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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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행성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바다 역사와 바다가 인류에 미친 영향, 지금 당면한 문제점과 해결 방안, 해양권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소리없는 전쟁, 그리고 인류의 미래가 바다에 달려 있음을 책 전반에 걸쳐 역설한다. <총, 균, 쇠>가 전방위적으로 문명 이동을 탐구했다면, <바다 인류>는 그야말로 바다의 관점에서 인류사를 통찰한다. 








 
지구상 대부분의 바다는 먼 과거부터 많은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 공간이었다. 태평양에 사람들이 확산하는 역사적 과정을 되짚어보면 그동안 대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듯 알고 있었던ㅡ서구인이 들어오기 전 시대는 야만적 암흑기였고 서구인이 들어와서야 문명의 시대가 펼쳐졌다는ㅡ이분법적 견해에 대해 에펠리 아후오파는 '태평양의 재개념화'를 통해 태평양 세계의 주민들은 대양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음을 설명한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들'이 아니라 '섬들로 구성된 바다'라는 것. 광대한 대양 세계를 작게 분할한 것은 제국주의 세력이었다. 바다에 가상의 선을 그어 식민지 경계로 삼고, 좁은 세상에 그들을 가두었으며, 현대 문명은 오히려 다방면으로 풍요로웠던 해상 공간을 무의미한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도양을 중심으로 하는 2부와 중세부터 근대까지 다루는 대항해 시대의 3부다. 전 세계 해양의 27퍼센트를 차지하는 인도양은 거의 모든 주요 문명권이 이 바다에서 조우할 만큼 많은 문명이 태동하거나 인접해 있어서 늘 세계사의 중심에 있었다. 지중해와는 다르게 인도양은 뚜렷하게 패권을 잡은 강력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중심적 공간이었다는, 그래서 인도양은 역사 발전을 추동하는 모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점이다. 로마제국 쇠락 이후, 10세기를 경과하면서 유럽의 흐름이 바뀌어갔다. 바이킹은 러시아 지역과 비잔틴제국 너머와 아메리카 대륙까지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며, 한자 동맹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해상 교역을 했고, 지중해 세계에서는 이탈리아 항구 도시들이 크게 성장해갔다. 중세 유럽은 위기 상황에서 바다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고, 근대 초 전 세계를 향한 팽창의 기반을 마련했다.  


4부에서는 증기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과학과 기술의 힘을 갖춘 서구 세력이 바다를 제국주의 이념에 사용한 내용이, 5부에서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인간의 지배가 극대화된 바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일단 통사임에도 책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 뿐만 아니라 고대 갤리선, 이슬람권 및 인도양 각지에서 사용한 다우선, 중국의 신안선과 정크선, 몽골이 원정에 사용한 배, 남중국의 조선술, 곡스타드 선박, 발트해의 코그선, 범선 클리퍼, 증기 선박, 철선, 등 배와 당시의  이동 경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도들에 대한 설명과 사진 등 사료가 풍부하게 실려있다. 무엇보다 이토록 면밀하게 서술했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마치 이야기 책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적어도 재미면에 대해서는 백점 만점의 백점이다)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책에 실려 있는 당시 인도양에서의 교역이 이루어진 지도를 살펴보면 마치 사이사이에 매듭진 끈처럼 이어져 있다. 이렇게 자유롭고 평화로웠던 교역이 유럽의 진입으로 인해 망가졌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만약 중국 명이 인도양에서 후퇴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시아 해양 네트워크가 연합했다면 유럽의 아시아 식민화를 막을 수 있었을까? 


한자 동맹은 16세기에 이르러 국민국가의 등장으로 쇠락해갔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식민지 교역을 열었고, 청어잡이가 발트해에서 북해로 이전한 것 등 여러 요인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군주들이 자국의 상업 이익을 통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일련의 역사적 계기들을 접할 때마다, 그리고 현대사에 들어서면 더욱 드는 생각은 '국가'가 갖는 혹은 존재해야 하는 본질적 의미다.  


