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 씨가 받은 유산 미래의 고전 17
조장희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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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늦은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는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예나 지금이나 듣는 주례사 중에는 반려자를 맞아 잘 살아가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결혼하는 사람들만큼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즘 반려자와 평생을 함께 보내는 일은 감사할 일 중 하나인 듯하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그에 대한 환멸이 더할 때 사람들은 동종(同種)이 아닌 반려동물을 통해 삶의 고락을 함께 하려 들 때가 종종 있다. 미요라 불리는 괭이 씨는 고양이지만 주인아줌마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고양이의 참모습을 잊고 지내며 안락한 생활에 젖어 갔다.



느닷없는 손님의 방문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내던 미요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거처를 옮기게 된 미요는 이전의 생활 섭생을 벗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안정적인 생활 속에 행복을 찾던 이들에게 변화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기존의 질서에서 비껴난 일은 견디기 힘든 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지하실 창고에 숨어 사는 생쥐 잡는 일을 도맡아야 하는 일은 미요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로만 여겨졌다. 고양이라면 으레 주인 집 재물을 앗아가는 쥐를 잡는 일이 다반사라 여기겠지만 여느 고양이와 다르게 생활했던 괭이 씨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먹는 것에서부터 자는 것까지 해경하기 힘들었던 미요는 마침내 손님아줌마 집을 나와 스스로 살아갈 길을 탐색해 나갔다.



어른스러운 진돌이의 배려에도 견디기 힘든 것은 언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미요를 에워싸고 어떤 결행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받으며 자라다 이전의 생활환경과는 판이하게 다른 곳에서 불안하게 사는 것보다 불투명한 앞날이지만 스스로 맞닥뜨리며 사는 일이 더 값지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생선 가게 할머니가 던져 준 생선을 맛봄으로써 서서히 고양이 모습을 찾아가는 일에 적극적인 미요를 보았다. 미요는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사랑받다가 내쳐지는 상황을 벗어나 사랑받으며 지낸다는 마음 아래 할머니와 동고동락하였다. 친자식보다 더 살갑게 살아가는 할머니 양아들 털보아저씨와도 잘 지내는 모습에서 또 다른 가족의 형태를 엿본다.



생명체는 명줄이 다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났다. 자비심이 강했던 할머니는 숱한 생선을 토막 내어 팔면서 생계를 위해 생명체를 살생하는 일을 배제하고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생전에 유서를 작성하고 그 내용을 공증 받는 대목에서 사람과 짐승을 떠나 미요를 동등한 자격으로 대우했던 할머니의 공생관은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생선 가게는 털보 아저씨와 그의 짝 미순에게 맡기고, 생선 맛을 아는 미요에게는 매일 생선을 건네주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생선을 한 마리씩 빼돌린 일을 고백하지 못해 죄책감이 들었던 미요는 비로소 그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생전 할머니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고양이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꽹이가 사랑스러웠던 듯하다.

신라 시대 향가 안민가에 보면 유고적인 치세를 위해 임금은 임금답게 경세 치민해야 함을 강조했다. 고양이 역시 고양이답게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었다. 자신의 본바탕까지 잊은 채 누군가에게 끌려 살아가는 삶은 진정한 나를 잊고 지내는 거짓의 삶인 것이다. 애완동물 미요가 생선 한 마리를 갖다 바치게 한 두목을 찾아 소굴 속으로 들어가 단판을 벌인 일은 통쾌함이 더했다. 할머니 사랑에 새로운 삶의 용기를 얻어 진정한 고양이로 거듭난 미요는 이전의 수동적인 과보호를 과감히 벗고 고양이의 정체성을 찾아 새로운 길을 나섰다. 그 과정은 험난해 보였지만 굽이굽이 돌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처럼 그 길은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나선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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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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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생명과의 만남은 숭고한 삶의 획을 긋는 의식으로 가족의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는 귀한 시간이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수태하고 있는 동안 영양 섭취에 신경 쓰고 태교에 힘쓰며 지냈던 시간과 결별하고 아이와 첫 만남이 예정된 날이면 설렘과 두려움에 휩싸여 전율했던 기억이 난다. 진통을 시작으로 출발한 여행길은 밋밋함보다는 수렁 속에 빠져 헤어나기 힘든 고비가 많아 몇 갑절 더 힘을 쏟아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세상을 가르고 내뱉는 아기의 첫 울음소리는 그동안 출산하느라 감내했던 힘든 시간도 생명의 신비 앞에 녹아 출산의 기쁨은 더한다. 하지만 희귀한 신체적 장애를 타고 난 패트릭 헨리 휴스를 상상하면 출산과 함께 또 다른 멍에는 새로운 굴레로 작용했을 듯하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듯한 상황 속에서도 푸념을 늘어놓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희망의 빛을 찾아 길을 나섰다. 

