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ㅣ 동화 보물창고 50
진 웹스터 지음,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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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를 처음 읽은 것이 언제였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만화로 봤던 건 확실히 기억납니다.

아직도 선명히 떠오르는,

햇살 가득한 고아원 문간에 서 있는 키다리 아저씨의 실루엣.

아마, 많은 사람들이 '키다리 아저씨' 하면 떠오르는 것이 저랑 같은 장면 아닐까 싶어요.

베일에 싸인 아저씨......진정한 '신비주의'의 창시자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18살의 주디는 단 한 번도 평범한 가정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지요.

세상을 인식할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라왔거든요.

그런 그녀에게 신세계가 열립니다.

한 후원자가 그녀에게 작가의 재능이 있음을 알아보고 대학에 보내주기로 한 거죠.

주디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쓰라는 거였지요.

그리고, 이 책의 다음은 '제루샤 애벗 양이 키다리 아저씨 스미스 씨에게 보낸 편지들'이 다예요.

진짜 다!

자신을 가명인 '존 스미스'라고 불러 달라고 하는 후원자에게 '대체 어떻게 공손할 수 있겠어요?'하고 반문하는 것이 주디의 첫편지죠.

그리고 다짜고짜 '키만은 평생 크실 거'라는 아주 타당한 근거 아래 '키다리 아저씨'라는 애칭을 붙이고 봅니다.

답장을 쓰지 않겠다고 한, 싫어도 뭐라고 한 마디 항의할 수조차 없는 사람에 대한, 소녀다운 '횡포'랄까요?

첫편지에서부터 당당하고 발랄한 주디에게 풋 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대학이란 곳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운동하고 지식을 쌓아가며

하루하루를 알차고 행복하게 채워가는 주디.

고아원 출신에 대한 편견 때문에 2인실이 아닌 독방을 쓰게 된 현실도 기쁘게 받아들이며

'18년 동안 20명과 한 방을 쓰다가 혼자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처음으로 제루샤 애벗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를 갖게 된 거예요.'

하며 설레어 하는 그녀를 자세히 알기도 전에 너무도 빨리 좋아집니다.

아마, 키다리 아저씨도 그러지 않으셨을지......

 

처음 이 이야기를 알았을 때의 엄청난 반전(반전 또한 진 웹스터가 시초였던 걸까요?^^:)을 이미 알고 있기에

주디의 편지를 저와 함께 읽는 '키다리 아저씨'의 마음을 좀 더 생각하게 됩니다.

'아저씨는 완전히 대머리인가요, 아니면 조금 머리숱이 없는 정도인가요?' 하고 물을 때에는 얼마나 크게 웃었을까요?

 

그리고, 주디가 첫편지를 보낸 지 10개월이 되어서야 그녀를 몰래 보러 간 아저씨.

자기에 대해 어떻게 썼을까, 편지 봉투를 열며 얼마나 궁금하고 긴장되었을까요?

'펜들턴 씨는 어딘지 모르게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점이 있었어요.'라는 문장에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을 거예요.

밝고 영민한,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주디를 실제로 만나고 와서 아저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친구 샐리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나서 보낸 편지에서 '키가 크고 잘생긴 오빠 지미'가 출현했을 때,

한 번씩 언급되었을 때, 아저씨의 눈은 왠지 불길하게 번득였을 거예요.

 

언제부터 사랑이었을까요?

주디는 '도대체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는' 횡포를 부릴 때 쯤엔 확실히 '사심'이 보이지만 말이죠.

그건 아마도 이 아저씨에게서 직접 들어야만 알 수 있겠죠?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편지를 받으면 누구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죠.

 

태어나서부터 혼자였기에 '벽에 등을 대고 혼자서 세상과 싸워야' 하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하는 아픔이 있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에서 용기있고 당당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주디.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변의 부유한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호사로 느껴지는 호의는 '제게는 외상으로 빌릴 권리가 없어요.'라고 거절하며

비범하진 않더라도 세상에 "매우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주디의 맑고 강한 마음,

그 어떤 보석보다도 가치 있고 귀한 그 마음을 저도 갖고 싶네요.

 

"세상에 매우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데 너무 늦은 때는 없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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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ㅣ 동화 보물창고 47
루이스 캐럴 지음, 황윤영 옮김, 존 테니얼 그림 / 보물창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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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진짜 시작은 이러하다.