세계 4대 문명 중 현재까지 그 위세를 떨치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들이 이토록 장구한 세월 동안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세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수용'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정 기간 쇄국 조치를 취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의 기본 정신에는 어떤 형태로든 타민족.타문화를 수용하는 데에 긍정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현대의 (중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은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국가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읽으면서 변함없이 드는 생각은, 인류의 흥망성쇠는 일방적인지 않은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고, 천운과 기회, 정치와 군사는 말할 것도 없이 종교, 자연환경도 무시할 수 없으며 그로인해 맞물려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결과 또한 한끝 차이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후대는 늘 끊임없이 '만약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한다. 역사의 가정이 무의미없다 치부할 게 아니라 역사의 그룻된 부분을 반면교사 삼아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적인 냉전 체제에 접어들어 긴장감은 고조되었고, 해상과 육상 심지어 우주전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며 더구나 최악의 무기로 증명된 '핵'을 향한 집착은 각 나라마다 커져갔다. 핵과 석유, 전쟁과 산업이 맞물린 중동 및 아시아 해역은 그야말로 꾸준한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또한 아프리카 해역과 중남미 지역에서 해적, 그리고 곳곳의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는 밀수(특히 마약)는 나날이 진화하며 끊임없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강대국들은 너도나도 해군력을 파괴적으로 증강하며 바다에서 경쟁하고 있다.  


어업도 위험한 수위에 직면해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황금기를 거쳐 어획량의 등락을 반복하다가 현재에는 수자원의 고갈을 초래하고 있어 생태계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른 해양 환경의 악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이로인해 발생하는 사태는 해양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들을 지엽적이고 근시안적인 해결이 아닌 인류 뿐만이 아니라 생명권, 환경 등 다각적인 여러 분야에서 연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 적지 않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좀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도 반길 일이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문제점을 수시로 점검해야한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한 일임을, 잊지 않기를 바람한다.  


세계는 바닷길로 연결되어 있다. 월터 롤리 경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교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교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결국 세계 자체를 지배한다고 말했다는데, 이제는 바다와 인류.비인류 생명체가 공존하는 세상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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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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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1부 로마의 일인자, 2부 풀잎관의 내용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 실었다. 3부는 술라의 두 번째 로마 진군 직전부터 시작한다.    


3부부터는 슬슬 세대 교체가 시작되고 있다. 종신(법적으로는 불특정 기간이라고 하지만) 독재관에 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술라를 중심으로 젊은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독재관에 오른 술라의 행보는 가히 신적인 존재에 맞먹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의견에 반론한 이를 곧바로 처형하고 공개된 공권박탈자는 아무나 죽여도 상관없으며, 공권박탈자 가족에게 연좌제를, 공권박탈자를 돕는 사람은 동급으로 처형당했다. 그야말로 술라의 독재관 시대가 막을 열었고, 로마가 술라의 장난감이 된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술라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존엄' 뿐이라고 말한다. 유일하게 죽음을 넘어선 승리, 사람의 물리적 존재의 멸실에 대한 승리가 존엄이라고 정의한다면 폼페이우스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른다. 결국 술라는 자신이 목적으로 하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절대적 승리를 위해 싸우고 있었고, 마침내 긴 기다림 끝에 쟁취했다. 그런데 과연 그의 행위는 '존엄'할까.



전우이자 스승이었던 마리우스와 대척하고, 조카와 다름없는(실제로 한때 처조카였던) 마리우스 2세의 목을 자르고, 누이같은 율리아에게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아들을 잃었고, 몸도 정신도 망가지고 황폐해졌다. 폼페니우스의 말대로라면 죽어서야 남겨질 존엄을 얻는 대가는 가혹하다.  



스스로를 '마그누스'라고 칭할 만큼 자신만만한 폼페이우스는 조직을 구성하고 계획하며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실행하면서도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 재능과 함께 날카로운 명민함으로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감각까지 타고났다. 그는 자신의 몽상을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실제의 삶에서 성취해나가는 사람이다. 여기에다 몸을 굽힐 줄 아는 현명함까지 갖추어 술라의 휘하에서 조금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3부 1권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사건이 아닌 '인물'이었다. 술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온 인물은 마리우스 2세와 아우렐리아였다.  


