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기말 고사를 치른 3학년 교실의 풍경은 수시 전형을 앞두고 학생들은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인기 있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면 성공한 인생일 것이라 믿는다. 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조금은 안정적으로 원하는 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불안은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이다. 균형을 잃지 않고 일상을 지속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일이 계획한 대로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무력해지고 만다. 돌연한 일로 일상의 감각을 잃을 때도 있지만 두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사는가에 따라 인생의 향방은 달라진다.
엄마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날까 두려워 검지가 썩어 들어가는 것도 삭이며 전전긍긍하였던 수인의 불안은 어린 시절 행상을 나간 어머니가 동네를 돌며 장사하느라 며칠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추억 속 남매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단한 일상을 버텨내었던 어머니들의 희생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온다. 오롯이 엄마로서 자식들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랐던 그 시절의 이기심이 또 다른 폭력으로 어머니의 여성성을 옥죄어 왔는지도 모른다. 어린 수인이 어머니를 기다리며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상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인이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자리를 옮길 때 동료 교사들은 평판이 좋지 않은 학교로 옮기길 때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나는 이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낯가림은 내면의 불안 증폭시켰다. 울울창창한 숲에 자리한 도서관은 방치된 고성처럼 퇴락한 흉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찾는 일에 수인은 골몰하였다. 사춘기의 정점에 이른 남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정서적 지지를 통해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길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큰 사서 교사는 독서회를 조직하여 소통하는 모임을 유도하였다. 근시안적인 태도로 독서회 조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커져버린 의견차를 좁히며 도서관 수업을 잇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수인은 어른스럽게 아이들 태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며 유연하게 행하였다.
감정이 앞서서 폭력을 행사하고 주의를 당하며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던 도범은 새 학교에서의 생활을 무탈하게 해낼 수 있을는지 장담하기 힘들었다. 입소문으로 악명이 나 있는 도범에게 그 학교의 주먹으로 통하는 아이는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에 응하지 않으면 무시한다는 이유로 또 다른 응징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폭력의 고리를 쉽게 끊을 수 없었다. ‘강도범’을 그대로 부르기보다는 ‘강도 범’으로 불러 가슴팍에 주홍 글씨를 달고 사는 범죄자처럼 지내야 했던 굴레를 벗어나 조금씩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불안하여 보이지만 스스로 손가락을 짓이겨 의지를 보였던 용기에 숙연해진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문을 닫고 지내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던 해머는 애초부터 말을 잃은 아이가 아니라 여러 정황이 말문을 닫게 한 것이었다. 거친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마음을 졸이며 자신을 지키는 방편으로 침묵을 고수하였고, 자신의 말이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 같은 두려움에 떨며 지냈던 아이가 수인에게 내면을 드러냈다.
힘의 논리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소수의 의견은 묵살되기 십상이지만 한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수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수인이 낡은 서고를 지탱하지 못하고 책들이 쏟아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도서관을 학교 중심부로 옮기자는 의견을 내어 여러 선생님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옳다고 생각한 일은 의연히 행하였다. 최상위의 자리에서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면서도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퇴직당하는 정글 같은 기업의 생리를 말하며 불안에 떨던 율이 더 나은 스펙을 찾아 수인을 떠날 때도 그녀는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어쩌면 곡예를 하듯 불안하게 자리하여 곁에 있는 사람까지 불안케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인지도 모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서관에 화재가 나고 그 진원지를 둘러싸고 책임 소재를 추궁하는 사이 사서 교사인 수인에게 견책은 피할 수 없었지만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독거리며 불안을 태동시켰던 엄마를 찾았다.
가려워서 밤잠을 설쳐 본 경험 하나 둘은 지니고 있는 우리는 가려움의 진원지가 어디든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하여 나갔다. 가려운 환부에 약을 바르며 괴로움을 일시적으로 덮어보려 하지만 그 싹은 다시 발아하여 가려움을 옮길 때가 있었다. 남들이 주문하는 대로 움직이며 하고 싶을 일을 미루어 왔던 생활은 가려운 자리에 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환부를 덮어버리고 마는 우를 범하게 된다. 여러 선생님의 조소(嘲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로 인생의 무늬를 새기며 사는 미술교사를 보며 스스로 계획한 대로 움직이며 사는 일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가깝다고 인식하게 된다. 힘듦이 증폭될수록 학교를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쉽게 결정 내리기 힘들 때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인은 엄마를 찾았다.
남편이 떠난 빈자리가 주는 불안을 잠재우며 자식들을 길러낸 엄마는 욕망을 유예하고 사느라 쇠진할 때로 쇠진해진 어머니는 지혜로운 말로 딸의 불안을 덜어주었다. 중닭이 몸뚱어리는 땅에 대고 비비는 광경을 보며 반문하는 딸에게 어머니는 중학생들과 중닭에 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포용력을 발휘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가렵다고 크느라고 가려워 죽겠다고 투정부리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대체 왜 그러냐고 면박이나 주고, 꼼짝없이 가둬놓기만 하는데 어떻게 전딜 수 있겄냐.’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는 못할망정 가렵다고 소리 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은 불안감에 싸인 아이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토대 마련을 위해 필요해 보인다. 오래 전 퇴락한 고성 같은 도서관에서 배경이 좋은 학생들 사이에서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읽으며 지냈던 교장 선생님 역시 새로 부임한 모교에서 권위가 실추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 이면에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길에 서 있는 이들의 기저에 자리한 심리적 불안은 성장하여 가는 과정에 피할 수 없는 관문처럼 보인다. 생명력 있게 꿈틀거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표로 우리는 오늘도 불안에 떨면서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걷고 행하지 않았던 일들을 시도하며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