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영원한 선생님!

노쌤 잘 지내시죠!! 벌써 또 한 번의 새해가 밝았네요!

새해 안부 겸 제소식도 전해요.ㅎㅎ

 

깜짝 소식! 저는 이번 주에 퇴사를 했어요. ㅋㅋㅋ설 끝나자마자 제주도로 남편과

고양이와 한 달 살기를 떠납니다!

 

3월부터는 광고 프로덕션 기확실장으로 새롭게 출근하게 되었어요.

제 인생에도 스카웃(?)이라는 것을 받는 일이 생겨가지고 ㅋㅋㅋㅋㅋ

오랜 고민 끝에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옮기는 회사는 광고계에서는 나름 유명한 감독임과 파디님들이 모여서

재미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보려고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에요! 가서 또 한 번

열심히 해내보겠습니다. ..............(2021년 2월 12일 카톡 메시지 중)

 

  

    한 공간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지낸 지 31년 째이다. 많은 이들을 만나고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한 생활이라 세월이 흐를수록 이별의 아픔은 무뎌지고 만다. 교단에서 지내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때, 제자들과의 인연은 막역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반갑다. 3년 전 제자의 작은 결혼식에 초대받고 난생 처음 청담동 카페를 찾았었다. 광고 회사에 다니며 잠재적인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멋진 동료와 비밀 연애를 끝내고 작은 결혼식을 치렀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서로 힘을 주고 받는 부부는 언제 들어도 좋은 모습이다. 삼십 대 초반의 제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은 관행대로 흐르던 자신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소중한 시간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딸처럼 인생에 함께하는 벗들이 있어 행복하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농사를 지으면서 철마다 품목을 바꿔가며 장사를 다녔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팔던 어머니는 막차가 끊기면 아는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맏이로서 어머니를 대신해 집에서 동생을 보살피고 밥상을 차리며 지내야 했다. 여명의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김치 볶음에 밥 한 덩이를 펴서 도시락에 담아 학교 가는 길은 신이 났다. 텔레비전과 전화가 귀하던 때라 어른들에게 주워섬긴 이야기를 듣거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하냥 그립다.

 

   ‘네가 평소에 무심히 흘려놓은 말들도 내겐 다 아름답고 소중하다.

우리 집 솔숲의 솔방울을 줍듯이 나는 네 말을 주워다

기도의 바구니에 넣어둔다.’

   외롭게 지낸 시절 친구와 함께여서 마음은 온돌처럼 따뜻하였다. 십 리를 걸어 오가던 등하굣길은 친구들과 함께여서 외롭지 않았다. 한 동네에 또래들이 스무 명이라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으며 밤새 있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걷던 길에는 이야기꽃이 피어올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일찍 뛰어든 친구, 산업체 학교로 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친구,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한 친구를 만나는 일은 뜸해지고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내느라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휴일이면 얼굴을 보며 사는 이야기를 전하였다. 스물을 갓 넘기고 이른 시집을 간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친구들 소식은 뜸해지더니 어느새 뚝 끊어진 철길처럼 연락이 닿질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은 살아 랜선으로 이어진 모임에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중년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인생의 가파른 고갯길을 함께하는 벗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좋은 음악을 듣다가 좋은 책을 읽다가

문득 네가 보고 싶어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있지.

그런 날은 꿈에서도 너를 본다, 친구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공유하는 공간이 마음에 자리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결핍의 시간을 견디며 같은 풍토에서 나고 자란 먹거리들을 나눴던 경험은 수십 년의 틈을 메우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중학교 시절 오전 수업을 마치고 반별로 모내기를 나갔던 시절을 떠올린다. 볍씨를 뿌린 모판에서 자란 모가 황금 들판의 풍요를 기약하는 것처럼 우리 우정도 곱게 싹이 트고 익어 나이 듦을 비추는 거울로 자리하게 되었다.

