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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내면을 드러내는 글을 쓸 때의 주어는 1인칭으로 시작한다는 통념을 깬 저자의 회고록은 스스로를 당신이라 지칭하며 독자와 대화하듯 서술하여 친근함을 더한다.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는 대여섯 살 기억을 떠올리며 쓰는 글을 볼 때면 망각의 동물로 전락하여 아메바처럼 흩어진 기억을 모아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지나온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부모에게 의존하며 지냈던 유년 시절의 또렷한 기억은 작가의 강점으로 비춰질 정도로 생생하여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탐색하기가 힘들어진다. 기억하는 대로 떠올리며 내면을 탐색하는 시도로 자신만의 역사적 증표로 삼을 만한 일들이 한두 가지라도 늘어난다면 좋을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빗물이 새는 지붕 아래 얼기설기 엮어 땜질한 가장자리에는 이름 모를 식물이 자라 지붕 위를 장식했던 집에 사촌 언니 둘과 함께 지냈던 시절 밥에 얹어 먹던 감자를 더 많이 먹을 것이라 쟁탈전을 벌여 모두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대처로 나가 사느라 얼굴 볼 날이 별로 없지만 유년 시절의 추억하면 먼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당시는 자기 딸들을 작은집에 맡겨두는 큰아버지를 이해 못하였지만 지금은 생활고로 생때같은 자식을 떼어놓고 지내야 했던 상황에 아픔이 전해져 온다. 비좁은 아파트를 떠나 오래 되었지만 처음으로 마련한 내 집에서 아버지가 가꾼 토마토 밭에서 아버지의 세계를 넘보며 지냈다니 작가의 세심함이 드러난다.

 

   돈이 충분하지 않아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히며 지내야 했던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결핍에서 파생되는 그들의 불운을 염려하는 삶에서 공고의 선을 실현하며 살아가려는 따스한 인간을 떠올린다. 여덟 살 때부터 소설 읽기를 습관화한 저자는 다양한 삶의 양태를 들여다보며 자의식을 바로 잡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암흑 세상에 밝은 빛을 선물한 에디슨을 생생한 인물로 받아들이며 숭배하는 생활은 생전에 그의 개인 이발사에게 머리를 손질하게 함으로써 일상에서도 지속되었다. 에디슨 연구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아버지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냉대를 받아 일을 중도에 그만둬야 했다는 현상 이면의 이야기는 저자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골몰하던 저자는 부모의 불행한 결혼 생활과 맞닿아 슬픔에 침잠하여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타인들의 평균적인 생활과 다른 자신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며 고집스러움을 지켜내는 자신을 대견해하는 이의 자의식은 부모 곁을 떠나 소소한 일상에 부딪치며 경험의 폭을 넓혀 갔다. 밀실에서의 작은 실수는 내밀한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죄의식으로 자리하였지만 진실을 영원히 가둘 수는 없다는 점을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강한 자의식은 자랄수록 저자를 독서에 빠져들게 하였고 많은 책들을 빼먹지 않고 읽었다는 이유로 사기꾼이라는 낙인을 찍는 교사 앞에서 진실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대목에서는 이해받지 못한 이의 처연함이 배어 나온다.

 

   세심한 관찰력에 감수성이 풍부한 저자는 영화, , 음악 등의 문화적 세계를 향유하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여갔다.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운동에 빠져들기도 했으며 저항하는 노래의 선율에 몰입할 때마다 불공정한 세계를 공정한 세상으로 치환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며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시도하였다. 영화 속 주인공이 탈옥에 성공하였지만 감시의 눈길은 도처에 자리하여 자유롭게 살 수 없었던 것처럼 컬럼비아 대학 시절 바랐던 일들에 대한 갈증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생생한 삶의 열락을 담은 것처럼 들릴 때는 하는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원하는 대로 인생을 영위할 수 있다는 희망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긴 편지에 연정을 담아 보냈을 때 회신해 줄 글들을 떠올리며 가슴 설레는 기다림을 연습할 때가 있다. 애정과 피로로 썼다고 명시하며 상대가 아주 많이 그립다는 말을 분명히 하였지만 상대는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그 자리를 지킬 뿐이다. 연인 리디아와 사랑의 감정을 잇기 위해 써내려간 연애편지는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지내기란 쉽지 않음을 일깨우며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가치임을 절감한다. 불행하다고 여긴 일이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동인으로 자리하여 삶이 이어질수록 알 수 없는 우주의 파장들이 끼어들었다 빠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우연은 필연을 낳기도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 자아를 탐색하는 시간으로 채워간다면 진일보한 자신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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