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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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대실 해밋의 대표작이다. 
1930년에 쓰여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설의 배경이 1928년이니 그야말로 동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뮤얼 스페이드 사무실에 의뢰인으로 찾아온 스물두 살 여성 원덜리. 그녀는 동생 코린을 찾아달라고 한다. 코린은 뉴욕에서 플로이드 서스비라는 남자를 만나서 샌프란시스코로 도망쳐 왔다. 원덜리는 코린을 데리고 여행 간 부모님이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모님이 돌아오기까지는 2주, 그 안에 동생 코린을 찾아야 한다. 스페이드는 동료 마일스 아처로 하여금 플로이드 서스비를 미행하라고 지시한다. 늦은 밤, 스페이드는 경찰로부터 아처의 사망 소식을 연락 받고, 몇 시간 후 아처가 미행하던 서스비마저 호텔 앞에서 살해당했다. 그런데 불똥이 뜬금없이 새뮤얼 스페이드에게 향한다. 경찰은 서스비의 살인범으로, 마일스 아처의 아내는 남편의 살인범으로, 새뮤얼 스페이드를 의심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자취를 감췄던 원덜리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고, 내막을 말하지 않는 그녀로 인해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진다.  



일단 소설의 주인공인 탐정 새뮤얼 스페이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하드보일드의 주인공들과는 결이 다르다. 어딘가 낭만적이고 우수에 찬 필립 말로나 내면의 고통을 끌어안은 채 끝까지 정의와 양심을 버리지 않는 해리 홀레와는 차원이 다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돈을 밝히고, 의뢰인을 협박하고, 동료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무엇보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조차도.
그는 냉혹한 이기주의자일까, 아니면 합리적인 이성주의자일까? 


재미있는 점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정직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손에 꼽을 지경이다. 정직은 고사하고 연신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연약한 약자인 척하는 브리지드 오쇼네시는 거의 사기꾼 수준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도대체 누구의 말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종잡을 수가 없는데, 그렇다보니 그 거짓말의 이면에 어떠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도 예측 불가다.  


아무리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보통은 50여쪽이 넘어가면 일단 일차원적으로라도 독자가 사건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데, 이 소설은 백 쪽이 넘어가도록 당최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판을 계속 흔들어대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이 소설의 진짜 빌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이은 거짓말에 거짓말이 보태지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가면을 쓰고 혼신의 연기를 하는 그들을 통해, 작가는 진실이 오도되고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을 비틀어 꼬집었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상대를 속이고 이용하는 데에 사랑의 효용성을 찾는 그들에게서 나는 서글픔을 느낀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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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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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 대구. 그림책 판본으로도 있는데 현재 번역본은 절판. 좋은 책이 재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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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비들
데니스 루헤인 지음, 서효령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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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이 한창인 1974년 여름,  미국 연방 정부는 학교 내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해당 도시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백인 거주 지역과 흑인 거주 지역 간에 학생들을 맞바꿔 버스로 통학시키는 칙령, 즉 버싱 시행을 발표했다. 


범죄 이력이 전혀 없고 정규 학업을 마친 후 관리자 프로그램 과정에 있는 스무 살 흑인 청년이 백인 하층민 거주 지역의 지하철 승강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편 남자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다면서 절친과 함께 나간 딸이 실종됐다. 딸을 찾기 위해 행적을 추적하는 메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에 경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살인자들의 섬』으로 잘 알려진 데니스 루헤인의 최근작이다.
인종차별 쳘폐를 위한 칙령과 그와 동시에 백인 거주 지역에서 발생한 흑인 청년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소설로 여겨질 수 있으나 작가가 서술한 소설의 시의성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소설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백인 빈곤층이다. 
미국에서 베트남전에 가장 많이 지원한 지역의 상위 순위는 주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곳이다. 버싱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에서 버싱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버싱을 결정한 법원 판사의 자식들은 어느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냐고 묻는다. 버싱 결정권자들 중에 이 칙령에 해당하는 자녀는 아무도 없다.  


