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되기 싫은 이무기 꽝철이 재미난 책이 좋아 7
임정진 지음, 이민혜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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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지만 아이들은 학교 다닐 때와 다름없이 가방을 챙겨서 학원을 전전하며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습관적인 학습에 끌려 사는 지도 모른다. 늦잠을 늘어지게 자면서 쉬고 싶을 때도 학원에 가야 한다고 깨우는 엄마의 소리에 이끌려 몽롱한 채로 식탁에 앉아 밥을 뜨는 둥 마는 둥하고 아이가 학원으로 갔다. 자신의 선택 의지와는 아랑곳없이 강요된 현실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무력한 모습이 용이 되기 싫은 이무기 꽝철이와 대별되어 안쓰러움을 더했다. 지금 이 순간도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로지 일류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며 살아가는 교육 환경에서 진정한 의미의 교육에 대해 반문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면서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다운 모습니다. 하지만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속에 비전 없이 하루하루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주변에는 많다. 실상 살아보면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동경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감내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무기들은 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회의를 품을 새도 없이 승천하는데 길잡이가 될 여의주를 얻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용이 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이무기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며 용이 되기 위해 마음 속 암투를 벌여왔는지도 모른다.

이무기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얻기 위해 최후의 순간을 위해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므로 극도의 인내력이 필요하다. 먼저 그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커 혼자서 공부하느라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을 찾을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시미처럼 용이 되기보다는 이무기로 즐겁게 살고 싶은 꽝철이의 판단은 훈장과 동무들 마음까지 변화시켜 나갔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지금부터가 아니더라도 용이 되면 좋겠다고 판단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용이 되겠다던 꽝철이의 용기가 주목을 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이무기는 사악함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만 여겼는데 이시미처럼 나쁜 이들을 응징하는 좋은 이무기도 있어 이무기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기도 했다.  

“밥 먹고 해라”
용이 되려다 실패한 이무기 훈장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 속에는 용이 되는 그 날을 고대하며 용이 못 되면 어쩌나 하던 걱정에 사로잡혀 지내던 시절과는 대별된 이무기들의 즐거움이 컸다. 용이 되지 못해 화를 얻어 지내기보다는 이시미처럼 하고 싶은 일을 행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자기만족은 더없이 클 것이다.

성적 지상 주의자에 매몰되어 동급생을 경쟁자로 규정짓고는 함께 나기기보다는 그들 위에 군림하며 최고가 되려는 생각에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도처에 흔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대한 고민 없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최고가 되기 위해 억지 춘향이 식으로 학습에 임하는 경우 학습의 노예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수동적으로 따라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자각하여 실천하는 아이들로 자라게 할 필요가 절실하다. 똑 같은 길을 걷기보다는 조금 더디고 돌아가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개방성에 힘을 실어주는 엄마로 자리해야겠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 속에 겪는 시행착오 속에 좀 더 지혜롭고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용이 되기 싫다고 과감히 말하던 꽝철이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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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이야기 - 사춘기 우리 아이의 공부와 인생을 지켜주는
이범.홍은경 지음 / 다산에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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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산 히말라야 트레킹이 예정된 날 포카라에서 나야풀로 향하는 전세 버스를 타고 푼힐 전망대를 오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트레킹 경험이 없던 일행들의 길잡이와 동반자 역할을 해줄 네팔인 셰르파와 함께 빙설이 녹아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셰르파 덕분에 갈림길이 나올 때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헤맬 필요가 없었고, 롯지에서 음식을 시켜먹을 때도 적절한 소통으로 히말라야 설산을 쳐다보며 산길을 따라 걷는 트레킹이 즐겁기만 하였다. 짐을 실은 조랑말들의 방울 소리는 이색적인 경험을 더했고, 조붓한 돌길을 내려오던 짐승들이 놀라지 않도록 배려하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이 또 다른 묘미를 더했다. 돌로 이어진 산길을 걸으며 나 자신은 자식들에게 어떤 엄마로 비춰질지 생각해 봤다. 자식들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식으로부터 그동안 보상받지 못했던 것을 채우려는 욕심으로 가득한 엄마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았다. 지금껏 오롯이 자식들의 적성과 소망을 고려해 그들이 행복한 교육을 해왔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학력향상만이 생존 전략인 것처럼 아이들을 공부 시장으로 내모는 대한민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잘 알면서도 나 역시 아이들을 학원과 학교로 내몰며 지내왔다. 아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지금 아이의 실력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처질까 염려하여  학원 수강을 강요하며 자기 위안을 삼아 왔는지도 모른다.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이른 시간부터 부모의 통제 아래 뚜렷한 목표 의식도 없이 질질 끌려오던 현지를 보면서 아이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진정한 학습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수동적인 학습을 해오던 현지의 성적 하락은 자기 주도형 학습과는 거리가 먼 피상적인 학습의 폐해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듯하다. 딸의 성적 하락은 엄마의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해 급기야는  현지에게 더욱 가중한 학습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사춘기 소녀 현지는 엄마의 요구에 상충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융화의 길로 이끄는 방책을 찾지 못한 채 모녀간의 소통은 막혔고 갈등은 증폭되어 갔다.

