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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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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경험 속에 가치 있는 일을 찾아 표현으로 남기며 일상의 궤적을 성찰한다. 책을 읽거나 여행을 떠날 때 후기를 남김으로써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정리하고 개인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로 의미를 부여하고 지낸다. 글을 쓰는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작가의 스타일은 숱한 시간이 흘러도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 기억 속에 자리할 것이다. 특유의 통찰력과 감정을 지닌 작가의 눈에 비친 제재들이 활자화되는 과정이 녹록치 않다는 것은 글을 써본 이들이라면 명약관화한 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미국의 하드보일드작가로 유명한 레이먼드 챈들러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뒤 첫 장편소설 빅 슬립출간을 시작으로 장편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고 제임스 케인의 소설을 각색하며 할리우드 생활을 시작하였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책에서는 챈들러가 생전에 관계를 맺고 지낸 이들에게 보낸 마음의 편지로 비판과 동정, 공감과 배려 속에 요청을 담은 다채로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독자를 머릿속에 그리며 백지를 채워가다 보면 대면하고 말하지 못한 부분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할 때가 있다. 대화할 때와는 달리 오해의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내밀한 마음을 비추는 글인 만큼 발신인의 마음을 그리며 소통하는 시간은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폐선유증으로 고생하던 열일곱 살 연상의 아내가 사망한 뒤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챈들러는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한데다 자살 기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내의 죽음 후 몇몇 여성들과 교분을 쌓으며 지냈으나 고독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지내기 일쑤였던 때 편지는 또 다른 탈출구로 고독감을 상쇄하여 주는 기제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챈들러의 팬으로 자처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글을 챈들러 방식으로 명명하고 전업 작가로 글을 쓰거나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의 글쓰기 방식을 호평했다.


   수강료를 지불하고 플롯의 방법이나 기법을 익히는 강좌들이 개설되어 작가 지망생들은 수업을 들으며 글쓰기 훈련을 연마하느라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챈들러는 글쓰기 기법을 익히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며 글을 쓰고 싶다면 바닥부터 시작해야 함을 강조했다. 상투적인 기교를 익히는 일보다는 열정과 겸손함으로 기존의 작품을 분석하고 모방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 아내와 함께 크루즈를 타고 느긋하게 여행하던 중 펄프 잡지를 읽다 글쓰기에 뜻을 두게 되었다니 여행은 미답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하는 통로처럼 비춰졌다. 추리소설 작가로 저명한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범죄 구성의 우연성을 들어 혹평하며 탄탄한 플롯을 지닌 탐정 소설을 쓰는 일이 쉽지 않음을 드러냈다. 챈들러는 이야기의 완급 조절에 탁월한 가드너를 대단하게 여겼고, 헤밍웨이의 작품은 자기 복제품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지루한 구성의 글이지만 방대한 지식으로 기교를 부려 쓴 오스틴 프리먼은 고른 긴장감으로 탄탄한 추리소설을 썼다고 극찬했으며 대학 시절부터 알코올 중독자였지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피츠제럴드의 절제되고 우아한 미의식은 마법 같은 작품이라고 확언했다.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할리우드사의 요구를 들어주는 작가는 어용 작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전제한 챈들러는 할리우드 기준에 저항할 때 예술은 창조된다고 여겼다. 할리우드 영화의 대본을 각색하는 일을 한 적이 있는 그는 사람들이 꺼리지 않는 가운데 여운을 남기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무엇인가를 작품에 넣으려 애를 썼다. 그 와중에 제작사와 마찰을 빚기도 해 중도에 하차하는 일도 벌어졌지만 자본에 종속되는 작가로 남을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였고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둑한 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탐정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필립 말로가 타락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투쟁하는 불가능한 싸움을 소설에 담았다. 도덕성으로 무장하여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필립 말로를 통해 챈들러는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왔던 것이다. 불편한 상황에서 불편한 일을 하게 되는 말로는 고독한 가운데 패배할 수 없는 캐릭터로 창조된 허구의 대리인이다.


  챈들러는 작가로서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면서도 시간을 내어 글을 쓰면서도 자신이 쓰는 글은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며 위선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삶의 자부심을 주방도구나 자동차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의 고백은 인간의 진정성에 의미를 두고 퇴색해서는 안 될 숭고한 가치와 세계에 대한 미련 때문에 글을 쓰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죽음의 긴 터널을 지나 영면한 지인들을 떠나보내고 고독감으로 힘들어했던 여린 영혼의 소유자였던 챈들러는 살아남은 자에게 짐 지우고 간 회한의 무게를 떨쳐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이가 많은 아내와 살면서 결혼 생활에는 언제나 훈련이 필요하였음을 회고하며 매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숙제가 따른다고 여겼다. 공동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야 할 상대가 먼저 자리를 떠남으로써 절대적 외로움에 빠져든 그는 자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아 안타까움이 더했다. 아내와의 여행에서 작가 생활을 다짐하였고 아내가 투병하다 저세상으로 가버리자 그 역시 지난한 외로움의 병폐를 이기지 못한 채 절필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맑은 영혼으로 타락한 세상에서 약자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계 구축을 위해 작품 속 인물을 통해 도덕성을 발휘하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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