 

 

   세월과 함께 우리도 조금씩 늙어가는 중년, 연락이 뜸한 상황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말하며 불안함과 초조함을 달래다 전화로 안부를 알게 되었을 때 안도한다. 숲에 스며드는 햇빛의 온기를 전하듯 친구는 그리움을 담아 쓴 편지를 선물과 함께 보내왔다. 갱년기 증후군으로 하루하루가 살기 힘들다는 친구의 말에 깜짝 모임을 만들어 서로를 토닥이며 자정의 시간을 보냈다.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예정하기 힘들었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60대의 시간 여행을 상상한다. 만남이 단절된 시대에 함께했던 국내 여행을 떠올리며 횡단 열차를 타고 우리가 함께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한다.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병상에서 보내다 세상을 뜨는 친구들이 한둘 생길 때마다 내일을 기약하기 없는 유한한 삶을 실감한다. 어린 시절 골목길을 누비며 자란 친구들과 학창 시절 친구들이 자꾸만 생각나는 때 저자가 불러낸 우정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나이 들면서 더 기대게 되는 버팀목 같은 친구는 큰 나무의 밑동에서 뻗어나간 줄기 같은 존재이다. 마음 결을 다듬을 새 없이 나무 한 짐을 부려 두고 학교로 향하여야 했던 친구, 부엌일을 도맡아 행하다시피 한 친구 등 궁벽한 시골에서의 생활은 너나없이 고단하였다. 집안에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학업에 열중하며 지역 너머의 세계로 향하느라 잊고 지낸 친구들과의 일을 떠올리며 오늘도 그리움 담은 편지를 부친다. 지금껏 하지 못했던 한마디.

   “친구야, 나보다 더 나를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 덕분에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어. 지금처럼 아프지 말고 잘 지내다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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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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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현실·3D프린터·사물인터넷·5G·인공지능 등으로 집약되는 기술 혁신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은 교육 형태는 이전의 시대와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응용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협업을 우선시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 현실은 학력 위주의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름 있는 대학 진학을 위해 골몰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치닫고 있다.

   ‘본인이 애타게 원한다면 몰라도 부모 마음대로 진로를 정해버리는 것이 과연 애들에게 좋은 일일까요?’

   아이들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부모들은 세속적 잣대가 정해놓은 규정을 따르면서 자녀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노력은 적정 수위를 넘어선다. ‘호숫가 살인사건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집단의 파행적 악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식의 명문대학 진학에 초점을 맞춘 가족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비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뛰어들었다.

   명문 사립 중학교 입학을 위해 의기투합한 부부와 학원 강사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사적인 모임을 유지해 왔다. 네 부부는 아이들 공부를 책임질 학원 강사와 함께하는 캠프를 위해 호숫가 별장에 모였다. 명성이 자자한 학교에 입학하여 엘리트 코스를 걸으며 이름을 드날리기를 바라는 부모는 어떤 조건도 마다하지 않는다. 슌스케는 명문대 입시를 위한 합숙 과외의 연장인 모임이 탐탁지 않았지만 아들을 위해 참석하길 바라는 아내 미나코의 뜻에 따랐다. 슌스케 눈에는 서로에게 다정다감한 모습은 아니지만 결속력을 보이며 함께하는 부부의 모습이 생경해 보였다.

 

   슌스케가 부탁한 자료를 가져왔다는 그의 비서이자 내연녀인 에리코가 호숫가 별장에 도착하고 일은 벌어진다. 특별한 증거물을 가져왔다는 에리코와 만나기 위해 간 자리에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슌스케 부부가 지낼 방에서 주검으로 나타났다. 방 안의 시체 주변의 핏자국을 보며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 슌스케에게 미나코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별장에 모인 부부는 사체 유기로 이를 은폐하는데 힘을 모았다. 인적이 드문 호숫가 밤 시간을 이용해 이들은 보트에 시신을 옮긴 뒤 호수 한복판에 유기하였다. 부력으로 시신이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시신을 담은 포대에 돌을 함께 담는 치밀함을 보였다.

 

