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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웨어 ㅣ 에프 모던 클래식
닐 게이먼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네버웨어>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단어.
장소를 가리킴과 동시에 어떤 장소도 가리키지 않는, '모순'의 단어이다.
제목을 들었던 첫순간부터 강력한 끌림을 느낀 건 내 안에 흐르는 모험가의 피 때문이었을까?
십 년도 전에 흰 표지에 명랑 만화체의 삽화가 그려진 책 속에 담긴 이 이야기를 읽었었는데,
이제 먹빛 표지에 빅벤의 시계와 가로등들만이 어둠을 밝히는 '네버웨어'를 만난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피투성이의 소녀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핀 어느 날 밤 이후,
대도시 런던의 촉망받는 젊은 투자분석가 리처드 메이휴의 평탄한 삶은 무너져내린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하고, 직장도 집도 사라져버린다.
'어디에도 없었던 사람'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절망한 그는 '도어'라는 이름만으로 소녀를 찾아헤매다
그녀의 세계...지하의 세계로 들어서고,
인생을 다시 찾고 싶은 열망으로 그녀의 모험에 동행한다.
지하 세계는 그가 '절대로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 것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절대로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로 변해간다.
세상에선 멀쩡한 어른이었지만 유약했던 그는
고통을 견디며, 배신당하고 용서하면서 성숙해진다.
리처드는 가지 말고 곁에 있어 달라는 도어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내가 속한 런던'으로 돌아오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인 현실' 속에서 "이건 진짜가 아냐."라고 스스로 깨닫는다.
그리고, 그가 절망감으로 골목길 벽돌 벽에 그린 문이 열린다.
좋은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새롭다.
알고 있는 줄거리이건만, 500페이지가 넘는 책은 처음 같이 나를 신나게 했다.
지하 세계의(지붕 위 세계의 베일리 영감도 포함해) 모든 이들은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 순수하다.
베일리 영감이 얘기하듯, 지금 현실 세계는 '더 이상 삶을 위한 곳'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다.
출구 없는 전쟁터 같은 현실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선
도어의 아버지가 도어에게 가르친 사물 여는 법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네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든 사물은 열리고 싶어 한다는 거야."
삶에서 우리가 가장 절망하는 순간들은
'답이 없어.'라던가 '어떡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라는 결론에 부딪히는 때일 것이다.
그런 때, 이 가장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내길.
당신을 폐소공포증에서 구해줄 테니.
이 작품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흥미로운 인물인 카라바스 후작은
'닐 게이먼'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휠체어를 타고 오는 것마저도 엉뚱하고 모험과 스릴로 가득한 일처럼 보이게 하는' 희한한 사람!
속편을 쓰지 않는 작가가 후작에 대한 번외편까지 쓴 걸 보니,
분명 그 자신이 알든 모르든 그게 맞다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