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트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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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무 강한 선물 때문에 눈이 봉인된 소년

이야기의 배경은 "서부 해안" 이라는 가상의 장소입니다. 다만 그 세계관은 중세시대의 유럽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영주들이 서로의 영토와 백성을 거느리고 있고 때로는 그 사이에서 작은 분쟁이 일어납니다. 고지대에 사는 영주의 일족에게는 혈통을 따라 "선물" 이라 불리는 특별한 능력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렉은 "되돌림" 이라는 능력을 가진 카스프로가의 후계자로서 태어났습니다.

"되돌림” 은 의지와 시선의 힘에 의해, 모든 것을 만들어지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라는 힘으로. 13살이 된 오렉은 아직도 자기의 그 선물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길들지 않은 재능은 대단히 위험하고, 의도치 않게 발휘된 힘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수도 있는 만큼, 오렉은 자신의 눈을 봉인해 줄 것을 아버지에게 부탁합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오렉의 아버지나 그 외의 일족의 장들이 안락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의 안녕을 도모해야 하는 고충이 있고, 선물을 가지지 않은 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오렉의 어머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저지대의 사람이며, 총명하고 상냥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오렉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

이 이야기 안에서 선물은 일종의 초능력이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능력으로 바꾸어 읽어 볼 수도 있습니다. 판타지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읽는 방법이 가능하므로, 모든 것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하는데는 보통의 소설보다도 오히려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 세계의 제약이나 허례허식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를 핵심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부여되어 있는 선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개인의 성장에 있어서도 소중한 기회가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렉의 일족에 전해져 내려오는 선물 "되돌림"은 파괴와 살육의 능력이기 때문에 그것을 혐오하는 오렉은 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거부하려 합니다. 오렉의 소꿉친구이자, 동물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소녀 그라이는 선물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타고난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능력은 좋은 것이 될수도 있고 나쁜것이 될수도 있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능력은 지니고 있지 않은 오렉의 어머니지만, 대신에 글을 읽고 쓸줄 아는 재주로 오렉에게 이야기나 시의 훌륭함을 가르칩니다. 어머니로부터 주어진 이 "선물" 이 어떤 의미로는 오렉을 구하게 됩니다. 이 부분의 전개가 실로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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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세상이다 - 청소년과 가정을 위한 지식사전
피에르 제르마 지음, 최현주 옮김 / 하늘연못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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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침대 머리맡의 책,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적거릴 때의 흥미로움과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의 즐거운 긴장감을 주는 책"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이 추천사처럼, 이 책의 매력을 맛깔나게 표현해 줄만한 멋들어진 표현을 생각해내고 싶었는데 좀처럼 머리가 굴러가질 않아 그냥 인용하기로 한다. 정말 추천사 그대로인 책이다. 항상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펼쳐 읽게 되는 책. 사실, 장정도 훌륭하고 구성이나 삽입된 자료 모든 면에서 이처럼 시각적인 효과가 뛰어난 책은 백마디 말보다는 한장의 사진이 소개하는데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에서 이렇게 설명으로만 끄적이는 리뷰는 성의 없게 보인다고 해도 할말이 없는 그런 책이다.

인류의 장대한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뽑아낼수 있는 사건이나 인물등의 개별 주제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겠지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인류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손이 닿아 생겨난 창조물들이라는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역사를 말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역사서인 것은 아니고, 그 대상들을 하나하나 흥미로운 일화를 곁들여 설명하고 있는데, 만약 칙칙한 느낌의 백과사전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펼쳤다면 그 화려함과 세밀한 구성에 분명 두눈이 휘둥그레지고 말 것이다.