   자식들의 명문 중학교 입학을 위해 모인 부부는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며 소통하는 관계로까지 진전한 유대는 없었다. 남편의 내연녀를 죽인 아내의 죄를 덮어주려는 이들의 행동에 의심을 품은 슌스케는 진실을 밝히려 한다. 아내가 내연녀를 죽인 것이라면 이들이 한마음으로 살인을 은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추정하고 이면에 똬리를 틀고 앉은 진실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명문 중학교 입학을 위해 시험지 유출, 성 상납까지 서슴지 않는 부모의 입시 부정과 왜곡된 가치관은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 죗값을 치르더라도 명문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법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 말하지 않았느냐는 아들 쇼타의 말에는 엄마가 심어준 왜곡된 가치관이 한몫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책임을 배워가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부모가 정해준 길을 걸어야 했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법을 잃어갔다. 학원 강사가 알선한 중학교 관계자와 얽힌 입시 비리의 물증이 담긴 사진을 들고 별장을 찾은 에리코가 양아버지의 내연녀임을 알았던 쇼타는 그녀를 돌로 쳐 죽게 했다. 아이들이 에리코의 죽음에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 부모들은 한마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살인 사건을 파헤치면서 입시 비리의 주범으로 사체를 유기한 반인륜적 범죄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으로 가득했을 뿐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슌스케는 망연자실한 채 침묵하며 가정이 깨질까 두려웠던 쇼타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였던 부분을 되짚어봤을 것이다. 명문 중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고등학교를 거쳐 명문대학교를 졸업해야 성공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파행적 입시 부정을 낳고 말았다. 조금은 다른 방법을 찾게 되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하며 경험할 기회를 열어주는 부모의 역할을 생각하며 참담함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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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안 스파르 그림,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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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 학생들의 도서 대출을 전담하다 봉사하는 학생이 점심을 먹고 오면 급식실로 향한다. 걸음을 재촉하여 복도를 지나가는데 한 학생이 복도를 내달려 내게로 달려왔다. 잘못하면 그 학생과 부딪칠 수도 있을 것 같아 소년이 뛰어오는 반대쪽으로 걸어가는데,

  ‘**! 꺼져.’

   소년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반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 눈은 휘둥그레졌고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반에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수업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이는 자폐를 앓은 지 꽤 되었다고 하였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당시 여러 유형의 폭력에 시달리다 전학을 와서는 무탈하게 지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오로르는 말로 소통할 수는 없지만 태블릿에 글을 써서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녀는 상대의 눈을 보고 물음에 답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소통 방식과는 사뭇 다름을 알고 있다.

  ‘나는 사람들의 눈을 보면 다 안다. 내가 가진 신비한 힘이다.’

    오로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배려하는 힘이 크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것처럼 오로르는 말을 못하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상대와 소통할 때에는 태블릿에 내용을 쓰면 된다고 여긴다.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상황에 따른 부모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린다. 다름으로 차별받는 일 없이 생명체는 누구든 공정하게 대우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함을 역설한 조지안느 선생님은 제자의 강점을 칭찬한다. 열한 살 오로르는 자신의 주변을 헤아리며 상대의 고통에 감응하는 힘이 크다.

 

 

 

  우리 가족이 깨진 건 엄마 탓이야.’

    부모의 이혼에 불만을 품고 지내는 에밀리 언니는 여느 집처럼 아빠와 엄마가 잘 지내기를 바랐다. 큰딸의 항변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어머니는 부부가 인생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어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였다. 이를 지켜보는 오로르는 가족의 슬픔에 전율하며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생김새에 너무 집착하는 힘든 세상에서 언니 친구인 루시는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잔혹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마법을 부리는 오로르는 키가 크든 작든, 몸집이 비대하든 왜소하든 차별 없이 모두가 잘 지내는 행복한 세상인 참깨 세상으로 향하였다.

 

 

    에밀리 언니의 생일을 맞아 함께 떠난 괴물나라는 이름대로 무섭고도 재미있는 놀이공원이다. 신화 속의 인물들을 조형물로 만들어 괴기한 분위기를 내면서도 재미있는 체험이 가득한 괴물나라에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번 즐길 새도 없이 루시는 조롱당하였다. 도로테를 포함한 잔혹이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상대의 약점을 잡아 놀려댔다. 루시는 수영장을 빠져나와 종적을 감춰버렸고, 일행은 그녀를 찾아 나섰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오로르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한 채 경찰에 도움을 청하였고, 어머니는 루시 엄마가 던지는 말의 횡포에 시달렸다. 루시를 찾기 위해 경찰의 부관으로 나선 오로르는 힘든 나라와 참깨 나라를 오가며 루시 언니의 행방을 찾았다. 수학 신동인 루시가 남긴 수학 공식을 보고 그녀의 행적을 찾아낸 오로르의 공적은 놀라운 지혜를 드러낸 통찰력의 결과물로 여겨졌다.