  자식이 태어나 처음 만나게 되는 부모는 인생의 첫 스승으로 양육 방법에 따라 많이도 변화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하라.’ 

  부모는 다발성 이형에 왜소증까지 떠안고 살아가야 할 숙명에 놓인 자식을 키우는 일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행동에 제약이 따르는 현실은 푸념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달라질 일이 아니라는 인식 아래 능동적인 대책을 세워 나갔다.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며 일상을 달래고 삶의 활기를 더하는 것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잇는 가교 기능을 했다. 취미로 피아노를 연주해왔던 헨리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악기를 다루고 부부가 함께 점자까지 익히며 자식 교육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정상인들에 비해 기능을 습득하는데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부모는 인내하며 아이 스스로 새로운 삶을 열어나가는 길에 동반자로 굳건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아버지는 아들이 피아노에 놀라운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아들의 첫사랑인 피아노 연주를 기점으로 대학 밴드부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표지 속 휠체어에 앉아 트럼펫을 부는 주인공의 모습이 생경하여 기적 같은 일을 이뤄낸 저변에 대한 탐색은 아버지와 헨리의 서술에서 담담히 밝혀 준다. 다발성 장애를 지닌 아들이 부부에게 온 것도 축복할 일이라며 감사하며 지금 현재 최선을 다하려는 부모의 모습은 더욱 숭고해 보인다. 아들이 좌절하지 않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아 백방으로 뛴 끝에 각계의 도움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데 힘을 보태고 상대를 배려하며 상생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들의 가능성을 믿고 후원해 준 가족은 맞닥뜨린 숙제를 함께 해결하며 두터운 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채워주고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그 무엇을 찾아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음악을 통해 아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 자존감을 드높일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  


‘지금 선택과 결정이 미래의 확률을 결정한다.’
는 파스칼의 확률 이론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경우를 확인하게 될 때가 많다.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했던 헨리는 대학에서 마칭 밴드의 단원이 되어 아버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서 트럼펫을 불며 힘든 훈련을 오롯이 견뎌냈다. 야간 근무로 자신의 일정을 바꾼 뒤 하루에 4시간만 자는 피로한 일상 속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의 수업과 밴드 연습에 자신의 일정을 맞춰갔다. 트럼펫을 부는 아들을 위해 뙤약볕 아래 이뤄지는 혹독한 훈련을 감내하고 아들에게 잠재된 가능성을 확인하며 자식을 배려하는 열정적인 아버지 모습에 숙연해지고 만다.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어학도, 대학 밴드부의 단원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전환하는 신념과 노력이 더욱 돋보인다. 비운동선수로 2006년 '디즈니 세계 스포츠정신상'을 수상한 패트릭 헨리는 자신의 운명을 수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겼다. 즐기고 좋아하는 일 속에 자존감을 더할 수 있는 희망과 도전의 노래는 지금 현재 최선을 다하는 열정과 몰입으로 새로운 기적을 낳았다.

