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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평점 :
우연한 만남이 필연적인 만남으로 이어져 지금껏 살아온 삶의 질서를 깨뜨리는 경우가 있음을 통절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인 듯하다. 일상적 삶에 지쳐 피폐해진 육신에 쉼을 주는 형태의 여행은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일수록 매력적이다. 눈에 익은 일상과 이별하고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낯선 이들의 틈새에서 자신과 맞닥뜨리는 일들은 쉽게 잊히지 않을 자아의 본질을 일깨운다.
서울 토박이인 도연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이스탄불에서 사투리를 쓰는 유철에게 호감이 갔다. 유철은 이스탄불에서만큼은 일정 없이 일주일을 보내려 했고, 도연은 구상하며 글을 쓰느라 쌓인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오려 했다.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도연과 유철은 술탄아흐메트 광장을 거닐고 노천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식당에서 케밥을 먹었다. 낯선 곳에서 청음 만난 이와 음식을 나누고 잠자리를 함께 한 둘은 일주일의 여행을 가슴에 묻고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며 지냈다.
경남 k시 지역구 국회의원인 진유철과 k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하도연은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다. 도연은 유철과의 짧은 만남 이후 어딘가에서 그가 자신이 쓴 책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히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규범적인 식상에서 그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을 것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 해도 만나게 되어 있고, 아무리 만나려 애써도 못 만날 인연은 만나지 못하는 게 숙명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깨닫기 전에 뱃속에 아이가 들어서 서둘러 결혼한 도연은 이혼하고 딸과 함께 지낸다. 밤낮이 바뀌어 생활하는 작가의 기벽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딸은 엄마가 하는 일을 응원하며 모녀 사이도 좋은 편이다. 유철은 대학원에서 만난 정희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모든 일에 함께 나서는 아내의 간섭이 힘겨웠다. 재선 국회의원으로 대중들의 통제 아래 꽉 짜인 일정을 소화하며 지내야 하는 고충에다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려는 아내의 광적인 태도에 지쳐 가던 때, 아내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보좌관은 작가와 국회의원이 한자리에 함께하는 지역구 행사를 제안하여 도연과 유철은 다시 만나 터키에서의 짧은 추억을 공유하며 사랑에 빠져들었다.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이를 속박하지 않는 자유를 허하며 둘은 궁벽한 지역과 정치 1번지인 도심에서 사랑을 나눴다. 둘의 관계를 포착한 이들은 터키에서 함께 걷는 사진을 들춰 기사로 내보냈고, 이를 본 유철의 전처는 도연을 이혼 전에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몹쓸 작가로 낙인을 찍었다.
유철이 대학의 시간 강사로 일할 때, 대학원 공부를 그만 둔 정희는 교수 자료에서부터 학생들 답안지까지 손을 대며 남편을 힘들게 했다. 남편의 일을 부부가 공유하는 일을 당연시하며 국회의원 행사에도 일일이 참석하여 남편의 자유를 잠식해왔다. 아내에게 포획되어 지내온 삶을 청산하고 이혼한 유철이지만 이혼하고 나서도 새로운 사랑을 만나 안착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이스탄불에서 도연과 유철이 함께 보낸 일주일이 가정파탄을 초래한 것처럼 몰아 부친 전처 정희의 편에 선 대중들의 입김에 몰려 유철은 국회의원직을 그만 둬야 했다. 불륜을 저지른 작가로 출판 금지 처분까지 내려진 도연은 당분간 절필하며 정희의 논리에 맞서지 않았다. 극악의 상황에 몰린 둘은 사랑하는 둘이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혼인 서약을 하고 문제를 함께 풀어나갔다. 분풀이하는 상대에 맞서 분노하며 대응하기보다는 침묵하는 가운데 일이 정리대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자유로이 연애하며 사랑하고 살아갈 것이라 말하던 도연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유철을 받아들이며 혼인을 서약했다. 남편이 하는 일 모두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상대를 옥죄는 아내, 아내를 남편의 부속품처럼 여기며 아내 위에 군림하는 남편 등살에 못 살겠다는 이들을 보면서 진정한 부부의 사랑이 무엇인지 반문한다. 연애할 때의 호감을 사랑으로 착각하여 결혼했다 후회하며 쇼윈도부부처럼 살아가는 부모를 지켜봐야 하는 자식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서로 안 맞아 헤어졌다면 미련 없이 그 사람을 보내주고 내 그릇을 더 넓혀 상대의 안 좋은 부분까지 담을 수 있는 도량을 기를 필요가 있다. 군중 심리를 이용하여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 하다 도리어 자기 파멸을 초래한 전처 정희의 어리석음이 아픔을 더한다. 개인의 고유성을 침해하지 않으며 서로의 성장을 위해 공유하며 오늘보다는 좀 더 나은 내일을 전망할 수 있는 우리이길 바라며 권리를 앞세운 집착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