두 번의 이혼을 거친 결손 가정에서 성장하고 경제적 빈곤까지 겪고 급기야 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린 백인 소녀, 부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고 다정한 부모 슬하에서 착실하게 자신의 삶을 다져가는 흑인 청년. 이러한 대비는 이후 등장하는 인물들과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이어진다. 늘 화가 나 있어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해도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가난한 백인들. 백인 사회 내에서도 아일랜드 이주민 집안 출신으로 이방인으로서의 불안정함을 안고 거칠게 살아온 메리. 혐오와 멸시의 시선에도 분노를 드러내지 않으며 이성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흑인 여성 드리미.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흑인 지역의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폭력적인 집회를 거듭하지만, 정작 사우디 지역의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건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백인 공동체 이웃이다. 함께 나고 자란 이웃에게 마약을 팔고, 어린 아이들(심지어 친구의 자녀들)을 성추행하고, 마치 인심이라도 쓰는 양 돈을 주며 강도질의 세계로 이끄는 그들의 모습은 앞서 언급한 모순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ㅡ 


메리는 버싱 반대 집회장에서 자식을 둘 다 잃은 자신에게 남은 것은 동네와 이웃, 즉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켜야할 유일한 것이라고 믿는다. 마약중독으로 인한 아들의 죽음에도, 짐작이 가능한 딸의 실종(혹은 죽음)에도, 가해자 모두 백인이다. 그녀가 지키겠다는 공동체의 기준은 무엇일까. 


흑인 경찰이 백인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은 백인에 대한 모욕.
학교를 학교답게 유지하기 위하는 데에 그 구성원에 해당하지 않는 흑인 학생들.
흑인 한 명이 죽었다고 백인인 자신이 살인죄로 기소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럼.
백인에게는 감히 우호적인 안부를 물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
폭행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피해자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신고하지 않는 백인. 


소설을 통해 작가가 드러낸 차별은 인종에 국한하지 않는다. 위의 문구에서 '흑인'을 다른 단어로 대신해 보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경제적 하층민, 보호자가 부재한 미성년자 등등. 인종차별이 한창인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은 지금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의 맨 끝에서 드러나는 줄스의 행위에 대한 진실. 
딸을 오해했던 메리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미안했을 것이다.
줄스의 행위가 옳았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지만, 아마도 그 순간 어기 윌리엄슨을 위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비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비극과 사소한 기적, 그리고 알려지지 않는 작은 자비들. 이는 형사 보비에게서, 줄스에게서, 메리에게서, 드리미에게서 드러난다. 이것이야말로 배트맨과 아이언맨이 없어도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작은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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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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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퀼 푸아로, 엘러리 퀸, 셜록 홈즈, 브라운 신부 등을 연상하게 하는 탐정소설이자 정통 추리소설이다.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살인 사건이 존재한다. 하나는 소설 속 소설의 작가 앨런 콘웨이가 쓴 『맥파이 살인 사건』의 매그너스 파이 경의 죽음, 다른 하나는 앨런 콘웨이의 죽음이다.  



앨런이 사망한 사건과  『맥파이 살인 사건』  속 사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슷한 구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앨런 콘웨이, 매그너스 파이의 살인 사건. 사건을 추적하는 아티쿠스 퓐트와 원고를 찾다가 의도치 않게 앨런의 죽음에 의구심을 품은 편집자 수전 라일랜드. 앨런 콘웨이가 쓴 『맥파이 살인 사건』에서 벌어지는 연쇄적인 죽음은 작가인 앨런 콘웨이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더하여 10여년간 이어지는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의 전작 역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허구의 인물 매그너스도, 매그너스를 창조한 앨런도, 그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용의자로 의심될 정도로 크고 작은 원한 관계가 복잡하다. 앨런 콘웨이가 자신의 작품 속에 투영한 비밀과 의도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묘미다.   







 
600쪽이 훌쩍 넘는 소설의 가독성은 흡족하다. 특히 작가가 독자와의 밀당을 아주 탁월하게 이끌고 있다(1부에서 그렇게 끝을 맺다니. 독자는 궁금해서 뒤로 넘어갈 지경). 특히 후반부에서 앨런 콘웨이의 죽음에 접근하는 서술자인 수전이 풀어내는 과정을 살펴보면 작가가 어휘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함을 알 수 있다. 영어권 독자들이 읽으면 비영어권 독자들 보다는 훨씬 더 맛있게 소설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듯하다.  


