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목숨 걸지 마라 - 지금 당장 버리면 행복해지는 사소한 것들
리처드 칼슨 지음, 이창식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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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며, 노력만 하면 해결의 길이 열린다고 집착하지 않기.
항복, 포기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하면, 안심하고 지금 이 순간과 마주볼 수 있게 된다.

행복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느끼고 있던가, 아니면 느끼지 못하던가 둘 중 하나.
만약 언젠가는 행복하게 되주겠어 라고 벼르고 있다면 요주의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행복 그 자체가 길이다" 라는 속담이 있다. 행복은 현재의 마음 상태이며,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라는 의미다.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한 무엇보다 간단한 방법은, 이 순간을 살고 있지 않다는것을 깨닫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이상, 나에게는 지금을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인생은 , '현재'의 연속이다. 이 순간에 집중해서 삶으로써 정말이지 새로운 선택의 문이 열린다.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이나 경력이나 관련된 사람등)에 사로 잡혀 살아가고 있는, 혹은 미래의 불안에 걱정하며 살아가는, 장래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그 결과, 맛볼 수 없고, 행복을 느낄수 없고, 삶을 조금도 즐길 수 없고,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마음이 여기에 없으면 봐도 안보이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마음을 집중해 조금이라도 지금 이순간 행복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 지나간 과거나 미래의 불행에 대해 미리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이를 위해서는 관심, 걱정 , 문제 , 후회 , 좌절에서 벗어나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동정과 용서 배려를 베풀게 한다. 마음속에 있는 골치아픈 생각을 인식하는 능력, 만약 나의 생각을 두려운 것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생각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면 깊이 빠져들거나 사로잡히는 상황을 피할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문제를 대할 수 있다.   

나중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며, 매순간 넘치는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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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1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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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헨리 8세'와 왕비 '캐서린'의 이혼, '앤 불린'과의 재혼이라는 유명한 역사적 사건의 전말을 그린 역사 소설, 2009년 부커상 수상작. 추기경 '토머스 울지'가 로마교황청과의 이혼 절충에 실패해 실각한 뒤, 울지의 비호를 받고 있던 주인공 '토머스 크롬웰'이 궁정에 출사, 정치적 입장이 다른 각각의 인물들 사이를 오가며 타고난 정치 수완을 발휘해 헨리와 앤의 결혼을 준비 한다. 원래는 대장장이의 아들이었다는 이 크롬웰의 눈과 귀를 통해 헨리의 횡포, 앤의 오만함 등, 왕후 귀족, 귀부인 들의 본모습이나 생활상이 리얼하게 전해져 오는 흥미로운 비화로 완성되어 있다.

한편, 이 소설은 크롬웰이 울지의 실각이나 처자식의 병사 등 수많은 고난을 넘어서서, 천한 신분에서 국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되는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다. 늑대들이 우글우글한 궁 안에서 다양한 정보수집과 책략으로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크롬웰이라는 인물의 묘사는 매우 현대적이라, 역사 소설이면서도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강력한 현실주의자 크롬웰과 신념을 추구하는 인물인 '토머스 모어'의 대비도 선명하다. 둘 중 어느쪽이 더 훌륭한 삶이었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내비치고 있지 않지만, 대신에 독자에게는 훌륭한 생각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명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채용한 역사 소설의 경우,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균형있게 배열해서, 그 인물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재미를 고려한 픽션의 형태로 추구하는 작품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큰 그림, 즉 거시적인 시점은 주인공을 둘러싼 정치나 사회 정세, 또 국제 정세등의 견해, 말하자면 역사관이고, 반면에 미시적인 시점으로서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등이 등장하는 사생활을 포착해 그려내는 자잘한 드라마를 들 수 있다. 거시적인 면에 치우치면 단순한 역사의 나열이되고, 미시적인 면에 비중을 두면 소재만 빌려왔을 뿐 고증과는 거리가 먼 창작 스토리에 가깝게 된다.

