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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비명 - 정이담 장편소설
정이담 지음 / 아작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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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 불신을 배우며 자란 두 아이들이 그 운명보다 비정한 사회에 부딪히며 또 자신들을 보호하는 사랑을 믿게 된다…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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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상상놀이터 2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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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영화들을 피하게 되었다.

너무 현실적인...무서운 영화.


그런데, 이건 처음이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무서운 이야기.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는, '미래'


상상은 해 보았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들에 경악했었다.

핵실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러다가 어쩌려고 그러나?'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그 의미에 대해서는 피하며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그러고 있다.



아빠는 항상 "도대체 우리가 그 문제를 두고 뭘 할 수 있겠니?"하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었다.

또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평화를 보장해 줬다는 사실을 지치지 않고 이야기했다.

아빠는 대부분의 다른 어른들처럼 편리함과 안락함이 가장 중요했고,

아빠와 그들 모두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p.215)




양쪽 다리를 모두 잃고 유모차에 실려 다니는 안드레아스는 "천벌 받을 부모들!"이라고 벽에다 쓴다.

보살펴 주던 아이들이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어 혼자가 되자, 아이는 마지막 힘을 내어 목숨을 끊으려 한다.


"너, 내가 이런 비참한 꼴로 계속 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니? 이건 더 이상 삶이 아니야. 제발!"     (p.151)


열 세 살의 롤란트는 그 아이의 죽음을 돕는다.

그것 밖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차라리 죽어버렸었다면.'

모든 이들이 그렇게 되뇌일 것이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모두 가 버렸다면 차라리 행복했으리라.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갈증과 출혈에 시달리고, 물도 땅도 오염되어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없어 굶어 죽고,

사람들은 살아남고자 서로의 것을 훔치고 빼앗고, 살겠다는 이유로 때리고 죽이기까지 한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거나 목발을 짚고 다니고, 눈이 멀었거나, 말을 못 하는 아이들은 밤마다 나쁜 꿈에 시달린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은 기형아 아니면 장님, 농아 아니면 저능아......희망이 없다.


엄마도, 누나도, 동생도, 새로 내어난 아기도 모두 죽고 아이들을 모아 수업을 시작한 롤란트의 아빠 얼굴에

한 남자아이가 분필을 던지며 "당신은 살인자야!"하고 소리를 지른다.


"살인자!"

이 이름은 지금 우리 모두의 이름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핵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눈 감고 나의 세대는 안전하게 지나갈 거라 믿고 싶어 하니까.


이 책이 처음 쓰인 1983년으로부터 30년도 더 흘렀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노력했고 결실을 보았는가?


나는 이 책이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다.

극사실적으로, 피폭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 아이들이 어떤 미래를 맞게 될지... 냉정하게 보여 주었으면 한다.

핵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핵을 이용해 권력을 쥐고 흔드는 국가 지도자들이

자기 자식이 피폭당하는 모습을 악몽으로 꾸길 바란다.

너무 끔찍해서 난 끝까지 볼 수 없을 테지만, 우리 모두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짓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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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상상놀이터 2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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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이들에게 `살인자`라고 불리는 미래가 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 한다...이건 소설이 아니다,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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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클래식 보물창고 35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아영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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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의 작품들과 천재성, 특히 삶에 대해선 

다른 어떤 작가에 비교해도 더 자세할 정도로 알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많은 일본 작가들이 그에 대해 - 무한한 경외심을 담아 - 언급해 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속내를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그리운' 아버지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그대로도 영화의 한 소재로 차고 넘칠 듯한 그 충격적이고 우울한 삶의 행적이

오사무의 작품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틀림없이, 그를 잡아먹은 우울과 허무가 나까지 물들일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인간 실격'을 펼쳐든 것은 나로선 꽤나 큰 '전기'인 셈이다.

어쩌면 마흔을 바라보는 시간에 서니-내 삶의 시간이 그의 일생보다 길어지고 나니-

조금은 '내 삶의 뿌리'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일 수도 있고.



제목만으로도 참 무섭다.

'인간 실격'이라니.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인간 밖에 될 수 없는데, 인간도 될 수 없다니...


다자이 오사무의 자기 이야기는 의외로...슬프다.

한없이 슬프다.


웃음이 아닌 웃음을 짓는 아이,

살아 있는 인간의 느낌이 들지 않는, 괴이한 미모의 남학생,

어떤 표정도, 인상도 없어 오싹하고 기분 나쁜- 나이도 전혀 알 수 없는 - 남자.

