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더스의 개 동화 보물창고 49
위더 지음, 원유미 그림,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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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랫만에 만난 <플랜더스의 개> 책 표지를 본 순간,

"먼 동이 터 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라는 노래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중 가장 슬픈 이야기,

'어떻게 동화가 이럴 수 있어?'하며 가슴 아린 결말을 마지막까지 믿을 수 없었던 이야기였건만,

그래도 그 노래가 '파트라슈와 함께 한 날들'의 행복을 되살려주어

긴 시간이 흐른 후지만, 마음을 다독여 주었던 것 같다.
 

 

책 표지 또한 둘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은 스틸 사진 같다.
 

 

포악한 주인에게서 학대받다 버려진 파트라슈를 지나치는 수백 명의 사람들...

'개가 죽어 가는 건 브라반트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거든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요.'라는 작가의 말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는 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근거도 없이 넬로에게 잔인한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코제씨,

자기 편의를 위해 하나가 되어 넬로를 내치는 마을 사람들,

세상에 혼자 남은 가엾은 아이를 쫓아내는 무자비한 집주인......

 

어쩌면 가난한 사람들이 같은 인간들의 이기심과 무자비로 인해 죽어 가는 건

길에서 개가 죽어 가는 것보다 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아무 힘도 없는 넬로를 지키는 건 꿈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꿈조차 가난한 이에게는 허황된 사치로 여겨졌을 뿐.

이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 안에 깃든 찬란한 빛을 보는 눈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차가운 세상, 등 돌린 이웃들에게 상처입은 넬로는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는 행운조차 외면해버린다.

눈보라가 쏟아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넬로.

 

어릴 때 이 동화를 읽었을 때엔 넬로가 바보 같다고,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모르고 성급한 절망에 빠져 죽음을 자초했다고.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다.

 

넬로에겐 현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순진무구했던 소년은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차갑고 잔인한 세상, 얼음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소년을 지켰던 따스한 사랑과 믿음이 남김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세상은 이제 우리 같은 건 필요로 하지 않아. 우린 외톨이야."

 

넬로의 마지막 말은

이 시대에 스스로 죽음을 단행하는 많은 이들의 마지막 마음과도 완벽히 겹쳐진다.

'사랑에 대한 보상도 없고 믿음을 이행하지도 않는 세상'을 떠난 둘을 보며

후회와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
 

 

닫힌 문 속에서 나만의, 내 가족만의 안위를 충족시키려 애쓰는 우리들이 있는 한,

세상은 그 때와 똑같이 차갑고 캄캄하게 존재할 것이다.

 

세상이 주지 않았던 사랑과 믿음을 준 파트라슈,

그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던 행복을 천국에서 누리고 있기를 기도하며

아이 때 느꼈던 슬픔과 분노보다는, 부끄러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넬로에게 안녕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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