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콩고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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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가장 화두가 되는 키워드라면 재벌개혁, 서민복지, 99%, 사회부조리, 불평등, 빈부격차, 빅엿, 가카새끼 짬뽕 등등 어떤 형태로든 사회정의와 관련한 것들이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소설은 팔리는 것은 다 모아놓았다. 모두가 잘사는 사회라는 이상과는 반대되는 현실을 블랙유머로 꼬집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책 <콩고, 콩고> 속의 세상에서는 모든 시스템이 소수의 권력자들이 만든 규칙에 의해 돌아가고 있고, 여기에 저항하는 자에게는 낙오자의 멍에가 뒤집어 씌워진다. 소수를 위한 장기말로 살기를 거부하고 무대위에 올라가서 쇼하다가는 강제로 끌어내려지기 쉽상이다. 천재소녀 '부'와 아이큐 78의 소년 '담'이 이런 부조리한 사회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이들은 신화가 된다. SF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현실을 풍자하는 모양새가 언뜻 '커트 보네거트'를 떠올리게 한다.

 

서기 만년, 아프리카의 콩고에서 미래의 고고학 팀에 의해 현생인류와는 유전자가 9프로나 다른 유골이 발굴된다. '끼어든 유전자'라 불리게 된 이 유골의 당사자들은 팔천년 전에 살았던 '부'와 '담'.

머리가 비상한 '부'와, 지능은 떨어지지만 경이로울 정도로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할 줄 아는 '담'은, 열악한 환경속에서 저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내고 있다. 남들과는 다른 외모와 지능 때문에 이들은 언제나 부적응자 내지는 저능아의 꼬리표가 달린 채 학교 안과 밖에서 괴롭힘과 놀림이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모자란 둘이 짝을 이루자 각자의 장점들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부와 담은 환상의 복식조로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멋지게 빅엿을 먹일 계획을 세운다. 훗날 어른이 되서 만난 둘은 하나씩 계획을 실천해 나간다.

 

부와 담을 잡아두었던 정신병원에서는 남들과 다른 인류, 선동가들의 출현을 우려하고 특별한 존재들을 사전에 파악해 봉쇄한다.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어 먹으려는 환자들의 노력을 강제진압한다. 천재 부가 만들어낸 행복 바이러스가 온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지만, 국제적인 권력집단인 '로제타 스톤'에서는 이것을 디지털 마약으로 규정하고 금지한다. 편하게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들만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할 도구인데, 일을 안하게 되면 곤란하다.

 

몰개성이 미덕처럼 강요되지만 사실 한사람 한사람은 같지 않다. 평범하고 어딘가 한부분씩 모자란 사람들일지라도 서로 다른 부분들이 합쳐지면 그것이 큰힘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훗날 바보 누구누구라 불리게 될, 세상을 바꿀 또다른 인류의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써내려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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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스 게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5-2 존 코리 시리즈 2
넬슨 드밀 지음, 서계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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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수다쟁이 존 코리가 돌아왔다. 그것도 그 시니컬한 입담을 더 연마해서.... 쉴세없이 떠들어대는 만담가같은 형사가 주인공이라서야 어디 잔혹한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한 스릴러의 분위기가 제대로 날까 싶기도 하지만, 856페이지나 되는 질풍노도의 이야기를 말빨로만 끌어 갈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 이 존 코리라는 남자, 머리는 물론이고 허리도 확실히 쓸 줄 아는 긴장감 넘치는 폭주 특급 중년이다. 어쨌든 재미있는 책이다. 다만, 현실에서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붕괴라는 악몽을 이미 경험한 때문일까, 이에 필적하는 비행기 테러의 공포로 시작하는 경악의 전반부는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점점 개인의 복수극으로 초점이 바뀌면서 스케일 다운해 버리는 후반전은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존 코리는 여전히 매력있다. 오십줄에 들어선 남자와 삼십대의 여자. 언뜻 염치없어 보이는 이 로맨스가 있어서 그래도 중반에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었다고 생각한다. 수다쟁이의 입을 막으려면 뭔가 다른 집중할 만한 흥미거리가 필요한 법이니까. FBI의 여수사관이 폭로하는 FBI의 내부사정은 포복절도하게 만들고, 코리를 비롯한 등장 인물들을 빚어내는 솜씨가 변함 없이 능수능란하다. '아사드 칼릴'이라는 테러리스트의 캐릭터는 소설적으로는 아주 정공법이지만, 일단 각종 매체를 통해서 현실의 테러리스트를 이따금씩 엿보고 난 지금은 어쩐지 달라 하고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주변에서는 모두들 좋아하는 넬슨 데밀이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고 언뜻 보아도 덩치큰 책인데다 여기에 활자의 오밀조밀함을 감안하면 거의 어지간한 책 천페이지 이상의 분량을 한권값으로 읽을 수 있는 이책은 독자의 주머니 사정을 배려해주는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좀더  팔리지 않지 않으면 안 되는 작가다. 여기까지 쓰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지만, 이거 어쩌면 다이하드나 리썰웨폰 같은 게 데밀의 머리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즉 극사실주의보다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은 만들기라고 할까. 요점은 영화화 목적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이 가벼움은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오락성 충만한 완성품이다. 그래도 하나만 말하자면, 넬슨 데밀은 이미 그런것 쓸 필요없지. 무거워도 어두워져도 괜찮으니까, 존 코리가 여기서 조금 과묵해 진다고 해서 그 때문에 재미가 반감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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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사를 믿었다
R. J. 엘로리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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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죽음과 맞닿아 있던 한 사내의 영혼의 궤적을 그린, 연대기라 불릴만한 품격과 중후함을 갖춘 소설이다. 미국 남부 조지아 주의 시골 마을 '오거스타폴스'를 무대로, 소녀만을 노리는 연쇄살인마와 이 악마같은 사건의 악몽에 사로잡힌 한 소년의 기구한 운명을 그리고 있는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 소설이 하나의 서브장르가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얼마든지 주류일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언뜻,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잔혹한 범죄가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이 장대한 이야기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의 대부분은 '조지프 캘빈 본'이라는 화자의 비극적인 인생을 그리는데에 소비된다. 거듭해서 덥쳐오는 불행의 파도, 철저한 리얼리즘과 강렬한 문체는 소설 속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년 조지프가 본 것은, 사신의 모습과 천사의 하얀 깃털이었다....