 

  서로에 대한 적대 감정이 높아질 때 서로 거리를 두고 한 걸음 비껴나 자신을 성찰하며 대상을 관조할 필요가 있다. 주부도 안식년이 필요하다는 아버지의 제안대로 엄마는 외할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지금의 현안을 하나하나 풀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애썼다. 살아가면서 어떤 고비가 올 때마다 불거지는 크고 작은 고민을 누군가가 들어주며 적절한 조언을 해줄 때 힘이 날 때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은 채 현지에게 도움을 준 친구 정민은 또 다른 수호천사인 엄마를 만나게 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현지는 셰르파 카페에 가입하여 적절한 조언을 얻으며 색깔을 달리 한 판도라 상자에 버리고 싶은 것을 가두고 그 상자를 진열해 뒀다. 지금껏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씩 변화 양상을 보이던 현지 앞으로 색깔 편지가 날아들었다. 영원한 네 편이라는 발신인이 보낸 편지는 상자에 가둬 둔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을 위한 열쇠를 담고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움직여 나갔다.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흐르는 음악이 황폐해진 정신을 일깨워주듯이 셰르파에서 만난 운영자는 또 다른 페이스메이커로 현지를 변화시켜 나갔다. 혼자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 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조력자와의 만남은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비온 뒤 앞산을 일곱 가지 색깔로 곱게 수놓은 무지개를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으며 지냈던 시절처럼 영원한 네 편으로부터 전해진 일곱 빛깔 속 편지는 현지 마음을 사로잡았다. 친구를 배려하며 행복을 지켜주려 했던 정민이 그동안의 과정을 비밀에 부쳤던 것처럼 엄마는 아이들의 조력자로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으로 역할수행을 해야 함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과정을 중시한다고 말하면서도 기말고사가 끝난 뒤 확인되는 성적으로 딸아이를 닦달하면서 궁지로 몰았던 자신을 돌아보며 아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길에 도움을 주는 수호천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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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만 잘해도 성적이 오른다 - 머리가 좋아지는 정리정돈
다츠미 나기사 지음,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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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를 잘해도 성적이 오른다는 책을 펴니 학창시절 머릿속 정리가 잘 되어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떠오른다. 수업 시간 선생님 말씀에 귀기울이며 그 내용이 새어 나가기 전 메모를 하면서 저장고에 켜켜이 쌓는 친구의 모습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궁핍하여 참고서 살 돈도 없어 친구들에게 빌붙어 공부하던 시절 정해진 시간 내에 그 내용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 책을 돌여줘야할 때가 더 많았다. 특별한 정리 기술이 있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시절이 아련한 향수로 다가온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며 감정 정리를 잘못해 아이들을 닦달하며 분노를 고스란히 전할 때도 많았다. 직장에서 일이 잘 안 풀린 날이면 육신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 옴쭉달싹하기도 싫은 날이 종종 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오면 맞닥뜨리는 광경은 늘 폭격을 맞은 것처럼 흩어져 아수라장이 되어 있을 때가 많다. 초등학생 5학년인 아들은 주변 정리를 잘하지 못해 늘 원성을 사면서도 스스로 알아서 정리하는 습관은 들지 않아 부모 마음을 더욱 지치게 한다. 그날따라 더 어질러진 거실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 그동안 벼르고 있던 말에 지청구를 섞어 힘든 점을 말하였다. 엄마를 도와 달라는 하소연에 신차를 담은 말이라 곱씹을수록 엄마인 자신이 한스럽기만 했다.  