 

30살의 영국인 수학교수가-여기서부터 반전이다! 근엄하기로 유명한 영국인에, 수학 교수라니!-

세 꼬마 숙녀와 뱃놀이를 나갔다가 지루해하는 소녀들의 무지막지한 횡포에 못 이겨......

 

가장 작은 깃털 하나도 날려 버리지 못할 만큼

숨결이 약한 이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다니!

하지만 다 같이 졸라 대는 세 혀 앞에

가련한 목소리 하나가 무슨 소용 있으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문)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인 앨리스의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만들어낸다.

"지금 바로 해 주셔요!""재밌는 말장난도 들어갔으면 좋겠어요!""그래서요?아, 이 땐 이랬으면 좋겠다!"

재잘거리는 세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려오는 듯,

이야기는 생생하고 발랄하다.

'이야기가 바닥나고 상상의 샘이 말라 지친 이야기꾼이 이제 그만하려고 넌지시 "나머지는 다음에."하고 말을 꺼내면 "지금이 다음이에요!"하고' 채근하는,

만화가들이 가장 두려워 한다는 데드라인보다, 출판사 독촉전화보다 더 사정 봐 주지 않는 아이들 덕분에

루이스 캐럴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상상 이상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 또 어린이였던 이들은 이 세 소녀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루이스의 따뜻하고 연약한 마음에......


 

양복 입고 말하는 토끼를 따라

어떻게 다시 밖으로 나올 것인지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굴속으로 뛰어들어간 앨리스가 겪는 모험.

별 생각을 다하고, 혼자 수다를 떨다 꾸벅꾸벅 졸면서 지루하게(!) 떨어져내려가는 이 첫등장부터

'이상한 나라' 못지 않게 앨리스도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상함'이 여전히 이 이야기에 매혹되는 우리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임도.

잘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누가 알면 큰일날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혹시, 안 그러신 분도 있나요? 있으면 말고!)

그 다음 이야기들은 모두들 알 것이다.

몸이 작아졌다 커졌다 다시 작아졌다 하며, 자기 눈물에 빠져 죽을 뻔 했다가

기이한 동물 무리들과 직접 해 보아도 절대 알 수 없는 '코커스 경주'를 하고,

모두가 승자라는 도도새의 심판에 상으로 사탕을 나눠 주고,

(그냥 나눠주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재밌고 맛있게 먹는 법 같다. 한 번 써먹어볼까?)

흰토끼 집에 갇혔다가 버럭쟁이 쐐기벌레(키 때문에 화내는 걸 보니 분명, 남자 쐐기벌레다!)를 만나

키를 조절할 수 있는 마법의 버섯조각을 얻고,

공작 부인의 아기를 떠맡았다가 아기가 돼지로 변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끔찍하게 못생긴 아이보다는 잘생긴 돼지로 사는 게 낫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하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길고 복잡하게" 교훈을 읊어댈 수 있음을 자랑하는 공작 부인,

모든 게 상상이라고 단정짓는 그리핀, 도대체 뭐가 어떻게 가짜인지 알 수 없는 가짜 거북까지 만나고

조금만 맘에 안 들면 닥치는 사형 선고를 내리는 여왕이 "저 애의 목을 쳐라!"를 외치는 절대절명의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참 익숙한 이야기인데도 이렇게 되짚어보니 여전히, 아니 지난번보다 더, 더 이상하다.


 

이 완역본에서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 모든 버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지 못했던 부분이 나온다.

바로 앨리스가 멋진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며 차를 마시러 달려간 후,

그 자리에 남아 앨리스의 멋진 모험 이야기를 생각하며 얼핏 꿈을 꾸기 시작하는 앨리스 언니의 이야기다.

눈을 감고 앉아 앨리스가 만났다는 이상한 생물들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와 있다고 반쯤 믿게 되지만,

'다시 눈을 뜨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단조로운 현실로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 언니.

아이와 어른 사이의 자리에 서 있는 듯한 이 언니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 아닐까 싶다.


 

또, 앨리스가 장차 자라서 어떤 여인이 될지,

성숙해진 후에도 어린 시절의 순진하고 사랑스런 영혼을 어떻게 간직해 나갈지를 그려 보는 그 마음은

루이스 캐럴의 마음, 모든 부모의 마음이며 그 어떤 멋진 꿈보다 더 멋진 꿈일 것이다.

