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대 비극 ㅣ 동화 보물창고 57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저, 메리 램.찰스 램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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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 대해서, 문학에 대해서 관심이 전무한 사람일지라도

'셰익스피어'의 이름과 '4대 비극'의 존재는

영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사후 400년이 되어가는 그가 남긴 37편의 희곡들 중

1606년에서 1606년 사이에 쓰여진 4편의 비극은 그의 최고걸작으로,

각기 완성된 독자적 비극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아직도 인간 안에 영속되고 있다.

 

보물창고에서 새로이 출간된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표지는

죽은 딸 코델리어를 무릎에 누이고 슬퍼하는 리어왕의 모습이다.

선의 표상이라 할 코델리어의 죽음이 담긴 그림은

' 이 세상에서 순수함과 효심이 언제나 성공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

'끔찍하지만 진실(p.61)'인 것을 이야기함이

셰익스피어 극의 영원불멸한 생명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첫번째 비극은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연극으로서 불후의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자신이 문학사상 드물게 신화적 존재가 되어버린 드문 경우에 속하는 '햄릿'이다.

 

 

아버지의 변사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재혼,

의심했던 추악한 진실이 확인된 순간부터 계속되는 고뇌는

지혜와 용맹, 모든 미덕을 갖춘 왕자 햄릿을 나락으로 굴러 떨어뜨린다.

 

복수를 결심하고 해야 할 일임을 알지만, 그 또한 간단하지가 않다.

현재까지도 어떤 전문가도 설명하지 못한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지극히 복잡하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있는 분노, 나약함과 두려움에 맞닿아 있다.

 

 

여기서 '햄릿'의 팬으로 안타까운 한 가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문장인 "To be or not to be"를 "사느냐, 죽느냐'"로 번역한 것은

문학사상 가장 끔찍한 오역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be'는 '존재하다'는 의미 그대로이며,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받아도 참고 견딜 것인가?
아니면 밀려드는 재앙을 힘으로 막아, 싸워 없앨 것인가?'라는 독백으로 이어져

'어떻게 한 인간으로 존재할 것인가?'라는 인간 심연의 문제를 담고 있다.


 

두번째 비극 '리어 왕'은 아주 흥미진진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만큼 왕국을 나눠주겠다'는 생각으로 세 딸을 불러모은 브리튼의 왕 리어.

 

 

아버지에게서 땅을 빼앗겠다는 욕심으로 있지도 않은 마음을 꾸며대는 두 언니와

'최선의 행동은 침묵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진실만을 담은 소박한 고백을 하는

막내딸 코델리어.

그러나, '망령이 이성을 덮어버려 아첨과 진심을 구분할 수조차 없게' 된 리어 왕은

격분해서 코델리어를 홀홀단신으로 쫓아내듯 프랑스 왕에게 시집보내고,

왕국을 반으로 나누어 두 언니에게 준다.

 

'권력이 아첨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 명예는 이미 사라졌다.'(p.43)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딸들의 행동은 삽시간에 돌변한다.

 

 

그가 한때 왕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일한 위엄인 기사단을 포기하길 종용하는 두 딸.

충격과 배신감으로 미쳐 폭풍우 속을 헤매는 리어 왕.

 

미사여구에 마음에 빼앗기고, 눈에 보이는 것들에 속아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리어왕의 어리석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리라.

또, 이렇듯 무서운 '말의 힘'을 알기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진실 그대로를 말하지 않는

딸들의 비열함과 거짓됨 또한

우리가 살면서 배워가는 '나쁜 것'이리라.

우리 안에 공존하는 선과 악, 그리고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뼈아픈 대가를 통해

진정한 지혜란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진실 없는 마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비극이다.

 

세번째 비극 '맥베스'는

선한 인간이 악마로 변하는 덴 많은 것이 필요치 않음을 보여주는 극이다.

 

왕의 가까운 친족으로 전쟁마다 용맹을 떨쳐 모든 이의 존경을 한몸에 받아온

훌륭한 장수이자 고귀한 성품의 사나이, 맥베스.

