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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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라는 제목이 나에게 묘한 긴장감을 준다.

인간이 가장 믿는 '내 눈'이 나를 속이는 신비.

한번도 본 적 없지만,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닐 그 것이 보고 싶다는 이상한 바램은

나만의 것은 아니지 않을까?

갈망하는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소녀는 다인이일까? 아니면 숙희의 마음 속 자신일까?

책을 덮으면서는 아마 둘 다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엄마 고교동창 단체여행에 우여곡절 끝에 따라가게 된 다인이.

기대할 것 없는 몽골, 시끄럽게 사투리로 떠드는 아줌마들, 다정한 데라곤 없는 엄마에 부루퉁했던 다인 앞에 나타난 꽃미남 가이드 바뜨르.

열혈팬인 남성그룹 야누스의 1인과 꼭 닮은 그의 존재 자체가 다인에겐 신기루와 같다.

순수하고 속깊은 바뜨르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떠들썩한 아줌마 군대 속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고

생각많은 다인인 혼자서 설레었다가, 실망했다가, 차후 5년간의 계획을 세웠다가 하며

나를 그 시절 그 때로 데려다 놓는다.

혼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쓸쓸함 그 자체인 듯' 앉은 자신이 '한층 고결해진 느낌'을 만끽하는 다인이의 독백엔

그 진지함에 미안할 정도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래, 다인아...... 나도 너 같았을 때가 있었는데......

마치 고교시절 일기장을 읽으면 혼자 부끄러워지는, 바로 그 낯익은 느낌이다.

그 노을 안에 바뜨르가 나타나고 웃음을 나누며 꿈 같이 행복해하는 다인이.

이 쯤 되니, 나도 너무나 이쁜 바뜨르와 다인 사이에 아름다운 추억이, 인연이 생기길 소망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 말을 타다 얻은 부상이 심해진 바뜨르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고

허망하기만 한 다인이는 모래사막에 서서 신기루를 만난다.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보던 신기루가 사라진 순간, 엄마가 운다. 그리고, 모두 운다.

다인이도 이유를 모른 채 그저 운다.

여기서 1부, 다인이의 이야기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가 끝난다.

 

 

그리고 화자는 엄마로 바뀐다.

짠순이에, 아들바보에, 성깔도 꽤나 있는 무서운 엄마 숙희는 어떤 이야기들을 펼쳐낼지 궁금해진다.

야단치고 화를 내며 ?려놓고서도 잠든 다인이의 얼굴을 보며 30여 년 전 자신을 떠올리는 숙희.

바뜨르로 인해, 열여덟 살로 돌아간 듯 나이도 현실도 잊었었다 얘기하는 그녀에게서

모두들 '아줌마들의 주책'이라 흉보는 행동들이 감춘 서글픔을 다시 마주보게 된다.

여행을 앞두고 받은 자궁암 초기 진단,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기억이 숙희를 괴롭히고 있다.

엄마와 싸우고 미워한 기억 밖에 없기에, 그 이별이 아직도 숙희를 괴롭히고 있건만......

그녀는 아이들을 대할 때면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조급함 ?문에 아이들을 닦달하며 거리만을 쌓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수많은 엄마들의 대표인 듯한 숙희의 마음은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깝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조바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어 슬프다.

그러나, 힘없고 비굴한 인생의 견본인 듯한 가이드 니르구이의

"사람은 모두 죽잖아요."라는 한 마디 말은 숙희의 가슴에 얹힌다.

그럼에도 숙희는 자신을 굽힐 수 없다. 최선이라 믿으며 살아온 삶을 뒤엎을 순 없다.

열 다섯 살의 다인에게 사막은 우물을 감춘 곳이다.

꿈꾸는 자의 눈에 따라 서로 다른 꿈을 열어주는 '길 없는 길' '발 닿는 데가 곧 길'인 곳이다.

마흔 다섯 살 숙희는 100% 허상인 신기루에서 '실재하는 삶'을 찾으려 한다.

나, 나라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걸어온 시간이 가치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에 흔들리는 숙희의 눈물은

참 아프다.

그러나, 그 고통 끝에 숙희는 현실에 치여 살며 묻어두고 있었던 의문과 죄책감에 대한 답을 얻는다.

그리고 여행의 순간순간들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까닭은 그 모든 것을 딸과 함께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래, 이것이면 충분하다.

무엇이 신기루인지, 무엇이 길인지 알 수 없는 삶이라는 사막 속에서 함께해 주는 것.

그가 꾸는 꿈을, 그가 걷는 길을 믿어주는 것.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는 엄마의 딸이며, 새로운 모든 것들에 대해 탄성을 지르며 질문으로 하루를 채우는 딸의 엄마인 내게

용기와 위안을 준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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