마리우스 2세. 어린시절부터 절대 권력자의 외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그래서 자만심은 있으나 무엇이 되고자하는 욕망은 없었던 사람. '마리우스'라는 이름에 얹혀 스스로를 아버지와 동일시했던 오만과 착각의 대가는 처절했다. 아버지를 존경했고 순종했으나, 아버지로부터 배워야할 것들을 간과한 것이 잘못일 것이다. 마리우스 2세가 아버지로 물려받은 것은 금전적 풍요와 자존심 뿐이었고, 정작 마리우스에게 배워야할 것을 흡수한 사람은 마리우스가 그토록 경계했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율리아의 자상함과 다정함은 없지만 필요할 때마다 아들의 장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아우렐리아. 카이사르 역시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능력을 갖춘 사람인지 충분히 인지했기에 고비의 순간마다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우렐리아가 술라를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지켜야할 것들을 지켜냈다. 술라와 아우렐리아의 회한에 가까운 감상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길은 없으나, 분명한 건 두 사람은 서로 닮았다.



​술라가 전쟁을 비롯한 여러 상황에 당면했을 때 그가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아군이든 적이든 혹은 불시에 적이 될 수 있는 동지든 사람을 먼저 읽는 모습은 그가 그저 마리우스를 잇는 전쟁 천재이기만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잔인하다. 율리아를 생각해서라도 자결한 마리우스 2세의 머리를, 굳이 창 끝에 꽂기까지 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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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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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 공산주의자 아들, 바르셀로나 출신의 아나키스트의 사위, 팔레스타인의 민족 시인의 친구, 이스라엘 비유대인 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파리의 대학에서 부계 혈통 유대계 소녀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친 교수, 이것이 저자의 정체성이다. 


저자가 이스라엘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이 책은 성서를 비롯해 그동안 유대인들이 민족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저술했던 저작들을 시대순으로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고고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를 통해, 심지어 생물학까지 끌어와 그들이 어떻게 단일 민족의 정체성과 시오니즘을 체계화하고 이데올로기로 정착시켰는지 서술한다. 또한 다양한 사료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객관적 근거를 들어 만들어진 신화와 역사의 오류를 짚어낸다.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채우게 된 까닭은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유랑민족은 팔레스타인을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땅이라고 여기며 그곳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고 성서적으로 부흥을 이룰 것이기에 이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벌인 전쟁들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계보는 기억의 구성자들이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해 층층이 쌓아올린 것이고, 그 기억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유대 역사학과들의 고집스런 배타성 때문에 유대인의 기원과 정체성을 냉철하게 조사할 새로운 역사학이 나올 길은 막혀있다. 이스라엘 역사가들에게 유대인이란 '이천 년 전에 추방된 민족의 후손'이다. 


​민족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발전인 것은 틀림없지만 순수하게 자발적인 발전은 아니다. 집단 충성심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강화하고, 단일하고 확고한 실체로 거듭나기 위해 통합적인 집단 기억을 만들어 냈다. 민족은 이데올로기이자 정체성이다. 민족주의가 승리를 거두고 패권을 잡은 것이 근대 들어와서라는 점은 분명하다. 민족주의는 근대에 만들어진 기초적 권력 관계를 뛰어넘는 지적.정서적 현상이다. 서구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시작된 다양한 역사 과정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집단화 방식을 아우르고 다양한 요구와 기대에 해답을 주는 이데올로기이자 정체성이었다. 


ㅡ 


4세기 초 그리스도교가 승리를 거두고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자 원래부터 예루살렘 외부에 거주하던 유대교 신자들마저 유배를 신의 징벌로 보는 관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념이 세계 곳곳에 있는 유대인들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유대인이 예루살렘 추방자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것만이 유대교인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대인 즉 유랑민으로 보는 한 구세주가 부활하여 은총을 내렸다는 그리스도교적 관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유배란 종교적 카타르시스의 한 형태였고, 유배란 장소적 의미를 넘어 아직 구원이 오지 않았다는 상황적 의미를 갖는 관념이었다. 


