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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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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알았다. 전작에서 농인 시설 이름을 왜 '해마의 집'이라고 했는지. 



[법정 수화 통역사] 두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농인보다는 양육과 교육, 그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과 인식의 문제, 그리고 발달장애와 비혼모를 향한 사회 구성원들의 편견을 다루고 있다.  
 





 



발달장애는 부모의 애정 부족과 양육 환경에 원인이 있다는 주장을 하며 '육아 서포트 조례안'를 통과 시키려는 정치인과 서로의 이득이 맞물려 정육학을 기본으로 하는 청각 주도 교육만을 시행하겠다는 가지 히데이코는 권력과 돈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편법을 자행한다. 
 


자폐 스펙트럼과 함묵증을 안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에이치의 엄마는 비혼모다. 에이치와 같은 반 미와의 주선으로 아라이는 에이치의 집을 방문해 소년에게 수화를 가르치게 되고 들을 줄 알지만 음성 언어를 하지 않는 아이는 그날부터 '용위 귀'를 갖게 된다. 
 


어느날 에이치 집 근처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 에이치. 그런데 이 사건 이면에는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에이치의 엄마 마키코, 증언을 하겠다고 용기를 낸 에이치. 때론 아이가 어른보다 더 강하다. 
 



 
일단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 교육 기본법'이라는 명칭부터 어불성설이다. 정통적 가족의 가치관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무엇이 정통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1인 가구를 시작으로 현대 사회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동성부부와 자녀, 조손가구, 비혼자와 자녀, 자녀가 없는 2인 가구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그런데 '올바른' 가족의 형태를 국가가 규범해 놓는다는 것은, 국가가 가정 교육에 개입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잘못된 관습과 고정관념을 확립시켜놓는다는 의미다. 또한 발달장애를 비롯한 자녀 문제를 부모와 가정 환경에 일방적으로 무조건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지의 극치다. 이러한 모습은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그려지는 미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마키코와 에이치, 그리고 가지 일가를 통해 현재 사회 저변에 잘못 인식되어 있는 부분들에 대해 짚는다. 우리는 스스로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아직까지 인정하기 어렵다. 이는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한 여론과 해결 방식과 결과,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책을 쓴 어느 전문의가, 난치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갖은 아이를 낳는 것은 '확률'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확률에 걸려든 것 뿐이라고. 법정 수화 통역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 말이 생각났더랬다. 


 

'보통'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저 확률을 피해간 것 뿐이다. 그리고 '정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상의 잣대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없다. 그보다는 인정, 공존, 조화라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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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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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간 당시 미스터리 소설인줄로만 알고 읽었다가 '이 뭉근한 감동은 무엇?'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 내 유일한 청인이었던 아라이는 기억하는 유년시절부터 넘어져도 울지 않는 아이어야 했다. 고작 열한 살 나이에 의사가 선고하는 아버지의 말기암 시한부 삶을 어머니에게 통역해야 했고, 자주적이고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어야했다. 청인들 사이에서 움츠려들 수 밖에 없어던 가족의 보호자는 어린 아라이였다.  
 

변호사 가타카이의 흠이 '들리지 않는 것'이라면, 아라이의 흠은 가족 중에 유일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농인인 큰 아들이 약자라고 여겼던 부모는 눈에 띄게 아라이의 형을 편애했고, 가족의 지인들은 아라이가 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하나 같이 시선이 달라졌다. 아라이의 정체성은 늘 청인과 농인의 경계에 있었다. 
 

주인공 아라이와 사건의 주요 인물인 몬나 일가 외에도 아라이와 교제 중인 미유키, 농인 마스오카, 형사 이즈모리가 등장해 사건 해결과 더불어 사건의 본질을 추적해가면서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이해에 대해 되짚어 본다.  
 

처음 읽었을 당시 주변에는 수화가 매력적이라며 수화를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현재, 수화를 배우겠다던 사람들 중에 ㅡ단어 몇 개 아는 정도, 혹은 영상을 보고 노래 한 곡 정도를 수화로 표현하 수준이 아닌ㅡ수화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이는 없다. 수화가 언어라는 인정과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수화를 배우기는 쉽지 않다. 책 한 권 읽고 일시적으로 수화를 유행인 양 배우겠다는 태도보다는, 우리가 다름을 대하는 시민의식부터 바꾸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장애는 약점이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자들의 무지가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놓았고, 그로인해 형성된 고정관념에 편승하는 다수자들이 약점으로 만들어 버렸다. 배려가 아닌 공정의 차원에서 점검해야 하고, 공정성이 다져진 상태에서 서로에게 이루어지는 배려야말로 진정한 배려다. 소설에는 농인들 뿐만 아니라 아동 성폭력, 싱글맘, 입양 등의 이야기가 사이사이 엮여져 있다. 
 

우리는 누구의 적도, 편도 아니며 동등하게 공존해야 하는 존재들임을 일깨우는 소설이다. 소설은 무겁지 않다. 나의 리뷰만 무겁다. 
 