 나역시 정리를 하는데 재간이 없고 관심이 없는 편이라 계절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며 한 계절이 지속되는 나라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우기가 계속 되는 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끔찍할 것이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말이다. 학창시절 정기 고사를 앞두고 공부를하려고 책상 앞에서 앉아서는 정작 몰입하여 공부한 시간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널브러진 교과서, 학용품 등으로 책 펼 공간을 찾지 못했던 터라 책상 위 물건부터 주섬주섬 챙기느라 시간을 보낸 적을 떠올리면 정리를 잘 안 하는 아들만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말이면 함께 들르는 군민 도서관 서가를 보면서 분류표대로 정리되어 독자들이 책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 놓은 점을 들어 사소한 일부터 차근차근히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 때 마침  최근에 빌려 온 책에서는 손쉽게 정리하는 방법을 도식화하여 그 효과까지 들어 차근차근히 실천해 나가는 일에 도움을 줬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이미 간파한  뒤라 아들과 몇 가지 약속을 하였다.  

 첫째, 책가방 속 학용품을 챙긴 뒤 그것을 제자리에 두기   

 둘째, 가위, 풀, 자, 연필 등을 쓰고 통에 제대로 꽂기

 셋째, 읽고 난 책을 책꽂이에 바로 꽂기

 넷째, 현관 앞에 신발 가지런히 정리하기  

 다섯 째, 하루 일을 돌아본 뒤 꼬박꼬박 반성하며 메모하기 

퇴근한 뒤 신발을 가지런히 벗지 않으면 아들은 금세 달려와 어른이 먼저 약속을 어기면 어쩌냐면서 항변하더니 이제는 제법 몸에 배었는지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도 미리 해야할 일을 적은 뒤 그 내용을 요약하며 같은 정리하는 습관을 강조했더니 학습에도 효율성을 더했다. 비슷한 항목끼리 묶어서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을 분류해 그 내용을 머릿속에 갈무리해 두는 훈련을 쌓아갔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2학기 정기 고사에서 학력우수상을 받아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그 전에는 공부를 할 때 엄마가 꼭 붙어 앉아 함께 공부하며 내용을 점검하였는데 이제는 스스로 교과서 내용을 정리한 뒤 문제집까지 풀어 실력을 분석하니 한결 수월해졌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 믿음과 다행스러움이 게속 이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자기 정리를 잘하는 아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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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엄마! 마음이 자라는 나무 21
유모토 카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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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살았던 잿빛 구름 가득했던 유년 시절은 긍정적인 태도로 밝은 빛을 떠올리기에는 미욱함이 많아 음울함을 더했다. 청상의 엄마와 남은 식구들에게 아버지 부재는 고단한 삶의 무게로 일상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늘 조사했던 가정환경 조사서에 아버지 사망을 적는 일이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았다. 태어났을 때는 아버지가 곁에 있었겠지만 태어나서 나 이외의 인물을 분별할 때쯤 아버지는 서둘러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 급작스럽게 이승을 떠나는 친구 아버지 부고 앞에서는 초연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이별의 슬픔을 알아차리기 전 영면한 아버지의 삶이 위안이 될 때도 있음을 알았다.