여기에서 오는 모순은, 예루살렘에서 평생 유대인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목적으로 집단이주를 감행하는 것은 이 종교의 관념(유배, 유랑)에 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며, 그래서 구원을 재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대교인들에게 유배란 현존하는 물리적 세계 전체를 규정짓는 상황이었다. 1920년대에 들어 미국 국경이 닫히고 나치의 참혹한 학살이 시작되자 그제서야 영국 위임통치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유대인들은 그 긴 세월동안 고향땅에서 강제로 추방당한 적도 없으며, 자발적으로 돌아간 일도 없었다고.  


ㅡ 


그레츠, 두브노프, 배런 등 유대인 및 시오니스트 역사가들도 민중 전체의 유배나 강제추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강제추방을 성전파괴와 연결짓지 않았다. 강제추방 없는 유배의 시작점은 아랍이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정복한 7세기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기나긴 유배의 시간은 실제로는 더 짧았다는 것. 그런데 디누어가 스스로 역사에 수정을 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아 역사에 대한 지나친 왜곡이 불러올 이후 역사의 모순된 문제점과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민족 소유권 주장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유배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 


저자는 아랍 국가들이 1947년 유엔의 분할 결의안을 받아들이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이제 막 세워진 유대인 국가에 합동 공격을 개시한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이 자리 잡는 것을 도와준 셈이 되었다면서, 전쟁이 없었더라면 약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피난가거나 추방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땅이 '유대 민중'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원칙을 공고화시키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십만 명의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죄책감 없이 거부할 수 있게끔 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저자의 말대로 시오니스트들은 과연 그 땅에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아랍인들을 진정한 자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였을까라는 점이다. 1947년 결의안은 두 국가에 남는 소수자들에게도 반드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였고 유엔 가입 조건으로 내걸었다고하지만, 법적으로 이스라엘 국민일뿐 땅을 몰수 당하고 군정 통치와 가혹한 규제 하에 둔 것을 감안한다면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나? 또한 '선택받은 종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이 아랍인의 개종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결국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지 않았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유럽에서 겪었던 또다른 '게토'를 팔레스타인에 만들었을려나. 


'유대 민족은 존재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역전되었다고 한다.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이들보다 떠나는 이들이 더 많다고. 저자는 오늘날 시오니스트 논리의 약점은 이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으며, 미래에 '에트노스'에 입각한 유대인은 인류 전체로부터 고립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저자는 아랍 국가들이 1947년 유엔의 분할 결의안을 받아들이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이제 막 세워진 유대인 국가에 합동 공격을 개시한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이 자리 잡는 것을 도와준 셈이 되었다면서, 전쟁이 없었더라면 약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피난가거나 추방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땅이 '유대 민중'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원칙을 공고화시키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십만 명의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죄책감 없이 거부할 수 있게끔 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저자의 말대로 시오니스트들은 과연 그 땅에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아랍인들을 진정한 자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였을까라는 점이다. 1947년 결의안은 두 국가에 남는 소수자들에게도 반드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였고 유엔 가입 조건으로 내걸었다고하지만, 법적으로 이스라엘 국민일뿐 땅을 몰수 당하고 군정 통치와 가혹한 규제 하에 둔 것을 감안한다면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나? 또한 '선택받은 종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이 아랍인의 개종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결국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지 않았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유럽에서 겪었던 또다른 '게토'를 팔레스타인에 만들었을려나.  


'유대 민족은 존재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역전되었다고 한다.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이들보다 떠나는 이들이 더 많다고. 저자는 오늘날 시오니스트 논리의 약점은 이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으며, 미래에 '에트노스'에 입각한 유대인은 인류 전체로부터 고립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의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고대 유대교는 번성했던 일류 종교였고, 유럽과 아시아를 포괄하는 범대륙적 종교였음에도 시오니스트들이 채택한 정체성은 '유랑 민족'이었다. 역사를 철저하게 재구성한 시오니스트들은 자랑스러운 자신들의 역사를 숨기고 조작하는 행위에 자괴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리고 (유대인들이 읽으면 돌 날아올 말이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행위는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시작과 아주 흡사하다. 그렇다면 과연 홀로코스트가 팔레스타인 식민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는가? 물론 홀로코스트는 명백히 처벌받아야 할 잔악한 범죄다. 그러나 이것이 피해자였던 그들이 다른 피해자를 양산해내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왜 굳이 자신이 속한 '민족'과 국가를 대상으로 오류와 과오를 짚어가며 이토록 길고 냉철한 글을 써내려 간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비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분열을 조장하고 억합하는 자국이 미래에 인류로부터 소외당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세계 각국에 있는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연대를 표명하지만, 이스라엘 정부 정책에 큰 관심이 없으며, 유대인이지만 거주하고 있는 나라에서 일상적 차별과 소외와 억압을 겪고 있지 않기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버리고 이스라엘로 이주해 오지 않는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35세 이하 유대인 가정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고 있고, 이스라엘과의 연대는 오직 60대 이상에서만 안정적이고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데이터가 '디아스포라' 로 대변되는 힘이 영원히 이스라엘로 유입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또한 오랜 갈등을 해결하고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긴밀한 공존 관계를 엮어나가기 위한 해법을 제안하고 당부한다. 이것이 저자가 자국민들과 정부에게 전하는 '애국'의 방식일 것이다. 



