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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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카니의 꿈은 방 여섯 개, 진짜 식당, 욕실 두 개가 있는 리버사이드 528번지 4층의 아파트다. 거리에서 되는대로 살아 온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카니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비도덕성을 인지하고 스스로를 제어하며 살아왔다. 어린시절부터 사촌 프레디의 소소한 범죄에 간접적으로 끼어있었으나 문제가 될 만한 범죄 세계에는 거리를 두어 온 카니 앞에 매력적인 거래를 제시하는 프레디. 잠시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건만, 사건은 카니의 의지와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소설은 1960년대 할렘을 재현하면서 권투선수, 재즈 뮤지션, 아폴로 극장 등 당시의 할렘 문화를 옮겨놓았다. 또한 뒤마 클럽을 통해 흑인 내에서도 신분 및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 남부와 북부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이 있었음을, 또한 카니의 장인인 릴런드 존스를 통해 흑인 할렘 상류층에서 벌어졌던 탈세를 비롯한 부정부패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페퍼는 카니에게 사업가는 세금 내는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사기꾼이다. 1부의 마지막에서 가난한 카니가 망해가던 가구점을 인수할 수 있었던 비밀이 공개되는데, 칼비노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역설이 소설 곳곳에 슬쩍 슬쩍 깔려있다.  




이제 카니는 어둠(?)의 세계에서 공식적인 장물아비로 이름을 올렸다. 갈취라면 도가 튼 부패 형사 먼슨과 조직 폭력배 보스인 칭크에게 뇌물을 상납하고 있다. 뒤마 클럽에 가입하면 장래가 탄탄대로라는 피어스의 조언을 듣고 뒤마 클럽 회장인 듀크에게까지 돈을 상납했건만, 이 능구렁이같은 인간에게 돈만 뜯기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 눈에는 이에는 이다.  


카니가 들여다본 뒤마 클럽은 그안에서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구축하고 있으며,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조직 폭력배 일당과 다를 바 없다. 부정기적 갈취와 무노동 착취. 페퍼의 말이 딱 들어맞는 대목이다. 2부에서 카니는 범죄의 세계에 점점 더 깊게 개입하게 되고 이중 생활을 한다. 낮에는 유능한 가구상이자 사업가이고, 도르베 특급을 타게 되면 그가 지향하는 삶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산다. 어차피 케네디 대통령이 제시한 뉴프런티어는 흑인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풍요로운 뉴프런티어는 백인의 몫일 뿐이니 제 살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딸이 할렘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하기를 바랐던 엘리자베스의 부모는 남편 카니와의 소박한 일상에 만족하며 사는 딸이 못마땅하고, 사위는 성에 차지 않는다. 릴런드는 카니가 어떤 방법으로 뒤마 클럽에 가입하고 자신을 뒷방 늙은이로 내몰았는지 알게 된다면, 그 방법이 자신들이 그동안 행해왔던 것과 똑같은 방식임을 안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백인 경찰이 비무장한 흑인 소년을 세 차례 쏴서 죽인 사건을 계기로 시위 및 폭동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다쳤으며 할렘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폭동 당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디아스 씨가 가게의 전면 유리를 네 차례나 바꿔 간 것에 대해 카니는 그의 인내가 희망인 상징인지, 광기의 상징인지 묻는다.  이미 잃은 것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얼마나 더 오랫동안 노력할 수 있을까. 법을 수호하는 자와 범법자가 한 편이 되고, 약자는 더 약한 자를 팔아넘겨 목숨을 부지한다. 정직한 자와 범죄자의 경계선은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한 소년이 죽었고, 할렘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대배심은 경찰의 혐의를 벗겨주었고, 흑인 청소년들은 백인 경찰들의 야경봉과 권총 앞에 쓰러졌다. 프레디와 라이너스는 죽었고, 강도 사건은 애초에 없었던 일처럼 해소되었으며, 부자들은 계속해서 이득을 취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지구가 계속해서 돌고, 계절이 바뀌기를 반복하듯 세상은 변하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된다. 불의는 여전하 벌어지고, 여전히 잊혀진다. 한쪽에서는 빈 병에 휘발유를 채워 던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일도 없는 듯 자신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렇게 뒤섞인 채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미국 노예 탈출, 인류 종말, 소년원 폭력 실화 등 출간하는 작품마다 다른 소재와 개성있는 구성 방식을 선보이는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된 작품들 중에서 이 소설만의 다른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전의 작품들이 공감과 연대, 사랑과 희생을 기저에 두고 독자의 가슴을 몽글몽글하고 애잔하게 했다면, 이 작품은 불의를 불의로서 대항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점, 그리고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자와 블랙 유머를 통해 뒷맛 씁쓸한 웃음을 던져주며 동시에 은근한(?)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히어로가 아닌 소시민의 반격은 그 감정을 배가시킨다는 면에서 더 통쾌할 수도(마지막에 느껴지는 헛헛함은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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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2 아이네이스 2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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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을 읽으면서 4권에서 놓쳤던 흥미로운 한두 가지를 이야기해보자면, 먼저 달리기 시합에서 선두에 있던 니수스가 마끄러져 우승을 놓치게 되자 3등으로 달리고 있는 친구 유랄룻을 위해 2등으로 달리고 있던 살리웃의 앞을 가로막아 결국 친구를 우승자로 만든다. 이에 살리웃은 니수스의 간계로 빼앗긴 명예를 돌려달라고 탄원하는데, 그리스군의 계략에 분노했던 아이네아스가 내린 처방은 의외다. 명예와 공정과 우정, 아이네아스는 이 중에 어느 것을 우선할까?  


