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시선 446
안희연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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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여름'책 읽기!


여름의 싱그러운 이미지를 상상하며 펼쳤지만, 
내가 상상하던 여름의 이미지와는 반대인 여름의 치열함을.
그렇다. 다양한 여름의 감정들. 여름뿐 아니라 겨울까지.
담담하게 품고 잡아주는 그 속에 담긴 끝나지 않은 풍경들.

"어떤 오후는 영원토록 끝나지 않는다" (「오후에」)​



「호두에게」

부러웠어, 너의 껍질
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거

나는 너무 무른 사람이라서
툭하면 주저앉기부터 하는데

너는 언제나 단호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한 손에 담길 만큼 작지만
우주를 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너의 시간은 어떤 속도로 흐르는 것일까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어떤 위로도 구하지 않고
하나의 자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졌다는 것
너는 무수한 말들이 적힌 백지를 내게 건넨다

더는 분실물 센터 주변을 서성이지 않기
'밤이 밤이듯이' 같은 문장을 사랑하기

미래는 새하얀 강아지처럼 꼬리 치며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새는 비를 걱정하며 내다놓은 양동이 속에
설거지통에 산처럼 쌓인 그릇들 속에 있다는 걸

자꾸 잊어, 너도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거
세상 그 어떤 눈도 그냥 캄캄해지는 법은 없다는 거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나날이 쪼그라드는 고독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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