 
사족.
지인들에게 여행가서 밤에 읽으라고 추천해 온 소설이다. 혹은 혼자 여행가는 이들에게.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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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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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에 낀 검은 때, 손등의 흉터,  아직 피딱지가 굳지 않은 손바닥의 상처, 그리고 옆에 있는 젊은 여자의 시신. 지아는 이 깊은 산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176.
무덤을 파야겠어. 그리고 시체를 옮겨야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야겠어. 내가 죽인 게 누군지, 왜 죽였는지. 미친 여자는 누군지, 빨간 수염은 또 뭔지도. 카메라에 찍혀있던 사진 세 장은 또 뭘 의미하는지도.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소재로 한 소설은 어린 시절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눈앞에서 군인에 의해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인격 분열 장애를 겪는 지아가 자아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을 미스터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선과 악을 지아와 혜수를 통해 대변하지만 인간의 가장 밑바닥 모습들을 각각의 인물들에 투영하면서 우연과 필연이 연속적으로 엮여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혜수의 등장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었다는 죄책감에 기인한다. 그 엄청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면 지아는 무의식적으로 혜수를 불러낸다. 결국 두 번째 인격인 혜수가 지아의 정신 세계를 장악하고 지아는 지친 삶을 스스로 끊어내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다가 스스로 두 번째 인격이 되어 혜수의 뒤로 숨어 침잠한다.


주요 공간적 배경이 되는 묵진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최하층 인간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한탕으로 삶을 뒤바꾸고자 하거나 죽지 못해 겨우 살거나, 두 부류만이 존재한다. 묵진으로 향한 혜수는 어떤 부류였을까.    
 


관훈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장면은 독자에게 던지는 '죄악'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혜수를 들이지 않았다면, 22년 전에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 그러나 과거에 대한 가정은 의미없다.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어미와 아비의 심정이 다르지 않으나 관훈은 자신의 죄를 모른 척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불쌍하다는 이유로 진희가 자신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도록 그냥 두지 말았어야 했다.


친절을 가장한 두 얼굴의 재필과 규식. 그들 역시 자신의 욕망에 야비하게 충실했고 그 댓가를 치뤘다. 타인의 고통과 약점을 담보로 욕망을 채우는 이들의 간악함은 드러내놓고 악인을 자처하는 혜수보다 더 끔찍하다.


작가는, 소설에서 혜수는 복수심과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인격이자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서 만들어낸 자아라고 말한다. 묵진에서 자리를 잡은 뒤 이어지는 혜수의 행적은 이 말을 그대로 뒷받침한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장면은 혜수의 집 카드키 비밀번호였다.  
 


왼쪽과 오른쪽처럼 서로 가장 많이 닮았지만 서로 닳을 수 없는 존재. 그러나 결국 지아에게 삶을 내준 혜수.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두 인격 모두 애처롭다.


600쪽이 넘는 소설을 하루에 읽었다.  긴장감, 스토리, 강렬한 메세지까지 상반기에 읽은 장르 소설 중 최고라는 칭찬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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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옥 - 노비가 된 성삼문의 딸
전군표 지음 / 난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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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계유정난을 시작으로 훈구파 세력과 대립하고 개혁정치의 뜻을 품었으나 재위 13년만에 죽은 예종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효옥은 단종 복위 사건으로 처형당한 사육신 성삼문의 딸로서 유일한 생존 혈육이다. 노비로 전락한 후 20년만에 면천된 그녀와 예종의 독살설에 상상력을 입혀 살려냈다. 
 


삼촌이 조카를 죽이고 삶의 목표가 다른 형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충신이 간신이되고 간신이 일시에 충신이 되는 역사적 사실은 이미 지나치도록 알고 있기에 비록 허구지만 효옥의 삶에만 집중했다.  
 



 


계유정난 2년 후, 단종 복위가 세 치 혀 한 마디로 들통나면서 충신들의 목이 다 달아났고 남은 건 그들의 가족이다.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늙은 노모를 비롯한 모든 여자들은 노비가 되었다. 
 


성승 일가의 여인들은 열두 살 어린 효옥만 남겨둔 채 강물에 몸을 던졌다. 효옥은 운성위 박종우의 집으로 보내졌고, 자유의 몸이 된 순심과 바우 모자가 스스로 노비가 되어 효옥을 따라 박종우의 집으로 들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단단해져가는 바우는 그림자처럼 효옥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효옥은 어느날 찾아온 김시습 덕분에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한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됐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술 한 잔 올릴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스치듯 지나간 인연을 잊지 못하는 수양의 둘째 아들 황은 형이 죽은 후 세자가 된 이후에도 효옥을 챙겼다. 차라리 잊고 살았으면 좋을 인연이련만. 이를 안 정희왕후는 박종우를 불러 은밀히 효옥을 처치할 것을 지시하고, 세자와 왕후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은 제 아비의 심중을 핑계삼아 그의 아들 박선규가 효옥을 겁탈하려고 덫을 놓는다. 이에 바우와 몸싸움이 벌어져 박선규는 제 칼에 제 명을 단축하고 바우와 효옥은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리고 새끼줄 꼬아 놓은 듯 끊어지지 않는 세 사람의 운명.
아직 여물지 못했고, 벼리지 못했던 개혁의 칼날은 젊은 그들을 향했다. 
 