코도르의 귀족이 되리라는 마녀들의 첫번째 예언이 이루어지자,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거라는 두번째 예언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희망이

그의 마음 속에 거대한 뱀처럼 또아리를 틀기 시작한다.

 

 

 

이렇게도 간단히, 그는 파괴되기 시작한다.

야심에 불타는 맥베스의 아내는

'평생 매일같이 권력을 누릴 수 있는 대가치고 하룻밤의 노력이 얼마나 짧은지!(p.72)'하며

자신의 성에 묵은 왕 던컨을 살해하도록 종용한다.

그리고, 왕관과 함께 찾아온 끔찍한 악몽의 포로가 된다.

 

인간이 고귀함을 포기하는 순간, 이미 괴물이 된다는 것을

짧고도 간결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지막 비극의 주인공 '오셀로' 또한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검은 피부의 무어인이지만, 용맹한 군인으로 고귀한 성품을 가진 오셀로는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 데스디모나의 사랑을 얻어 결혼한다.

그들이 행복의 절정에 있는 이 때,

교활하고 사악한 부하 이아고는 사악한 의도로

오셀로의 마음에 교묘하게 질투와 의심의 씨앗을 뿌린다.

충성스럽고 선한 친구인 카시오와 데스디모나의 사이를 의심하고, 확신하게 된 오셀로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리다

사랑과 신의를 저버린 악한 여인에 대한 처단으로 그녀를 살해하고,

그 직후에 진실을 알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끊는다.

 

선한 이들을 괴롭히고 끝까지 몰아가는 악의 힘과 성질에 치를 떨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쉽게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진정한 믿음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삽화들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셰익스피어 극들의 고뇌와 비운은

숱한 화가들에게서 아름다운 그림들을 태어나게 한 산실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비극들이 이렇게 오래도록, '영원히 새로운'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주인공들이 살아내는 고통과 슬픔이

모든 인간이 '인생이라는 극'을 통해 겪는 것들에 닿아 있기 때문이며,

비극의 원인이 되는 그 탐욕과 거짓, 추악한 마음들에

우리가 여전히 때로는 휘둘리고, 때로는 상처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중하고 복잡미묘한 문체가 버거운 셰익스피어극을 쉽게 풀어 쓴 램 남매의 이 작품이

인간의 심리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지혜와 우리 아이들이 인사하는

뜻깊은 '첫만남'이 될 듯 하다.

 

생의 어떤 순간에든 "To be"를 선택하는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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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비밀의 방 - 제10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ㅣ 푸른도서관 55
조규미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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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얼굴을 한 두 소녀...

그들의 감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젠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아요."하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 속엔 우리 시대 아이들의 네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우리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펼쳐보기 전엔 왠지 심호흡이 필요한 느낌이다.

우리 사회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이들의 사회니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다.

어쩌면, 눈 감고 있는 이들은 여기 소녀들이 아니라, 우리인 건지도..




<열다섯, 비밀의 방 (장 미)>속 담임 선생님처럼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조금만 독한 마음을 먹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말씀으로

모든 것을 '네가 조금만 더 잘 하면 되는 일'로 치부하고,

자신은 발을 빼 버리는 비겁한 어른들의 모습.



현실에서 발 붙일 데 없는 화진이는 겉도 속도 자신과 똑같이 닮은 연아라는 친구를 만나고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고독했는지를 비로소 느끼게 된다.

짐작한 대로, 연아는 화진이의 환상이다.

혼자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마음이 보낸 구원군.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무관심하고 이해할 마음도 없는 사람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느끼는 어른들,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의지할 데가 없는 아이들은 '나의 패거리'만을 믿는다.

이 책에 첫번째로 실린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조규미)>에서처럼,

총을 들고, 내 편에 찾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게 되는 컴퓨터게임이

아이들의 현실이 된다.

