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 보물창고 47
루이스 캐럴 지음, 황윤영 옮김, 존 테니얼 그림 / 보물창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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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진짜 시작은 이러하다.


 

30살의 영국인 수학교수가-여기서부터 반전이다! 근엄하기로 유명한 영국인에, 수학 교수라니!-

세 꼬마 숙녀와 뱃놀이를 나갔다가 지루해하는 소녀들의 무지막지한 횡포에 못 이겨......

 

가장 작은 깃털 하나도 날려 버리지 못할 만큼

숨결이 약한 이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다니!

하지만 다 같이 졸라 대는 세 혀 앞에

가련한 목소리 하나가 무슨 소용 있으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문)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인 앨리스의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만들어낸다.

"지금 바로 해 주셔요!""재밌는 말장난도 들어갔으면 좋겠어요!""그래서요?아, 이 땐 이랬으면 좋겠다!"

재잘거리는 세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려오는 듯,

이야기는 생생하고 발랄하다.

'이야기가 바닥나고 상상의 샘이 말라 지친 이야기꾼이 이제 그만하려고 넌지시 "나머지는 다음에."하고 말을 꺼내면 "지금이 다음이에요!"하고' 채근하는,

만화가들이 가장 두려워 한다는 데드라인보다, 출판사 독촉전화보다 더 사정 봐 주지 않는 아이들 덕분에

루이스 캐럴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상상 이상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 또 어린이였던 이들은 이 세 소녀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루이스의 따뜻하고 연약한 마음에......


 

양복 입고 말하는 토끼를 따라

어떻게 다시 밖으로 나올 것인지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굴속으로 뛰어들어간 앨리스가 겪는 모험.

별 생각을 다하고, 혼자 수다를 떨다 꾸벅꾸벅 졸면서 지루하게(!) 떨어져내려가는 이 첫등장부터

'이상한 나라' 못지 않게 앨리스도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상함'이 여전히 이 이야기에 매혹되는 우리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임도.

잘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누가 알면 큰일날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혹시, 안 그러신 분도 있나요? 있으면 말고!)

그 다음 이야기들은 모두들 알 것이다.

몸이 작아졌다 커졌다 다시 작아졌다 하며, 자기 눈물에 빠져 죽을 뻔 했다가

기이한 동물 무리들과 직접 해 보아도 절대 알 수 없는 '코커스 경주'를 하고,

모두가 승자라는 도도새의 심판에 상으로 사탕을 나눠 주고,

(그냥 나눠주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재밌고 맛있게 먹는 법 같다. 한 번 써먹어볼까?)

흰토끼 집에 갇혔다가 버럭쟁이 쐐기벌레(키 때문에 화내는 걸 보니 분명, 남자 쐐기벌레다!)를 만나

키를 조절할 수 있는 마법의 버섯조각을 얻고,

공작 부인의 아기를 떠맡았다가 아기가 돼지로 변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끔찍하게 못생긴 아이보다는 잘생긴 돼지로 사는 게 낫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하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길고 복잡하게" 교훈을 읊어댈 수 있음을 자랑하는 공작 부인,

모든 게 상상이라고 단정짓는 그리핀, 도대체 뭐가 어떻게 가짜인지 알 수 없는 가짜 거북까지 만나고

조금만 맘에 안 들면 닥치는 사형 선고를 내리는 여왕이 "저 애의 목을 쳐라!"를 외치는 절대절명의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참 익숙한 이야기인데도 이렇게 되짚어보니 여전히, 아니 지난번보다 더, 더 이상하다.


 

이 완역본에서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 모든 버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지 못했던 부분이 나온다.

바로 앨리스가 멋진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며 차를 마시러 달려간 후,

그 자리에 남아 앨리스의 멋진 모험 이야기를 생각하며 얼핏 꿈을 꾸기 시작하는 앨리스 언니의 이야기다.

눈을 감고 앉아 앨리스가 만났다는 이상한 생물들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와 있다고 반쯤 믿게 되지만,

'다시 눈을 뜨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단조로운 현실로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 언니.

아이와 어른 사이의 자리에 서 있는 듯한 이 언니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 아닐까 싶다.


 

또, 앨리스가 장차 자라서 어떤 여인이 될지,

성숙해진 후에도 어린 시절의 순진하고 사랑스런 영혼을 어떻게 간직해 나갈지를 그려 보는 그 마음은

루이스 캐럴의 마음, 모든 부모의 마음이며 그 어떤 멋진 꿈보다 더 멋진 꿈일 것이다.

이 이상한 나라 이야기가 지금 곁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앨리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길,

어떤 이상한 나라보다도 더 황당한 일과 미친 사람들이 많은 현실세계 속에서도

"정말 이상한 일도 다 있어!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게 이상하니까."하고 대응하는 앨리스처럼

당당히 제 갈 길을 걸어가길.

"걷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되어 있는 법이니까."

걷다 보면!


<기억에 남는 한마디>
"정말 이상한 일도 다 있어!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게 이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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