 

 
 


역사 소설의 스포일러는 역사적 사실이며, 매력은 '그랬더라면'이라는 상상에 있다. 효옥과 바우가 원호의 말대로 애초에 땅에 스미듯 살았더라면, 혹은 예종이 좀더 치밀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더라면, 혹은 효옥이 그대로 명나라로 떠났더라면... .  

 
사대부 집안의 딸이 아닌 노비로 산 세월이 더 길었던 효옥은 이 소설에서 당시의 여성들과는 다르게 자주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도망자 신세가 된 후 스스로 이름을 바꾸고, 양반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은세공 장인으로서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신의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척하는 모습은 양반과 노비라는 두 신분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신분제의 모순을 직접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아침에 모든 가족을 잃고 천애고아가 된 것도 모자라 노비 신세로 전락한 가혹한 운명 앞에서 효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버지가 당부한 대로 살아남는 것 뿐이었다. 아버지의 바람은 복수도 원한도 없이 자신의 딸이 무명으로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여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지 삶이 아니었다. 오히려 효옥은 사대부 집안에서 벗어나고서야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것 또한 모순이지 않은가.
 


소설의 마지막,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해 애달프고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져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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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비순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권예리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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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사생활을 자세히 아는 건 책을 읽는데 그닥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작가의 삶을 먼저 알고 글을 읽어서였을까? 그녀의 소설들이 썩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잊혀졌던 작가 콜레트가 스스로 자신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자부하는 이 책을 만났다.  









 
소설 속 화자는 약물 중독자, 남장 여자, 여장 남자, 동성애자, 바람둥이 등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과 나눈 대화와 일화, 경험 등을 풀어놓는다. 화자는 콜레트 본인이다.  



작가는 여성 스스로 본능과 쾌락적 욕구를 인정하고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성에게 '진정으로'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전통적인 여성성을 거부하는 여자들에게조차 쾌락은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X'를 통해 남성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남자라는 특권으로 부여받은 쾌락을 누리지만 정작 여자들에게 순수와 정숙을 강요하는 이중성, 더불어 사회적 신분이 낮다하더라도 남녀의 성관계에 있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입장은 늘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정신적 자웅동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정신적 중성을 추구하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르게리트와의 대화를 통해 남자에게는 여성성이, 여자에게는 남성성이 정신적으로 일정 부분 내재해 있다고 말한다. 남성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가랑이를 벌리고 말을 타기를 원하는 여자가 있듯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아름다운 시나 풍경에 감동하는 남자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괴물로 단죄되는 자웅동체' 취급을 하며 성의 특성을 규범화시켜 강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이 (형식적으로나마) 성차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양성평등이 익숙할 만큼 '성평등'에 서투르다.  
 


동성애자였던 시인 르네 비비앵이 독주를 마시고, 느닷없이 자취를 감추고, 울음을 터뜨리고, 지칠때까지 걷고, 실신 상태로 잠을 자고, 결국 알콜 중독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지독한 슬픔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사랑보다는 쾌락을 이야기했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파괴했던 시인 르네 비비앵, 그녀가 궁금해졌다.


이성애에서는 공감받지 못하거나 혹은 홀로 남게 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동성애에서 오는 감정은 관능이 아닌 동족성 또는 유사성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이러한 주장은 세상의 편견과 비난에 맞서며 연인으로서, 동반자로서 51년을 해로한 엘리너와 세라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 두 여인이 순수함을 저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싸우겠다고 선언하는 화자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남편의 대필 작가였던 시절, 그녀 주의에 있었던 많은 남성들. 콜레트는 그들 사이에서도 동성애는 존재했고, 그들을 통해 동성애자들이 갖는 일반적인 견해가 '정상인'들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이들 무리에서 유일하게 여자로써 배제된 분위기와 고독을 즐겼으며 이를 '순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혼자 두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아마 자발적 고독과 수동적 외로움은 분명이 다르기 때문일 터다.   


작가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성에게도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탐닉과 쾌락의 욕망이 있고, 성적으로 늘 우월하다고 여겨졌던 남성들 또한 여성과 크게 더 나을 바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성별을 떠나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 대해 순수와 비순수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으며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본인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쾌락과 성적 욕구가 반드시 비순수는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한데,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  
 


그녀는 마지막으로 반려동물과 어린 아이를 들어 인간이 자유와 사랑을 대하는 이중성을 말하고 있다. 포획자에 가까운 우리 인간이 반려 동물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유를 주어야하겠지만 그들로부터 얻는 위안과 애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주는 구속과 구속에서 벗어나고픈 자유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모순.  
  


작가, 무용가, 배우, 언론인 등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았던 콜레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도덕 관념으로부터의 해방과 여성의 쾌락적 욕구와 성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 무엇보다 사랑이든 질투든 삶에 열정을 다하라는 것.  


이 책을 덮음으로써 작가의 다른 작품을 재독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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