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엔데 동화 전집 에프 모던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유혜자 옮김 / F(에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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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렝켄의 비밀><마법의 수프>라는 두 권의 책으로 만났었던 미하엘 엔데의 단편 동화들을

12년 만에 한 권의 책으로 다시 만났다.


첫눈에 `바벨탑'이 떠오른 표지 그림...
하지만, 다음 순간 구름으로 가리워진 탑 꼭대기에 다른 세상으로 가는 입구가 있을 것 같아서

난 위태로운 조각배에 선 저 아이가 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러 번 읽었던 이야기들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다시금 새로울까?


거짓말 같은 마법 학교 이야기를 통해 진짜 우리 삶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마법 학교>,

마지막에 정말 크게 손뼉을 쳐 주고 싶은 우직하고 대단한 <끈기 최고 트랑퀼라 거북이>,

우리에게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렝켄의 비밀>,

권력이 어떻게 스스로를 망가뜨리는지 보여줌으로써 통쾌함을 주는 <벌거벗은 코뿔소>,

딸아이가 읽다가 "진짜 짜증나!"하고 여러 번 소리지르게 만든 <괜찮아요>,

마녀가 만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수프를 만들 수 있는 국자와 냄비로 인해 벌어지는 두 나라의 비극 <냄비와 국자 전쟁>,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낡은 곰인형 워셔블의 이야기 <내 곰인형이 되어 줄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딸을 위해 꿈을 먹는 요정을 찾아 길을 떠난 선잠 나라 왕 이야기 <악몽을 먹는 요정>,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절로 소리를 내어 읽고 싶어지는, 그래서 결국 진짜 혀가 꼬이고 마는 <혀 꼬이는 이야기>.

슬프고 외로운 그림자들을 품어주다 죽음의 그림자마저 겸허히 받아들이는 작은 할머니 이야기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등...

20편의 이야기 전부가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고요하고도 깊은 울림을 준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모든 마법은 이루어진다.'라는 마법 학교의 가르침은

미하엘 엔데가 그의 이야기들 전체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삶의 비밀' 아닐까 한다.


또 다시, 나이가 더 들어...... 나이가 더 든 아이와 함께 읽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이제, 그가 꿈꾸던 꿈의 나라에 가 있을 미하엘 엔데 할아버지께 또 한번의 고마움을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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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주 파라랑 푸른도서관 73
김정 지음 / 푸른책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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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페르시아.

역사에서 전혀 마주치지도 않았을 것 같은 두 나라가 부부의 연을 맺었었다니.

더구나 황제와 황후로?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의 한 꼭지에 나올법한 '진실 혹은 거짓'이다.

(앗, 이 글을 쓰기 이틀 전에 정말 이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음을 지금 확인했다.)


이란의 민족 설화에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기의 역사가 결합된 서사시 '쿠쉬나메'에 신라가 등장한다는 이야기에 놀라며 기뻤다.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하던 차에 펼쳐든 이 책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상쾌하고 향기로운 공기에 갖가지 꽃들의 화사함이 넘치는 서기 651년 4월의 서라벌...

1400년 전의 그 모습이 얼마 전에도 다녀온 경주의 거리들에 겹쳐 그려지며

나는 그 풍요로운 황금의 나라 신라로 빠져들어갔다.


말 타는 것을 무엇보다 즐기며, 틈만 나면 왕궁을 몰래 빠져나와 산과 들을, 사람들로 왁자지껄한 저잣거리를 내달리기에 바쁜

당찬 말괄량이 공주 파라랑 공주는

신라에 망명 와 있던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과의 우연한 만남 이후,

그의 사람됨과 용맹함, 지혜에 점차 끌리게 되고, 결국 혼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몇 달 후, 페르시아 왕의 승하 소식이 전해지고

아비틴은 저항군을 이끌어 아랍왕 자하크의 손에서 페르시아를 되찾아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게 된다.

아비틴은 파라랑을 신라에 두고 가려 하지만, 파라랑은 그와 함께 가기로 결심하고 설득해 따라나선다.

거듭되는 배신과 음모, 습격 속에

페르시아로의 항해, 저항군과의 만남, 끊임없는 전투, 기쁨이었던 아들의 탄생,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아비틴의 죽음......