 

  천수를 누리고 피안의 세상으로 떠난 포플러 장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치아키는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인생 길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은 치아키 엄마를 무척 힘들게 하였고 치아키 역시 아버지 부재가 주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슬픔을 줬다. 오랫동안 연어 통조림을 먹고 온종일 전차를 타며 지내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 안주의 공간 포플러 장에서의 새로운 삶은 모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 후 방황이 많았던 엄마와 강박증에 시달리던 치아키는 서서히 삶의 절박함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린 소녀는 늘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여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어둠 속으로 빨려들지 않기 위해 긴장하며 살았던 치아키는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는 편집증을 보이기도 했다.

 

  치아키는 직장에 나가는 엄마를 대신해 포플러 장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어둠 속에서 조금씩 빠져 나와 밝은 세상을 호흡하기 시작했다. 우편배달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할머니는 전하려는 대상에게 편지를 적어 건네 그 대상과 소통하면서 지낼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전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심신이 약해진 이들을 위해 사랑의 전령사로 자리한 할머니는 봉인된 편지를 서랍 속에 넣어 차곡차곡 갈무리해 뒀다. 서랍 속 편지를 함부로 봐서는 안 된다고 치아키에게 쐐기를 박은 할머니는 서랍 속 편지를 소중히 다루어야 함을 강하여 그 편지의 가치를 더했다. 소녀는 아빠에게 편지를 처음 쓸 때는 막막함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편지 내용은 소통의 깊이가 더해졌고 치아키 마음까지 정화해 갔다. 비로소 치아키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건네며 부재하는 아빠와 대화하며 지내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포플러 장에서의 생활이 이어질수록 치아키는 안정 속에 세상 속으로 나가는 법을 배워 갔다. 포플러 장에 깃들어 사는 이들과 교류하며 오사무와 함께 찾은 성당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그리스도 상을 보면서 아빠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골몰하였다. 한편 엄마가 일을 열심히 하다가 돌연 죽게 되면 어쩌나하는 염려는 또 다른 불안을 잉태하기도 했다. 봄이면 온다던 오사무는 사산한 엄마가 측은하여 포플러 장으로 올 수 없다는 통보를 보낸 뒤 3년 뒤 엄마의 재혼으로 소녀는 포플러 장을 나와 홀로 생활하였다.

 

  포플러 장에서 안으로 쌓인 응어리를 풀면서 소통하는 법을 배웠던 치아키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엄마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확인하며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에 사랑했던 첫사랑에게 편지를 쓴 뒤 자살한 아빠의 죽음을 교통사고로 위장한 채 보호 본능이 발동하여 딸이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진실을 숨기고 지냈다.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이승을 떠나 이 세상과 단절되기 전 치아키에게 사랑의 원천을 토대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할 당위성을 부여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치아키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유산하고 직장을 그만뒀을 때 이쯤에서 삶의 궤도를 이탈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아빠가 이승의 멍에를 짐 지지 못한 채 스스로 쓸쓸한 죽음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삶을 끝냈을 개연성이 있다. 어찌 보면 엄마는 아빠와 닮은 점이 많은 딸을 사랑하고 배려하였기에 성숙한 사회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에 담긴 진실을 밝히려 했는지도 모른다. 치아키는 포플러 장을 떠났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서야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는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더욱 윤기 나는 삶을 살아갈 희망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준 엄마에게 전하고 이 한 마디를 전하고 싶다.