 

  그동안 일상에 감사하며 지내기보다는 탐욕에 눈이 멀어 아쉬움이 더했던 일만 부각시키며 살아 온 삶에 화한이 더한다. 그동안 편견으로 세상을 재단하며 마음의 장애를 앓았던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왜곡된 삶을 살아 왔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며 아이들을 닦달하고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던 일들이 떠올라 부끄럽기만 했다. 부모로서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끈기 있게 실천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만 한다. 자신의 장애를 걸림돌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삶의 디딤돌로 삼아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적절한 동기 부여로 아이들의 조력자로 남는 일이 부모의 역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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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되기 싫은 이무기 꽝철이 재미난 책이 좋아 7
임정진 지음, 이민혜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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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지만 아이들은 학교 다닐 때와 다름없이 가방을 챙겨서 학원을 전전하며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습관적인 학습에 끌려 사는 지도 모른다. 늦잠을 늘어지게 자면서 쉬고 싶을 때도 학원에 가야 한다고 깨우는 엄마의 소리에 이끌려 몽롱한 채로 식탁에 앉아 밥을 뜨는 둥 마는 둥하고 아이가 학원으로 갔다. 자신의 선택 의지와는 아랑곳없이 강요된 현실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무력한 모습이 용이 되기 싫은 이무기 꽝철이와 대별되어 안쓰러움을 더했다. 지금 이 순간도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로지 일류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며 살아가는 교육 환경에서 진정한 의미의 교육에 대해 반문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면서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다운 모습니다. 하지만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속에 비전 없이 하루하루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주변에는 많다. 실상 살아보면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동경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감내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무기들은 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회의를 품을 새도 없이 승천하는데 길잡이가 될 여의주를 얻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용이 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이무기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며 용이 되기 위해 마음 속 암투를 벌여왔는지도 모른다.

이무기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얻기 위해 최후의 순간을 위해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므로 극도의 인내력이 필요하다. 먼저 그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커 혼자서 공부하느라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을 찾을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시미처럼 용이 되기보다는 이무기로 즐겁게 살고 싶은 꽝철이의 판단은 훈장과 동무들 마음까지 변화시켜 나갔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지금부터가 아니더라도 용이 되면 좋겠다고 판단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용이 되겠다던 꽝철이의 용기가 주목을 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이무기는 사악함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만 여겼는데 이시미처럼 나쁜 이들을 응징하는 좋은 이무기도 있어 이무기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기도 했다.  

“밥 먹고 해라”
용이 되려다 실패한 이무기 훈장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 속에는 용이 되는 그 날을 고대하며 용이 못 되면 어쩌나 하던 걱정에 사로잡혀 지내던 시절과는 대별된 이무기들의 즐거움이 컸다. 용이 되지 못해 화를 얻어 지내기보다는 이시미처럼 하고 싶은 일을 행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자기만족은 더없이 클 것이다.