'그림자와 놀면 그림자가 된다. 그래서 아무도 그림자와 놀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냥 그것이 아이들 사이의 규칙이었다. 학교에 들어갈 때 운동화를 실내화로 갈아 신듯이.'

그냥 그것이 규칙이기에, 아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단결력과 정보력, 힘'에 스스로 감탄하는 아이들에게 죄책감은 없다.

친구도 없다.

자기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하찮은 존재.

'그저, 이렇게 되었을 뿐'이라고 읊조리는 이야기에...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진짜 '나쁜 애'라고 할 수는 없는 '나'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려온다.

답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은 이미 다른 세상에 있는데.

무거워진, 무서워진 마음에 햇살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마마보이와 바리스타(심은경)>는 제목부터 즐겁다.

밝고 굳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지평이의 이야기는

달콤쌉싸름한 커피 향기과 함께 마음을 데워준다.



그저 멋대로, 불성실한 아이가 아니라 주관이 뚜렷한 아이...

고압적인 선생님에게 자신의 의견을 밝힐 줄 알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다해 스스로를 증명할 줄 아는 의지력 강한 지평이는

'마마보이' 모범생으로 살짝 재수없고 삐딱한 진우까지 변하게 한다.

작품 마지막에 퍼져 나가는 웃음 릴레이가 우리 아이들의 일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안녕하세요, 그에게 인사했다(김한아)>는 자신의 성 전체성을 깨닫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것을 밝히고 이해받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나로선 우리 나라 청소년 소설에서는 처음 접하는 소재였는데,

실제로 이런 청소년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주인공처럼 스스로에게 인사할 수 있는 당당함과 솔직함이

그들에게 큰 힘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편의 이야기에 마음 졸이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즐겁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밀의 방', 냉혹한 규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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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200가지 - 초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ㅣ 동화 보물창고 56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민예령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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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세계는 '멘토의 시대'를 맞고 있다.

끝 간 데 없이, 어떤 불가능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긴 긴 시간을 달려온 인류는

어느 순간, 허무함과 혼란이라는 공통의 병을 앓게 되었고...

애타게 '스승'을 찾는다.

 

눈을 밝게 해 줄, 길을 열어 줄 빛을 찾는다.

 

'이솝'이라는 정다운 이름을 오랫만에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이

이 '멘토'라는 단어였다.

<탈무드>와 함께, <성경> 다음으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었다는 그의 우화들.

2,500여년 전의 이야기가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전해져 내려온다는 사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빛을 발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 지혜를 웃음과 함께 전해 주는 이 엄청나게 늙은(?) 멘토를

희한하게도,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만난다.

 

 

 

 

'단 한 장면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고 정평이 난 전설의 일러스트레이터 아서 래컴의 삽화가

이솝의 이야기들에 극적인 묘미를 더해 준다.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인, 표정이 살아 있는 이 삽화들은

그의 우화들을 하나하나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이 책에 실린 이솝 우화들은 가장 긴 것들이 겨우 한 페이지 남짓하다.

짧은 것은 4,5줄에 지나지 않을 정도.

그렇지만, 하나하나 "아하!"하고 머리를 탁 치게 만든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많은 동물들이나 사람들은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안일하거나 이기적인 마음, 욕심, 부도덕함을 꼬집는다.

 

 

 

픽 웃고선, 바로 그 다음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게 된다.

지혜의 시대, 고대 그리스에서 힘 없는 노예로 태어났지만

어떤 귀족도, 현자도 무시할 수 없었던 이솝의 '촌철살인'의 무시무시한 위력이 이것이다.

 

 

이솝이 괴물처럼 흉측스러웠다고 전해져내려오는 것은

어쩌면 그의 이야기들 중 많은 부분이 '내적인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어서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보이는 것, 가진 것, 외적인 아름다움, 피상적인 현실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그는 마음껏 꼬집고, 꾸짖고 있으니까.