 
다른 하나는 이벤트로 준비한 소년 기병대의 행진을 통해 베르길리우스가 율리우스 가문과 아우구스투스를 에둘러 칭송하는데, 디도가 우정의 보증으로 선물한 시돈의 말을 타는 소년이 율루스다. 별것 아닌듯 하지만,카르타고 전쟁에서의 승리와 제정 이후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인들에게 어떤 존재였을지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6권부터 7권까지 신화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6권에서, 저승의 문을 열고 들여다 본 모습은 여느 문헌들과 마찬가지로 끔찍하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터다. 바다에 빠져 시신이 땅에 묻히지 못한 팔리눌이 자신의 유골을 흙에 뿌려달라고 호소하지만 뱃사공 카론의 허락이 없으므로 단칼에 거부하는 무녀의 단언은 잔인하기까지하다. 아이네아스가 저승에서 디도를 만나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데, 그 옆에 디도의 전남편 쉬케웃이 있는 아이러니는 베르길리우스가 나름 로맨티스트였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 이유가 주석에 따르면 '통곡의 들판'에 쉬케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과는 아무 상관없이 디도의 오라비인 피그말리온의 탐욕에 의해 살해됐기 때문이다. 유노는 자신의 종족에게 돌아가는 아이네아스를 보면서 '밉살스런 민족'이라고 말하는데, 최고의 여신이 너무나 인간적이다싶어 웃음이 나기도 한다(새삼 이 신이라는 작자들은 왜 이렇게 유치한 건지).  
 



7권에서 열거하는 참전한 도시들의 이름을 보면 앞으로 로마사에서 익숙하게 될 지역들ㅡ캄파니아, 삼니움 등ㅡ이  등장한다. 로마 제국이 유지되는 동안 충성과 반목을 거듭하는 이탈리아 도시들과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음을 떠올린다. 그나저나 군 규모를 보면 아이네아스 일행이 도저히 이길 수 없어 보이는데, 마침내 벌어진 전쟁. 아이네아스는 티베리우스강 하신의 지시로 에반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에반더의 땅은 후일 로마가 세워질 장소다. 이런 면에서 하신의 계시와 동맹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로마는 이방인으로서 약탈이 아닌 동맹으로써 건국됐음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에반더가 아이네아스에게 자랑삼아 들려주는 영토의 역사는 에반더도 몰랐던 로마 건국이 시작될 이 땅이 얼마나 축복받은 땅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한 셈이다.   
 



베누스가 아이네아스에게 건넨 무장을 살펴보면 불을 뿜고 있는 깃털 달린 투구, 죽음을 가져오는 검, 청동판의 굳센 흉갑, 호박금 순금으로 만든 가벼운 정강이받이와 투창, 직조된 방패. 도저히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무장이다. 그런데 죽음을 가져오는 검이라는 것이, 전쟁터에서 휘둘러지는 어떤 검이 죽음을 부르지 않겠는가. 요리를 목적으로 하는 칼이 아닌 다음에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장면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모습ㅡ로물루스, 악티움 해전, 아우구스투스 등ㅡ을 형상화고 있다.  