그런데 이 울프홀은 그 거시적이라는 면에서 전체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사 공부에 소홀했던 나는 학창시절에는 이 튜더 왕조에 대한 지식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나오는 크롬웰(청교도 혁명으로 유명한 올리버 크롬웰이 아니고, 토머스 크롬웰) 시대의 정치나 사회 정세, 영국 왕실의 역사등을 얼추 알고, 별 무리없이 이야기 전체를 내려다 보면서 읽어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이 시대를 다루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등의 영상매체를 흥미위주로나마 종종 접해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크롬웰의 사적 교류 안에 헨리8세와 캐서린, 앤 불린, 앤의 언니 '메리', 추기경 '토머스 울지'나 '토머스 모어'등 그럭저럭 아는 얼굴들이 제법 등장하는데, 이로 인해서 정사와는 또 다른 비화적인 형태로 헨리 8세의 결혼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사정이 깨끗하게 머리에 들어온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전문적인 지식은 아니라 이책에서 이야기하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은 못된다. 아마도 대부분은 실존했던 사건들이 아닐런지.... 혹시 튜더왕조에 해박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현대적인 해석이 어딘가 불편하거나 파격적으로 다가오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런 비교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16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늑대들의 싸움터 속에 순수하게 빠져들어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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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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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라면 흔히 전통 혼례나 종갓집같은 토속적인 소재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아침일찍 일어나 수험생 자녀 학교 보내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고부간의 갈등으로 속을 끓이고, 때로는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여고생 시절로 돌아가 누구는 어떻게 살더라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씩 나이먹어 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야 말로 이 시대의 가장 한국적인 것은 아닐까.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희노애락.
가장 미국적인 이야기라는 평을 들으며 2009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올리브 키터리지>는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은퇴한 수학교사 '올리브 키터리지'는, 쉽게 다가가기 힘든, 어떻게 보아도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성이 악한 인물은 아니다. 비록 주위 사람들의 눈에는 완고하고, 드세고, 비판적이고, 관용적이지 못한 까다로운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실은 자아가 강하고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라 누구보다 쉽게 상처 입는다. 마치 표현이 서투른 한국의 부모님들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이런 올리브의 모습에서는 애정과 안스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미국 북동부 메인주 연안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에서  남편 '헨리', 외아들인 '크리스토퍼'와 함께 살고 있는 이런 올리브의 가족과 크로스비 마을 주민들의 에피소드를 그린 열세편의 단편들 속에 이 거구의 아주머니는 다양한 심정을 안고 매번 다른 입장이 되어 등장한다.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탁월한 통찰력으로 인생의 희노애락을 그려낸 이 희비극들 속에는 어느 이야기나 인생의 비애와 고뇌가 담겨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투고, 소소한 사랑을 꿈꾸고 그렇게 작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의 끝에는 저마다 필연적으로 고독과 적막함이 뒤따른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런 외로움을 딛고 일어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웃고 우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동안 어느새 나 자신의 지난 인생을 되돌아 보고 있었다. 내가 알아온 모든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워낙 많이 낚이다보니 이제는 권위있는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해도 과연 그 평에 걸맞는 작품일까 의심하는 버릇이 생겨버렸지만, 진심으로 '이것이 아니면 어떤 이야기가 수상한단 말인가!' 하고 공감한 작품이다. 다만 이 소설 속의 인간관계의 깊이와 올리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것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인생 경험은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12세 미만 구독 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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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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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중에 마음에 맞는 작품을 만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이제 그런 타이틀에는 연연하지 않기로 한지도 꽤 됐지만, 제 14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 <애도하는 사람>은 역자가 그랬듯이(후기에서 감상을 밝히고 있다) 나로서도 정말로 오랫만에 만나는 괜찮은 수상작이었다. 망자를 "애도하는" 여행을 하며 전국을 떠돌고 있는 "사카쓰키 시즈토"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독자는 소설 속 세 명의 화자의 눈을 빌어서 이 기이한 청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매일같이 티비나 신문을 통해 들려오는 처참한 사건, 사고 소식들. 이 중 가해자의 이름은 뇌리에 남을때가 많이 있지만, 피해자의 이름은 좀처럼 기억되지 않는다. 또,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은 기억에 남아도, 그 사람이 걸어온 '삶'은 마음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떠난 자의 입장에서 남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이 과연 자신의 '죽음'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로부터 감사받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감사해 마지않던 빛나는 '삶' 일 것임에 틀림없다.

 잡지나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부고기사와, 라디오나 티비에서 나오는 사고뉴스를 참고 삼아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그들을 애도하고, 그들이 보내온 삶을 마음에 새기는 '애도 여행'. 언제부턴가 청년 시즈토는 그러한 여행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 어떤 이익이나 목적 없이 순수한 마음만으로 망자를 애도하는 남자. 일말의 위선 없이 생면부지인 타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는가? 매우 깊이 있고, 흥미로운 주제다.