책표지를 넘기자마자, 표지 안쪽에 그려져 있는 1797년경 프랑스 농부들의 파종기라던가, 가르느렝의 낙하산, 아고스티노 라멜리의 만능 수륙양용차같은, 정말로 이런게 있었을까 싶은 발명품들의 단색 삽화가 눈길을 끈다. 전체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1장은 대지와 인간, 2장에는 관습과 제도, 3장 종이와 기록, 4장 도구와 발명, 5장 탈것과 이동, 6장 음식과 기호, 7장 의복과 꾸밈, 8장 건강과 의학이라는 제목이 각각 붙어있고, 각장은 그 주제에 해당하는 수십개씩의 하위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본문을 들어가보면 제일 먼저 <1. 지구의 나이>라는 소제목과 함께, 한페이지 꽉 채워서 13세기의 프란체스코 수도자였다는 인물이 그려낸 지구의 4원소의 컬러삽화와 그 삽화에 대한 부가설명이 있고, 맞은편 페이지에는 소제목과 관련된 본 설명과 일화들이 담겨있다. 이렇게 해서 순차적으로 <2. 행성의 발견>,  <3. 쟁기의 등장>, <4. 망치의 두얼굴>... <68. 영화의 개척자들>... <253. 빵>...<407 파스퇴르 살균법 소독법>... 그리고 마지막 416번째로 에이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때까지 인류의 창조물들과 관련된 밀도높은 지식들과 흥미진진한 일화들을 맛볼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다채로운 그림과 사진 자료들은 인류의 발전사를 마치 두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난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한다.

접근하기 어려운 딱딱한 책이 결코 아니며, 필요할때 원하는 주제를 찾아 읽는 재미와 함께 브리태니커의 풍부한 자료를 접할때와 같은 지적 포만감마저 느껴진다. 잡학사전이라고 해도 좋고 일종의 교양서적으로 봐도 무방하다. 세밀한 자료의 질은 성인들은 물론이고, 그 시각적인 화려함으로 아직 어린 독자들에게까지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듯하다. 방대한 인류의 역사를 이런식으로 즐겁게 들여다 볼수 있는 책이라면, 이 책과는 또 다른 주제를 다룬 자매뻘쯤 되는 책들이 더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을 포함해서 콜랙션으로서도 상당히 가치가 있었을텐데 아쉽다. 제목 그대로 '이것이 세상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하나의 작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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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사건의 용의자를 향해 다가가는 리포터, 카메라가 움직이는대로 덜컹덜컹 위아래로 흔들리는 영상, 마치 급박한 티비 뉴스의 한장면을 보고 있는 것같은 인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름다운 명승지 가쓰라와 계곡, 그 근처에 '안 단지'라 불리는 시영단지가 있다. 자갈이 깔린 광장을 'ㄷ'자로 에워싸듯 세워져 있는 30채 정도의 낡은 단층집. 하나같이 낡은 가옥의 처마밑에는 녹슨 프로판 가스가 설치되어 있다. 이 곳의 주민중 한사람인 다치바나 사토미의 4살난 아들이 2주일전에 계곡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엄마인 사토미. 경찰은 엄마가 아들을 거추장스럽게 여겨 살해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사토미의 집앞에는 취재를 나온 보도진의 차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용의자인 그녀의 행동은 어딘가 이상하다. 한가로이 인터넷으로 쇼핑을 즐기고 무방비한 차림새로 외출을 하는가하면 카메라 앞에서도 당당하다. 오히려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듯 화장이 나날이 짙어져 간다. 시선을 확 잡아끄는 이 초반부의 진행은, 어떻게 해야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지 그 진가를 보여주려는 듯 하다.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듯한 이 상황의 추이를, 숨을 삼키고 지켜보게 만든다.

