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한여름의 열기가 대지를 달군다.

피서를 떠나는 인파들 틈새에 안달재신하기보다는

평정심으로 여름을 보내다 보면 이 또한 자나가리라 믿는다.

여름의 열기를 식히는 일에는 책을 끼고 숲 그늘로 가는 길밖에 없을 듯하다.

인류학자는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연구하고 탐색하는

시간을 할애한다. 배낭 메고 걸으며 사유하는 가운데

현지인들 깊숙이 들어가 삶의 잔상을 들여다보는 일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문학 작품을 공부할 때면 작가 관련 일화를

곁들이며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도할 때가 있는데 횡보 염상섭 작가의 문학 작품 속 배경으로 자리하는 곳으로 떠나는 길에

함께 하고 싶다.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이어지는 삼대의 가족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자리하는 음울한 자화상의 일면이 있는데 그 배경으로 자리하는 곳으로 향하는 여행을 따라 나서고 싶다.

 

 

 

 

 

 

시인에게 찾아온 생명이 다운증후군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감당하기 힘든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땅콩이 은재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통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아이를 힘들게 한 점을 반성한다. 부모는 자식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울타리여야 한다.

 

 

 

 

 

 

 

 

 

포르투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미답의 공간이기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20개의 도시를 돌며 적은 여행기라니 벌서부터

가슴이 설렌다.

 

 

 

 

 

 

 

 

 

 

마식가는 아니지만 맛집 기행에 관심이 많다.

향일암 가는 길에 만난 게장 집과 갓김치 집은

음식 맛이 좋기로 소문 난 전라도의 풍미를 더한다.

향일암에서 바라본 바다는 그동안 쌓인 시름을 털어내기에 그만인

포용력을 갖추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음식의 맛을 즐기는 기행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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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이라고 하지만 방학 첫날부터 시작된 보충수업은 여드레가 지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보충 수업에 빠지는 학생도 있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교복 대신 자율복장으로 참여하는 수업이 반갑지만은 않았는지 오늘은 칠판에,

    ‘보충수업 싫어요.’

   애교 섞인 문장에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지금의 심경을 표현하는 일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편이라 날도 더운데 공부하느라 애쓴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EBS문학 교재로 수업을 이어갔다. 작품 속 내용을 질문에 담아 발의해보지만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방응하지 않는 편이라 자문자답(自問自答)으로 흐를 때도 많지만 학생들에게 질문하며 수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미국 동부의 뉴 헴프셔 주 엑시터 시에 위치한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1781년 존 필립스 박사 부부가 세운 사립 고등학교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숙사 학교 중 하나로 선망의 대상인 명문학교의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며 우리 학교의 실상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순위를 매기는 객관적인 기준에 들어가는 SAT 성적뿐 아니라 하크네스 테이블을 중심으로 토론식 수업을 진행한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교과 수업 과정은 토론식 수업의 전형을 보였다. 교사 일변도의 지식 전수 수업에서 벗어나 교육의 주체인 학생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궁구하고 발의하며 생각을 열어가는 수업은 사고력을 키워주고 논리력을 길러주는 수업 형태로 창조적인 삶을 준비하는 능동적인 실천으로 비춰졌다.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서 부부가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관찰하고 느낀 점을 세부적으로 파헤쳐 보딩스쿨로 명맥을 유지하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본질을 드러냈다. 학교의 규모가 고등학교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고 그 모습 또한 고풍스러운 대학 캠퍼스를 연상하게 했다. 학교의 심장이라 할 만한 도서관은 독특한 내부의 디자인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무엇보다도 소장 도서가 무려 15만 권에 이른다니 궁구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협력하는 체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실례로 자리한다. 지성적인 측면에 예능적인 분야까지 망라하는 교육 과정으로 지식과 예능이 균형 잡힌 사회인의 덕목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실험이 이뤄지는 과학관, 교양 과정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열연할 수 있는 극장, 미술관, 체육시설 등을 갖춰 몸을 움직이며 공부하는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묻기보다는 오늘 어떤 질문을 했는지 묻는 유태인들의 부모처럼 필립스 액시터 학교에서의 수업은 토론식 수업을 준비하며 각자의 지식을 나누는 교류와 협력의 공부를 지향하고 있다.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질문하며 분석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심화교육을 추구한다. 매시간 내용 있는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교과서를 읽고 예습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길러 갈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하던 저자의 경험과는 대비되는 우리나라 교실 풍경을 떠올리니 무색해지고 만다. 교사는 질문으로 토론을 이끄는 조연으로 수업이 난항을 겪지 않도록 적절히 조율하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학생들의 즉각적인 물음에도 대처할 수 있는 연구로 자신을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필립스 엑시터 입학사정관은 구비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여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으로 학교 구성원으로서 학교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동료 학생들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여 ‘Non Sibi’정신을 갖춘 모습으로 타인과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예술 과목을 전공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인 활동으로 인성을 기르고 정서적 균형을 도모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학교 교육의 지향점이 예술 교과 수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단 한 명을 위해 보스턴에서 구쟁 연주자를 강사로 초빙할 정도로 학생들을 배려하는 학교 측의 적극적인 노력이 생경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독서와 글쓰기로 정밀함을 추구하면서 정서 함양까지 겸하는 예술 교육으로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부상하는 필립스 엑시터의 교육은 독자적인 교육 과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협력하는 가운데 더불어 발전하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교육 기구의 전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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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껏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며 사는 일에 익숙해서인지 지금 배우며 가르치는 공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으레 교단에 서서 아이들과 만나왔는지도 모른다. 방학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교를 오가며 보충수업을 하느라 한자 그대로의 의미인 방학(放學)을 즐기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교육방송 교재로 문학 수업을 행하며 작품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끌어내 보려 하지만 아이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교사 일변도의 수업에 익숙한 아이들은 물음을 던지며 답을 요구하는 교사의 태도에 귀찮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만 발문을 통해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수업을 진행할 때가 많다. 문학 작품을 공부하면서 양념처럼 곁들이는 작가의 일화 속에 빛을 발하는 결정체를 발견하며 그것을 공유할 때마다 심장 박동 소리는 커져만 간다.