그 시간들은 파라랑을 자라게 하고 강하게 한다.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도, 탐스러운 머릿결도 다 잃어버리지만,

놀라운 용기와 지혜로 아들과 페르시아를 지켜내고,

마침내 아들 페레이둔을 용사로, 호랑이 왕으로 키워내 '페르시아의 어머니'가 된다.


역사라기엔 너무나도 극적이고 잔인하고 가슴아프고 벅찬 이야기.

하지만, 그녀의 강인하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성장은 많은 훌륭한 어머니들을 생각하게 한다.

암살의 위협에 잠 못 이루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타국의 가난한 이들을 성심성의를 다해 돌보는 아비틴의 마음에도

눈물이 솟았다.

한 나라를 구하고 사라졌던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것은

이처럼 몇 사람의 강하고 순수한 선의와 정의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작은 고난에도, 현실의 배신에도 쉽사리 절망하고 일어설 힘을 잃곤 하는 우리에게

신라의 황금처럼 순수하고, 페르시아의 불처럼 강한 정신을 일깨워주는 이야기,

우리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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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 인형 클래식 보물창고 38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 지음, 함미라 옮김 / 보물창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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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 독특한 모습의, 그렇지만 하나같이 정감가고 익살맞은 느낌을 주는 호두까기 인형들이 가득한 표지가 "와!"하고 탄성을 지르게 하는 책이다.

작은 호두까기 인형에 첫눈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마리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호두까기 인형>은 나에겐 '크리스마스'의 동의어 중 하나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보던 화려한 사탕요정들의 춤, 환상의 세계로의 여행...

인형이 살아나 왕자가 되고 자신을 구해준 소녀(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에게 보답하는 이야기.


아이에게 그림책으로도 발레 음악으로도 많이 보여주고 들려주었는데,

처음부터 발레를 위해 쓰여진 작품인 줄 알았었다. 

이번에 완역본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책을 기다리다 펼치며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찾아왔다.

첫 장면,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을 기다리며 작은 뒷방 구석에 앉아 있는 마리와 프리츠처럼 말이다.


더할 나위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무대가 기억에 선하지만,

호프만이 펼쳐놓는 이야기는 무대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다.


아름답고 다채로운 상자들이 끊임없이 펼쳐지며, 갈수록 놀라움이 더해만 가는 선물들이 가득한

환상의 크리스마스와 같다.

할 말을 잃은 채 두 눈만 반짝이며 멈춰 서 있다,

한참이 지난 후 겨우 깊은 숨을 내쉬며 "아, 정말 예쁘다. 아, 정말 예뻐."라고 외치는(p.13)  

아이들을 우리 안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못생기고 우스꽝스러운 호두까기 인형에게서 친근감과 호감을, 입술에 번진 귀여운 미소를 발견하고 

호두를 까는 동안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마리를 보며

그 착하고 상냥한 마음에 웃음이 지어진다.

한밤중, 생쥐대왕과의 전쟁과 인형 왕국으로의 여행은 공상과 거짓말로 취급받고 야단맞을 거리가 되어버리지만,

결국 그 환상은 현실이 되어 그녀를 찾아온다.


원작에서는 '단단한 호두에 대한 동화'로 드로셀마이어 가문과 호두까기 인형이 되어버린 청년의 내력이 첨가되고,

환상의 요소들은 더욱 깊은 향기로 전체를 감싸고 있다. 


물 흐르듯 졸졸졸 달콤하게 흘러가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딸랑거리며 어른어른 주위를 맴도는(p.125)

이런 아름다운 마음의 모험들이 우리를 웃음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볼 수 있는 눈만 있는 눈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신비로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그런 나라(p.128), 

그 나라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지혜일 것이다.


자유롭고 열정적인 예술가였으면서도 용기있고 정의로운 법관이었던 E.T.A.호프만의 놀라운 생애는

이 지혜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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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물두꽃 애기씨 - MBC 창작동화대상 수상작 미래의 고전 40
김현화 지음 / 푸른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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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신화, 설화와  동양 판타지의 세계관이 접목된 동화의 출간 소식에

어찌나 기대가 되었던지요?

제목도 너무나 귀여운 '구물두꽃 애기씨'입니다.

 

 

 

'구물두꽃'이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니, 불경에 나오는 환상의 노랑 연꽃이었습니다.

'拘物頭'는 '만물을 바로잡는 시초'라고 풀이되구요.

