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 - 플뢰르 펠르랭 에세이
플뢰르 펠르랭 지음, 권지현 옮김 / 김영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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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관점을 바꾸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와 언어 장벽에 상관없이 보편적 차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결국 입장 바꾸기다. 차이의 비밀을 풀어내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가장 활력 넘치는 일 중 하나다. (10)


아시아계 최초의 프랑스 장관에서 스타트업 투자자로 경계를 허물고 한계를 뛰어넘는 플뢰르 펠르랭의 시간들

생후 6개월에 프랑스의 한 가정에 입양가게 된 아이. 종숙에서 플뢰르가 되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한켠에 남아 있는 그녀 안의 상처. 남들과 다른 외모에 튀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 부모의 믿음으로 교육이라는 기회를 잡아 대학에 입학하며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나가며 사회로 나오면서 계층 이탈자를 경험한 그녀. 그녀가 구현하는 사회로 한 걸음씩 나아가며 장관직에 올라 40년 만에 방문하게 된 한국. 한국인들의 열광스런 환대에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의 믿음 속에서도 한 켠에 남아 있던 불안과 상처, 수치심을 인정하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에 뭉클해지면서도 참 인상적이었다. 장관직에 올랐지만 성공만 눈 앞에 있지 않았고, 여러 우여곡절을 넘기며, 이후 장관직에 내려와서도 스타트업 투자자로 자신만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나가는 모습이 참 멋져보였다. 

내 철학은 행동과 그 결과에 기반을 두었다. (80)

장관으로 방문한 한국에서의 경험에 이어, 소중한 인연으로부터 다시 시작된 한국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신과 한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진솔한 마음이 내게 닿는다. 자신이 나아가야할 방향,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의 모습에 그녀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한국인은 나를 한 개인으로서 자랑스러워하고, 나는 한국인이 자랑스럽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반전이다. 내 수치심은 사라졌고 우리의 운명은 얇은 트레이싱페이퍼 여러 겹을 포개 그린 조화로운 그림처럼 겹쳐 있다.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선이 만나 한국과 나 사이에 무언가 중요한 것, 유전자로 정해지지 않은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전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그냥 주어진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멀어짐과 망각, 무관심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만나는 선택을 했다. 서로를 알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는 한편 의식적으로 의지를 갖추고 만들어가는 관계에도 마음을 연다. 또 자유를 누리면서 공동의 미래를 위한 수많은 계획을 설계한다. 자기 운명을 뿌리와 화해시키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이 있을까. (183)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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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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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두 사람의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삶만큼 넓어지는 일일 겁니다. (49)


티비 속의 작은 단편적인 모습밖에 알지 못했다.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된 허지웅 작가님은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참 단단한 분인것 같다.

작가님의 단상들을 마주하며 여러 생각을 뻗어나가며, 세상을 조금은 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제대로 된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작고 사소한 상식을 갖춘 사회가 되기를, 서로를 이해하며 소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서로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 작은 마음이 모여 가득하기를. 소중한 사람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좀 더 선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이 거창한 게 아닐 겁니다. 꼭 친구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같은 편이나 가족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이해받고 싶은만큼 남을 이해하는 태도, 그게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의 전모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128)


우리가 서로에게 최소한의 이웃일 때 서로 돕고 함께 기다리며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여러분이 제 이웃이라 기쁩니다. (306)​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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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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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나눠 준 따뜻한 한마디와 그 말을 전달하기 위해 기꺼이 내준 몇 초 혹은 몇 분의 시간은. 선의를 베푸는 데는 대단한 수고가 들지 않는다. 무심코 건넨 배려 섞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단비와 같은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있어 누군가는 그날 하루, 혹은 더 긴 시간을 너끈히 버티기도 한다. (121)​


브런치북 9회 대상 수상작

작년 수상작인 『젊은 ADHD의 슬픔』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이번 브런치북 수상작들에 눈길이 갔다. 각기 다른 주제들 속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콜센터의 말』. 작년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책으로나마 이해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면, 이번 『콜센터의 말』은 내가 경험했던 일들이 겹쳐져 공감이 많이 갈 것 같아 더욱 기대가 되었다. 

나는 콜센터 상담원은 아니었지만, 카드 발급 업무나 협회 회원들에게 정보 수정 요청을 위해 전화 업무를 한 경험이 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카드를 신청한 혹은 협회 회원 이라는 특정한 사람들이라는 점이 다른 점이지만.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했던 일은 하면 할수록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런데 우습게도 콜센터에 들어온 뒤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숨 쉬듯 용서를 비는 인간이 되었다. 고객이 각양각색의 사연을 들고 마치 맡긴 물건을 찾는 양 사과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하자가 있었다면 고개를 숙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고객의 착오에서 비롯된 문제이거나 전혀 미안할 만한 일이 아닐 때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심지어 목소리가 죄스러운 감정을 연기하는 능력까지 생겼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도망가기 바빴던 내가 죄송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기가 어디 쉬웠을까. (40)


이 문장에서, 나는 툭 치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예전의 경험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턱대고 소리치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왜 이 시간에 전화하냐고 따지는 사람들 등등. 물론 무난한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 상처로 남아 오래갔다. 죄송할 것도 없지만, 의미없는 죄송합니다의 반복. 그보다 더 많은 평범하게 주고 받는 통화들. 무사히 한 통을 끝냈다는 안도감. 그러면서도 가끔씩 들려오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의 한 마디. 내 감정을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시간들. 

작가님은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일본)에서 상담원으로 겪은 일들이라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읽으면서 나와 참 많이 대입하면서 읽어서 공감을 많이 했고, 더 폭넓은 경험의 글들은 나에게 위로의 손을 건네주었다.