 

   어쭙잖은 선생 노릇을 하면서 앎의 욕구는 커졌고 현상 이면의 본질까지 궁구하는 학인으로 돌아가 갈증을 느끼고 있던 사안을 해결하여 갈 때마다 앎의 기쁨은 커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의 법학과 교수로 기득권을 누리고 안주하며 살아갈 수도 있는 저자는 진보 지식인으로 어지러운 정국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어 어둠을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로 자리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경제민주화와 진정한 복지 사회 구현을 위해 움직여 왔다. 서울 법대 최연소 입학과 울산대 최연소 교수 임용이라는 저자 소개란은 비범한 능력을 지녔던 재원으로 평범한 이들에게는 부러움을 살 만한 이력을 지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서부터 공부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저자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수업에 집중하며 공부하는 즐거움을 찾아 갔다. 자기 자신을 아는 길이 공부에 있음을 간파하고 평생 공부하며 살아갈 것인지 골몰하며 법대생이라면 통과의례처럼 치르는 사법고시를 치르지 않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로스쿨에서 공부하였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한 학교에서 진행된 토론 수업은 학생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깨닫도록 수업을 끌어가는 공부는 끊임없이 사유하며 호기심을 해결해 가는 일련의 활동이었다. 말이 서툴러 생각을 표현하지 못할 때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 내용을 점검하고 수업 활동을 계획하며 반복된 말하기 훈련을 통해 수업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쉽지 않은 과정을 즐기며 할 수 있었다니 공부의 참된 의미를 생각게 한다.

 

   청춘 시절 가슴이 들끓으며 요동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호헌 철폐독재 타도를 외치며 광장으로 내달렸던 유월 항쟁의 외침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게 울려 퍼질 때가 있다. 서면에서부터 남포동까지 시가행진을 벌이며 반독재를 외치던 민중들의 함성을 들끓어 올랐고 복숭아 행상을 하던 아저씨는 시위대에 참가한 이들에게 복숭아를 건네주며 박수쳐주던 때의 공감을 떠올리면 정의의 연대가 떠오른다. 사노맹 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했던 저자는 자유를 옥죄는 쇠사슬을 끊으려는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나설 때 이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조금씩 움직여 갈 것임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가는 또 다른 직업훈련소로 갖은 스펙을 쌓아 평준화된 실적으로 구직에 목을 매는 청년 세대들을 양산하는 기구로 전락해 버렸다. 사회적 평가 기준에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힌 채 자존감마저 팽개쳐두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지만 남는 것은 허무감과 학자금 대출금만 쌓여 있더라는 20대의 이야기가 청년 세대들만의 문제가 아닌 듯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똑같이 생각하며 움직이기보다는 새롭게 도전하며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일소해갈 때 타인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사회의 계급계층집단의 이익과 욕망꿈이 상충하며 절충되어 만들어진 법을 공부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눈임을 강조하는 저자는 어떠한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할지 고민하며 법학도로서의 길을 걸었다. 표지의 사진 속 정의의 여신 디케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공정하고 공평한 저울질을 한 뒤 칼을 휘둘러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법 집행은 불공정하게 이뤄져 약자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모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저자는 형사법을 공부하며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로 바꾸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여 왔기 때문에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일조해 왔다. 극도의 궁핍에 내몰린 모녀가 유서를 써두고 목숨을 끊은 일들을 언론으로 접하면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날 때 이 세상은 따뜻한 세상으로 치환될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의미를 두는 가치지향적인 학문을 추구하며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유랑하는 이들과 손을 잡고 세상의 질적인 변화를 위해 공부하는 지식인의 맨얼굴을 만나고 오는 길 마음이 맑아진다. 주도적인 삶을 꾸려가는 길에 공부는 자신을 알아차리는데 필요한 도구임을 인식하고 실패를 겪게 되더라도 경험 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의 실천적 움직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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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겨울 열기구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떠다니며 터키 중앙의 고원지대인 카파도키아의 바위 굴 곳곳을 내려다보며 미미한 인간의 능력 이상을 만들어낸 자연신 앞에 탄성을 뿜었다. 종교적 탄압을 피해 곳곳에 벌어진 버섯 모양의 동굴 속에 깃들어 살았던 현지인들의 신앙생활을 떠올리며 인간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여러 의미를 띠겠지만 각자 처해진 환경에서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2008년 아내 팻 캐바나를 뇌종양으로 떠나보낸 뒤 상실의 아픔을 달래며 지내야 했다. 그동안 부인과 함께 했던 추억을 곱씹으며 날실과 씨실로 엮인 인연의 끈이 물리적으로는 끊어졌지만 마음속에 들어있는 그녀를 향한 마음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는 책에 담아 그녀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을 절제하며 담아냈다.

