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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시공을 초월한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감정의 교류를 그리고 있습니다. 본격 미스터리는 물론이고, 모험 소설에서부터 SF판타지, 청춘 미스터리나 패러디에 블랙 코미디까지 폭넓은 작풍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그의 작품군 안에서도, 이 소설 <도키오>는 조금 그 궤를 달리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인만큼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빠지지는 않지만 그 색체는 그다지 짙지 않은 편입니다. 감동판타지라고 해야할까. 굳이 비교하자면 전작인 <비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도키오"라는 이름의 청년이 난치병인<그레고리우스 증후군>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져 병실에 누워있습니다.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은 뇌신경이 서서히 죽어가는 유전병입니다. 도키오의 모친인 "레이코"쪽 집안 사람들은 원래부터 이 "저주받은" 병의 인자를 가지고 있어서, 처음부터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하고 결혼을 강행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하게된 임신. 중절수술을 받으려는 레이코를 설득해 도키오를 낳게 한 것은, 남편인 "미야모토 다쿠미"였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아들을 앞에 두고, 레이코는 다쿠미에게 말합니다. "저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어.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행복했는지 아니면 우리를 원망하는지." 그 말을 들은 다쿠미는, 레이코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20년도 더 지난 과거에 만났던, 도키오라고 자칭한 소년과의 추억을....
이후 장면은 1970년대 후반으로 넘어옵니다. 그 당시의 다쿠미는 열정도 없고, 인내심도 없고, 변변한 직장도 없는 백수건달. 그러던 어느 날, 아사쿠사 놀이공원에서 그는 한 소년과 만납니다. 마치 다쿠미를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묘하게 허물없이 행동하는 이 소년은,자신의 이름은 도키오이고 다쿠미와는 먼 친척 사이라며, 그의 집까지 따라와 그대로 머무르게 됩니다. 그리고 몇일 후, 다쿠미의 연인인 "치즈루"가 갑자기 자취을 감추고, 도키오와 다쿠미는 그녀의 행방을 쫓기 시작하지만, 한편 그 여정은 또한 다쿠미의 출생을 더듬어 올라가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읽기 쉬운 문장과 스피드감 있는 이야기로, 독자를 끌어 들이는 특유의 흡입력은 변함 없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로서는 드물게,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의 소설 중에 이만큼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또 있었는가 하면 국내에 소개된 것들 중에는 별로 떠오르는 작품이 없습니다. 각 캐릭터가 가진 개성이 확실하고, 호감가는 캐릭터들 뿐이므로, 상쾌한 기분으로 읽을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색깔의 인물들에 의해,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는 드라마로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치즈루의 여자 친구와, 복서출신인 그녀의 흑인 애인, 야쿠자 무리들과 뒤얽히는 오사카에서의 스토리는 매우 속도감이 있습니다. 작가가 오사카 출신이라서 그럴까요. 그 전까지의 진행과 비교하면 오사카의 정경은 유독 세밀한 곳까지 묘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로 인해 삐딱한 삶을 살고 있는 다쿠미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청년입니다. 도키오와의 만남으로 인해, 만남에 의해, 다쿠미는 점점 좋은 방향으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정말로 소중한 것을 깨달아 갑니다. 점차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현재, 과거, 그리고 미래가 교차하는 이야기는, 그것 자체만 생각하면 굉장히 비현실적이기도 해서, 흔히 있는 타임슬립 계통의 SF소설로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SF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다쿠미나 도키오나 그 밖의 다른 등장 인물들의, 인생이나 가족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여러가지 형태로 현실감있게 그려지고 있어서, 오히려 주위에서 정말로 일어날수 있을법한 이야기라는 기분으로 읽을수 있었습니다.
내일만이 미래가 아닙니다.
태어나게 해주어서 감사해요.
미래를 살아 주세요.
젊은 시절의 아버지에게 전하는 도키오의 말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느낌입니다.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생명이 사그러 들어가고 있을 때에도 누군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기분을 가질 수 있는 것, 그런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재차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감상을 가질수 있는 것도,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것. 부모님께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쉴새없이 가슴을 후벼파는 신파조의 작품은 아니지만, 서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덧붙여서, 이 책에 나오는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이라는 병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서 만든 가공의 증상이라고 합니다. 발병원인, 증상의 경과등이 상당히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어서, 처음에는 아, 이런 희귀병도 있구나하고 놀랐습니다. 지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인터넷 검색이라던가 의학사전을 뒤적거려보기도 했습니다만 도저히 그 정보를 얻을수가 없더군요. 역시 희귀병은 희귀병인가보다 혼자 납득하고 있다가 왠걸, 역자후기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창작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