 

 

 

눈에, 말에 속아

진실로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 시대에 이렇게도 우리가 힘들고 외로운 것은

우리를 속이는 것들이 그만큼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즐겁게 웃기도 하고 통쾌해 하는 와중에, 마음 속 빛이 될 이 이야기들로

2500살 먹은 무지무지하게 늙고, 무지무지무지하게 지혜로운 이솝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

 아마, 나이를 먹을수록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이 나날이 새롭게 귀에 들어오겠지.

 

'초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이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꼭 읽어야 할' 이솝 우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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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클래식 보물창고 15
헤르만 헤세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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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과 새, 그리고 아프락싸스...

이 셋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어설프지만 치열했던 첫번째 '방황과 고독'의 동의어인 듯

제목만으로 마음 한 켠을 건드려 싸르르 아파오는 이름.

 

이 책을 읽었던 것이 20년도 더 전이었다.

뭔가 멋있고 깊이 있다는 느낌,

잘 모르겠지만 끌리는...그런 책이었다.

 

'데미안' 같은 이를 만나고 싶어서

그 이후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나의 데미안 아닐까?'하며 설레였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피어나는 작은 꽃송이들이 하늘을 수놓은 표지이다.

하얀 꽃들이 약해 보이면서도 아름답다.

닮은 듯 저마다 분명히 다른 꽃송이들을 보며

'이 그림은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하는 고민이 든다.

다른 책이 아닌, '데미안'이기에 이런 것이겠지.

 

 

밝고 올바른 세계에 속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존재하는 어둡고 금지된 세계를 감지하고 끌리는 

열 살의 싱클레어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은 거짓말로부터 시작되어 빛의 세상에서 멀어지고 괴로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악의에 찬 웃음으로 자신에게 속아넘어가는 아버지를 경멸하기도 하는 싱클레어.

내가 겪었던 사춘기도 이런 것이었던가?

 

 

  헤르만 헤세는 우리가 겪었던 이 혼란스러웠던 시간을

'죽음과 새로 태어남을 딱 한 번 체험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새로 태어남'은

우리가 사랑하게 된 모든 것, 우리가 속한 모든 것에 결별을 고하고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싱클레어가 되뇌이는 한 마디는

우리가 걷고 있는 삶이 왜 이렇게도 고통스럽고 공허한가에 대한 답인 것 같다.

 

'아, 오늘에서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꺼림칙하고 마음 내키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두 세계 사이에 갇혀 있는 싱클레어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두 세계가 아닌, 다른 길도 있음을 알려주는 데미안.

 

 

 

 

그리고, 데미안이 열어준 길로 걸어가기 시작한 싱클레어는

 두려움과 경외감 속에

'더는 어린아이의 상태로 있으면 안 되며 스스로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다시 허망하고 방탕한 생활 속에 자신을 몰아넣지만

그 속에서도 애써 외면할 뿐,

그 때의 깨달음을 잊지는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이상'을 찾고 그것이 길이 된다.

 

 

 

 

싱클레어를 구원한 것은 '빛'이다.

다시금 '빛'을 원하게 된 것.

그러나, 그것은 그가 그저 처음에 속해 있었던 '밝음'이 아니라,

스스로 내는 빛.. 스스로 만들어갈 길을 비추는 횃불이다.

 

 

 

오랜 시간 뒤 만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가 주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는

그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다.

 

 

'그 길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힘들기만 한 것이었을까?

아름답지는 않았던 걸까?'

 

 

'어머니'란 이름의 에바가 주는 이 이야기는

끝없는 탄생을 거듭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 모든 인간에게 주는

신의 메세지일 것이다.

'꿈'이라는 열쇠가 우리의 길을 힘들지만 아름답게 할 것이라는.

 

 

다시금 '데미안'을 읽는 순간 순간, 싱클레어가 겪는 그 시절들로 함께 돌아가는 것 같았다.

헤르만 헤세는

우리가 살아왔으면서도 지나쳤던 '삶'을

어쩌면 이렇게 맑고 날카로운 눈으로

거울에 비춘 듯 다시 펼쳐낸 것일까?