 

   열의 힘으로 하늘 높이 올라 둥둥 떠다니는 열기구를 사랑했던 그는 주입한 가스가 다하면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듯 부인과의 정해진 시간이 다하여 숙명처럼 부부는 이별해야 했다. 보헤미안적 기질에 열기구를 사랑하는 프레드 버나비 대령은 여러 극에 출연하고 있던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 서로를 향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구심점을 찾지 못한 사랑은 표류하는 한 척의 배처럼 쉽사리 길을 찾지 못하였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였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로 잇지 못하고 영원히 결별하는 수순을 밟았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음을 향해 가게 되지만 우리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생각지 않고 지내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 비탄에 젖어 지낼 때가 많다. 숱한 죽음의 예는 예고 없이 올 때가 많아 살아남은 자들에게 아무런 인사도 못한 채 급작스레 세상을 뜨는 죽음의 경우 상실감이 주는 고통만큼이나 자신의 죽음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 무심함으로 비춰져 헤어나기 힘든 허무감을 더한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라고 반스는 지금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는 없지만 가슴속에 강하게 똬리를 틀고 앉은 아내를 잃은 상실감은 커 보인다. 아내에게 말을 걸며 내밀한 감정을 이어가고 싶은 바람을 행하는 반스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은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오선지 위에 낮은 음으로 변주되어 음울함을 더한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아차릴 때마다 애도하는 말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과정으로 상실의 아픔에 젖어 지내는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못한다고 여길 때가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스스로 상실의 아픔을 달래는 사이 숨통을 옥죄던 고통도 조금씩 엷어진다. 반스 역시 아내가 떠난 지 4년째가 되는 해부터 상처를 치유하며 조금씩 나아졌다.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를 반목하며 살던 부부도 배우자의 사별이 주는 아픔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심연 속으로 몰고 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하나의 숙제로 자리하는 경우를 목격할 때가 있다. 생전에 잘해주지 못한 점을 뉘우치고 회한에 젖는 경우도 있을 테고 이제는 지상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절대고독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비탄에 젖어 지내는 일보다는 살아 있을 때 정성을 들이며 상대를 사랑하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현재적 삶에 정성을 쏟고 싶은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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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학기 기말 고사를 치른 3학년 교실의 풍경은 수시 전형을 앞두고 학생들은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인기 있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면 성공한 인생일 것이라 믿는다. 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조금은 안정적으로 원하는 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불안은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이다. 균형을 잃지 않고 일상을 지속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일이 계획한 대로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무력해지고 만다. 돌연한 일로 일상의 감각을 잃을 때도 있지만 두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사는가에 따라 인생의 향방은 달라진다.