이 책은 고대부터 유대인(교)의 역사의 변화, 그리고 아라비아반도,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동유럽 등에서의 유대인들의 기원과 현재는 사라져버린 개종자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서술한다. 유대인이지만 마치 외부자의 시선으로 쓴 이런 문헌은 쉽게 접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근본주의 정체성 측면에서 봤을 때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민족 서사에 대한 집착하는 이들이 읽어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머리말에서 썼던 이스라엘의 변화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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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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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고 싶었던 역사였기에 하나라도 놓쳐 잘못 이해할까 우려되 꼼꼼하게 읽느라고 완독까지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일단 표지의 지도는 워낙 유명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지도의 색깔만으로도 팔레스타인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현대에 이토록 공격적으로 영토 확장이 가능한지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영국과 근대적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을 민족적.정치적 권리를 지닌 한 민족으로서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중동의 다른 모든 위임통치령은 독립을 획득했는데, 왜 팔레스타인만 이런 혜택을 받지 못했을까? 그리고 밸푸어와 영국은 왜 영국의 유대인 유입을 막는 데에 팔레스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을까? 팔레스타인은 다른 독립국가들처럼 뚜렷한 실체와 중앙집권적 체제, 그리고 진정한 동맹자가 없었으며, 외견상 확고한 민족전선도 유지하지 못했다. 영국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엘리트 파벌을 형성해 이간질하고, 일부를 통치 체제 안에 흡수했다. 밸푸어는 4대 열강이 시온주의에 동조함을 밝히며, 시온주의가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간에 그 오래된 땅에 거주하는 70만 아랍인의 욕망과 편견보다 시온주의의 아주 오래된 전통과 현재의 요구와 미래의 희망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 또한 팔레스타인인의 견해를 존중할 필요가 없으며, 그 오래된 땅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70만 아랍인을 '일시적인 거주자'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이 모순적인 논리를 이해할 수 있나?


위임통치국과 국제연맹은 애초에 팔레스타인에서 무력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선전포고 시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의 공정성 호소와 대표단 파견, 민중 시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들은 언제든, 언제라도 총을 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안보리 결의안 242호를 보면 유엔은 팔레스타인인의 존재를 없애 버렸다고 썼는데, 나는 유엔조차도 애초에 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크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원래' 나라가 없는 난민일 뿐이고, 분쟁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그저 형식에 불과한 인도주의적인 쟁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인 건 1969년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팔레스타인인 같은 건 없었고 (...)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선언을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을 손아귀에 쥔 강대국 사이에서 그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무시당했다. 이러한 모욕을 참아낼 민족이 있겠는가? 그들은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주장과 대의를 제기하기 위한 민족운동을 부활시킬 수 밖에 없었을 터다.  