 

눈부신 빛으로 둘러싸인 도리천궁에서 가장 어린 구물구꽃 애기씨는

발에 밟히는 흙의 보들보들함이 좋아서

그리고, 말할 수 없이 시크한 소 구우가 왠지 좋아서

황금 포도밭을 매일 찾아갑니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들리는 "분이야!"라는 음성에 이유도 알 수 없는 울음이 터집니다.

 

 

 

 

 

 

그리고, 하늘 못에서 자신을 보며 웃는 두 사람을 보고 가슴속에 그리운 마음이 복받쳐 올라

걸으면서도 울고, 자면서도 울어

눈물 때문에 몸이 무거워져서 날 수도 없어지지요.

그리고, 알게 됩니다.

자신을 부르는 두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아름답고 근심 없는 도리천궁을 떠나

여덟 개의 세상에 구물두꽃을 심어 혼탁한 세상을 구하는 무거운 임무까지 지고

인간 세상까지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지요.

 

 

그리고, 자신의 길잡이 소가 되어 달라고 구우를 사흘이나 쫓아다니지만,

구우의 매정한 거절에 상처입고, 금소와 함께 떠나게 되지요.

 

 

 

 

하지만, 구물두꽃 애기씨가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전하는 진심은 구우를 움직이고,

하늘 눈과 하늘 귀를 가진 가진 구우는 앞으로 다가올 고된 일들을 다 알면서도

애기씨를 따라 나섭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영원히 후회할 거야."

 

 

명주실을 빼앗아 인간으로 태어나려는 귀신들의 추적 속에

아기만 잡아먹는 옹기 귀신에게 붙잡히고,

동양적 반인반마(켄타우로스) 구반다에게 쫓기고,

불구덩이에 빠지는가 하면,

마니주에 대한 탐욕 때문에 똥오줌 세상을 만든 똥장군도 만나고,

사람의 기억을 빼앗아 먹고 사는 도깨비 아발마라에게 속아 기억도 잃습니다.

이 일곱 세상과 요괴들은 인간 세계의 복사판에 다름아닙니다.

악하기에 갈수록 더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요괴들이 득시글거립니다.

 

그 위험한 손길들에서 목숨 걸고 애기씨를 구하는 건 언제나 구우입니다.

 

 

 

 

 

기억을 빼앗기고 정신을 잃은 애기씨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흘리는 구우의 눈물은

애기씨를 깨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구물두꽃 애기씨는 결국 구우를 기억하지 못한 채

인간 세계로 가는 마지막 관문 '인연의 강'을 건넙니다.

 

 

명주실을 따라 인연을 찾아가는 구물두꽃 애기씨와 구우의 '연'은 그렇게 끊어지지만,

구우와 구물두꽃 애기씨가 나누었던 애정과 헌신은 아마도 영원히 이어지리란

기대감을 남기면서...

 

 

그리고, 이야기는 태어난 지 백 일만에 엄마 품에 안겨 처음 세상 구경을 나온 아기

분이에게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일곱 세상에서 만났던 인연들과 하나하나 인사합니다.

눈이 부리부리하게 참 잘생긴 사내 아기로 태어난 '구우'까지...

 

 

 

 

그리고, 구물두꽃 애기씨가 제석님에게서 받은 마지막 구물두꽃 씨앗이

세상에 떨어집니다.

바람에 날려 연못을 찾아간 까만 씨앗 하나...

곧 맑은 향기 품은 노란 연꽃이 피어나겠지요.

 

 

 

우리 모두, 세상의 모두...

이 모두는 한때 도리천궁에서 아무 불행도 고통도 모르고 살던 애기씨들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맑고 선하고 순수한.

그리고, 우리에겐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각자 인간 세상을 맑게 되돌려놓을, 고통을 위로할 의무와 힘이 있는 거구요.

 

처음부터 우리를 세상으로 부른 것은 '가슴이 미어질 정도의 사랑과 그리움'이었음을

잊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모두의 처음이었던 '애기씨'를, 모두들 가슴에 품고 왔던 '구물두꽃 씨앗'들을 발견하기 위해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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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자 클래식 보물창고 13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찰스 에드먼드 브록 그림,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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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소설을 쓰던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은 어느 날

"영국에는 귀족이 있는데, 왜 미국에는 귀족이 없어요?"

