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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행복 - 제44회 페미나상 수상작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데샹보 거리>를 읽다가 아련한 어린시절의 향수가 밀려와서 울컥했던 이래로, '가브리엘 루아'의 최고걸작이라는 이 데뷔작을 줄곧 기다려왔다. 언젠가는 읽을수 있겠지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데 비해서는 톰슨 가젤만큼이나 발빠르게 소개되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 이런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말 그대로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행복이다.
'2008/ 2010년 죽기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에 선정된 이책 <싸구려 행복>은 앞서 소개된 <데샹보 거리>와 마찬가지로 여류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 하나, 행동하나하나에 놀랄만큼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의, 캐나다 몬트리올 근교의 소도시 '생 탕리'를 무대로,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활상, 문화, 사상등이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힘겨운 와중에도 어떻게든 행복의 끈을 붙잡고 싶은 어느 일가족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는 돌아간다.
작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플로랑틴 라카스'는, 열아홉 꽃다운 나이의 여느 처녀들이 그렇듯이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영화같은 달콤한 사랑도 경험해 보고 싶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똥구녘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실질적인 가장이자, 집안의 장녀라는 책임감으로 그것들을 애써 억누르고 있다. 한탕을 바라는 몽상가 아버지 '아자리우스 라카스', 점점 더 궁핍해져만 가는 집안 살림에 홀로 고군분투하는 어머니 '오즈 안나', 그리고 새둥지속에서 부리를 벌리고 오밀조밀 모여앉아 있는 아기새들을 연상케 할 만큼 많은(몇명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린 동생들까지, 이 대식구가 전적으로 플로랑틴이 가져다 주는 돈에 의지하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플로랑틴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그녀가 일하는 식당에 손님으로 찾아온 노동자 청년 '장 레베레스크'. 이 시니컬한 청년에게 플로랑틴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홀딱 빠지지만, 얄궂게도 정작 플로랑틴을 사랑하게 된 사람은 장의 친구인 '에마뉘엘 레투르노'였다. 에마뉘엘은 군복무 중에 휴가를 나와 장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가 알게 된 플로랑틴에게 사랑을 느낀다. 플로랑틴은 지체높은 집안의 도련님인 에마뉘엘과 '나쁜남자' 장 사이에서 갈등한다.
궁핍한 삶은 선택할 수 있는 행복의 종류마저도 제한하는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어려운 시기 중에도, 서민들은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 보려 하지만, 가난 앞에서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고, 그렇게 힘겹게 고른 선택조차도 대부분 원하는 최선은 아니다. 너무나 가지고 싶은 실크 스카프를 사기 위해 모아 둔 쌈짓돈을 생활비로 내어 놓아야 하고, 집세가 없어 대가족이 다같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마당에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소음 정도는 더이상 고려대상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에 입대하고, 이성을 선택하는데도 조건에 휘둘리고, 이런저런 명분은 있지만 이들이 하는 선택은 결국 모든 것이 궁여지책이다. 이것말고는 방법이 없어서, 마지못해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이런 느낌이랄까? 그런 와중에도 파티를 즐기는 등, 이런 암울함은 해당사항이 없어보이는 가진자들의 모습과 대비되 더 안타깝다. 돈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라지만 가난해서 가장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고, 차선책 혹은 그 다음의 다음 선택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생각하고 독려하는 따뜻한 인간애가 있어서 마음은 무겁지 않다. 명품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 짝퉁이라도 구한다는 여자들의 가치관과는 다른, 비록 차선책이기는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않고 무언가 갈망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결코 우울하지 않다. 어쩌면 <데샹보 거리>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월이 지나도 사람 사는게 모두 같구나 하는 삶의 보편성이랄까, 어렵던 시절의 우리를 보는 듯한 애틋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이 그런 힘든 시절을 꿋꿋이 딛고 일어섰다는 사실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