1979년 1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미국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핵심 인물인 아부 하산 살라메를 암살하는데, 이스라엘의 배신감은 미국을 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레바논 주재 대사인 존 건서 딘을 암살 시도 표적으로 삼긴 했지만 결국 죽은 사람은 팔레스타인인이다. 민간인을 담보로 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어쩔 수 없이 베이루트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할 때까지 미국과 이스라엘,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방관한 아랍 정권들에 의해 계속될, 그리고 전쟁 후 참혹한 학살에 대한 책임도 심판도 없는, 비열한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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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결정적이자 가장 심각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오류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원칙 선언>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표로 인정했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도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했다. 그런데 이 '인정'이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 유의미한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거나 국가의 창설을 허용하지도 않았다. 터무니없게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자신들의 고국을 식민화하고 점령하는 국가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온갖 특권을 유지한 채 사실상 땅과 사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정당화해준 셈이었다. 껍데기 뿐인 이 협상의 오류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안겨다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1995년 협정은 2년 전 오슬로 협정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형상이었다. 이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땅은 누더기처럼 쪼기졌고, 이스라엘은 60퍼센트가 넘는 지역을 차지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차지한 지역의 아랍인들은 졸지에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이 그어진 국경선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동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사이에 이스라엘 땅이 있어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단절과 압박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저자는 자살 폭탄 공격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공격하고 암살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는 하마스의 서사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과연 맹목적 복수 이외에 어떤 성과를 달성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더구나 이스라엘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은 이스라엘 사회를 와해시키는 데 치명타가 되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사회가 가진 응집력을 무시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민간인을 향한 공격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족 의식을 각성한 계기가 되었듯,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가 아닐까싶다.    


이 즈음에서 개인적으로 드는 의문점은 이스라엘은 왜 그토록 불평등에 집착하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불평등은 보통 안전의 욕구로 암호화되고 정당화된다고, 그래서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응해서 지금까지 여러 세대가 공격적 민족주의라는 반사적 교의를 바탕으로 자라났으며 정밀하게 구축된 식민지 현실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하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시온주의자들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차곡차곡 계획을 쌓아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사냥감(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팔레스타인)을 정해놓고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사냥꾼의 모습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덫에 걸려든 영락없는 먹잇감 신세가 되었고. 결론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명분으로 삼는 '홀로코스트' 이전부터 팔레스타인 식민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전쟁 당시 유대인 학살은 그들에게 대의적 명분을 안겨준 셈이라는 것이다(로 이해됐다).  


이스라엘이 이토록 극악스러운 이유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신앙적 의미를 넘어서 다른 식민국과는 달리 돌아갈 곳이 없어서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 아메리카에 발을 딛고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몰아냈던 유럽인들도 따지고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된다는 원리는 어쩜 이렇게도 찰떡같이 들어맞는지.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테러'다. 테러를 옹호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정당하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정식으로 인정받은 국가가 없으니 군대가 없어 테러리스트가 된 이들을 비판없이 무조건 비난만한다면, 국가의 이름을 걸고 대규모 정규 군대를 이끌고 무방비 상태, 그것도 국가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난민 위치에 있는 수백, 수천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 정당한가.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도, 이스라엘에도, 일본에도, 한국에도, 유럽의 어느 나라에도 테러리스트를 자처하는 '국민'은 없다. 대의적 명분없이 가족과 함께 먹고 살 만한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팔레스타인 전쟁 100년사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상황이다. 저자는 비교적 냉철하게 정황을 들여다보고 비판하는데, 그들의 입장에서 제3자이자 독자에 불과한 내가 더 감정이 올라와 읽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제3국의 국민일 뿐인 내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테러리즘에 가려 그 이면을 놓치고 일방적으로 비난을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협상과 타협, 공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막무가내로 독선적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저자의 바람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해방을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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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수업 - 불교철학자가 들려주는 인도 20년 내면 여행
신상환 지음 / 휴(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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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나 답사를 다닐 때 근처에 성당이나 사찰이 있으면 가능한 들러보려고 한다(물론 답사 일정에 성당이나 사찰이 있는 경우도 많다). 불교는 나에게 익숙한 종교가 아니다. 등산과 답사가 계기가 된 사찰 방문은 종교와 무관한 안온함을 주기는 하지만 불교에 대해서 아는 바는 상식 수준을 넘지 못한다.   


제목이 <인도 수업> 이지만, 절반 정도의 분량이 티벳과 불교 이야기다. '불교 수업'에 더 가까운 책이 아닐까 싶은데, 그럼에도 제목이 <인도 수업>인 까닭은 인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저자가 어디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결론은 인도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기 때문인 듯하다. 인도에서 20년 수학한 저자가 인도, 티벳, 투르크 여행기를 불교와 접목시켜 서술한다.  