630 - 638
또 새겼다. 마르스의 푸른 동굴에 젖 먹이는 
어미 늑대가 누웠고 늑대 젖 주변에서 쌍둥이 
소년들은 매달려 놀며 어미젖을 빨고 있었다, 
겁도 없이. 어미 늑대는 살찐 뒷복을 뒤로 돌려 
번갈아 둘의 몸을 핥아 주고 만져 주고 한다. 
그 옆에 로마와 사미눔 여인들의 불법 납치,. 
함께 앉아 있는 관람석, 경기장의 큰 볼거리가 
덧붙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새로운 전쟁, 
로물룻 패와 싸운 타티웃 노인과 거친 쿠레스.  
(후략)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건국에 시발점으로 삼은 이 동맹 전쟁을 쓰면서 당신 혼자 감정이 북받친 건 아닐까라는 조금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8권의 마지막 문장인 '후손들의 명성과 운명을 어깨에 짊어졌다'라고 썼는데, 이는 아이네아스가 아닌 베르길리우스의 시선에서 썼다는 게 너무 강하게 와닿았다. 







 




베르길리우스는 그야말로 온전히 아우구스투스가 다스렸던 시대를 살던 사람이다. 베르길리우스와 아우구스투스는 각각 BC19년, BC14년에 사망했다. 팍스 로마나를 이룩한 황제에 대한 경외심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더불어 로마인으로서 갖는 자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겠더라는. 읽다보면 베르길리우스가 호메로스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베르길리우스 본인도 호메로스를 뛰어 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며 책을 덮었다. 그나저나 3권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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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드디어 다윈 4
찰스 로버트 다윈 지음, 김성한 옮김, 최재천 감수,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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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종의 기원>을 두번째 읽으면서 앞으로 다윈의 책을 읽을 일은 거의 없겠다했는데, 이 책을 읽게 됐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셀 수 없는 수많은 관찰과 경우의 수를 들어 지구가 회전하는 동안 이어져 온 생명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직접 관찰과 지인을 동원한 정보, 그리고 여타 다른 문헌들을 참고해 인간과 동물이 밖으로 나타내는 다양한 감정 표현들의 특징을 서술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에게서 살펴볼 수 있는 모든 주요 표현들이 전 지구적으로 대동소이하다는 것이고, 이 점이 흥미로운 까닭은 단일 혈통의 선조로부터 여러 인종들이 유래되었음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이나 동물이 보여 주는 주요한 표현 동작이 개인적인 습득이 아닌 유전적인 것이며, 그중 다수는 학습이나 모방과 상관없고 어릴 때부터 나타나는 동작들은 평생  개인의 통제 능력을 벗어나 있다. 그러나 눈물이나 웃음처럼 타고 난 감정 중에서도 충분하고 완벽하게 표현될 때까지 개인적인 연습이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기도할 때 합장한다거나 애정의 표시로 입맞춤을 하는 등의 우리가 선천적이라고 믿을 만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일부 몸짓은 분명 학습된 것이다. 또한 일정한 목적을 위해, 혹은 모방을 통해 의식적.자발적으로 수행되어 이후 습관화된 것들이 있다. 그런데 주요한 표현 동작들은 대체로 선천적이거나 유전을 통해 물려받은 것이다. 물론 일부 두드러진 표현 동작들은 노력으로부터 생겨나기도 했다.  



언어는 동일 종족의 성원들 간에 의사 소통을 하는데 뛰어난 능력으로써 인간이 진화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다양한 표현 소리를 내는 음성(소리) 기관은 처음에 성적인 목적을 위해 발달했으나 이후 점차 발달하면서 의사 소통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다윈은 이 책을 저술하면서 의지, 의식, 의도라는 용어를 적절히 적용하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자발적이었던 동작이 습관화 된 것도 있고, 최정적으로 유전적인 것이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동작이 의지를 거슬러 수행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표현 동작들이 대부분 선천적이거나 본능적이지만 이들을 인식하는 능력이 그러한지는 별개로 고찰해봐야 함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표현 동작이 점차적으로 습득되다가 나중에 본성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듯, 비록 경험적 증거는 충분하지 않지만 표현 동작에 대한 인식 능력은 본능적인 것이 되었다는 주장에 개연성이 있다고 여긴다.  