그렇지만 소설은 의외로, 이 충격적인 사건을 계속해서 쫓아 가지는 않는다. 이 잔인한 엄마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잠시, 용의자의 돌발적인 진술은 수사진의 눈을 순식간에 그녀의 이웃집에 살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로 향하게 한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인 오자키 슌스케. 근처의 공장에서 계약 사원으로서 일하면서, 휴일에는 부업으로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리키고 있다. 경찰에 불려가 취조를 받던중 이 남자의 과거가 드러난다. 학창시절에 야구선수였던 남자는, 야구부 동료들과 함께 집단 강간사건을 일으킨 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의 과거를 파헤치는 출판사 기자 와타나베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강간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후의 삶, 두사람의 엇갈린 운명. 그것이 진짜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스토리를 미리 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건 아니지만 소재가 소재인만큼 줄거리만큼은 더이상 언급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심리묘사에 정평이 나있는 작가답게 범죄의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들의 심리를 재해석해서 그려내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찾아낸 사랑의 모습이 압권이다. 이것으로 요시다 슈이치는 굉장했던 <악인>에 이어 2연타. 아이러니한 사랑의 진수를 보여주는 두작품이지만 그 중에서도 보다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만한 쪽은 역시 이 작품, <사요나라 사요나라>라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짊어지고 가는 죄책감, 그리고 피해자였던 여성의 고통으로 점철된삶. 상반된 입장의 두 남녀가 살아온 모습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또하나 주목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집단강간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비록 사소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 사건은 두고두고 오자키를 지겹게 따라다닌다. 그리고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업이다. 그렇지만 남자인 오자키에게 그것은 충분히 감수할수 있는 범위에서의 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오자키의 과거를 두고 '남자'이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피해자였던 여자의 삶이야말로 뭐라 말할수 없을 정도다. 그 사건 이후로 그녀의 삶은 더이상 스스로 컨트롤하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자꾸만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져왔다. 남자와 여자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차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이쯤되면 같은 감상이라 하더라도 남성독자와 여성독자가 느끼는 그 정도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해자인 오자키의 죄의 댓가는 집행 유예 5년이었다. 그 나름대로 죄를 갚으려고 한 그는, 본인 스스로도 너무나 쉽게 용서받았다고 생각할 만큼 예상외로 순조롭게 사회에 복귀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피해자인 여자는? 사건을 쫓던 와타나베와 선배기자의 사적인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만약에 아드님이 강간사건 같은 것을 일으킨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글쎄 실망스럽겠지."
"실망?"
"그런 바보같은 일로 아들의 일생을 망친다고 생각하면 엄청 실망하겠지. 부모로서는."
"그럼 만약 따님이라면?"
"딸, 딸이 강간당한다고?"
"네에."
"그, 그런 놈은 때려 죽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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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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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채널제도에 있는, 태양과 바다의 섬 건지섬이다.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라는 이 책의 특이한 제목은 바로 이 건지섬 주민들의 문학모임의 이름이다. 문학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섬이 독일군 점령하에 있던 시절, 특별한 사정에 의해 급조된 이 모임의 회원들은 대부분 그전까지는 문학과 전혀 관련이 없던 사람들이다. 과묵하고 내성적이지만 배려심많고 다정다감한 도시 애덤스, 모임의 정신적 지주이자 실질적인 리더인 아멜리아 여사, 정체가 불분명한 수상한 물약을 제조하고 있는 이솔라 프리비, 어린 나이에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그렇지만 귀엽고 사랑스럽고 똑똑한 소녀 키티... 등등, 하나같이 개성이 넘치면서도 착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이 등장인물들은, 마치 정많고 푸근한 우리네 어느 시골마을의 정경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데다가, 이런 건지섬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던 작가 줄리엣 에쉬튼이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의 멤버들과 교류를 시작하게 된 것은, 어느날 도시 애덤스로부터 날아든 한통의 편지가 계기였다. 줄리엣의 손을 떠난 찰스램이라는 작가의 수필전집이 우연히 도시 애덤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책표지 안쪽에서 줄리엣의 이름과 주소를 발견한 그가 찰스램의 다른 책을 구하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며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에 흥미를 느낀 줄리엣과 독서클럽 멤버 모두와의 서신 교류로 이어진다. 서신을 통해 이들과 진솔한 우정을 쌓아가던 줄리엣 애쉬튼은 결국 이 사랑스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답답한 대도시 런던을 떠나 아름다운 건지섬으로 향한다.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 문학 이야기, 줄리엣은 이 다정다감한 섬사람들에게 동화되어 간다.

건지섬도 항상 평화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이 조그만 섬도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서는 비켜갈수 없었다. 런던을 노리던 나치 독일이 그 교두보로서 건지섬을 점령했었던 것이다. 독일군 점령하의 5년여 동안 건지섬의 사람들은 외부와 차단된채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 비록 전쟁이 남긴 상처는 건지섬만의 것은 아니였지만, 자유와 희망을 되찾은 지금도 그때의 후유증은 아직 섬 곳곳에 남아있다. 현명하고 용기있는 엘리자베스와 이방인 레미의 사연은 전쟁의 아픔과 처참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아 가슴을 무겁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 안타까움으로 이야기 자체가 짖눌리는 일은 결코 없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던 그 따뜻한 시선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항상 상처를 딛고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편지와 전보, 그리고 메모에 이르기까지, 서신만으로 이루어진 이 특별한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느끼기 쉬운 그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문장 한문장 진솔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내려갈 때의 설레임과, 그것을 기다리는 설레임. 그런 즐거움과 항상 함께 하는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의 멤버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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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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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때는 1841년. 뉴욕의 한 담배가게의 여종업원인 메리 로저스가 허드슨강 호보큰 강둑에서 끔찍한 사체로 발견된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던 이 아름다운 아가씨의 의문의 죽음은 현지언론들에 의해 연일 대서특필 될 정도로 큰 주목을 받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고 사건은 점차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 한편, 리볼버식 권총의 발명으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던 대부호 콜트가의 일원인 존 콜트는 출판과정에서의 트러블로 인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이것이 발각되어 사형날짜를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그때 마침 메리 로저스와도, 존 콜트와도 모두 친분이 있던 한사람의 작가가 메리 로저스 사건의 해결을 천명하며 나선다. 그가 바로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으로 추리소설의 선구자가 된 "에드거 앨런 포"였다.

