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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비순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권예리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평점 :
작가의 사생활을 자세히 아는 건 책을 읽는데 그닥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작가의 삶을 먼저 알고 글을 읽어서였을까? 그녀의 소설들이 썩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잊혀졌던 작가 콜레트가 스스로 자신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자부하는 이 책을 만났다.
소설 속 화자는 약물 중독자, 남장 여자, 여장 남자, 동성애자, 바람둥이 등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과 나눈 대화와 일화, 경험 등을 풀어놓는다. 화자는 콜레트 본인이다.
작가는 여성 스스로 본능과 쾌락적 욕구를 인정하고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성에게 '진정으로'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전통적인 여성성을 거부하는 여자들에게조차 쾌락은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X'를 통해 남성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남자라는 특권으로 부여받은 쾌락을 누리지만 정작 여자들에게 순수와 정숙을 강요하는 이중성, 더불어 사회적 신분이 낮다하더라도 남녀의 성관계에 있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입장은 늘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정신적 자웅동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정신적 중성을 추구하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르게리트와의 대화를 통해 남자에게는 여성성이, 여자에게는 남성성이 정신적으로 일정 부분 내재해 있다고 말한다. 남성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가랑이를 벌리고 말을 타기를 원하는 여자가 있듯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아름다운 시나 풍경에 감동하는 남자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괴물로 단죄되는 자웅동체' 취급을 하며 성의 특성을 규범화시켜 강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이 (형식적으로나마) 성차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양성평등이 익숙할 만큼 '성평등'에 서투르다.
동성애자였던 시인 르네 비비앵이 독주를 마시고, 느닷없이 자취를 감추고, 울음을 터뜨리고, 지칠때까지 걷고, 실신 상태로 잠을 자고, 결국 알콜 중독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지독한 슬픔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사랑보다는 쾌락을 이야기했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파괴했던 시인 르네 비비앵, 그녀가 궁금해졌다.
이성애에서는 공감받지 못하거나 혹은 홀로 남게 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동성애에서 오는 감정은 관능이 아닌 동족성 또는 유사성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이러한 주장은 세상의 편견과 비난에 맞서며 연인으로서, 동반자로서 51년을 해로한 엘리너와 세라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 두 여인이 순수함을 저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싸우겠다고 선언하는 화자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남편의 대필 작가였던 시절, 그녀 주의에 있었던 많은 남성들. 콜레트는 그들 사이에서도 동성애는 존재했고, 그들을 통해 동성애자들이 갖는 일반적인 견해가 '정상인'들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이들 무리에서 유일하게 여자로써 배제된 분위기와 고독을 즐겼으며 이를 '순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혼자 두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아마 자발적 고독과 수동적 외로움은 분명이 다르기 때문일 터다.
작가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성에게도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탐닉과 쾌락의 욕망이 있고, 성적으로 늘 우월하다고 여겨졌던 남성들 또한 여성과 크게 더 나을 바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성별을 떠나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 대해 순수와 비순수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으며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본인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쾌락과 성적 욕구가 반드시 비순수는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한데,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
그녀는 마지막으로 반려동물과 어린 아이를 들어 인간이 자유와 사랑을 대하는 이중성을 말하고 있다. 포획자에 가까운 우리 인간이 반려 동물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유를 주어야하겠지만 그들로부터 얻는 위안과 애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주는 구속과 구속에서 벗어나고픈 자유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모순.
작가, 무용가, 배우, 언론인 등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았던 콜레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도덕 관념으로부터의 해방과 여성의 쾌락적 욕구와 성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 무엇보다 사랑이든 질투든 삶에 열정을 다하라는 것.
이 책을 덮음으로써 작가의 다른 작품을 재독할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