 

 

   참깨 세상과는 달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으로 가득한 힘든 세상에서 여럿이 함께 잘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오로르는 물음을 건넨다. 평준화된 외모나 성격, 경제적인 곤란 등을 차별적 요소로 삼고 결핍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기사가 실릴 때마다 안타까움이 더한다. 남과 다르다는 사실이 또 다른 장애로 남아 당사자를 괴롭히도록 방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말을 못하지만 태블릿에 글을 써서 소통하는 오로르가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이끈 조지안느 선생님, 비굴하게 떼 지어 다니며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아이를 괴롭힌 잔혹이들과의 용서와 화해는 아름다운 삶의 일면이다. 오로르는 상대의 마음을 읽고, 이를 활용해 모두가 행복한 참깨 세상을 만들고 싶은 바람을 키우며 힘든 세상을 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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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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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한 만남이 필연적인 만남으로 이어져 지금껏 살아온 삶의 질서를 깨뜨리는 경우가 있음을 통절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인 듯하다. 일상적 삶에 지쳐 피폐해진 육신에 쉼을 주는 형태의 여행은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일수록 매력적이다. 눈에 익은 일상과 이별하고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낯선 이들의 틈새에서 자신과 맞닥뜨리는 일들은 쉽게 잊히지 않을 자아의 본질을 일깨운다.

 

   서울 토박이인 도연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이스탄불에서 사투리를 쓰는 유철에게 호감이 갔다. 유철은 이스탄불에서만큼은 일정 없이 일주일을 보내려 했고, 도연은 구상하며 글을 쓰느라 쌓인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오려 했다.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도연과 유철은 술탄아흐메트 광장을 거닐고 노천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식당에서 케밥을 먹었다. 낯선 곳에서 청음 만난 이와 음식을 나누고 잠자리를 함께 한 둘은 일주일의 여행을 가슴에 묻고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며 지냈다.

 

   경남 k시 지역구 국회의원인 진유철과 k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하도연은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다. 도연은 유철과의 짧은 만남 이후 어딘가에서 그가 자신이 쓴 책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히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규범적인 식상에서 그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을 것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 해도 만나게 되어 있고, 아무리 만나려 애써도 못 만날 인연은 만나지 못하는 게 숙명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깨닫기 전에 뱃속에 아이가 들어서 서둘러 결혼한 도연은 이혼하고 딸과 함께 지낸다. 밤낮이 바뀌어 생활하는 작가의 기벽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딸은 엄마가 하는 일을 응원하며 모녀 사이도 좋은 편이다. 유철은 대학원에서 만난 정희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모든 일에 함께 나서는 아내의 간섭이 힘겨웠다. 재선 국회의원으로 대중들의 통제 아래 꽉 짜인 일정을 소화하며 지내야 하는 고충에다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려는 아내의 광적인 태도에 지쳐 가던 때, 아내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보좌관은 작가와 국회의원이 한자리에 함께하는 지역구 행사를 제안하여 도연과 유철은 다시 만나 터키에서의 짧은 추억을 공유하며 사랑에 빠져들었다.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이를 속박하지 않는 자유를 허하며 둘은 궁벽한 지역과 정치 1번지인 도심에서 사랑을 나눴다. 둘의 관계를 포착한 이들은 터키에서 함께 걷는 사진을 들춰 기사로 내보냈고, 이를 본 유철의 전처는 도연을 이혼 전에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몹쓸 작가로 낙인을 찍었다.

 

   유철이 대학의 시간 강사로 일할 때, 대학원 공부를 그만 둔 정희는 교수 자료에서부터 학생들 답안지까지 손을 대며 남편을 힘들게 했다. 남편의 일을 부부가 공유하는 일을 당연시하며 국회의원 행사에도 일일이 참석하여 남편의 자유를 잠식해왔다. 아내에게 포획되어 지내온 삶을 청산하고 이혼한 유철이지만 이혼하고 나서도 새로운 사랑을 만나 안착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이스탄불에서 도연과 유철이 함께 보낸 일주일이 가정파탄을 초래한 것처럼 몰아 부친 전처 정희의 편에 선 대중들의 입김에 몰려 유철은 국회의원직을 그만 둬야 했다. 불륜을 저지른 작가로 출판 금지 처분까지 내려진 도연은 당분간 절필하며 정희의 논리에 맞서지 않았다. 극악의 상황에 몰린 둘은 사랑하는 둘이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혼인 서약을 하고 문제를 함께 풀어나갔다. 분풀이하는 상대에 맞서 분노하며 대응하기보다는 침묵하는 가운데 일이 정리대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자유로이 연애하며 사랑하고 살아갈 것이라 말하던 도연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유철을 받아들이며 혼인을 서약했다. 남편이 하는 일 모두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상대를 옥죄는 아내, 아내를 남편의 부속품처럼 여기며 아내 위에 군림하는 남편 등살에 못 살겠다는 이들을 보면서 진정한 부부의 사랑이 무엇인지 반문한다. 연애할 때의 호감을 사랑으로 착각하여 결혼했다 후회하며 쇼윈도부부처럼 살아가는 부모를 지켜봐야 하는 자식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서로 안 맞아 헤어졌다면 미련 없이 그 사람을 보내주고 내 그릇을 더 넓혀 상대의 안 좋은 부분까지 담을 수 있는 도량을 기를 필요가 있다. 군중 심리를 이용하여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 하다 도리어 자기 파멸을 초래한 전처 정희의 어리석음이 아픔을 더한다. 개인의 고유성을 침해하지 않으며 서로의 성장을 위해 공유하며 오늘보다는 좀 더 나은 내일을 전망할 수 있는 우리이길 바라며 권리를 앞세운 집착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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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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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 또는 작용을 나타내는 말로 문장의 주체가 되는 말의 서술어 기능을 하는 품사로 정의 내린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을 다룰 때 동사는 한 문장의 성격을 밝히는 데에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교정을 보면서 전문성을 키워온 저자는 동사의 맛을 육수나 양념에 비유하였다. 다양한 요리에 활용도가 높은 육수, 음식을 만들 때 재료가 가지고 있는 좋은 향기와 맛은 그대로 살리고, 좋지 않은 맛은 상쇄시키기 위한 양념 같은 동사의 감칠맛에 끌렸다.