다윈은 우리의 호흡 및 순환 기관의 구조가 조금만 달랐더라도 우리가 짓는 대부분의 표정을 지금과 많이 달랐을 거라고 짐작한다. 여러 표정을 지을 때 나타나는 근육의 변화에 대해서 지나치다 싶을만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는데, 다윈의 직접 관찰이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에 머물렀음은 살짝 아쉽지만, 근육의 수축이나 눈물 분비, 안구 표면에 가해진 압력 반사 작용 등 이러한 결과물을 대부분 관찰로 이끌어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짓는 표정들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고착되어 왔음을 다윈의 집요한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예를 들어보자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고, 부정적일 때 좌우로 흔드는 행위를 우리는 대부분 당연하게 여긴다, 냉소와 무시의 표정은 오직 얼굴 한 편의 송곳니만을 보이는 방식으로 윗입술이 수축한다, 우리는 결의(결단) 찬 모습을 보일 때 입을 굳게 다문다(물론 전 인류가 공통적이지는 않다). 이처럼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여겼던 표정이나 행위들을 통해 타인과 무언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그래서 범죄 프로파일링이 가능한 거 아닌가 싶고).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공감이 본능이라는 접근이다. '공감의 본능'을 매개로 슬픔을 비롯한 여러 감정들이 촉발된다는 것(사실이든 아니든 멋진 가설이다). 따라서 공감을 기반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표현 동작은 언어에 비해 훨씬 진실되게 생각이나 의도를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명체에 대한 많은 것들이 증명된 현재에 비전문가로서 이 책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 에른스트 마이어는 <이것이 생물학이다>에서 현미경의 발명 덕분에 생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말씀했는데, 기술이 아닌 관찰로서 인간과 동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큰 인내와 관심을 필요로 한다. 다윈이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며 장엄함에 경의를 표했다면, 나는 그의 관찰과 인내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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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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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부에서 계몽주의의 개념들을 정리하고, 2부에서 그 유효성을 입증했다면, 3부에서는 계몽주의 사상을 옹호한다. 특히 이성, 과학, 휴머니즘에서의 개몽주의 이념이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며 보탬이 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자는 보편적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의 주제로서 네 가지를 꼽는다.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가 그것이다. 이성은 비타협적이다.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 습관이 그다지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성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과학 혁명은 인간을 무지로부터 뿐만 아니라 공포로부터 탈출시켰다. 과학에는 우리 자신 즉, 인간에 대한 이해도 포함되었다. 휴머니즘은 부족, 인종, 국가, 종교의 영광이 아닌 인간 개개인의 안녕과 복리에 특권을 부여하고, 만족과 고통을 느끼는 지각 있는 존재는 집안이 아니라 개인이다. 인간은 공감이라는 정서를 타고 났기에 휴머니즘 본성에 부합할 수 있다. 과학과 이성과 세계주의가 공감의 범위를 넓혀 준 덕분에 인류는 지적, 도덕적으로 진보할 수 있었다. 진보를 이야기함에 있어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점은 휴머니즘에 기초하지 않은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 조건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 엔트로피, 진화, 정보는 인간의 진보 이야기의 핵심적 줄거리다. 저자는 이 세 개념을 통해 불행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유기체같은 복잡계는 수많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쉽게 망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여기서 망가짐이란 압제와 착취). 인간은 폭력을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으로 본다고 얘기하면서 그 증거로 인류 역사 전체에서 탐욕보다는 정의의 이름으로 살해된 사람이 더 많다는 문장이 확 와닿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는 경제 성장이다. 그리고 현재 예민한 이슈인 불평등, 환경에 대해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저자가 말하는 여러 형태의 폭력과 사고, 그에 따른 사망이 과거보다 현저히 낮아졌고,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라는 글에서 피해자에 대한 경시는 없다. 객관적인 자료에 따른 결과를 말할 뿐이고 이는 사회가 더 진보하고 있음을 근거한 것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상대 수치에 기대어 절대 수치의 피해자가 잊혀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가 주장한대로 분야에 따라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상은 점점 진보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약자의 입장에서 평등은 여전히 미흡하다. 무엇보다 과거보다 현재가 더 나아졌다는 사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대중적 희망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인간이 평등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진보(계몽)를 이뤄야하고, 진보는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저자의 의도가 무조건적으로 부를 지향하자는 것도 아니고, 기본소득 등 인류가 평등하게 누려야할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칫 이러한 논리가 악용될 소지가 있을 가능성이 느껴진다. 따라서 인류가 추구해야할 가치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어야하는지를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글은 중립적이고 정치적.편향적이지 않으며 현실과 인간의 본성을 기초로 냉철하게 판단한다. 읽으면서 크게 동의.공감한 부분도 있었고, 물음표를 찍어 놓은 부분도 있었다. 진보는 인간의 지식과 행동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저자에게서 계몽을 지향하는 그의 사상이 흔들림이 없음을 느낀다. 우리가 사회과학 문헌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에 입각한 정보와 다양한 시각으로 통찰할 기회를 줌과 동시에 독자 스스로 물음표를 찍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고 어느 지점에서 물음표를 찍을지 무척 궁금하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들이 많을 것 같아 독서 토론 한 번 가야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 리딩투데이 선물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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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1 아이네이스 1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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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는 트로이아 멸망을 시작으로 하는 로마 건국 서사시로서 총12권으로 되어 있으며 베르길리우스의 11년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트로이아 목마로 유명한 그 시점부터 신의 계시를 받은 후 일행을 이끌고 망명길에 오른 아이네아스가 카르타고를 떠나는 장면인 4권까지 실려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질 때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베르길리우스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문구마다 감정이 격렬해 따라가기 바빴는데, 쓰는 장본인은 이 격한 감정을 어떻게 눌러가며 글을 썼을까싶다. 눈앞에서 아들을 처참하게 잃고, 무너져가는 남편을 지켜봐야하는 헤쿠바와 멸망 왕족의 여인으로서 살아남은 죄로 처절하고 기구한 운명에 던져진 안드로마케.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보면서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는 그녀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남편을 오라비가 살해하고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가까스로 마음의 문을 연 디도의 애절한 호소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 가슴이 아픈 건, 처연하기까지 한 그녀의 죽음이 아니라 아이네아스와의 이별이 전 남편의 주검에 정절(신의)를 지키지 않은 대가라고 여기며 자신에게 탓을 돌리는 디도의 절망감이다. 디도가 아이네아스의 이별 선언에 죽음을 선택한 까닭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 찾아오는 상실감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 상실감과 그 이후에 강요받을 혼인에 대한 압박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디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도구가 아이네아스에게 선물로 요구해 받은 칼인데, 주석에서 보면 디도가 '트로이아의 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상징성을 언급한다. 상징성이 차후 세 번에 걸친 카르타고와의 전쟁, 그리고 한니발을 끝으로 로마의 속주가 되는 것을 말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감정 뿐만 아니라 상황의 묘사도 상당히 역동적이다. 목마가 열리고 시작된 살육과 파괴의 현장을 묘사한 문구는 어떤 설명없이도 오롯이 전해진다. 이어지는 일행의 방랑길은 극한의 연속이다. 첫번째 정착지에서는 영혼이 떠나라고 하고, 두번째 정착지에서는 역병이 돌고, 중간에 태풍과 괴조의 출몰은 서비스다. 정착할 땅을 찾아 떠도는 패배자이자 망명객의 고단함과 열패감 , 처절함이 애절하게 전달된다. 카르타고에 난파되기까지의 여정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감정을 흔드는 부분은 3권이다. 
 


