죽음 이후에도 삶이 계속 된다는 것, 영원한 행복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 환상적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은 기괴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욘더 속 내가 과연 정말 나일까 하는 궁금증도 돋는다. 소중한 사람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는 환상. 하지만 정말이지 마주하고 싶지 않을 상실과 그리움의 감정을 현실 속 우리의 감정에 남겨둬야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행복한 감정만이 아닌 다양한 감정이 쌓여 결국엔 나를 이룬 것일테니.

책을 덮은 지금, 욘더라는 공간이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됐을지, 인물들의 감정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이제 드라마 <욘더>를 봐야겠다. 



"하지만 말이야, 실제로는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속고 있는 거야. 그렇담 나는 행복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당신이 먼저 대답해줘야만 해. 당신은 정말 행복한 거야?" (347)​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
이경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그런 거 하고 싶습니다. 항상 뭘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열심히 말입니다. 못 하는 거 말고 안 하는 거 같은 거, 그런 거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205)​


철거를 앞둔 강남의 한 아파트에 모이게 된 네 남자.
실업자 민용, 공시생 연후, 복학 못한 고학생 저커, 집 나온 아저씨 이안, 그리고 고양이 유로.
근데 우리 유로, 분량이 너무 적은거 아닙니꽈!

아픈 청춘의 이야기에 나도 조금은 울컥했다.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를 감싸안으며 품어주는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역시 사람은 혼자가 아닌, 내 옆의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

깜깜했던 하늘에 초록빛 푸른빛 오로라가 일렁이며 하늘을 밝혀내는 시간.


둘은 서로 피하면서도 찍고 찍힌다. 남겠지. 이런 사진은. 저커는 민용과 어깨를 걸고 셀카를 찍는다. 이런 건 너무나 어색하지만, 어색해서 둘 다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모를 표정이 되어버렸지만, 남기고 싶다. 지금, 여기, 우리. (1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110)​


사회주의자, 빨갱이,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버지의 장례기간동안 문상객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돌아보며, 아버지의 삶을 돌아본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아버지의 여러 친구들에게 전해듣는 아버지의 삶,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의 기억들을 통해 아버지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아픈 역사 속 애틋함, 담담함, 짠한, 다양한 감정들이 가득 녹아져있다.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건네는 마지막 인사. 아버지의 덤덤한 표정이 계속해서 아른거리고, 아버지의 구수한 사투리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나는 아빠의 어떤 얼굴만 보았을까? 아빠가 지나온 삶에 대해서 내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나의 기억 속 아빠의 얼굴들이 스쳐지나간다. 나는 아빠에게 어떤 딸인가? 주말엔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지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2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울의 중점 나비클럽 소설선
이은영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묘하게 환상적이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이 자욱하다. 한 편 한 편이 끝나면 이게 과연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들을 쉬이 짐작하기 어려웠다. 소재가 참 강렬했고,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