이 이상한 나라 이야기가 지금 곁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앨리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길,

어떤 이상한 나라보다도 더 황당한 일과 미친 사람들이 많은 현실세계 속에서도

"정말 이상한 일도 다 있어!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게 이상하니까."하고 대응하는 앨리스처럼

당당히 제 갈 길을 걸어가길.

"걷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되어 있는 법이니까."

걷다 보면!


<기억에 남는 한마디>
"정말 이상한 일도 다 있어!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게 이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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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더스의 개 ㅣ 동화 보물창고 49
위더 지음, 원유미 그림,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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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랫만에 만난 <플랜더스의 개> 책 표지를 본 순간,

"먼 동이 터 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라는 노래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중 가장 슬픈 이야기,

'어떻게 동화가 이럴 수 있어?'하며 가슴 아린 결말을 마지막까지 믿을 수 없었던 이야기였건만,

그래도 그 노래가 '파트라슈와 함께 한 날들'의 행복을 되살려주어

긴 시간이 흐른 후지만, 마음을 다독여 주었던 것 같다.
 

 

책 표지 또한 둘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은 스틸 사진 같다.
 

 

포악한 주인에게서 학대받다 버려진 파트라슈를 지나치는 수백 명의 사람들...

'개가 죽어 가는 건 브라반트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거든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요.'라는 작가의 말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는 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근거도 없이 넬로에게 잔인한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코제씨,

자기 편의를 위해 하나가 되어 넬로를 내치는 마을 사람들,

세상에 혼자 남은 가엾은 아이를 쫓아내는 무자비한 집주인......

 

어쩌면 가난한 사람들이 같은 인간들의 이기심과 무자비로 인해 죽어 가는 건

길에서 개가 죽어 가는 것보다 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아무 힘도 없는 넬로를 지키는 건 꿈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꿈조차 가난한 이에게는 허황된 사치로 여겨졌을 뿐.

이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 안에 깃든 찬란한 빛을 보는 눈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차가운 세상, 등 돌린 이웃들에게 상처입은 넬로는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는 행운조차 외면해버린다.

눈보라가 쏟아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넬로.

 

어릴 때 이 동화를 읽었을 때엔 넬로가 바보 같다고,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모르고 성급한 절망에 빠져 죽음을 자초했다고.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다.

 

넬로에겐 현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순진무구했던 소년은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차갑고 잔인한 세상, 얼음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소년을 지켰던 따스한 사랑과 믿음이 남김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세상은 이제 우리 같은 건 필요로 하지 않아. 우린 외톨이야."

 

넬로의 마지막 말은

이 시대에 스스로 죽음을 단행하는 많은 이들의 마지막 마음과도 완벽히 겹쳐진다.

'사랑에 대한 보상도 없고 믿음을 이행하지도 않는 세상'을 떠난 둘을 보며

후회와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
 

 

닫힌 문 속에서 나만의, 내 가족만의 안위를 충족시키려 애쓰는 우리들이 있는 한,

세상은 그 때와 똑같이 차갑고 캄캄하게 존재할 것이다.

 

세상이 주지 않았던 사랑과 믿음을 준 파트라슈,

그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던 행복을 천국에서 누리고 있기를 기도하며

아이 때 느꼈던 슬픔과 분노보다는, 부끄러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넬로에게 안녕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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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북 ㅣ 동화 보물창고 46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존 록우드 키플링 그림,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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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환성을 지른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정말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책 속의 야생소년 모글리와 무섭고 야비한 호랑이가

20여년 만에 나의 기억 속을 헤치고 나와 반갑다고 손을 흔들어댔다.

어릴 때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근사한 삽화도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이 묵직한 두께......

'모글리 이야기'가 이렇게 길었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는데, 목차를 보니...

어! 일곱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 중 셋은 모글리 이야기지만, 처음 보는 네 편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환경의 다른 동물들 이야기.

추억 속의 책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책이다.

호랑이 시어칸의 먹잇감이었다가 늑대의 아이로 자라게 된 모글리.