   “고마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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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정의 기판이 푸른도서관 34
강정님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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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자락 밑에 둥지를 틀고 필요 이상의 음식 섭취를 꺼리며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질박하게 사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추억 속 고향을 불러낸다. 한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며 사는 밤나무정 마을 묘사로 시작되는 소설은 기판의 죽음으로 비극성을 내포하며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 기판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 종내는 비통한 눈물을 보탠다. 마을 공동체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길에 융해되어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속에는 또 다른 세대들의 일상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별하면서 날실과 씨실로 엮어가는 우리네 삶은 수많은 사연들로 갖가지 무늬를 새기고 살아가는 삶인지도 모른다. 돌연한 만남은 또 다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며 헤어나기 힘든 나락으로 이끌기도 한다. 교묘한 속임수에 홀려 가산을 탕진하고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기판이 할아버지의 죽음은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나 얻은 화였다. 그로 인해 남은 가족들의 신산한 삶은 간단없이 이어졌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장자 댁이 행상으로 삼형제를 키우며 그 자식들이 각기 가정을 이뤄 살림을 나면서 벌어지는  삶의 일상은 유쾌한 일보다는 불행한 일들이 더 많았다. 

  경제적 결핍으로 힘든 나날이었지만 우애 있게 지내던 형제들이 각기 다른 가정을 이뤄 살게 되면서 불화하는 날이 늘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탐욕스런 안골 댁이 둘째 아들 남섭과 결혼하면서 크고 작은 다툼은 또 다른 고통 속으로 식구들을 몰고 갔다. 그녀는 어렵사리 되찾은 집안 땅을 차지해버리고, 시동생 부부를 위해 마련한 집에 자기네 세간을 옮겨 그 집을 차지해 버리는 파렴치한 일을 서슴지 않았다. 슬하에 딸만 두었던 안골 댁은 귀신 소동을 벌이면서까지 아들을 낳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실소를 더하였다. 

  간절하게 그리면 이뤄진다는 말처럼 어렵게 아들을 얻은 안골 댁은 기판을 애지중지하며 아들이 활개 치면서 살아갈 날을 고대하였다. 안골 댁은 아들을 과잉보호해서라도 기판이 일에 끼어들어 그를 좌지우지하며 지내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의 과보호로 더욱 심약하게 자란 기판은 동네 아이들의 놀림과 핍박을 당하기 일쑤라 안쓰러움을 더했다. 두복이를 위시한 아이들의 잦은 횡포 아래 스러져가는 어린 기판이 감내하며 살기에는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중학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고 고등학교를 광주로 옮길 때에도 기판의 의사와는 아랑곳없이 포악스러웠던 엄마가 모든 일을 결정짓고 말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늘 두복이에게 당하기만 했던 기판이 폭압으로 군림하던 이를 물리치고 난 뒤부터 비뚤어진 승리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점점 난폭해져 가는 기판이를 보면서 씻김굿을 벌여 원혼을 달래보기도 하였지만 그 일은 또 다른 화를 불렀다. 기판이 불가피하게 동네를 떠나 광주로 나가 칠성파에 가담함으로써 참혹한 죽음으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기판에게 누나는 숨 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든든한 보호막 같은 존재였다. 꿈속에 나타나 이별을 고하는 기판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알아차린 누나는 친정으로 돌아와 대면한 것은 싸늘한 주검이었다. 한 세상 판을 치면서 세상을 호령하며 살기를 바랐던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열여덟이라는 짧은 생을 힘겹게 살다 간 기판이를 보니 그의 기구한 삶이 더욱 안타까워 자꾸만 눈물이 흘러 내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엄마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으로 점철되었다. 이제 열두 살인 아들에게 학습을 게을리 한다며 학생의 명분을 내세워 자식을 닦달할 때가 많다. 스스로 판단하여 실천할 수 있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참지 못하고 아이를 다그치며 방향까지 잡아 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또 다른 안골 댁의 모습이 아닌지 반문해 본다. 욕심을 한 없이 부리던 안골 댁은  귀한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며 심장에 주홍 글씨를 새기고 지내야 할 숙명에 놓이고 말았다. 자신의 탐욕에 사로잡힌 채 아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오류를 범하여서는 안 되겠다. 진정으로 아들이 무엇을 바라고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관심을 가질 때 좀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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