 그럼 그런 시즈토의 애도를, 고인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곧이 곧대로 감사해 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도대체 고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 멋대로 가져다 붙인 듯한, 납득이 되지 않는 애도의 이유부터가 애당초 위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행위를 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이며, 또 누가 기뻐한단 말인가. 그런 이유로 시즈토는 대부분의 유족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시즈토의 이런 애도는 전혀 무의미 한 것일까?

 인간은 누구라도 언젠가는 삶의 종착역에 도달한다. 그러나 삶이 끝난 후에도 그 사람의 '인생'은 계속된다. 누군가의 마음에 그 사람이 살아있는 한, 그 사람의 인생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가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이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가지게 되는 가장 큰 바램, 그것은 바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에 감동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시즈토라는 인물을 과연 순수하게 받아들일수 있느냐 하는데에 달려있다.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는 성자인가, 위선자인가? 위선자로 밖에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최고걸작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찬사에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감정이입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시즈토를 처음 만나면 누구라도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짓을 한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나? 당연한 의문이다.

 더더군다나 전도유망한 청년이 스스로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시작한 기행이니 그 의문은 더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만약 나 자신이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적이 있고 그 사실이 어느새 잊혀져 버리는 슬픈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 진 적이 있다면, 인간의 삶이 허무하다 느끼거나 혹은 나 자신이 죽은뒤에 누가 나를 기억해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 보라고 강권하고 싶다.

『과연 나는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누구에게 감사를 받은 적이 있는가?』

 이 사람은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했을까? 사람들은 어떤 일로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을까? 단지 이런 정도의 질문일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심금을 울리는 것인지. 시즈토와의 여행이 계속되면서 내 안에서 그 작은 질문이 파장을 이루며 점점 크게 번져가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을 읽고 그 답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애도하는 청년과의 이 기이한 여행은 결코 헛된 경험이 아닐 것이다.

 읽어내려가는 동안 묵직한 무언가가 몸 속에 들어차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느껴오던 먹먹함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렴한 무언가가 가슴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무겁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너무나 무겁다. 모든 이에게 있어서 기쁨이자 슬픔이고, 두려움이며, 전부라 할 수 있는 삶과 죽음. 그것이 주제 그 자체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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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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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델' 교수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밝혔듯이, 얼마전 우리나라에서의 '마이클 샌델' 열풍은 다소 의외였다. 이는 그동안 한국인들이 그만큼 철학이라는 것에 굶주려 있었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유래없는 자유에 도취되어 있는 우리지만,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여전히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풍요속의 빈곤이다. 기회는 균등하고 모든 법 조항마다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무언가 공정치 못한 것 같아, 도대체 왜 그럴까?, 아마도 그러한 의문의 답을 사람들은 철학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경제가 정치를 밀어냈고, 사람들은 정치가 다루지 못하고 있는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가치들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샌델 교수의 주장에서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책 전체에 걸쳐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도덕성의 의미와 본질, 그리고 각각의 이념들이 안고 있는 도덕적 딜레마와 정치적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 해 나간다. 언급하고 있는 분야는 미국사회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과, 낙태, 동성애, 복권과 도박, 부의 공정한 분배, 배아 복제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소 범위가 넓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실로 다양하다.

왜 도덕인가? 샌델 교수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등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분야에서 우선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도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가 산다는 점을 강조한다. 궁극적인 목적이 정의라면 그것을 위해서는 반드시 도덕적인 의식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무언가 이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철학적 화두가 도덕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의 해결과 개선에는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는 공정한 사회적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는 공리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제 3의 입장을 피력한다. 공리주의 및 자유주의는 일견 타당하게 들리지만,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에는 인간의 권리, 자유, 평등이라는 면에서 각각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따라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에서 그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옳음'과 '좋음' 어느 한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양쪽 모두를 고려하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략하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많이 난해한 편이다. 왜도덕인가?에 대해서라면 어느정도 납득을 하지만 아직도 현대사회에 있어서 무엇이 도덕인가에 대해서는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하지만 철학이라는 것이 애당초 흑백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훌륭한 논리라도 어느 한부분에서는 딜레마에 빠지기 마련이다. 공자가 말한 것 조차도 답은 아닐지언데 책 한권을 읽어내려 간 것만으로 명쾌한 답변을 찾아낼 수 있을리는 만무하다. 다만, 의견대립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균형을 맞추고 더 나은 상태를 찾게 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끊임없이 '왜 도덕인가?'를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 이유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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