 

1939년, 12살의 조지프는 같은 반 여자아이의 죽음과 마주친다. 강간과 구타를 당해 끔찍한 소녀의 사체는 벌거벗겨진 채로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이후 주변지역에서 몇번이나 반복해서 일어나는 소녀 참살사건은 조지프의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평소에 신이나, 천사와 인간의 연결에 대해 생각하는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 순진한 성격에 더해 일찍 아버지를 여읜 경험으로 '죽음'에 대한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 민감했던 조지프였다. 이지적이던 그의 어머니까지 어느 사건이 원인이 되어 정신병에 걸리고, 일찌감치 조지프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던 여교사와도 슬픈 이별, 그리고 운명처럼 만난 연인과도....

전혀 기억에도 없는 증거를 날조당하면서 조지프의 길고 긴 어둠의 생활이 시작된다. 군데군데, 후에 작가가 된 조지프의 문장이 삽입되서 이 긴 여정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지프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잃어가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다만 비극이 이어지는 것 뿐이라면 그저 신파극에 지나지 않았을 터, 비극이 도래하기 전까지 저자의 펜 끝은 조지프의 인생에 찾아오는 행복을 서서히, 그리고 선명하게 그려낸다. 난생 처음으로 타인에게서 인정받는 기쁨, 선생님과의 감정의 교류, 소꿉친구와의 우정, 수호자들이라 이름붙인 소년 탐정 단의 사명감, 첫사랑, 결혼....

하지만 그 정점에 오르는 순간마다 매번 그는 나락의 바닥으로 내쳐지고 만다. 소년 시대부터 작가를 목표로 해온 조지프는 작가가 됨으로써 비로소 비극과 타협하고,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연쇄 살인마를 쫓기 시작한다.

 

조지프를 포함해서 엄마, 선생님, 그리고 아버지 대신이었던 라일리 아저씨까지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나 깊다. 되풀이 해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 많아서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수시로 멈추지만 그렇다고 늘어지는 것은 아니다. 깊이있는 문장이 이야기를 더욱 농밀하게 만든다. 범인 찾기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 생명, 정신, 선과 악, 용서 등으로 깊숙히 연결되어 간다.

과연 광기에 찬 진범이 밝혀지는 것만으로 이 지독한 여정이 결말 지어질 수 있을까? 마침내 긴 고난의 세월도 마지막을 고하게 되는 것일까?

범인의 정체에 대한 불안감이 차츰 확신으로 굳어져 가는 마지막 조지프의 긴 독백은, 이러한 이야기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문학적 감동마저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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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
폴라 매클레인 지음, 이은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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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떠나버린 사랑을 잡으려고 싸우는 것은 사라진 도시가 남긴 폐허 속에서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헤밍웨이 사후 50주년인 지금 저작권 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헤밍웨이 관련 서적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 헤밍웨이의 작품이나 자서전이 아닌 그의 첫번째 아내 해들리의 시선으로 헤밍웨이와의 만남과 결혼생활, 헤어짐, 그리고 짧은 후일담을 그려낸 히스토리컬 픽션이 있어 읽어보았다. <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라는 제목의 책이다.