성적 지상 주의자에 매몰되어 동급생을 경쟁자로 규정짓고는 함께 나기기보다는 그들 위에 군림하며 최고가 되려는 생각에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도처에 흔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대한 고민 없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최고가 되기 위해 억지 춘향이 식으로 학습에 임하는 경우 학습의 노예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수동적으로 따라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자각하여 실천하는 아이들로 자라게 할 필요가 절실하다. 똑 같은 길을 걷기보다는 조금 더디고 돌아가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개방성에 힘을 실어주는 엄마로 자리해야겠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 속에 겪는 시행착오 속에 좀 더 지혜롭고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용이 되기 싫다고 과감히 말하던 꽝철이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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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이야기 - 사춘기 우리 아이의 공부와 인생을 지켜주는
이범.홍은경 지음 / 다산에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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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산 히말라야 트레킹이 예정된 날 포카라에서 나야풀로 향하는 전세 버스를 타고 푼힐 전망대를 오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트레킹 경험이 없던 일행들의 길잡이와 동반자 역할을 해줄 네팔인 셰르파와 함께 빙설이 녹아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셰르파 덕분에 갈림길이 나올 때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헤맬 필요가 없었고, 롯지에서 음식을 시켜먹을 때도 적절한 소통으로 히말라야 설산을 쳐다보며 산길을 따라 걷는 트레킹이 즐겁기만 하였다. 짐을 실은 조랑말들의 방울 소리는 이색적인 경험을 더했고, 조붓한 돌길을 내려오던 짐승들이 놀라지 않도록 배려하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이 또 다른 묘미를 더했다. 돌로 이어진 산길을 걸으며 나 자신은 자식들에게 어떤 엄마로 비춰질지 생각해 봤다. 자식들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식으로부터 그동안 보상받지 못했던 것을 채우려는 욕심으로 가득한 엄마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았다. 지금껏 오롯이 자식들의 적성과 소망을 고려해 그들이 행복한 교육을 해왔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학력향상만이 생존 전략인 것처럼 아이들을 공부 시장으로 내모는 대한민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잘 알면서도 나 역시 아이들을 학원과 학교로 내몰며 지내왔다. 아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지금 아이의 실력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처질까 염려하여  학원 수강을 강요하며 자기 위안을 삼아 왔는지도 모른다.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이른 시간부터 부모의 통제 아래 뚜렷한 목표 의식도 없이 질질 끌려오던 현지를 보면서 아이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진정한 학습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수동적인 학습을 해오던 현지의 성적 하락은 자기 주도형 학습과는 거리가 먼 피상적인 학습의 폐해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듯하다. 딸의 성적 하락은 엄마의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해 급기야는  현지에게 더욱 가중한 학습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사춘기 소녀 현지는 엄마의 요구에 상충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융화의 길로 이끄는 방책을 찾지 못한 채 모녀간의 소통은 막혔고 갈등은 증폭되어 갔다.

 

  서로에 대한 적대 감정이 높아질 때 서로 거리를 두고 한 걸음 비껴나 자신을 성찰하며 대상을 관조할 필요가 있다. 주부도 안식년이 필요하다는 아버지의 제안대로 엄마는 외할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지금의 현안을 하나하나 풀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애썼다. 살아가면서 어떤 고비가 올 때마다 불거지는 크고 작은 고민을 누군가가 들어주며 적절한 조언을 해줄 때 힘이 날 때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은 채 현지에게 도움을 준 친구 정민은 또 다른 수호천사인 엄마를 만나게 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현지는 셰르파 카페에 가입하여 적절한 조언을 얻으며 색깔을 달리 한 판도라 상자에 버리고 싶은 것을 가두고 그 상자를 진열해 뒀다. 지금껏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씩 변화 양상을 보이던 현지 앞으로 색깔 편지가 날아들었다. 영원한 네 편이라는 발신인이 보낸 편지는 상자에 가둬 둔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을 위한 열쇠를 담고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움직여 나갔다.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흐르는 음악이 황폐해진 정신을 일깨워주듯이 셰르파에서 만난 운영자는 또 다른 페이스메이커로 현지를 변화시켜 나갔다. 혼자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 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조력자와의 만남은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비온 뒤 앞산을 일곱 가지 색깔로 곱게 수놓은 무지개를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으며 지냈던 시절처럼 영원한 네 편으로부터 전해진 일곱 빛깔 속 편지는 현지 마음을 사로잡았다. 친구를 배려하며 행복을 지켜주려 했던 정민이 그동안의 과정을 비밀에 부쳤던 것처럼 엄마는 아이들의 조력자로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으로 역할수행을 해야 함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과정을 중시한다고 말하면서도 기말고사가 끝난 뒤 확인되는 성적으로 딸아이를 닦달하면서 궁지로 몰았던 자신을 돌아보며 아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길에 도움을 주는 수호천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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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만 잘해도 성적이 오른다 - 머리가 좋아지는 정리정돈
다츠미 나기사 지음,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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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를 잘해도 성적이 오른다는 책을 펴니 학창시절 머릿속 정리가 잘 되어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떠오른다. 수업 시간 선생님 말씀에 귀기울이며 그 내용이 새어 나가기 전 메모를 하면서 저장고에 켜켜이 쌓는 친구의 모습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궁핍하여 참고서 살 돈도 없어 친구들에게 빌붙어 공부하던 시절 정해진 시간 내에 그 내용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 책을 돌여줘야할 때가 더 많았다. 특별한 정리 기술이 있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시절이 아련한 향수로 다가온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며 감정 정리를 잘못해 아이들을 닦달하며 분노를 고스란히 전할 때도 많았다. 직장에서 일이 잘 안 풀린 날이면 육신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 옴쭉달싹하기도 싫은 날이 종종 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오면 맞닥뜨리는 광경은 늘 폭격을 맞은 것처럼 흩어져 아수라장이 되어 있을 때가 많다. 초등학생 5학년인 아들은 주변 정리를 잘하지 못해 늘 원성을 사면서도 스스로 알아서 정리하는 습관은 들지 않아 부모 마음을 더욱 지치게 한다. 그날따라 더 어질러진 거실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 그동안 벼르고 있던 말에 지청구를 섞어 힘든 점을 말하였다. 엄마를 도와 달라는 하소연에 신차를 담은 말이라 곱씹을수록 엄마인 자신이 한스럽기만 했다.  

