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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클래식 보물창고 35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아영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5월
평점 :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의 작품들과 천재성, 특히 삶에 대해선
다른 어떤 작가에 비교해도 더 자세할 정도로 알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많은 일본 작가들이 그에 대해 - 무한한 경외심을 담아 - 언급해 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속내를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그리운' 아버지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그대로도 영화의 한 소재로 차고 넘칠 듯한 그 충격적이고 우울한 삶의 행적이
오사무의 작품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틀림없이, 그를 잡아먹은 우울과 허무가 나까지 물들일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인간 실격'을 펼쳐든 것은 나로선 꽤나 큰 '전기'인 셈이다.
어쩌면 마흔을 바라보는 시간에 서니-내 삶의 시간이 그의 일생보다 길어지고 나니-
조금은 '내 삶의 뿌리'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일 수도 있고.
제목만으로도 참 무섭다.
'인간 실격'이라니.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인간 밖에 될 수 없는데, 인간도 될 수 없다니...
다자이 오사무의 자기 이야기는 의외로...슬프다.
한없이 슬프다.
웃음이 아닌 웃음을 짓는 아이,
살아 있는 인간의 느낌이 들지 않는, 괴이한 미모의 남학생,
어떤 표정도, 인상도 없어 오싹하고 기분 나쁜- 나이도 전혀 알 수 없는 - 남자.
이 세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 유명한 문장...
'수치스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가 등장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은 완전히 낯설다.
'저에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혹스럽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행복에 대한 관념과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념이 완전히 어긋난 듯한 불안 때문에
매일 밤 전전긍긍하며 신음했고, 미칠 뻔하기까지 한 이 남자.
어릴 적부터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 왔지만, 항상 삶이 지옥 같았던 남자.
주변 사람의 괴로움, 사람들의 생각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기에 대화가 두렵고 인간이 두려워
인간을 향한 최후의 구애였던 '우스갯짓'으로 자신을 감췄던 아이는
어느새 한마디도 진심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쨋든 그들,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우스갯짓을 서비스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존법을 익혀나가는 아이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처참할 정도로 슬프다.
그러나, 내가 그 아이의 부모고 형제였다 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을 모른다고 하는 아이는, 하지만 너무나 영민하다.
'서로 속이며, 게다가 모두 다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서로 속인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한,
실로 훌륭한, 그야말로 맑고 밝으며 명랑한 불신의 예가
인간 생활에 충만한 듯이 여겨집니다.'라는 어린 시절의 깨달음엔
우린 아무렇지도 않게 감수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추악함'이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너무나 어릴 때 알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하며 오묘한 비법'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생을 몸부림치게 된 것이다.
그에게 인간은 늘, '무섭지만 보고 싶은' 존재이다.
하지만,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가던 그에게도 낙원은 있었다.
'무구한 신뢰심'으로 삶을 밝혀주었던 요시코.
그러나, 그 아내마저도 신뢰로 인해 더럽혀지고, 요조는 완전히 망가진다.
세상이 보기에
요조는 어려움 없이 자라, 너무 의존적이고, 유약하고, 여자들을 이용하고, 술과 약에 취한
정말 '구제불가능한 폐인'이다.
그러나, 다시 보면
구제 못할 것은 세상이고, 망가진 것은 '인간'이다.
요조가 그렇게 이해하고 싶고, 할께하고 싶었던 '인간'.
요조의 죄는 단지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다는 것뿐.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은 여기서 주어가 바뀐다.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거짓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