 

   ‘노랫소리는 악기와 어우러져 한껏 분위기를 돋구었다.’

   는 문장에서 동사가 잘못 쓰여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므로 돋구웠다를 돋우었다로 수정해야 한다. 돋우다는 감정이나 기색 따위를 생겨나게 하다는 뜻을 나타내고, 돋구다는 안경의 도수 따위를 더 높게 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동사의 뜻풀이와 활용형을 밝히고 기본형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예문으로 확인할 수 있어 동사의 쓰임을 명확히 알 수 있어 유용하다. 가려 쓰면 글맛이 나는 동사와 톺아보면 감칠맛 나는 동사로 구분하여 동사를 파헤쳤다.

 

   동사의 정확한 뜻과 쓰임을 알기 위해 국어사전을 즐겨 찾아 미처 알지 못했던 단어의 의미를 인지하고 일상에서 그 단어를 활용하는 글로 내 것으로 만들어 왔다. 적확한 단어 선택을 위해 고심했던 시간을 들여다보며 문장을 통해 글을 다듬는다.

   ‘밥을 먹고 나면 그릇들을 개수통에 담가 놓지 않고 바로 부시곤 했다.’

   가시다: 물 따위로 깨끗이 씻는다.

   부시다: 그릇 따위를 씻어 깨끗하게 하다.

   동사의 기본형의 의미를 풀고, 문장으로 용례를 보이니 이해가 쉽다. 어간에 어미가 붙어 다양하게 쓰이는 동사의 활용으로 다채로운 문장을 구성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간 도서관에서 표준 국어사전을 들추는 남자와의 만남은 특별한 끈으로 맺어지지 않더라도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살피며 동사의 맛을 집필하는데 함께했다.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을까마는 사연 있는 남자와의 대화가 카메오처럼 등장해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목례로 알은체하며 지나가는 동료에게 미소를 건네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 안부를 묻고 싶은 이 중에는 사전을 들추는 남자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짐을 쌓아 두면 거치적거리니 저 구석으로 옮기라는 말을 들으며 널브러진 책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물건에 사용하는 동사로 사람에게는 쓰이지 않음을 알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밥을 눌린 누룽지로 저녁을 해결하며 라디오 방송을 귀담아들으니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동사의 당하는 말은 기본형이 당하는 말을 만들 수 있는 낱말인지 살피고, 두 번 당하는 말이 되지 않도록 써야 한다. 잊힌 역사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는 문장 표현처럼 불리다 역시 불려지다로 쓰면 안 된다. 겨울철이 되면 땅기는 피부에 수분을 보충해줘야 하는 것처럼 동사를 바르게 쓰려는 노력은 글을 쓸 때 전제되어야 한다.

 

   내키는 일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팔을 걷어붙이는 편이지만 마음이 쏠리지 않으면 엇나간 행동으로 주변의 불안을 살 때가 있다. 자기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를 바라며 동사의 참맛을 찾아 생각이 산산조각 나기 전에 표현한다. 내리치는 번개를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결정한 일이라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을 매조지을 필요가 있다. 입을 벌리고 논쟁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새롭게 활용할 동사들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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