 

데미안의 눈에, 우리는 대부분 아직 어린아이일 것이다.

아니, 영원히 어린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를 가두고 있는 세계는 무엇일까?

나는 과연 '나'로서 살고 있는 것일까?

 

 

끝없이 꿈꾸고 찾는 것,

그것이 삶이라고

그러니, 절망도 방황도 당연한 것이며 아름답다고

데미안이 다시 한번 나에게 말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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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ㅣ 동화 보물창고 55
마크 트웨인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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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와 '마크 트웨인'을 전혀 연결짓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신랄한 풍자와 날카로운 지성, '언중유골'의 대명사인 그가 허클베리와 톰 소여의 아버지인 줄은 알았지만,

'왕자와 거지'의 작가인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상위 0.000001%의 삶을 사는 왕자와 저 밑바닥 인생을 사는 거지 소년이 맞바꿔지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거의 '전래동화'처럼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수많은 버전의 변주에도 녹슬지 않는 재미를 간직한 채로, 늘 우리를 동화시키면서 말이다.

그것은, '지금의 내 것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문학 자체'의 전제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닮았다 한들, 그저 옷을 바꿔 입었다는 것만으로

몇 년을 한결 같이 보아온 왕자의 위엄을 못 알아본다는 사실은 조금 억지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외면에 속는 것이 인간의 약점임이 더 진실에 근접한 것이리라.

 

한 순간에 왕자로 오해받고 당황하며 한사코 자신이 거지 소년이라고 주장하는 톰에 대한 의혹을

"그가 사기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자기 스스로를 왕자라고 주장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그래, 그게 타당하겠지.

하지만 왕을 비롯해 궁중의 모든 이들이 왕자라고 불러주는데 왕자로서의 위엄을 거부하고 아니라고 반박할

그런 사기꾼이 어디 있겠어? 전혀 없어!" (p.61)

하고 스스로 털어내며 장담하는 왕족 하트퍼드 경의 논리는 참으로 현실적이면서 아이러니해 실소를 터트리게 한다.

'왕자'이기를 거부할 인간은 없다고 단언하는 고귀한 세계의 논리.

 

어릴 때 동화책으로 읽었을 때엔 거지로 갖은 고난을 겪는 왕자의 불행이 '올리버 트위스트' 못지 않게 가련했건만,

지금 다시 읽으면서는 '왕자'로 환골탈태하는 톰의 고초 또한

그 품격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왕자에 못지 않은 '고통의 여정'이다.

마크 트웨인이 두 페이지에 걸쳐 극사실적으로 서술한 '옷 입히는 의식'은

읽는 사람까지 온 몸이 근지러울 정도로 넌더리가 난다.

 

이 작품에서 실로 거지의 몰골을 하고 있으면서도 진정한 '왕자'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이는 귀족 헨든이다.

그의 따뜻한 마음과 의연함, 용기는 그와 마주치는 내내 나를 감동케 한다.

왕자 에드워드에게 이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한 여정을 감수시킨 작가가 마련한 위로이며 '평생의 선물'이

이 '꿈과 그림자 왕국의 유령 기사'가 아니었나 싶다.

한편으론, 마크 트웨인이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한 인물 같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다시 맑게 걷힌 진실을 만나는 것이다.

꿈과 그림자 왕국은 사라진다.

아니, 꿈과 그림자가 사실은 꿈도, 그림자도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젊은 왕이 된 왕자는 궁중 밖의 삶과 진실을 알았기에 지혜롭고 따뜻한 성정을 베풀게 된다.

두 소년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것도, 무사히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실은 별 대단한 환상은 아니다.

현실을 사는 나에게 이 '왕'이야말로 엄청난 환상이다.

스스로 태양이면서도, 그림자를 알고 보듬는 왕.......

'거지'로 살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아는, 그저 행운으로 '왕자'로 태어난 것임을 아는 통치자.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왕자와 거지'는 또다른 새로운 꿈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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