 

주인공인 '해들리 엘리자베스 리처드슨'은 헤밍웨이의 첫번째 부인이다. 헤밍웨이는 이후에도 3번의 결혼을 더 하게 되는데, 다른 부인들이 전부 지식있고, 세련된 신여성이었던데 반해서, 이 해들리는 예술가나 지식인과는 무관한 평범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무명 시절의 헤밍웨이와 결혼한 여성이기도 하다. 일명 스타터 와이프다. 해들리와의 결혼생활 중에 헤밍웨이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하면서 일약 유명인사로 발돋움한다. 

 

소설은 주로 해들리의 시점에서 쓰여져 있고 가끔 헤밍웨이의 목소리가 들어간다. 둘이 부부로 지낸 기간은 1921년부터 1927년까지로, 결혼과 동시에 해들리는 무명 저널리스트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던 헤밍웨이와 파리로 건너간다. 재즈 시대의 파리. 여기서 헤밍웨이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거트루드 스타인이나, 피츠제럴드, 피카소등의 예술가들에게 자극을 받으며 소설을 쓴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빠듯한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해들리는 헤밍웨이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친구로서 마음을 열고 지내던 저널리스트 폴리와 남편 헤밍웨이의 불륜을 알게 된다. 헤밍웨이는 해들리와의 이혼 4개월 후, 폴리와 재혼한다.

 

해들리는 올곧고 착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막내딸로 태어나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보살피는 동안 노처녀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8살 연하의 헤밍웨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는 대단히 핸섬하고 패기에 넘치는 젊은이였다. 그런데 의외로 한참 연상인 해들리를 사랑하게 된 것은 헤밍웨이는 헤밍웨이대로, 자신의 재능을 믿고 지지해 주는 성숙한 여성에게 끌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파리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 당당한 헤밍웨이의 옆에 시골에서 막 올라온 큰 누님처럼 익숙하지 않은 해들리가 있어서 조금 안타깝다.

 

헤밍웨이는, 훗날 "해들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고 후회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쓸쓸한 말로는 조강지처를 버린 탓일까? 

 

만약 이 이야기가 논픽션이라면, 좀 더 빠져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해들리는 대단히 좋은 여성이고, 남편을 믿고 지지함으로써 보람을 느끼는 기분도 잘 이해 할 수 있지만, 역시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어느 정도 성격이나 돌발적인 면이 있는 인물로 그려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거의 논픽션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으로 읽으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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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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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행동심리학을 다루는 서적에는 단골처럼 등장하는 아주 유명한 사례지만, 몇번을 다시 보아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조용한 주택가에서 수많은 이웃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무자비하게 살해당하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걸까? 그 안타까운 의문이 당사자에게는 살해당하는 공포보다도 더욱 기괴하게 다가왔을지 모른다.

 

1964년 3월의 어느 날 밤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이름의 젊은 웨이트리스가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에 일면식도 없는 남자에게 살해당한다. 이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나중에 드러난 것만 해도 무려 38명, 그들 중 누구도 달려나와 제지한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신고조차 하질 않았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일단 물러났던 범인이 태연히 현장으로 돌아와 중상을 입고 버려져 있는 피해자를 재차 린치한 것이다. 이것이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전말이다.

 

이 목격자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하나같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인간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키티 제노비스가 죽어도 싸다고 생각될 만큼 평판이 좋지 않은 여자였던걸까? 굉장히 쇼킹한 사건이 아닐 수 없지만, 의외로 이런 이해가 안가는 일은 이후로도 종종 있어왔다. 최근에는 러시아워 중에 수천대의 차량이 정체해 있는 대교위에서 다른 운전자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던 한 여성 운전자가 견디다 못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까지 있었던 걸 보면, 키티 제노비스의 이웃에만 특별히 한 냉정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목격자들이 보인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양상을 '방관자 효과'라고 하고,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이의 표본같은 케이스로 꼽힌다. 방관자 효과는, 목격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개개인의 책임감은 감소한다는 것인데 이는 실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제노비스 사건에서도 방관자들 한명 한명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결코 이기주의적이고 타인의 고통을 나몰라라 할 사람들은 아니다. 모두가 성실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며 게중에는 정의감에 넘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 사건이 탁 트인 공간이 아닌데서 벌어졌다면 그때도 이 방관자들은 못본채 했을까? 해석은 분분하겠지만 나로서는 전적으로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당연히 누군가가 신고했으리라.' 하는 방관자 효과의 탓으로 돌리고 싶다.

 

그러나 실험데이터만을 바탕으로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너무 몰인정한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저자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이책에서는 이 사건을 인간의 이기심과 타인에 대한 무관심의 측면까지도 포함해서 심도 있게 고찰해 나간다. 

제노비스 사건의 잔학무도한 범인이 평범한 가장의 탈을 쓰고 살아가면서 저지른 또 다른 끔찍한 범죄들과, 법정에서의 태연함 등에서 보여지는 싸이코패스적 성향은, 키티 제노비스의 극히 평범한 삶과 대비되서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크게 가공하지 않고 사건을 서술해가듯 담담한 문체는 마치 한편의 논픽션을 읽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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