사실 매그너스의 인간 됨됨이를 보자면 딱히 동정심이 가기 힘들다. 연민의 측면에서 보자면 가장 안쓰러운 사람은 『맥파이 살인 사건』 속 인물인 메리 블래키스턴(이 인물이야말로 극적인 반전이다)이고, 『맥파이 살인 사건』의 작가 앨런 콘웨이 역시 한편으로 보면 가엽다. 한 사람은 수십 년의 세월을 불안과 걱정 속에서, 다른 한 사람은 10년 동안 증오심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그들의 내면이 얼마나 피폐했을지... .


사업이든 사생활이든 서로 다른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파트너를 한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임을 새삼 느낀다. 앨런 콘웨이는 자신을 아티쿠스 퓐트에게 투영한 것일까, 아니면 매그너스에게 투영한 것일까. 읽다보면 두 사람 모두에게서 앨런이 보인다. 만약 앨런이 살아서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의 완결을 보았다면 그는 만족했을까. 


돈이 행복의 전부, 혹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하는 작가의 애타는 열망을, 아무도 납득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외로움이 더욱 안타깝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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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머더 클럽
로버트 소로굿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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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세 여성이 너무 귀여우시다. 
한 여성은 70대, 두 여성은 50대.
그런데 이렇게까지 사랑스럽다니.


정통 추리소설이 갖은, 그야말로 추리에 온전히 집중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 곳곳에 뿌려진 밑밥은 남김없이 회수가 되고, 독자가 의구심을 가질 여지는 전혀 없다. 결말까지 깔끔하게 딱 떨어져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지 않는 소설이다.  








미술 갤러리 대표 스테펀이 자기 집 정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마 정중앙에 총을 맞았고, 두개골에서 수습된 총알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하던 독일 루거 권총 총알이다. 또한 시신에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 메달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이와 똑같은 형태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 피해자에게서도 발견된 루거 총알과 글자가 새겨진 청동 메달. 메달에 새겨진 단어를 추정했을 때 살인은 한 번 더 일어날 예정이다. 그리고 첫 번째 사건이 벌어진 그 시각 사건 현장 근처에 호기심 만렙의 주디스가 있었다. 그가 목격자 아닌 목격자다.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며 솔직하고, 호기심과 상상력, 거기다 행동력이 넘치는 일흔일곱 살 주디스는 고모할머니로부터 멋진 저택을 유산으로 물려 받아 부족함 없는 노년을 보내고 있으며, 예전부터 구김살 없는 인생을 살아온 여성으로 보인다. 반듯한 남편과 아이들을 둔 벡스는 누가봐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두 딸은 독립해 출가하고 혼자 살고 있는 수지는 동네의 개들을 대신 산책시켜주는 일을 하면서 말로의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유쾌한 중년 여성이다.  


그러나 세 여성이 세 건의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것보다 더 용기를 필요로 하는 부분은 정작 다른 데에 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용기, 자아정체성을 찾기 위해 스스로 만든 울타리 밖으로 나올 용기,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들을 부정할 용기. 이러한 용기가 모여 자신과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고, 이것이 다져져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그들이 보여준다.  


ㅡ 


3분의 2쯤 읽으면, 추리소설 좀 읽었다하는 독자는 범인을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로 인해 추론은 성립되지 않는데, 예상치 못했던 세 번째 피해자로 인해 사건은 더욱 혼돈의 도가니로 빠진다(역시 방심은 금물인데!). 그리고 그가 막바지에 이르러 범인으로 등장할 줄은 몰랐네. 이 소설의 키맨이 그일줄이야.  


수다스럽게 쓰고 싶은 말들이 있으나 이 촘촘한 스토리를 즐길 독자를 위해 혹여 스포가 될까 우려스러워 말을 아낀다. 범죄추리소설이지만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소설을 해결하기 위한 세 여성의 좌충우돌이 어찌나 유쾌하게 사랑스러운지 읽는 내내 소리 없이 웃었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놓치지 마시길.
물론 이미 주디스의 과거를 눈치 챈 독자도 있겠지만, 확실한 마무리가 추리소설의 기본 아닌가.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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