에드거 앨런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추리소설의 아버지"라는 수식어. 그런 수식어답게 그의 실제 인생도 소설만큼이나 파란만장하고 미스터리하다. 괴짜에다가 수수께끼에 싸인 그야말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 그런 포를 소설 속에 등장시키고 싶어하는 것은 추리소설 작가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욕구일지도 모른다. 한 1, 2년쯤 전에 이 '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먼저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기대가 컸던데에 비해서는 그 결과물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포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파헤쳐 보이겠다는 발상은 좋았지만, 몇몇 알려진 일화들만으로 포의 행적을 재구성하는게 역부족인듯한 인상이었다. 결국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한, 루팡과도 같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식 모험활극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이 작품 '가장 검은새'에서 포를 그리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일단 이야기의 중심에 포가 있기는 하지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상급치안관인 헤이스. '포'의 생애를 파헤치자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그의 실제 알려진 일화라는 틀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헤이스의 눈에 비치는 관찰대상으로서의 포는 실존했던 몇몇 인사들과 함께 주요인물로써 이야기속에 보다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던 저작권법의 인지를 호소하며 출판사와 투쟁하는 모습이나, 공격적인 비평과 독창적인 창작활동의 한편으로 경제적으로는 곤궁에 시달리고 있던 이런 포의 생생한 묘사만으로도 흥미로운데 그 포가 왠걸,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떠오른다는 설정. 구성면에서는 이것만으로도 이미 얼토당토않은 매력으로 가득차 있는 작품이다.

추리소설 초창기의 시대적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역사 미스터리.

'포'도 포이지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중반의 미국은, 추리소설을 탄생시킨 시대라는 선입견이 작용을 해서인지 역사속의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추리소설과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는 인상이 있다. 가스등과 마차의 시대이다. 지금은 세계적 대도시인 뉴욕도, 포가 활동하던 19 세기 중반에는 인구 30만 안팎의 거리였다. 치안은 헛점 투성이이고 게다가 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뒤섞여 더더욱 범죄에 온상이 되기 쉬운 그런 환경이었다. 블랙달리아 사건을 소재로 그려진,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달리아> 처럼, 일찌기 미국을 뒤흔들었던 실제의 사건을 소재로 그려낸 역사 미스터리는 동시대를 무대로 한, 이 장르만의 독특한 즐거움을 제공해준다. 포에 얽힌 다양한 사건은 물론이고, 출판계, 무기 업계등의 화제를 잔뜩 담아넣은것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다룬 영화나 소설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갱단들의 이름도 등장해서 당시의 분위기를, 마음껏 맛보게 해 주는, 호화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거기에 비하면 그 매력적인 플롯만큼, 그 이야기 자체는 좀처럼 닳아오르지 않는다. 당시의 거리의 모습이나 풍습, 분위기등의 묘사라는 점과 메리 로저스 사건의 진상을 쫓는 스토리에 있어서는 확실히 재미있지만, 스피디함은 좀 떨어진다. 다만 그것이 이 작픔의 약점이라기 보다는, 애초에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다고 해야할것 같다. 숨가쁜 스릴이나 번뜩이는 반전에 가치를 두기 보다는, '포'라든가, '콜트'와 같은 실존인물을 등장시킨 사실성에 기반을 둔 흑백사진과도 같은 묵직한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즐기면서 읽으면 좋을것 같다. 문학적인 정취가 때로는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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