 나역시 정리를 하는데 재간이 없고 관심이 없는 편이라 계절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며 한 계절이 지속되는 나라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우기가 계속 되는 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끔찍할 것이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말이다. 학창시절 정기 고사를 앞두고 공부를하려고 책상 앞에서 앉아서는 정작 몰입하여 공부한 시간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널브러진 교과서, 학용품 등으로 책 펼 공간을 찾지 못했던 터라 책상 위 물건부터 주섬주섬 챙기느라 시간을 보낸 적을 떠올리면 정리를 잘 안 하는 아들만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말이면 함께 들르는 군민 도서관 서가를 보면서 분류표대로 정리되어 독자들이 책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 놓은 점을 들어 사소한 일부터 차근차근히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 때 마침  최근에 빌려 온 책에서는 손쉽게 정리하는 방법을 도식화하여 그 효과까지 들어 차근차근히 실천해 나가는 일에 도움을 줬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이미 간파한  뒤라 아들과 몇 가지 약속을 하였다.  

 첫째, 책가방 속 학용품을 챙긴 뒤 그것을 제자리에 두기   

 둘째, 가위, 풀, 자, 연필 등을 쓰고 통에 제대로 꽂기

 셋째, 읽고 난 책을 책꽂이에 바로 꽂기

 넷째, 현관 앞에 신발 가지런히 정리하기  

 다섯 째, 하루 일을 돌아본 뒤 꼬박꼬박 반성하며 메모하기 

퇴근한 뒤 신발을 가지런히 벗지 않으면 아들은 금세 달려와 어른이 먼저 약속을 어기면 어쩌냐면서 항변하더니 이제는 제법 몸에 배었는지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도 미리 해야할 일을 적은 뒤 그 내용을 요약하며 같은 정리하는 습관을 강조했더니 학습에도 효율성을 더했다. 비슷한 항목끼리 묶어서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을 분류해 그 내용을 머릿속에 갈무리해 두는 훈련을 쌓아갔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2학기 정기 고사에서 학력우수상을 받아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그 전에는 공부를 할 때 엄마가 꼭 붙어 앉아 함께 공부하며 내용을 점검하였는데 이제는 스스로 교과서 내용을 정리한 뒤 문제집까지 풀어 실력을 분석하니 한결 수월해졌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 믿음과 다행스러움이 게속 이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자기 정리를 잘하는 아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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