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이스 1 아이네이스 1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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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는 트로이아 멸망을 시작으로 하는 로마 건국 서사시로서 총12권으로 되어 있으며 베르길리우스의 11년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트로이아 목마로 유명한 그 시점부터 신의 계시를 받은 후 일행을 이끌고 망명길에 오른 아이네아스가 카르타고를 떠나는 장면인 4권까지 실려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질 때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베르길리우스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문구마다 감정이 격렬해 따라가기 바빴는데, 쓰는 장본인은 이 격한 감정을 어떻게 눌러가며 글을 썼을까싶다. 눈앞에서 아들을 처참하게 잃고, 무너져가는 남편을 지켜봐야하는 헤쿠바와 멸망 왕족의 여인으로서 살아남은 죄로 처절하고 기구한 운명에 던져진 안드로마케.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보면서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는 그녀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남편을 오라비가 살해하고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가까스로 마음의 문을 연 디도의 애절한 호소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 가슴이 아픈 건, 처연하기까지 한 그녀의 죽음이 아니라 아이네아스와의 이별이 전 남편의 주검에 정절(신의)를 지키지 않은 대가라고 여기며 자신에게 탓을 돌리는 디도의 절망감이다. 디도가 아이네아스의 이별 선언에 죽음을 선택한 까닭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 찾아오는 상실감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 상실감과 그 이후에 강요받을 혼인에 대한 압박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디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도구가 아이네아스에게 선물로 요구해 받은 칼인데, 주석에서 보면 디도가 '트로이아의 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상징성을 언급한다. 상징성이 차후 세 번에 걸친 카르타고와의 전쟁, 그리고 한니발을 끝으로 로마의 속주가 되는 것을 말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감정 뿐만 아니라 상황의 묘사도 상당히 역동적이다. 목마가 열리고 시작된 살육과 파괴의 현장을 묘사한 문구는 어떤 설명없이도 오롯이 전해진다. 이어지는 일행의 방랑길은 극한의 연속이다. 첫번째 정착지에서는 영혼이 떠나라고 하고, 두번째 정착지에서는 역병이 돌고, 중간에 태풍과 괴조의 출몰은 서비스다. 정착할 땅을 찾아 떠도는 패배자이자 망명객의 고단함과 열패감 , 처절함이 애절하게 전달된다. 카르타고에 난파되기까지의 여정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감정을 흔드는 부분은 3권이다. 
 


 
지극히 트로이아인의 관점(굳이 따지자면 로마인 관점)에서 쓴 작품이다보니 베르길리우스의 약간 유치한 면도 있어 웃음이 나는 구석이 꽤 있고, 주석을 읽으면서 오뒷세이아까지 뒤적거리며 맞춰 읽다보니 번역하신 선생의 말씀에 나 혼자 궁금한 점이 생기기도 했더랬다. 예를들어, 2권에서 꿈을 꾸고 있는 아이네아스는 헥토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는 주석이 있는데, 왜일까? 헥토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나?'처럼. 베르길리우스는 코로이부스를 통해 '간계'가 그리스 사람들의 전유물인 양 표현했다고 해석했다. 즉 그리스인들을 에둘러 폄훼한 것. 그리고 속임수를 쓰는 그리스군이 승리한 것에 아이네아스는 분노하는데 올림픽도 아니고 전쟁에서 무슨 정정당당한 승부를 외치시는지. 





 
고대 문헌을 읽을 때 주석을 따로 읽는 편이다. 원문을 한 번 읽고, 원문을 보지 않은 채 주석만 읽는다. 그러면 두 번 읽는 효과도 있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다. 주석을 읽다보면 해석에 대해 아직까지 논쟁되는 부분이 있다고하는데, 이런 부분은 과감(?)하게 통과하면서 읽었다. 
 


이 판본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가능한 원전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물론 의역해 놓은 판본들보다는 읽고 소화하는데 시간이 좀더 필요하지만 아름답고 호소력 짙은 문장을 즐길 수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읽는 중이다. 두번째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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