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
폴라 매클레인 지음, 이은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이미 떠나버린 사랑을 잡으려고 싸우는 것은 사라진 도시가 남긴 폐허 속에서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헤밍웨이 사후 50주년인 지금 저작권 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헤밍웨이 관련 서적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 헤밍웨이의 작품이나 자서전이 아닌 그의 첫번째 아내 해들리의 시선으로 헤밍웨이와의 만남과 결혼생활, 헤어짐, 그리고 짧은 후일담을 그려낸 히스토리컬 픽션이 있어 읽어보았다. <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라는 제목의 책이다.

 

주인공인 '해들리 엘리자베스 리처드슨'은 헤밍웨이의 첫번째 부인이다. 헤밍웨이는 이후에도 3번의 결혼을 더 하게 되는데, 다른 부인들이 전부 지식있고, 세련된 신여성이었던데 반해서, 이 해들리는 예술가나 지식인과는 무관한 평범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무명 시절의 헤밍웨이와 결혼한 여성이기도 하다. 일명 스타터 와이프다. 해들리와의 결혼생활 중에 헤밍웨이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하면서 일약 유명인사로 발돋움한다. 

 

소설은 주로 해들리의 시점에서 쓰여져 있고 가끔 헤밍웨이의 목소리가 들어간다. 둘이 부부로 지낸 기간은 1921년부터 1927년까지로, 결혼과 동시에 해들리는 무명 저널리스트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던 헤밍웨이와 파리로 건너간다. 재즈 시대의 파리. 여기서 헤밍웨이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거트루드 스타인이나, 피츠제럴드, 피카소등의 예술가들에게 자극을 받으며 소설을 쓴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빠듯한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해들리는 헤밍웨이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친구로서 마음을 열고 지내던 저널리스트 폴리와 남편 헤밍웨이의 불륜을 알게 된다. 헤밍웨이는 해들리와의 이혼 4개월 후, 폴리와 재혼한다.

 

해들리는 올곧고 착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막내딸로 태어나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보살피는 동안 노처녀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8살 연하의 헤밍웨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는 대단히 핸섬하고 패기에 넘치는 젊은이였다. 그런데 의외로 한참 연상인 해들리를 사랑하게 된 것은 헤밍웨이는 헤밍웨이대로, 자신의 재능을 믿고 지지해 주는 성숙한 여성에게 끌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파리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 당당한 헤밍웨이의 옆에 시골에서 막 올라온 큰 누님처럼 익숙하지 않은 해들리가 있어서 조금 안타깝다.

 

헤밍웨이는, 훗날 "해들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고 후회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쓸쓸한 말로는 조강지처를 버린 탓일까? 

 

만약 이 이야기가 논픽션이라면, 좀 더 빠져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해들리는 대단히 좋은 여성이고, 남편을 믿고 지지함으로써 보람을 느끼는 기분도 잘 이해 할 수 있지만, 역시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어느 정도 성격이나 돌발적인 면이 있는 인물로 그려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거의 논픽션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으로 읽으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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