 
지극히 트로이아인의 관점(굳이 따지자면 로마인 관점)에서 쓴 작품이다보니 베르길리우스의 약간 유치한 면도 있어 웃음이 나는 구석이 꽤 있고, 주석을 읽으면서 오뒷세이아까지 뒤적거리며 맞춰 읽다보니 번역하신 선생의 말씀에 나 혼자 궁금한 점이 생기기도 했더랬다. 예를들어, 2권에서 꿈을 꾸고 있는 아이네아스는 헥토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는 주석이 있는데, 왜일까? 헥토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나?'처럼. 베르길리우스는 코로이부스를 통해 '간계'가 그리스 사람들의 전유물인 양 표현했다고 해석했다. 즉 그리스인들을 에둘러 폄훼한 것. 그리고 속임수를 쓰는 그리스군이 승리한 것에 아이네아스는 분노하는데 올림픽도 아니고 전쟁에서 무슨 정정당당한 승부를 외치시는지. 





 
고대 문헌을 읽을 때 주석을 따로 읽는 편이다. 원문을 한 번 읽고, 원문을 보지 않은 채 주석만 읽는다. 그러면 두 번 읽는 효과도 있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다. 주석을 읽다보면 해석에 대해 아직까지 논쟁되는 부분이 있다고하는데, 이런 부분은 과감(?)하게 통과하면서 읽었다. 
 


이 판본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가능한 원전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물론 의역해 놓은 판본들보다는 읽고 소화하는데 시간이 좀더 필요하지만 아름답고 호소력 짙은 문장을 즐길 수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읽는 중이다. 두번째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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