 
인더스강은 기원전 3세기 인도 정복 전쟁을 펼쳤던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어로 '인도스'라고 불렀고, 페르시아인들은 '힌두스'라고 불렀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오늘날 인더스강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인도인들을 부르는 '힌두'가 생겨났다고 하네. 인도에는 국어 즉 national language가 없다. 이는 인도의 역사.인종.지형 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애초부터 '나라말'을 생각하기에는 그 규모가 컸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다양했던 것. 이처럼 인도의 언어와 어원, 역사, 문화의 유래와 현재 인도인들의 삶 등을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티벳은 궁금하지만 검색으로 아는 게 전부인 곳이다. 먼저 새롭게 안 사실, 티벳학이라고 하는 것은 티벳의 문화.역사 등을 공부하는 것이고, 티벳 불교는 이 기운데 불교를 전문으로 다루는 것이고, 티벳 밀교는 티벳의 현밀쌍수의 전통 가운데 밀교를 강조하며 수행하는 것 등을 가리킨다(티벳 불교와 밀교는 다르다). 그럼 여기서 현밀쌍수는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아는 건 없고 궁금증은 못 참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료를 찾느라 읽는 시간만큼이나 검색하고 다른 책을 들추는 데 시간이 들었지만, 그 과정도 꽤 재미있었다. 


대승 불교가 대중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배경이 '시장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티벳의 불교 전래는 불교적 세계관을 그 문화적 원형으로 삼고 출발했다. 당시 주나라에서는 사후 문제를 언급하면 은나라의 귀신 숭배 사상과 겹쳐 소위 이단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는데, 중국에 전래한 불교가 커다란 마찰 없이 도교의 개념을 빌어 중국 문화와 융합될 수 있었던 것은 '사후 문제의 결여'라는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더니!) 


인도-티벳 불교의 전통을 이해하는 핵심은 '세간의 진리'와 '수승한 의미의 진리' 이다. 일체 부자성에 근거를 둔 언설로 표현 불가능한 연기 실상의 세계와 언설로 된 희론의 세계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일체 부자성=연기=공성' 이라는 항상 움직이는 세계를 언어.개념.정의 등으로 고정하는 언설의 세계로 전환하는 순간,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거 이해하는 데 시간 좀 걸렸다) 


중국 불교가 소의경전(Root text Buddhism)이라면, 티벳 불교는 주석불교(Foot note  Buddhism)이다. 그러나 기도와 신행, 대승의 근간인 자비심과 공성을 강조하는 것은 공통분모다.  


티벳 불교에서의 밀교는 생활 그 자체를 뜻한다. 신행의 근간이 되는 진언과 염송은 밀교의 전통인데 대승 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니 티벳 불교=밀교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 밀교는 스승과 제자 간의 법의 전승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제례 의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티벳의 밀교는 공통점을 지녔으나 티벳 불교는 '티벳 불교'의 특징을 지닌다. 이외에도 티벳 불교와 비티벳 불교의 차이, 티벳 불교가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티벳의 간략한 역사 등 티벳(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자유 티벳'을 향한 불교의 불살생 언칙에 따른 비폭력 투쟁을 계속하는 티벳 불교와 만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일무이에 가까운 한국의 호국 불교의 위대함은, 방식은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장 티벳 이야기]를 읽고는 나름 진심 뿌듯했다는.  



[4부 투르크 이야기]는 그야말로 여행 에세이 느낌이 물씬 나는 부분인데, 읽다보니 몇 년 전에 읽은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중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가 생각났다. 중복되는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그때 기억을 되짚어 가며 읽는 것도 꽤 괜찮은 읽기였다. 파미르 고원 , 톈산 산맥, 키르기스스탄의 오시, 카자흐스탄의 북아랄해, 투르케스탄의 아흐멧 야사위의 대영묘, 사마르칸트 등 두 달에 걸친 중앙아시아 여행기. 이렇게 긴 여행 일정이 가능하다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비록 일부나마 내가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 불교 경전을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나에게는 불법을 따라가는 생소한 여행기였지만, 내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불교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종교학으로는 엄두가 안나고).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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