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 동화 보물창고 55
마크 트웨인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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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와 '마크 트웨인'을 전혀 연결짓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신랄한 풍자와 날카로운 지성, '언중유골'의 대명사인 그가 허클베리와 톰 소여의 아버지인 줄은 알았지만,

'왕자와 거지'의 작가인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상위 0.000001%의 삶을 사는 왕자와 저 밑바닥 인생을 사는 거지 소년이 맞바꿔지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거의 '전래동화'처럼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수많은 버전의 변주에도 녹슬지 않는 재미를 간직한 채로, 늘 우리를 동화시키면서 말이다.

그것은, '지금의 내 것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문학 자체'의 전제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닮았다 한들, 그저 옷을 바꿔 입었다는 것만으로

몇 년을 한결 같이 보아온 왕자의 위엄을 못 알아본다는 사실은 조금 억지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외면에 속는 것이 인간의 약점임이 더 진실에 근접한 것이리라.

 

한 순간에 왕자로 오해받고 당황하며 한사코 자신이 거지 소년이라고 주장하는 톰에 대한 의혹을

"그가 사기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자기 스스로를 왕자라고 주장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그래, 그게 타당하겠지.

하지만 왕을 비롯해 궁중의 모든 이들이 왕자라고 불러주는데 왕자로서의 위엄을 거부하고 아니라고 반박할

그런 사기꾼이 어디 있겠어? 전혀 없어!" (p.61)

하고 스스로 털어내며 장담하는 왕족 하트퍼드 경의 논리는 참으로 현실적이면서 아이러니해 실소를 터트리게 한다.

'왕자'이기를 거부할 인간은 없다고 단언하는 고귀한 세계의 논리.

 

어릴 때 동화책으로 읽었을 때엔 거지로 갖은 고난을 겪는 왕자의 불행이 '올리버 트위스트' 못지 않게 가련했건만,

지금 다시 읽으면서는 '왕자'로 환골탈태하는 톰의 고초 또한

그 품격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왕자에 못지 않은 '고통의 여정'이다.

마크 트웨인이 두 페이지에 걸쳐 극사실적으로 서술한 '옷 입히는 의식'은

읽는 사람까지 온 몸이 근지러울 정도로 넌더리가 난다.

 

이 작품에서 실로 거지의 몰골을 하고 있으면서도 진정한 '왕자'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이는 귀족 헨든이다.

그의 따뜻한 마음과 의연함, 용기는 그와 마주치는 내내 나를 감동케 한다.

왕자 에드워드에게 이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한 여정을 감수시킨 작가가 마련한 위로이며 '평생의 선물'이

이 '꿈과 그림자 왕국의 유령 기사'가 아니었나 싶다.

한편으론, 마크 트웨인이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한 인물 같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다시 맑게 걷힌 진실을 만나는 것이다.

꿈과 그림자 왕국은 사라진다.

아니, 꿈과 그림자가 사실은 꿈도, 그림자도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젊은 왕이 된 왕자는 궁중 밖의 삶과 진실을 알았기에 지혜롭고 따뜻한 성정을 베풀게 된다.

두 소년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것도, 무사히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실은 별 대단한 환상은 아니다.

현실을 사는 나에게 이 '왕'이야말로 엄청난 환상이다.

스스로 태양이면서도, 그림자를 알고 보듬는 왕.......

'거지'로 살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아는, 그저 행운으로 '왕자'로 태어난 것임을 아는 통치자.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왕자와 거지'는 또다른 새로운 꿈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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