혼자 늑대 굴로 걸어와 늑대를 올려다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포동포동한 아이에게

"털도 없는 게 겁도 없네!"하며 매료된 어미 늑대.

늙은 곰 발루의 애정 어린 가르침과 슬기로운 흑표범 바기라의 보호 아래 정글의 법칙을 지키며

누구 못지 않게 정글의 한 형제로서 한 몫을 해내었건만,

시어칸의 부추김 아래 늑대들은 12년 이상 자신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모글리를 '인간'이라며 배척한다.

절대절명의 순간에 바기라의 도움을 얻어 불로 그들을 응징하고 떠남을 결심하는 모글리.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에 "내가 죽는 거야?"라고 놀라는 이 인간의 아이.

'종족'이라는 이유로 찾아간 인간들의 마을에서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다시 정글로 돌아오지만

"이제 나는 혼자"라고 선언하는 모글리의 삶은 '어른이 된다는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배웠던 도덕과 법칙들이, 옳다고 생각해온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쉽게 배신당하던가?

눈을 마주칠 수 없기에 모글리를 미워하는 늑대들,

이해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악마라고 쫓아내는 인간들.

시어 칸에게 거둔 통쾌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은 씁쓸함을 남긴다.

 

 

<하얀 물개> 코틱은

"사람들이 전혀 오지 않는 섬을 찾으면 모를까, 너희는 늘 끌려갈 거야."라는 바다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5년을 넘게 바다를 떠돈다,

오랜 고생 끝에 숨겨진 섬을 발견했음에도 그 사실을 믿지 않고 비웃는 무리들.

'지금 가진 것'에 집착하는, 모험을 두려워 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인간이야말로 자연의 숙적'이라는 사실에 씁쓸해진다.

제발,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곳들의 비밀이 영원히 지켜지기를 바란다.

인간의 탐욕은 이익을 알게 되는 한, 스스로를 제어할 힘을 잃고 마니까.

 

 

<리키티키타비>는 몽구스의 이름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지만 낯선 이 동물을 놀라게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한다. 코끝부터 꼬리끝까지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생물이 무자비하고 잔인한 코브라 나그와 나가이나에 맞서 벌이는 전쟁 이야기를 통해

용기와 지혜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몽구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코끼리들의 투마이>에서 작은 투마이는 여지껏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코끼리들의 춤을 보게 된다.

달빛을 받아 철회색이 된 숲속 공터에서 수백 마리의 코끼리들이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다 함께 쿵쿵 발을 구르는 광경은

하나의 그림처럼, 그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자연의 신묘함으로 그려진다.

 

 

<여왕 폐하의 신하들>에서는 전쟁에 참여한 포대의 코끼리들, 대포 끄는 소들과 당나귀들, 기병대의 말들, 식량 보급대의 낙타들이

저마다 자신이 경험하는 인간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뽐내고 다투기도 하며

하나 같이 모두 제 몫의 일을 해내고 있음을 자랑스러워 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단편의 마지막이며 이 정글북 전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캠프 동물들의 행진곡'의

"먼지투성이에 졸음을 견디며

말없이 옆에서 걷는 사람들은

우리 그리고 그들이 왜 매일매일 행진하며

고통을 받는지 말해 줄 수가 없네."

라는 구절은 키플링이 작품 전체를 아울러 강조하는 '질서'와 '규칙'이

그것을 세우는 자가 아니라, 지켜야 하는 자들, 곧 약자들에게는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일 수 있는지를 역으로 생각하게 한다.

어릴 땐 이 '정글 북'이 이렇게 대단한 책인 줄 몰랐다.

이렇게 많은 책들을 접하고 나서... 세상을 겪고 어느 정도의 시각을 갖고 나서야

진가를 알아보게 되었다.

나중에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커가는 아이와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고도 싶다.

이 정글의 이야기... 세상의 이야기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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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ㅣ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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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라는 제목이 나에게 묘한 긴장감을 준다.

인간이 가장 믿는 '내 눈'이 나를 속이는 신비.

한번도 본 적 없지만,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닐 그 것이 보고 싶다는 이상한 바램은

나만의 것은 아니지 않을까?

갈망하는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소녀는 다인이일까? 아니면 숙희의 마음 속 자신일까?

책을 덮으면서는 아마 둘 다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엄마 고교동창 단체여행에 우여곡절 끝에 따라가게 된 다인이.