이 세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 유명한 문장...

'수치스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가 등장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은 완전히 낯설다.

'저에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혹스럽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행복에 대한 관념과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념이 완전히 어긋난 듯한 불안 때문에

매일 밤 전전긍긍하며 신음했고, 미칠 뻔하기까지 한 이 남자.

어릴 적부터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 왔지만, 항상 삶이 지옥 같았던 남자.

주변 사람의 괴로움, 사람들의 생각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기에 대화가 두렵고 인간이 두려워

인간을 향한 최후의 구애였던 '우스갯짓'으로 자신을 감췄던 아이는

어느새 한마디도 진심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쨋든 그들,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우스갯짓을 서비스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존법을 익혀나가는 아이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처참할 정도로 슬프다.

그러나, 내가 그 아이의 부모고 형제였다 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을 모른다고 하는 아이는, 하지만 너무나 영민하다.

'서로 속이며, 게다가 모두 다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서로 속인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한,

실로 훌륭한, 그야말로 맑고 밝으며 명랑한 불신의 예가 

인간 생활에 충만한 듯이 여겨집니다.'라는 어린 시절의 깨달음엔 

우린 아무렇지도 않게 감수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추악함'이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너무나 어릴 때 알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하며 오묘한 비법'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생을 몸부림치게 된 것이다.


그에게 인간은 늘, '무섭지만 보고 싶은' 존재이다.


하지만,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가던 그에게도 낙원은 있었다.

'무구한 신뢰심'으로 삶을 밝혀주었던 요시코.

그러나, 그 아내마저도 신뢰로 인해 더럽혀지고, 요조는 완전히 망가진다.


세상이 보기에

요조는 어려움 없이 자라, 너무 의존적이고, 유약하고, 여자들을 이용하고, 술과 약에 취한

정말 '구제불가능한 폐인'이다.

그러나, 다시 보면

구제 못할 것은 세상이고, 망가진 것은 '인간'이다.

요조가 그렇게 이해하고 싶고, 할께하고 싶었던 '인간'.


요조의 죄는 단지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다는 것뿐.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은 여기서 주어가 바뀐다.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거짓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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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 갈색 눈 -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
윌리엄 피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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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열 살 된 아이들의 교실이 '세계의 축소판'이 된다.

그저 '친구'였던 아이들이 눈 색깔을 기준으로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조용하고도 잔인한 사냥이 벌어진다.

인간의 천적은 인간이다.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의 우월감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적만으로도 충분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한다.

그것도, 그럴싸한 명분을 붙여 대의라는 이름으로......주위의 사람들까지 끌어들여서...

'악마 같다'라는 형용사를 쓸 만한 생명체는 오직 인간 뿐일 것이다.

양심이란, 도덕성이란......

인간이라는 종이 멸망하지 않도록 신이 주신 최대의 무기였을 터인데,

개체로서의 인간은 오직 자기만을 생각한다.

어쩌면, 모든 생명의 천적이며 악성 바이러스인 인간.

이 사실 그대로를 담아낸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악을 선택하고 선을 잊는지를,

아니- 극도로 이기적인 선악의 기준을 얼마나 아무 거부감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라는 것이

그런 편견과 차별을 규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고 복제생산하여 대물림하고 있음을,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서운 제 2의 본능을 숙주로 삼아 인류 전체를 잡아흔들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흑인 여성으로 사는 게 어떤지 당신은 몰라요. '내 말 좀 들어줘요. 내 견해도 들을 만한 거예요. 이봐요, 내가 지금 제공하려고 하는 것도 꽤 괜찮다고요.'라고 날마다 주장하고 말해야 하는 삶이 어떤지 모른다고요, 그리고 누구도 우리말을 들으려 하지 않죠. 왜냐하면 늘 백인이 옳으니까요. 세상일이 그래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차별 워크숍에서 한 흑인 여성이 내놓은 대답은 우리 모두를 침묵하게 한다.

우월한 인자(?)로 대접받아온 백인에게 인종차별은 지나간 과거이자 그들과 상관없는 일이지만,

흑인들은 피부색 때문에 여전히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악해질 수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쉽게 '안다'고 말하는가?

이미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편견과 아집들을

이유가 있으며 일반적인 것이라는 명목으로 덮어두는 것을 그만두고

제대로, 직면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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