 

   엄마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날까 두려워 검지가 썩어 들어가는 것도 삭이며 전전긍긍하였던 수인의 불안은 어린 시절 행상을 나간 어머니가 동네를 돌며 장사하느라 며칠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추억 속 남매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단한 일상을 버텨내었던 어머니들의 희생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온다. 오롯이 엄마로서 자식들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랐던 그 시절의 이기심이 또 다른 폭력으로 어머니의 여성성을 옥죄어 왔는지도 모른다. 어린 수인이 어머니를 기다리며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상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인이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자리를 옮길 때 동료 교사들은 평판이 좋지 않은 학교로 옮기길 때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나는 이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낯가림은 내면의 불안 증폭시켰다. 울울창창한 숲에 자리한 도서관은 방치된 고성처럼 퇴락한 흉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찾는 일에 수인은 골몰하였다. 사춘기의 정점에 이른 남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정서적 지지를 통해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길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큰 사서 교사는 독서회를 조직하여 소통하는 모임을 유도하였다. 근시안적인 태도로 독서회 조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커져버린 의견차를 좁히며 도서관 수업을 잇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수인은 어른스럽게 아이들 태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며 유연하게 행하였다.

 

    감정이 앞서서 폭력을 행사하고 주의를 당하며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던 도범은 새 학교에서의 생활을 무탈하게 해낼 수 있을는지 장담하기 힘들었다. 입소문으로 악명이 나 있는 도범에게 그 학교의 주먹으로 통하는 아이는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에 응하지 않으면 무시한다는 이유로 또 다른 응징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폭력의 고리를 쉽게 끊을 수 없었다. ‘강도범을 그대로 부르기보다는 강도 범으로 불러 가슴팍에 주홍 글씨를 달고 사는 범죄자처럼 지내야 했던 굴레를 벗어나 조금씩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불안하여 보이지만 스스로 손가락을 짓이겨 의지를 보였던 용기에 숙연해진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문을 닫고 지내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던 해머는 애초부터 말을 잃은 아이가 아니라 여러 정황이 말문을 닫게 한 것이었다. 거친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마음을 졸이며 자신을 지키는 방편으로 침묵을 고수하였고, 자신의 말이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 같은 두려움에 떨며 지냈던 아이가 수인에게 내면을 드러냈다.

 

   힘의 논리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소수의 의견은 묵살되기 십상이지만 한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수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수인이 낡은 서고를 지탱하지 못하고 책들이 쏟아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도서관을 학교 중심부로 옮기자는 의견을 내어 여러 선생님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옳다고 생각한 일은 의연히 행하였다. 최상위의 자리에서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면서도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퇴직당하는 정글 같은 기업의 생리를 말하며 불안에 떨던 율이 더 나은 스펙을 찾아 수인을 떠날 때도 그녀는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어쩌면 곡예를 하듯 불안하게 자리하여 곁에 있는 사람까지 불안케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인지도 모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서관에 화재가 나고 그 진원지를 둘러싸고 책임 소재를 추궁하는 사이 사서 교사인 수인에게 견책은 피할 수 없었지만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독거리며 불안을 태동시켰던 엄마를 찾았다

      

   가려워서 밤잠을 설쳐 본 경험 하나 둘은 지니고 있는 우리는 가려움의 진원지가 어디든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하여 나갔다. 가려운 환부에 약을 바르며 괴로움을 일시적으로 덮어보려 하지만 그 싹은 다시 발아하여 가려움을 옮길 때가 있었다. 남들이 주문하는 대로 움직이며 하고 싶을 일을 미루어 왔던 생활은 가려운 자리에 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환부를 덮어버리고 마는 우를 범하게 된다. 여러 선생님의 조소(嘲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로 인생의 무늬를 새기며 사는 미술교사를 보며 스스로 계획한 대로 움직이며 사는 일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가깝다고 인식하게 된다. 힘듦이 증폭될수록 학교를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쉽게 결정 내리기 힘들 때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인은 엄마를 찾았다.

 

   남편이 떠난 빈자리가 주는 불안을 잠재우며 자식들을 길러낸 엄마는 욕망을 유예하고 사느라 쇠진할 때로 쇠진해진 어머니는 지혜로운 말로 딸의 불안을 덜어주었다. 중닭이 몸뚱어리는 땅에 대고 비비는 광경을 보며 반문하는 딸에게 어머니는 중학생들과 중닭에 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포용력을 발휘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가렵다고 크느라고 가려워 죽겠다고 투정부리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대체 왜 그러냐고 면박이나 주고, 꼼짝없이 가둬놓기만 하는데 어떻게 전딜 수 있겄냐.’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는 못할망정 가렵다고 소리 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은 불안감에 싸인 아이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토대 마련을 위해 필요해 보인다. 오래 전 퇴락한 고성 같은 도서관에서 배경이 좋은 학생들 사이에서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읽으며 지냈던 교장 선생님 역시 새로 부임한 모교에서 권위가 실추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 이면에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길에 서 있는 이들의 기저에 자리한 심리적 불안은 성장하여 가는 과정에 피할 수 없는 관문처럼 보인다. 생명력 있게 꿈틀거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표로 우리는 오늘도 불안에 떨면서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걷고 행하지 않았던 일들을 시도하며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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