기대할 것 없는 몽골, 시끄럽게 사투리로 떠드는 아줌마들, 다정한 데라곤 없는 엄마에 부루퉁했던 다인 앞에 나타난 꽃미남 가이드 바뜨르.

열혈팬인 남성그룹 야누스의 1인과 꼭 닮은 그의 존재 자체가 다인에겐 신기루와 같다.

순수하고 속깊은 바뜨르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떠들썩한 아줌마 군대 속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고

생각많은 다인인 혼자서 설레었다가, 실망했다가, 차후 5년간의 계획을 세웠다가 하며

나를 그 시절 그 때로 데려다 놓는다.

혼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쓸쓸함 그 자체인 듯' 앉은 자신이 '한층 고결해진 느낌'을 만끽하는 다인이의 독백엔

그 진지함에 미안할 정도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래, 다인아...... 나도 너 같았을 때가 있었는데......

마치 고교시절 일기장을 읽으면 혼자 부끄러워지는, 바로 그 낯익은 느낌이다.

그 노을 안에 바뜨르가 나타나고 웃음을 나누며 꿈 같이 행복해하는 다인이.

이 쯤 되니, 나도 너무나 이쁜 바뜨르와 다인 사이에 아름다운 추억이, 인연이 생기길 소망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 말을 타다 얻은 부상이 심해진 바뜨르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고

허망하기만 한 다인이는 모래사막에 서서 신기루를 만난다.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보던 신기루가 사라진 순간, 엄마가 운다. 그리고, 모두 운다.

다인이도 이유를 모른 채 그저 운다.

여기서 1부, 다인이의 이야기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가 끝난다.

 

 

그리고 화자는 엄마로 바뀐다.

짠순이에, 아들바보에, 성깔도 꽤나 있는 무서운 엄마 숙희는 어떤 이야기들을 펼쳐낼지 궁금해진다.

야단치고 화를 내며 ?려놓고서도 잠든 다인이의 얼굴을 보며 30여 년 전 자신을 떠올리는 숙희.

바뜨르로 인해, 열여덟 살로 돌아간 듯 나이도 현실도 잊었었다 얘기하는 그녀에게서

모두들 '아줌마들의 주책'이라 흉보는 행동들이 감춘 서글픔을 다시 마주보게 된다.

여행을 앞두고 받은 자궁암 초기 진단,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기억이 숙희를 괴롭히고 있다.

엄마와 싸우고 미워한 기억 밖에 없기에, 그 이별이 아직도 숙희를 괴롭히고 있건만......

그녀는 아이들을 대할 때면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조급함 ?문에 아이들을 닦달하며 거리만을 쌓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수많은 엄마들의 대표인 듯한 숙희의 마음은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깝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조바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어 슬프다.

그러나, 힘없고 비굴한 인생의 견본인 듯한 가이드 니르구이의

"사람은 모두 죽잖아요."라는 한 마디 말은 숙희의 가슴에 얹힌다.

그럼에도 숙희는 자신을 굽힐 수 없다. 최선이라 믿으며 살아온 삶을 뒤엎을 순 없다.

열 다섯 살의 다인에게 사막은 우물을 감춘 곳이다.

꿈꾸는 자의 눈에 따라 서로 다른 꿈을 열어주는 '길 없는 길' '발 닿는 데가 곧 길'인 곳이다.

마흔 다섯 살 숙희는 100% 허상인 신기루에서 '실재하는 삶'을 찾으려 한다.

나, 나라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걸어온 시간이 가치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에 흔들리는 숙희의 눈물은

참 아프다.

그러나, 그 고통 끝에 숙희는 현실에 치여 살며 묻어두고 있었던 의문과 죄책감에 대한 답을 얻는다.

그리고 여행의 순간순간들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까닭은 그 모든 것을 딸과 함께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래, 이것이면 충분하다.

무엇이 신기루인지, 무엇이 길인지 알 수 없는 삶이라는 사막 속에서 함께해 주는 것.

그가 꾸는 꿈을, 그가 걷는 길을 믿어주는 것.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는 엄마의 딸이며, 새로운 모든 것들에 대해 탄성을 지르며 질문으로 하루를 채우는 딸의 엄마인 내게

용기와 위안을 준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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