라는 아들 비비안의 질문에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첫 동화였던 이 작품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주인공 세드릭의 긴 곱슬머리와 레이스 옷깃이 붙은 벨벳 옷까지 대유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886년, 모든 엄마들을 설레게 했던 이 일곱 살 소년의 힘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매우 조용하고 싼 조그만 집에서 태어났지만 행운만큼은 타고난 듯한 세드릭.

누구라도 어리석다고 할 선택으로, 사랑을 위해 부와 명예를 버린 아버지와

가난하지만, 지혜로우며 선한 어머니가 곧 그 행운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을 잘 믿는 천성과 두려움 없는 태도, 모두를 편안하게 해 주고픈 상냥한 마음은

건강한 아름다움과 넘치는 생기와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기쁨이 되는 세드릭.

상냥하고 천민난만하고 따뜻한 감정들로 가득한 이 어린 영혼이 가진 힘은 실로 엄청나다.

 

 

늙고 완고한 변호사 하비샴 씨가 할아버지 도린코트 백작의 명으로 세드릭을 데리러 와서

그와 마주앉아 '백작'이 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장면은 실로 유쾌하다.

'유서 깊은 가문'이라는 말을 모르는 세드릭에게 '아주 오래된 가문'이라고 설명하자, 곧바로

"아! 공원 근처에 계시는 사과 파는 할머니처럼 그런 거군요.

그 할머니도 아마 매우 유서가 깊은 가문일 거예요.

나이가 워낙 많으셔서 서 계시는 게 놀라울 정도라니까요.......

그렇게 가난하고 유서가 깊은 사람을 보면 안됐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할머니는 뼛속까지 유서가 깊고 비가 오면 더 나빠진다고 하셨어요."

하고 자신이 이해했음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말하는 세드릭.

하비샴 씨의 '막막한 기분'이 그대로 느껴지면서 마구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완고하고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늙은 백작이 자신의 재력과 권력을 숙지시키라고 하비샴에게 지시하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부자가 되면 맨처음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는 세드릭은

깊은 불신과 불안을 안고 찾아왔던 하비샴 씨마저 변화시켜 '소원 들어주는 지니'가 되게 한다.

그리고, '지금과는 크게 다를 거야.'라는 하비샴 씨의 확신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기대보다는 실망을 준비했던 도린코트 백작은 세드릭과의 첫번째 만남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낀다.

너무 이기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기심 없는 마음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살았던 백작은

천진난만하고 다정한 이 어린아이에게 당황하고 만 것이다.

착하고 순수한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세드릭에게는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인 이 냉혹한 백작조차 친절하고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다.

의심없이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세드릭과 함께 지내며,

가끔 남몰래 자신의 과거 삶이 좀 더 나은 것이었으면,

자신이 오랫동안 '사악한 도린코트 백작'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모르기를 바라는 백작.

결코 악한 생각을 할 수 없는 솔직하고 참된, 상냥한 본성, 애정 어린 진실함......

자신이 가져 보지 못하였기에 그토록 마음을 뺏기는 것들은 백작을 강하게 매료시키고,

결국 할아버지에게까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전인류에게 자선을 베푸는 고결함의 화신으로 존경받는' 그야말로 새로운 이 새로운 경험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고

"할아버지라면 하실 수 있어요."라는 말에

그 어색하기 짝이 없는 '상냥한 행동'을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엔 세드릭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지만,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으니, 모든 것을 가졌지만 외롭다는 것도 못 느낄 만큼 외로웠던 백작이 더 크게 보인다.

이 늙은 백작처럼 타고난 부와 권세가 있었다면, 우리 모두는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너그러운 행동, 친절한 생각은 잊은 채 그 힘을 휘두르며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을 것이다.

내 것을 지키느라 누군가를 전심을 다해 믿지도 못하고, 결국은 혼자만의 삶 속에 갇힐 것이다.

그가 가진 '사악함'은 우리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합리적이란 말로 포장되는 계산적인 생각들, 이기심, 무관심들.

'사랑'이라는 약이 없으면 바로 우리를 휘두르는 불치병이다.

 

 

 

세드릭이라는 존재는 '사랑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한없는 믿음과 용기, 솔직함, 순수함, 상냥함과 배려......

세상이 주는 피곤과 상처를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웃게 만드는 우리 아이들이

엄마에게 늘 발라주고 있는 치료약들.

그 사랑에 대한 답으로 나 역시, 세드릭의 엄마처럼

언제나 착한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설령, 그것이 바보 같이 보이더라도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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