당신의 말 한 조각을 드러다 보는 시간,
나의 말 한 조각을 들쳐보는 시간.



이 세상에 누군가를 상처 주려는 말보다 보듬고 북돋아주려는 말이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때로는 회상하는 일조차 버거웠던 기억을 모아 기어코 책 한 건을 완성한 것은, 단지 이 말이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196)


[민음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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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기 위한 방법
한주희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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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외국에서의 삶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으로 가득 찼었다고 말할 것이다. 무엇 하나 쉽게 얻을 수 없었고 우연히 갖게 되는 것도 없었다.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나 자신부터 이해해야만 했다.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흔들리고 깨져봐야만 했다. 어느 누구도 대신 알려줄 수 없는 인생. 직접 확인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의 답은 스스로 부딪히면서 찾아갈 수밖에. _109​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기 위한 방법

봉주르 인사말도 건네기 어려웠던 시간부터 파리 건축가, 의상 디자이너 그리고 디자인 브랜드 론칭까지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담긴 에세이.
건축을 하며 경력이 쌓이며 월급은 오르고 생활도 편해졌지만 동시에 삶이 정체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일로 시작한 건축과는 달리 취미로 시작한 의상, 옷을 만들수록 살아 숨 쉬는 기분이 들었다. 건축을 더 오래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일을 더 오래 하고 싶어서 다른 분야에 도전한 저자. 이것은 성공 스토리가 아닌 도전 스토리, 성장 스토리다.

그녀의 도전 정신과 실행력을 보며 점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한 걸음 뒤에서 주저했던 내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해보며 다시금 고쳐가며 완성해가는 모습, 그 열정 가득한 모습이 내게 전해져 내 안의 불을 지핀다. 역시 좋아하는 것을 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행복이 내게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건축과 의상이 서로 시너지가 되어, 더욱 변화하며 확장될 세계의 모습이 기대된다. 

꿈을 꿈인 채로 두지 않고 현실에 구현하는 모습에 나도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용기를 얻어간다. 각자의 다양한 가치의 모습에 나만의 가치는 무엇일지 곰곰히 생각한다. 역시 내 인생이니, 나의 세계가 더욱 넓어지도록 부딪히며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도전하면 그에 따른 결과는 따라올 뿐 잘 될 수도,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실패를 걸림돌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경험의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다. 성공도 다음을 준비하는 발판으로 보거나,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장애물로 볼 수도 있다.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지듯이 결국 절대적인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 _213​


[미디어창비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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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x 키미앤일이 썸머 에디션)
김민철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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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을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의 오롯한 진심을 고이 접어 고스란히 당신 손에 쥐여주고, 과거의 따스한 온기 아래 지금의 저를 데려다 놓고 싶었어요. 그곳의 공기와 햇살과 바람과 미소와 나무를 잊지 않도록. _13


편지글을 좋아한다. 편지에는 따스한 애정이 묻어나서.
이 편지에는 여행의 그리운 순간, 사랑하는 사람, 감사한 순간, 우연이 운명이 되는 시간들의 반짝임이 담겨져 있다.

지나온 여행 속 추억을 되새겨보는 시간.
그날의 기억, 그날의 날씨, 그날의 풍경, 그날의 음식, 그날의 음악, 그날의 순간의 조각들이 다시금 펼쳐진다.
그렇게 지나온 여행은, 다시 내게 여행이 된다. 



여행자는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사람이죠. 잘못 본 지도, 놓쳐버린 버스, 착각한 시간, 하필 떨어지는 비. 여행엔 매 순간 우연이 개입하기에 그 우연을 불행으로 해석하고 있을 틈이 없더라고요. 재빨리 음악의 힘을, 커피의 힘을 혹은 술의 힘을 빌리거나, 작은 가게 속으로 피신해서 작고도 단단한 행복을 손에 쥐어보려 저는 애를 씁니다. 억지로 불행의 핸들의 꺾어 행복으로 향하는 거죠. 놀랍게도 그 순간 가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요. 의도하지 않은 삐걱임이 문득 완벽함으로 연결되는 거죠. 그럼 저는 기꺼이 그 우연을 운명이라 믿어버려요. 어떤 심오한 존재가 나를 위해 세밀하게 준비한 이벤트라 기꺼이 믿어버려요. 운명이 아니고서야 이토록 완벽할 리가 없잖아요. _25​


추웠던 그 날 내게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주던 귀여운 잔에 담긴 핫초코 한 잔의 기억부터 계획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순간들로 당황했던 그 날의 기억까지 나의 소중한 조각들을 펼쳐본다.
그 사소하고 소중하고 짜릿한 순간이 다시 내게 박혔으면.
또다시 또다른 어쩌면 같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
기다렸던 여행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 

여행자의 영혼을 담아 마법 같은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기를.
그 아름다움에 무사히 갇히기를. 



근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이 드네. 정말 나는 혼자 여행하고 있는 걸까.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한 걸까. 그 누구도 혼자 여행하진 않아. 그런 건 없어. 정말 혼자인 사람도 금세 누군가와 함께가 되곤 하지. 독일 쾰른 대성당의 그 뾰족한 지붕 아래에서도, 모두가 사랑으로 흥성이는 밤늦은 프라하 다리 위에서도, 방금 친해진 한국 여행자들 틈에서도, 나는 문득문득 너와 함께 있었어. 네가 이 풍경을 봤다면, 여기 있었다면 또 얼마나 좋아했을까 상상했지. 웃는 너를 보며 나는 또 얼마나 웃었을까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어. 도저히 내 힘으로는 그 상상을 막을 수가 없었어. 
그 상상의 종착지는 언제나 너의 말이었어.

"같이 여행 갈래?" _226​


[미디어창비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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